<결혼 피로연> 서울연극인상 시민평가단 총평 모음
공연 일시: 2013/04/06~04/07
공연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번역: 박상하(원작 안톤 체홉)
각색/연출: 이정하
극단: 극단 각인각색
“희곡자체는 굉장히 잔잔하나 연출적으로, 움직임 음향, 인물의 역할·연기를 살려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 만들어 진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더 극단적으로 지나치게 만들어졌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특히 장군 역의 배우들의 대사에서는 굉장히 늙고 쇠약했지만 생각보다 건강하고 마른 남자처럼 보여서 실망스러웠고, 캐릭터성도 잘 안보였다. 체홉 작품이 그러하듯, 그리고 관객이 공연을 보러 왔을 때 느끼는 지루함이 대다수가 느끼는 그것임이 그러하듯, 작품성을 놓고 보자면 무난했지만, 관객으로써 볼 때 조금 지루했다. 런타임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잠이 왔을 것 같다.”
– 강보름
안톤 체홉의 <결혼피로연>은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어느 평범한 소시민 가정의 결혼식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려내고 있다. 우선 이 작품 안에서 희극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결혼식의 허례허식 풍조는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21세기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큰 사회적 문제이다. 그러한 면에서 공연의 시작과 함께 사위가 결혼을 담보로 장모와 물질적 거래를 한 정황이나 지체 높은 장군을 돈으로 매수하여 결혼식에 참석시켜, 자신들의 콧대를 높여보고자 하는 신부 부모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순수한 결혼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현대인들의 자본주의사상과 허울의식을 드러낸다.
연극이 시작되면서, 무대는 한 식장의 모습과 같이 네 면에 긴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예식장 분위기에 맞는 소품이 놓여있다. 또한 등⋅퇴장로가 5군데나 되어 서빙 하는 사람, 예식장에 초대된 사람,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 등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니며 즐기고 마시는 예식장 홀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극 초반에 결혼식에 초대된 인물들은 다 함께 춤추며 신나게 떠들고 즐거워하는데 이 때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도 마치 하객이 된 듯 등장인물들이 인사를 건네고 극에 참여하여 함께 즐기도록 유도한다. 이는 결혼식의 경쾌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함인데 난 여기서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이유는 무대에서 춤을 추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정말로 즐거워 보이기보다는 춤은 너무나 정형화 되어 있어 말 그대로 짜여진 안무를 추며 합을 맞추기에 급급해 보였기 때문에 그들이 정말 결혼 피로연을 즐긴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에서 일부러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한 과장되고 정형화된 표현법은 인물들의 희극성을 잘 드러내 보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양 있는 척 하려는 신부 어머니의 ‘손수건’이나 시대에 뒤쳐져버린, 과거를 그리워하는 신부의 아버지가 항상 들고 다니는 ‘술병’ 그리고 계산적이고 기회주의자인 사위가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수첩’ 등은 그 인물을 대변할 만큼 중요한 오브제들이고 배우들이 이 오브제들의 활용을 캐릭터에 적절하게 응용하는 부분들은 연극을 보는 내내 위트적인 요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이 결혼 피로연에서 순수한 의도로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신부’와 ‘퇴역한 해군 중령’ 이 두 인물이다. 이는 이 공연의 맨 마지막 장면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는데 돈으로 매수한 장군이 퇴역한 해군 중령임을 알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뒤섞여 누군가는 도망을 시도하고 또 누군가는 돈을 받아먹은 놈을 잡기 위해 악을 쓰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장군에게 줬던 선물을 다시 가져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결혼식이라는 포장에 감춰져 있던 각기 인물들의 갈등(욕망)들을 신부와 중령만 빼고 슬로우로 움직이면서 표현한다. 그러한 면에서 신부와 중령은 어쩌면 이 결혼식과는 어울리지 않은 이방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생각을 더 확실히 하게 된 것이 신부와 중령만이 슬로우로 움직이지 않을 때 중령은 계속해서 나가는 문, 즉 출구를 찾는다. 그리고 신부는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시를 읊는다. 푸쉬킨의 이 시는 이 극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소시민들의 어둠과 같은 삶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신부가 이 시를 읊으면서 극도 막을 내리게 된다.
한국에 익숙한 소재와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낸 희극으로서 극을 보는데 큰 부담감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사회상을 직접적으로가 아닌 나라와 시대를 거슬러 간접적으로 보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다만 극의 초반과 후반을 통틀어 등⋅퇴장로가 많다 보니 여기저기서 교차해서 등장하고 퇴장하는 것들이나 초반의 많은 안무들이 너무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마지막의 해군 중령은 계속해서 소리만 지르다가 끝에 희미하게 중얼거리며 출구를 찾는 부분에서 임팩트가 느껴졌을 뿐 그 외에는 관객들에게 아무 얘기도 전달해주지 못하고 퇴장한 느낌이어서 그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 이원선
“<결혼 피로연>의 공연 시작은 참신했다. 정말 결혼 피로연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연극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결혼 피로연처럼 신나면서도 어수선한 상황을 잘 표현했다. 관객들도 하객처럼 여기는 연출력엔 재미있으면서도 자주 선물을 주는 장면들은 관객호응을 위해 너무 애쓰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배우들의 발성이 모두 좋았지만, 연기 톤이 다들 비슷해서 중간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결혼 피로연인 만큼 음악이 많이 나오고 노래와 춤을 추는 장면이 많았는데 지나치게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중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어수선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공연은 여성 연출가 작품이어서 그런지 심리표현과 상황을 재치 있고 세심하게 잘 표현했다.”
– 홍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