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기획 연재, 임야비의 음악으로 듣는 연극

부록 (10)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부록 제10편에서는 덜 알려진 작곡가들의 덜 알려진 파우스트 관련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차피 ‘괴테의 파우스트에 관련된 모든 음악 작품’을 두루 살펴보는 약 4년에 걸친 길고 험난한 산행이었다. (2020년 10월부터 괴테의 비극 ‘파우스트’ 편 연재 시작) 정상에 오르기 직전 ‘파우스트-부록’ 편으로 중간 휴식을 하고 있다. 기왕 앉은 김에 그리고 정상에 우뚝 솟은 거암의 벅찬 감동을 느끼기 전에, 지나쳐버린 작고 귀한 조약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첫 번째로 소개할 작곡가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독일 태생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프리드리히 부르크뮐러다. 이름조차 생소한 작곡가지만, 소싯적에 피아노를 꾸준히 배운 사람이라면 부르크뮐러의 피아노 교본 ‘25개의 연습곡 op.100’이 얼핏 기억날 것이다.   고전파 시대의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26세에 파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줄곧 활동했고, 창작 시기가 낭만주의의 복판이었기 때문에 부르크뮐러의 음악은 ‘프랑스 낭만’의 색채가 짙다.     19세기 중반, 파리 문화계는 괴테 파우스트에 사로잡혀 있었다. 1828년 제라르 드 네르발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파우스트가 문학계를 강타했고, 1831년 작곡가 루이스 베르탱(1805~1877)이 발 빠르게 오페라 ‘파우스트’를 무대에 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책으로 원작을 읽기보다는 개작한 공연 관람으로 독서를 대신하려는 경향은 똑같았기에, 베르탱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성공을 거둔다. 이후 베르탱을 거울삼아 여러 작곡가가 파우스트에 손을 댔고, 그리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는 ‘밑밥’에 불과했다. 1859년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파리 리리크 극장에서 초연되고,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뜨린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이후 ‘파우스트-오페라’를 다루려는 작곡가는 크게 두 부류로 갈라졌다.     한 부류는 구노가 차지한 ‘최고의 파우스트 오페라’를 빼앗기 위해 도전장을 던진 ‘야심 찬 도전자들’이었다. 1866년 24살의 청년 쥘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가 ‘툴레 왕의 잔 (la coupe du roi de thule)’이라는 파우스트-오페라를 완성했지만 상연조차 되지 못했다. 이어 1873년, 26살의 청년 외젠 디아즈(Eugène Diaz; 1837~1901)가 마스네 작품과 동일한 리브레티스트들의 대본으로 동명의 오페라를 완성해 후배 마스네를 제치고 작곡 대회 우승까지 따낸다. 하지만 150년이 지난 지금, 디아즈의 오페라 ‘툴레 왕의 잔’은 작곡가의 이름과 함께 완전히 묻혔다.   디펜딩 챔피언 구노의 방어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신중한 구노는 거듭되는 도전에 안전장치를 걸어둠과 동시에 관객들의 혼동을 피하고자 오페라의 제목을 ‘Margarethe’로 변경해 극장에 올리기도 했다.     다른 부류는 공전의 히트작인 구노의 파우스트에 묻어가는 전략을 취한 ‘소심한 편곡자들’이었다.  구노의 오페라에는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즐비한데, 그 인기가 대단하여 파리의 어느 살롱에 가도 사람들이 구노 파우스트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수많은 작곡가가 원작의 멜로디에 악기 편성을 다르게 하여 편곡하거나, 여러 변주를 붙여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OOO 곡’ 형식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먼저, 헨릭 비에니아프스키는 1865년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어 1868년에는 쟝-델핀 알라르가, 이듬해인 1869년에는 앙리 비와탕이 각각 ‘파우스트 환상곡’을 경쟁하듯 발표했다. 1874년에는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새로운 환상곡’을 연주회장에 올린다. (TTIS 2022년 4월 연재 – 괴테 파우스트 ‘부록(2)’ 편 참조) 이 유행에 비엔나의 왈츠 대가들까지 가세한다. 1861년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구노의 원곡을 인용한 ‘파우스트-콰드리유(op.112)’를 선보였고, 그의 형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3년 뒤 한술 더 떠 파우스트-콰드리유에 파우스트-왈츠와 파우스트-로망스까지 연작으로 작곡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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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9)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국립극단이 올린 ‘파우스트 엔딩’을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조광화 연출이 국립극단을 이끌고 명동예술극장에 올린 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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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8)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부록 제8편에서는 불세출의 종합 예술가 바그너가 18살(1831) 때 작곡한 ‘파우스트에 의한 7개의 노래(7 Kompositionen zu Goethes Faust, WWV 15)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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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7)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부록 제7편에서는 파우스트 연재에서 여러 번 언급된 리스트와 슈만의 소곡을 정리해 보자. 헝가리의 리스트와 독일의 슈만은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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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6)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부록 여섯 번째로 2022년 10월 ‘100~200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에서 ‘괴테 파우스트의 정경(Szenen aus Goethes Faust)’로 소개한 바 있는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다른 작품을 알아보자.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던 슈만은 조증 시기였던 1849년에 실러, 팔러스레벤, 헵벨, 뫼리케 등 다양한 시인의 작품에 짧은 음악을 붙이는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달 반 만에 29곡을 완성하여 ‘어린이를 위한 노래 앨범 (Liederalbum für die Jugend)’ Op. 79를 출판한다. 그가 선택한 시 중 팔러스레벤이 작품이 총 10편으로 가장 많고, 괴테의 작품은 세 편 포함되어 있다. 이 중 파우스트를 텍스트로 작곡한 작품은 제28곡 ‘탑지기 린케우스의 노래 (Lied Lynceus des Türmers)’다.    탑지기 린케우스의 이미지. 우측 사진은 Peter Stein 연출의 파우스트 비극 2부. (2000, 하노버)   린케우스는 천리안(千里眼)의 파수꾼으로 그리스 신화 아르고호 원정대에서도 망을 보았다. 괴테 파우스트 비극 2부의 매우 중요한 조연으로 2막에서 이름이 언급되고, 3막과 5막에 등장한다. 3막에서는 아주 멀리 있는 헬레나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이 멀 뻔하고, 마지막 5막에서는 지금까지 보았던 것을 아름답게 추억하며 곧 어두워질 미래를 노래한다.      비극 2부 5막 3장 ‘깊은 밤’의 도입부에서 린케우스가 부르는 노래는 11,288행부터 11,337행까지 총 50행으로 두 번의 휴지를 갖는 긴 운문이다. 위에 인용한 텍스트는 이 중 처음부터 첫 번째 휴지까지 총 16행(11,288행~11,303행)이다. 인용하지 않은 노래의 마지막 부분은 긴 휴지 후 두 행(11,336행~11,337행)인데 ‘예전에 볼 만하다 했던 것, 수백 년 세월과 더불어 사라졌구나’로 끝난다.   이 노래 다음 4장에서 파우스트는 ‘근심’에 의해 눈이 멀고, 5장에서 마지막 대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를 말하고 죽는다. 그리고 마지막 7장 ‘심산유곡’에서 파우스트는 구원받고, 거대한 비극이 끝난다.   즉, 린케우스의 노래에는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극작가 괴테는 ‘먼 곳’이라는 공간과 ‘미래’라는 시간까지 볼 수 있었던 그의 눈을 통해 결말을 암시한다. 린케우스의 눈은 시공간을 초월해 만물을 보았던 파우스트의 눈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눈이 곧 감기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mDvAs8J_G8   슈만은 괴테 원문의 앞부분에만 음악을 붙여 3분 남짓한 가곡을 만들었다. 괴테가 원문에 ‘노래한다.’라는 지시어를 써놓았고, 대사 자체가 각운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운문이기 때문에 슈만이 텍스트에 음을 붙이는 것은 무척 수월했을 것이다. 성악이 잠시 쉬는 부분에서 피아노가 린케우스의 뿔피리 또는 종탑 소리를 흉내 내는 부분이 재미있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마지막 대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를 강력하게 암시하는 ‘그건 무엇이었든 다 참 아름다웠어! (Es sey wie es wolle Es war doch so schön!)를 곡의 마지막에 두 번 더 강조한다.   그런데 이게 전부다. 슈만은 이 중요한 텍스트에 딱 ‘음’만 보탰다. 아무리 어린이를 위한 곡이라지만 22마디 정도의 악보는 단순하기 짝이 없고, 편평한 선율이 한 마디 또는 두 마디씩 반복된다. 피아노 반주는 성악의 음정과 박자를 동시에 복사할 뿐이어서, Lied(예술가곡)라 칭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결정적으로 도돌이표를 사용해 지루한 전체 19마디를 한 번 더 노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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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5)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정상에 오르기 직전, 지난 여정에서 놓친 것들을 되짚어보는 다섯 번째 시간이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파우스트 연재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다. 파우스트와 관련된 그의 여러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진 합창곡인 ‘Chor der Engel(천사들의 합창) S.85’을 희곡, 음악 그리고 연출의 세 결로 해부해 보자.       먼저 텍스트는 파우스트 비극 2부의 말미인 ‘매장(Grablegung)’이다. 독일어 원문의 11,604행부터 11,843행까지로, 이 전 장에서 파우스트가 죽고, 이후 장은 장대한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인 ‘심산유곡(Bergschluchten)’이다.   매장의 장은 레무르들의 짧은 독창과 합창으로 시작한다. 내기에서 승리한 메피스토펠레스가 의기양양하게 악마들을 불러들여 죽은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가려 한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들의 무리가 나타나고 악마들은 겁을 먹는다. 이어서 천사들이 장미꽃을 뿌리며 노래하는 구원의 합창과 짜증과 분노가 폭발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대사가 교차한다. 조금씩 악마들과 메피스토펠레스를 몰아내면서 무대를 완전히 장악한 천사들은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이후 약탈물을 빼앗긴 메피스토펠레스가 신세 한탄을 하며 장면이 끝난다. 이를 아래의 표로 정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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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4)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정상에 오르기 직전 야무지게 지난 산행을 정리하는 ‘부록 4’다.   이번 연재에는 ‘2인(人)이 연주하는 파우스트’에서 지나쳤던 가곡들 중 휴고 볼프(Hugo Wolf)가 1878년에 작곡한 ‘슬픔의 성모 앞에 그레트헨’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자.       오스트리아 출생의 볼프는 서양 예술가곡사(史)에서 슈베르트의 계승자로 칭송되는 매우 중요한 가곡 작곡가다. 동갑내기 친구인 구스타프 말러와 함께 바그너와 브루크너에 열광했던 볼프는 빈 음악원을 뛰쳐나와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그의 여생은 신경 매독과 양극성 장애(조울증) 그리고 숱한 자살 시도로 완전히 황폐화 되었다. 1903년, 결국 볼프는 정신병원에 갇힌 채 사망했지만, 심오한 미학을 품은 500여 곡의 예술가곡은 불멸의 음악으로 남았다.   예민함과 심오함. 볼프의 예술가곡을 대표하는 두 단어다. 이런 묵직함 때문에 일반 청자가 볼프의 음악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의 정교한 미학 원리를 한 번만 이해하면, 가늠하기 힘든 깊이로 단번에 빠져들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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