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호 편집인의 글)
약자는 끝까지 약자인가?
오래 전 일이다. 모 대학 교수였던 선배가 해직되었다. 학교에 대해 쓴 소리를 한 게 발단이었다. 부당한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법에 호소하였다. 길고 지루한 재판 끝에 승소하였고 그래 복직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학교는 그 명령을 거부하였다. 온갖 일을 다 찾아내 문제시하였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하나가 생기는 식이었다. 일일이 대응하자니 끝이 없고 대응 안 하자니 문제를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렇게 진퇴양난의 시간이 근 10년 흘러갔다. 선배는 결국 포기하였다. 삶이 다 망가진 뒤였다.
이 경우 그 선배는 개인이다. 그러나 학교는 조직이다. 개인은 시간이 흐르면 지치지만 조직은 늘 그 개인을 상대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설령 그 선배가 옳다는 게 증명되더라도 시간이 너무 지난 후라면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보상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고 만다. 그러니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도 나서는 게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마 그 선배도 해봤자 손해니 시작하지 말라는 주위의 충고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2013년에도 벌어지고 있다면 믿겠는가? 고양문화재단 부당해고 사건은 연극인들이 많이 아는 일이다. 벌써 몇 년 됐고 어느 정도 잘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페이스 북에 올라온 글은 그게 아니었다. 대법원에서까지 승소하였지만 고양문화재단은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저런 일을 문제 삼아 형사 고발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 불기소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일 소송으로 이어지면 그걸 핑계로 복직을 거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마 불기소되면 다른 일을 또 찾아낼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그 끈질긴 공격은 개인을 지치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권위주의 시대라면 그래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세계 중심 국가를 자부하는 2013년 대한민국에서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은 도처에 여전히 존재한다. 그걸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망각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이 통과되니까 대학의 조교 임기가 2년으로 고정되었다. 그 전에는 5년씩 근무하는 조교들도 많았다. 약자를 보호한다고 만든 법이 오히려 그들을 더 위험하게 한 것이다. 이런 예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만 100% 자기 일이 되기 전에는 다들 눈을 돌려버리는 나름의 지혜(?)를 발휘한다.
그러니 이런 일에서 개인은 철저히 분리된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 약자가 조직을 상대하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를 바 없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개인으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대처하는 것이다. 즉 조직 대 조직이 돼야 그나마 균형이 맞는 것이다. 여기서 연극협회나 연극인복지재단, 또 직능별 단위 협회들의 책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단체나 협회들이 제대로 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역시 개인들의 관심이다. 물론 자기 하나 돌보기도 힘든 상황이므로 남에 대한 관심을 강요하기 어렵다. 그러나 저 멀리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일이 막상 자신에게 닥쳤을 때 느낄 그 외로움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조직에 대한 저항은 해봤자 소용없으니 괜히 인생 망치지 말고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 찾으라는 충고 대신 끝까지 지켜보며 응원할 테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부디 우리 연극인들은 어리석은 지혜가 아니라 진정 지혜다운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적어도 연극인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먹잇감처럼 얕보지 못 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약자라고 자포자기하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연극인들이 행복한 그 날을 갈망하며.
2013년 6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비겁한 뇌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라는 부제의 /의도적 눈감기/ 라는 책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는 흔히 별일 아니다, 걱정할 정도로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걱정할 정도로 큰일이 되고 나면 때는 늦습니다. 집단 폭력은 서서히 발전하지요. 누군가를 따돌리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사무실 전체가 차별의 장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아무도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상황을 악화시키겠다는 의사표현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당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 언제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카산드라들이 곳곳에 버티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