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 편집인의 글)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책토론회’ 이후 ‘연극정책 TF팀’에 거는 기대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학로를 방문했다. 바로 청책토론회 때문이었다. 마로니에 공원 내 예술가의 집에서 진행된 이 토론회는 들을 청(聽) 자를 붙인 신조어 ‘청책’을 내세웠다. 사실 그 날 박원순 시장은 발제자는 물론 방청석에서 발언한 17명의 연극인들의 얘기까지 꼼꼼히 기록하는 등 ‘청책’이라는 이름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책은 중요하다. 특히 예술 분야는 대단히 섬세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정책이 잘못되면 영영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래서 현장에 대한 면밀한 점검부터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 그리고 최대한 정밀한 해결 방안까지 찾아낸 뒤 그것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박원순 시장의 현장의 소리 청취는 시작 단계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시장 스스로 경청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정책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많은 공무원들에게 시범을 보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작이 결과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즉 잘못된 시작에서 올바른 결말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올바른 시작이라고 모두 좋은 결말로 이어진다는 법도 없다.
사실 그 날 나온 많은 이야기들은 그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호소하는 이들의 절박한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 왜냐 하면 앞으로 연극을 바로 살리기 위해서는 당일 나온 이야기 말고도 염두에 두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많은 문제를 지적하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연극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서울시에서 우리 연극인들과 함께 이러한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TF팀을 구성하겠다고 한다. ‘청책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포함하여 하나하나 실현 가능성을 따져 현실성 있는 일을 가려내고 그것들을 적절히 구조화하고 그 정밀한 실행 계획을 짜는 것이 그 조직의 임무이다.
과거 우리는 무늬만 그럴듯할 뿐 실제 현장에서는 아무런 체감이 없거나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는 예술 정책을 많이 보았다. 그 가장 커다란 이유는 정밀도의 부족이다. 즉 어느 정도 문제 파악도 했고 원인 분석도 됐지만 그 실행 계획을 짜는 데 있어 정밀도가 부족한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까 나노 단위의 설계가 필요한데 밀리 단위 정도를 해놓고 나름 정밀하게 했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결과는 현장 체감이 없이 서류상의 지표로만 확인하는 정책이 그것이다.
바라건대 이번 서울시 연극정책 TF팀에 참여하는 공무원들과 연극인들은 두 가지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선 앞서 강조한 정밀도 확보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이것이 개인이나 소집단이 아닌 전체 연극계를 위한 일이라는 점을 철저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기 일로부터 출발하여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전체에게 이익을 주는 일도 많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전체적 조망을 하면서 세부적인 사항들을 다루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이 필요로 하는 초정밀도 정책을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끈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뭔가 결과물을 빨리 내놓아야 한다는 이유로 대충 짠 정책은 현실에 결코 좋은 영향을 못 미친다. 또한 좁은 시야로 자신과 자기 소집단만을 위하는 왜곡된 정책은 엄격한 자기 검증으로 피해야 한다. 이런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마치 김구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지사(志士)적 사명감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부디 이번 TF팀이 그간 연극무대를 지켜온 그 엄청난 끈기와 그 투철한 사명감으로 진정한 우리 연극의 진흥을 이룰 튼튼한 초석을 놓아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2013년 8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