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
– 임야비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10)
8. 베니스의 상인
Lorenzo: … Since naught so stockfish, hard, and full of rage
But music for the time doth change his nature.
Nor is not moved with concord of sweet sounds, Is fit for treasons, stratagems, and spoils.
The motions of his spirit are dull as night, And his affections dark as Erebus.
Let no such man be trusted. Mark the music.
로렌조: … 왜냐면 아무리 둔감하고, 딱딱하고, 또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이라도
음악은 한동안 그 본성을 바꾸어 버리거든요.
자기 안에 음악이 없는 자, 달콤한 협화음에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반역, 술수, 그리고 약탈에나 어울릴 자들이죠.
그런 자 영혼의 동작은 밤처럼 멍해요, 그리고 취향은 지옥의 문지기 에레보스처럼 어둡죠.
그런 사람 믿으면 안 돼요. 음악이 좋네요.
– The Merchant of Venice; Act 5 Scene 1
베니스의 상인은 연극 상연도 자주 되고 가장 많이 읽히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 하나지만 이에 비해 음악화된 작품의 수는 굉장히 적다. 인용한 로렌조의 대사처럼 후대의 작곡가들이 이 희곡에서만큼은 둔감하고 딱딱했나 보다. 더 나아가 남겨진 몇 안 되는 음악에서 마저 그 문학적 본성을 음악적 아름다움으로 바꾸는데 실패한 듯하다.
아서 설리반이 작곡한 ‘베니스의 상인 중 가면무도회 Masquerade from The Merchant of Venice’는 총 7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간의 성악이 가미된 관현악 조곡이다. 도입부 – 뱃노래(세레나데) – 부레 – 그로테스크한 춤 – 왈츠 – 멜로드라마 – 피날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의 진행을 쫓아 가기보다는 무도회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음악들의 나열이다. 제 2곡 뱃노래에서의 테너의 능청맞은 세레나데가 재미있고, 제 4곡 그로테스크한 춤에서 뒤뚱거리는 콘트라베이스와 바순의 움직임이 그나마 주목 할 만한 부분이다.
베니스의 상인 서곡 Op. 76은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가 작곡한 일련의 셰익스피어 서곡 중 비교적 초기에 해당하는 곡이다. 그래서인지 뒤에 작곡된 ‘한여름 밤의 꿈 Op.108’이나 ‘좋을 대로 하시든지 Op. 166’에 비해 전개가 산만하고 사운드의 밀도가 너무 낮다. 이탈리아 민속 선율 몇 개를 반복하며 주구장창 베니스의 풍경만을 묘사할 뿐이다. 필자가 모르는 작곡가의 심오한 의도와 음악적 장치가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를 청자에게 효과적인 전달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 같다. 다른 건 둘째치고 아무 굴곡 없이 흘러가는 15분의 연주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그래서 오히려 음악외적인 역사가 더 흥미를 끄는데, 이 곡은 1933년에 이탈리아가 낳은 위대한 지휘자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의 연주로 초연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가 배경인 위대한 희곡, 이탈리아 출신의 명지휘자, 이탈리아의 셰익스피어 전문 작곡가라는 세 조합의 시도는 완벽했으나 안타깝게도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 놓고 마지막 투구에서 실투가 나온 꼴이 되었다.
Tell me where is fancy bred, Or in the heart, or in the head?
How begot, how nourished? Reply, reply.
It is engendered in the eyes, With gazing fed; and fancy dies In the cradle where it lies.
Let us all ring fancy’s knell. I’ll begin it: ding, dong, bell.
말해 주오, 들뜬 사랑 어디서 생겨나는지, 심장에서, 아니면 머리에서?
어떻게 잉태되지, 뭘 먹고 자라나지? 대답해 줘, 대답해 줘.
두 눈에서 발생하지, 뚫어져라 쳐다보며 자라고, 그리고 들뜬 사랑은 시드네, 그것이 누워 있는 요람 속에서.
우리 모두 들뜬 사랑의 조종을 울리네. 내가 시작할 거야, 딩, 동, 종소리.
– The Merchant of Venice; Act 3 Scene 2
원작의 3막 2장에서 포오샤의 수행원 중 한 명이 부르는 음악에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네 명의 현대 작곡가들이 음악을 붙였다. 스웨덴의 스벤-에릭 요한손, 이탈리아의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영국의 브리튼 그리고 프랑스의 뿔랑이다. 공통적으로 곡의 길이가 1-2 분 정도로 짧고, 멜로디가 단순하며, 크게 주목 할 필요는 없는 평균작 수준의 곡들이다. 이 종소리에 굳이 차이를 주자면 스웨덴의 종소리는 너무 신비롭고, 이탈리아의 종소리는 너무 과장되었으며, 영국의 종소리는 공습경보 사이렌 수준이다. 그나마 프랑스의 종소리가 원작의 분위기에 가장 적절한 ‘들뜬 사랑의 긴장감’을 선사해준다.
9. 말괄량이 길들이기
위에서 살펴본 베니스의 상인과 마찬가지로 말괄량이 길들이기 역시 연극 무대에서만 자주 볼 수 있을 뿐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이탈리아가 배경이 되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나 보다.) 필자 역시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겨우 자료를 찾아서 들어봤는데 대부분이 거의 안 알려진 작곡가의 잊혀지기 일보직전의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재미있는 점은 사장 직전의 이 작품들의 음악적 장르가 조금씩은 다르다는 점이었다.
전편의 사랑의 헛수고에서 극찬한 바 있는 작곡가 루이스 애플바움의 극부수음악 ‘The Taming of the Shrew – Bella mia, Non Gemere, Grazie Luna’과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연주회용 관현악 서곡 La bisbetica domata (The Taming of the Shrew), Op. 61은 둘 다 클래식 장르이긴 하지만 연주 장소 및 음악의 용도가 다른 만큼 확연한 차이가 난다. 애플바움의 음악은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누워서 야외 연극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시각성을 선사한다. 반면,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음악은 엄숙한 정장차림으로 콘서트 홀 안에 앉아서 듣는 듯한 청각성에 더 집중한다. 니노 로타의 음악은 전형적인 영화음악 삽입곡이고, 원작을 각색한 뮤지컬 ’Kiss me Kate’로 유명한 콜 포터의 음악은 춤과 함께 하는 신나는 뮤지컬 음악이다. 어윈 바젤론의 서곡은 다양한 타악기가 총출동하여서인지 관현악 곡이라기 보다는 재즈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이 다섯 곡 중에 단 하나만 꼽아서 듣겠다면 단연 콜 포터의 Kiss me Kate를 추천한다. 특히 이 중에서도 So in love, Brush up your shakespeare, Always true to you가 좋은데, 음악의 첫 음을 듣자마자 지저분한 런던의 글로브 극장은 단숨에 사라지고 휘황찬란한 브로드웨이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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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 신정옥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전예원)을 참조 인용하였습니다.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