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극장에서 구현된 전통인형극의 마당정신
: 극단 미추&극단 백수광부의 <돌아온 박첨지>에 대한 감상
전지니
공연명 : <돌아온 박첨지>
주최 : 극단 미추&극단 백수광부
예술감독 : 손진책
연출 : 김학수
제작감독 : 이성열
드라마투르그 : 배선애
공연기간 : 2013년 12월 11일~29일
현존하는 유일한 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이 실내극장으로 들어왔다. 극단 미추와 백수광부의 공동주최 작품인 <돌아온 박첨지>는 전통인형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되, 실내극장에서 전통극의 마당정신을 구현한 작품이다.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인형조종자가 사실적인 무대 위에서 인형을 조종하면서 완벽하게 인간의 몸짓을 구현하는 일본의 분라쿠(文樂)와 달리, 한국의 인형극은 특별한 장치가 없는 열린 무대에서 상연되며 인형의 몸짓은 거칠고 투박하다. 특히 분라쿠의 인형들이 인간의 형상을 쏙 빼닮았다면 꼭두각시놀음의 인형들의 모습은 인물의 성격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 같은 차이는 같은 인형극이라도 극도의 정교함을 추구하며 관객을 극 중 상황에 몰입시키고자 하는 분라쿠와, 관객과 연희자가 하나가 되어 떠들썩하게 공연을 즐기고자 하는 우리 전통극의 서로 다른 지향점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열린 마당에서 공연됨으로써 전통극의 비판과 공유 정신이 구현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면, 실내극장이라는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전통극의 미학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가 이 극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돌아온 박첨지>는 실내극장에서 전통극의 마당정신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그리고 전통을 어떤 방식으로 현대화시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두 가지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공연 전 극장에 입장하면 극의 연희자들은 격의 없이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막걸리를 권한다. 술과 담소가 이어지는 극장 안은 떠들썩하고, 막걸리 한 잔에 무대가 주는 묘한 경계감과 위압감 역시 허물어진다. 이어 공연이 시작되면 인형조종자들이 포장(布帳)막 속으로 들어가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산받이를 비롯한 악사들이 자리를 잡는다. 탈춤과 마찬가지로 전통인형극의 악사들은 관객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 중 산받이는 인형들과 대화하고 때로는 이들을 꾸짖으면서 관객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리고 산받이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투박하게 만들어진 인형에 인간적인 입체성이 채워진다.
<돌아온 박첨지>의 경우 꼭두각시놀음의 구성을 큰 변주 없이 따라간다. 팔도강산을 유람하던 박첨지와 악사의 대화로 시작해 상좌중이 절을 짓고 다시 허물게 되는 일련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설정에 변화가 생긴 부분은 대통령 해외 순방시 성추문 파문을 일으켰던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형이 등장하는 지점 등으로, <돌아온 박첨지>의 구성은 전통극 꼭두각시놀음처럼 박첨지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그 과정에서 각 과장별로 독립된 내용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극 중 유기성이 없는 파편적인 장면들의 간극을 메워주는 것은 바로 산받이로, 각 과장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모순상이 병치되면서 당대의 현실을 현시하게 된다.
과거 꼭두각시놀음이 풍자하고자 했던 종교인의 성적 타락, 가부장제의 횡포, 관료의 부패 등은 현대판 꼭두각시놀음에서도 여전히 문제시되며, 인형들이 보여주는 현실 비판의식은 2013년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호응을 이끌어낸다. <돌아온 박첨지>는 원전의 유쾌함은 잃지 않되, 홍백가와 묵대사의 대사를 통해 오늘날의 정치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방향을 택했다. 김학수 연출은 전통극에 보다 신랄한 풍자를 더했고, 성적 농담과 질펀한 욕설이 이어지지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재담이 이 극을 전 연령층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한다.
<돌아온 박첨지>는 특히 놀이의 쾌감이 극대화된 공연이었다. 인형들은 남사당패의 두 번째 재주인 버나돌리기를 재차 선보이고, 하반신을 드러낸 홍동지는 객석을 향해 오줌을 갈긴다. 또한 이시미가 박첨지의 식구들을 잡아먹는 장면과 이시미와 홍동지의 격투 장면에서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은 재미가 마련되기도 한다. 더불어 악사들은 끊임없이 흥을 돋우고, 산받이는 때로 스스로를 비하하며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앞서 이 공연의 성공여부는 애초 열린 마당에서 가능했던 관객과의 활발한 소통을 실내극장에서 구현할 수 있느냐와 결부된다고 언급했다. <돌아온 박첨지>에서 공연 시작 전 막걸리를 나눠 마시면서 무대와 객석의 심리적 거리는 허물어지고, 산받이의 적극적 역할로 말미암아 공연장은 열린 마당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마지막 과장에 이르면 손가락 인형인 상좌들이 힘겹게 법당을 짓고, 법당이 완성된 다음 문을 열고 관객의 시주를 받는다. 이어 관객이 차례로 나가 상좌에게 시주를 하는 과정에서 안녕과 축원을 비는 절실한 마음, 즉 전통극의 주술적 속성이 발현된다. 그렇게 관객은 극의 관람자에서 벗어나 제의의 참여자로 거듭나게 된다.
상좌중이 애써 지은 절이 허물어지고, 이어 인형조종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포장막이 벗겨지면서 막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연희자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분라쿠의 인형조종자들이 인형을 부각시키기 위해 검은 옷으로 자신을 가려 숨기는 것과 달리, 현대판 꼭두각시놀음은 종국에 인형과 혼연일체가 되었던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관객 앞에 다시 등장한 배우들은 자신이 조종했던 인형과 함께 관객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흥겨운 놀이판을 마무리한다. 이 순간은 전통극의 놀이성이 극대화되는 동시에, 인형극의 연희자로 거듭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고군분투했던 배우들의 노력이 가시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돌아온 박첨지>는 전통극의 마당정신을 이어가되, 비판성과 놀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통을 현대화됐다. 여기서 극 중의 언어유희나 모의성행위를 통해 조장되는 웃음의 잔상이 오래남지 않더라도, 이 극이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은 오늘날 연극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제의의 참여자로서 관객이 갖는 간절한 염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13년에 만난 꼭두각시놀음은 놀이의 유쾌함과 동시에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절실함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