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라시/ 오유경

<데모크라시>

 오유경(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작: 마이클 프레인
연출: 이동선
단체: 몽씨어터
공연일시: 2014/03/06 ~ 2014/03/23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빛과 소리, 10명의 배우들의 목소리와 움직임, 그 모두가 이미지가 되고, 리듬이 되고, 소리가 되는 공연.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홀로코스트의 죄악과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려던 독일정치의 서사(敍事)가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로 성큼 다가오는 공연. 마이클 프레인 작, 이동선 연출의 <데모크라시(Democracy)>다.

 

2008년 혹은 2009년.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한다. <코펜하겐>을 통해 마이클 프레인의 작품에 흥미를 느낀 이동선 연출은 <데모크라시> 희곡 번역을 시작했다. 당시엔 193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작품 속 방대한 독일정치상황이 복잡하고 낯설어, 그만 번역을 접기도 했다. ‘말을 책임지는 정치인’이 그립던 때, 중단했던 번역을 다시 착수하고 2011년 5월, 연극원에서 초연을 올렸다. 초연당시, 그는 희곡의 극적구조를 파악하는데 주력했고, 작품의 부제, ‘육천 만 개의 갈라진 목소리’가 말하듯, ‘데모크라시 곧 민주주의란 육천 만개의 다양한 목소리와 주장이 서로 충돌하고 합체하고 다시 갈라지며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작품의 컨셉을 ‘민주주의’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잡았다. 극의 전개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지켜보게 했고, 히틀러라는 절대 악의 존재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뜻을 이룰 수 없는 정당정치의 운명을 당시 독일 정치인들이 어떻게 전개시켜 나갔는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갈라진 시선, 서로에 대한 관찰이 계속 긴장을 늦추지 않는, 관객에겐 다소 불친절한 초연이었다고 회고한다.

 

2014년 재공연의 컨셉은 ‘장벽’이었다. 통일을 바라보는 개념의 차이들을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들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독일통일의 화두를 두고 행해지는 수많은 말, 목소리, 외부의 아우성들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와 같고, 그 그림자에 유혹되고 흔들리는 통일의 운명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속에서 굳건히 버티고 나아가는 유일한 者, 빌리 브란트를 조명하고자 했다. 일부러 비슷한 정치적 상황을 경험한 40대 배우들로 캐스팅했다. 또한 낯선 독일정치상황에 대해 연구하고, 통일에 대한 서로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은 배우들이 각 인물들의 상황과 이미지를 만드는데 실제적 도움을 주었다. 출연한 배우들 중 절반은 지난 번 초연에 참여한 배우들이고, 새로 참여한 배우들 또한 이미 공연을 본 사람들이었다. 작품 속 실존했던 인물들의 주장과 그들이 처했던 정치상황에 대한 배우들의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열쇠였다. 실존인물의 복사(複寫)보다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이냐’에 인물화의 초점을 맞췄다. 연출의 세심함은 이 작품에 매달린 시간만큼 꼼꼼하게 잘 다듬고 매만진 공연으로 빛을 발한다.

 

공연에서 보이는 양식들은 서사적인 공연에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익숙한 것들이다. 실존인물과 상황을 기록한 슬라이드 사진들. 마이크. TV모니터들 등등. 그러나 그 익숙한 것들이 등장하고 나가는 운용의 방식은 신선하고 예상가능하지 않아, 자칫 3시간 반이나 지속되는 서사가 가지는 지루함과 진지함의 반복을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만들어준다. 빛의 사용의 무대의 색, 대도구와 소도구, 소품과 의상이 주는 질감의 충돌과 조화도 매력적이지만, 그 중 돋보이는 것은 움직임과 소리의 사용이다.

 

무대는 수직(수직 벽들, 높고 긴 책장, 수직으로 꽂혀진 책과 서류, 옷걸이, 대가 긴 조명, 마이크대, 사다리, 정장 차림의 곧게 서있는 배우들의 직립, 등)과 수평(책상, 그 위에 놓인 TV모니터들, 긴 소파, 앉을 수 있는 작은 단들, 와인병과 잔을 나르는 트레이 등)이 주된 선이다. 깔끔하기는 하나 단조로워 지루할 수 있는 수직과 수평의 선들을 대각선 또는 엇갈린 방향으로 서로 위치시킴으로써 역동적으로 보이게 한다. 특히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10명의 배우들의 움직임 곧 동선(blocking)이다. 그들은 특정한 몇 순간을 빼고는 3초 이상을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쉴 새 없이 등장, 퇴장, 이동한다. 또한 무대 공간 곳곳을 이동하는 그들의 움직임의 선(floor patterns)은 직선이 아닌 곡선, 혹은 8자형이어서, 대도구와 소도구가 주는 직선의 이미지에 곡선으로 충돌하면서 다양한 이미지와 더불어 더욱 역동적인 효과를 준다. 연출은 이러한 효과를 의도해서 물리적 동선을 계획하진 않았다 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물의 심리적 동선을 찾아내려 했다고 한다. 유난히 키가 크고, 혹은 작은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한 장면에 충돌하게 한 것도 무척 재미있는 역동성을 가져온다. 이 또한 연출의 의도는 아니다. 연출의 충동적 선택이 자연스럽게 공연구성요소들의 효과적인 세련미를 유발한 것이다. 배우들의 무대의 행동은 앉고, 서고, 걷고, 좀 더 빨리 걷는 단순한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스처(gesture)도 악수하고, 인사하고, 손을 들어올리고, 와인을 마시고, 쓰고, 읽고, 찍고 하는 몇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패턴화된 동작들의 반복은 역동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그 리듬은 마치 시각적 이미지가 주는 보이는 소리로 작용한다. 유난히 많은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도 논리적인 이유보다는 충동적 이유의 등장과 퇴장인데, 이는 대기공간도 연기공간이라는 연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공연의 백미(白眉)는 소리의 사용이다. 연하게 울리는 풀벌레의 소리 등 정서적인 환경의 소리도 있지만, 쉴 새 없이 사건의 현장을 찍어대는 사진기소리와 같이, 극의 긴장과 경쾌함을 살리는 공격적인 소리 사용도 있다. 그 중 연출이 가장 집중한 것은 다양한 목소리(voice)다. 민주주의의 목소리. 육천 만개로 갈라지는 목소리. 그 다양한 주장과 개념들의 소리. 곧 배우들의 목소리 사용이다. 마이크를 통해서 또는 그냥 육성으로, 무대 밖에서, 혹은 TV모니터 속에서, 이야기되는 순간과 이야기되지 않는 순간을 통해서, 인물들뿐만 아닌 숨어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 곧 민주주의 자체의 목소리를 10명의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표현한다. 연출은 캐스팅 단계에서 이미 배우들의 voice color를 염두 해 두고 캐스팅했음을 고백한다. 다양한 목소리, 10개의 목소리가 만드는 다성(多聲)의 음악. 그것이 곧 데모크라시, 민주주의라고 연출은 말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민주주의 자체를 드러내고자 하는 연출의 의도는 이번 공연에서는 아쉽게도 살짝 비껴 간 것 같다. 장벽이 등장하면서 통일이라는 화두가 더욱 강조되었고, 따라서 통일을 이루고자하는 빌리 브란트의 의지가 강조되고, 작품의 중심은 민주주의 자체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분단된 조국을 통일로 이끌려는 한 사람의 영웅적인 독일정치인의 이야기로 그 초점이 이동한다. 민주주의를 드러낼 다양한 목소리는 빌리 브란트를 주시하고 관찰하는 다른 인물들의 주변의 목소리로 의미가 축소된다.

 

공연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분단 상황에서 통일을 이루는 독일정치상황의 전개를 통해 그와 똑같은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리고 이러한 분단 상황을 통일로 이끌어 줄 빌리 브란트 같은 영웅적 정치인을 꿈꾸게 한다. 민주주의 자체도 아직은 미성숙한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통일이라는 대의를 향해 다양한 생각과 방식과 이해관계들을 조율해가는 독일 정치인들의 세련되고 뚝심 있는 정치행보가 마냥 배 아프게 부러워진다.

 

한 가지! 당시 독일이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통일과 같은 거대하고 진지하고 의미 깊은 담론에 여성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독일통일의 주역들, 무대 위에 조망된 10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남자다. 브란트를 감시하기 위해 기욤과 함께 동독에서 넘어 온 그의 아내, 크리스텔. 그녀는 어디 있는가? 남성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에 여성들은 어디에서 그 숨겨진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기록되지 않은 숨겨진 여성들의 목소리도 찾아내어 함께 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의 목소리는 완성될 것이다. 이건 마이클 프레인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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