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피의 결혼>!
김재선(한국외국어대학 강사)
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연출: 이윤택
단체: 연희단 거리패
공연일시: 2014/03/27 ~ 2014/04/05
공연장소: 명동예술극장
또다시 <피의 결혼>이 무대에 올랐다. 또….다시….
스페인 연극이, 로르카 희곡이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른다는 반가움이 아니라 또다시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감탄사이다. <피의 결혼>의 원제목은 ‘Bodas de sangre’로, 스페인어에서 ‘bodas’는 ‘결혼식’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결혼식날 신랑을 버려두고 옛애인을 따라간 신부가 초래한 죽음을 다룬 이 작품 제목으로는 ‘피의 결혼식’ 또는 ‘피의 혼례’가 적합할 것이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공연 포스터에도 이어진다. 신랑 어머니 역할을 맡은 여배우의 단독사진이 실린 포스터는 어머니가 주인공이 아니어야 하는데 이 공연에서는 어머니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윤택 연출이 해석하고 표현한 <피의 결혼>에는 한국 전통의 해석과 색채가 많이 들어가 있다. 결혼식 장면에서 한국의 전통 혼례를 재현했고, 음악과 안무에 있어서 한국의 전통 장단과 스페인 집시들의 플라멩코 장단을 섞어보는 등의 새로운 실험이 돋보였다. 동시에 황량하면서 아름다운 무대와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킨 음악 연주 등을 통해 일반 관객들의 마음을 얻고자 대중성도 추구한 듯 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공연 내내 계속 되었다. 로르카의 <피의 결혼식>은 단순히 스페인의 전통을 현대화한 작품이 아니며, 금지된 사랑을 욕망한 치정극도 아니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한을 이야기하는 극도 아니다. 1928년 로르카는 신문에서 남부 시골의 어떤 마을에서 신부가 결혼식 전날 밤 옛애인과 도망치다 신랑의 동생과 마주쳐 옛애인이 죽게 된 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5년 후에 이 작품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삭막하고 좁은 시골 마을에서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의 명예와 도덕관, 그것을 따르고 지키려는 한 여인의 자유의지와 감성의 충돌을 다룬 비극이다. 사회의 전통적인 관습과 제도에 순응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알 수 없는 욕망에 이끌리게 된 인간의 저항과 나약함을 보여주는 비극이다. 그러나 이윤택 연출의 공연에서는 신랑 어머니에게 중심을 두고 전개하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그런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점에서 원작의 의미가 왜곡된 아쉬움이 있다. 간간이 보여주는 김미숙 배우의 익살스러운 얼굴 표정이나 몸짓도 극의 흐름을 끊으며 작품 전체의 윤곽을 흐리게 해 아쉬웠다. 특히, 이번 공연의 신부에게는 로르카가 그린 폐쇄된 농촌 사회의 전통적인 여인상과 윤리의식에 순응하고자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짧은 머리와 현대식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에게는 정형화된 가치관으로 인한 내면의 아픔이나 상처보다는 욕망을 표출한 일탈이 느껴질 뿐이었다. 죽음을 상징해야하는 달의 이미지도 너무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로 표현해 당황스러웠다. 어둠이나 긴장감이라고는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이윤택 연출의 <피의 결혼>은 콜롬비아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2014 이베로 아메리카노 국제연극제’에 초청되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콜롬비아에서 이 공연은 분명히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콜롬비아도 스페인처럼 라틴계이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이지만 그곳 사람들에게 로르카의 <피의 결혼식>은 외국 작품이며 무대에서 보여주는 정서나 플라멩코가 스페인에서만큼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희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대에서 어떻게 재구성하느냐는 분명 연출가의 몫이다. 그 방법이나 기법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며 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작가가 기획한 작품의 주제나 의도도 잘 반영해주면 좋겠다. 아니면, 원작을 뛰어넘어 원작과 비교되기는커녕 원작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