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해체, 아픔을 보여주는 방식 찾기
– 뮤지컬 <덕혜옹주>
정명문
작/작사 : 문혜영
연출 : 성천모
작곡 : 차경찬
단체 : 극단 그愛생각
출연 : 문혜영, 이상현, 전병욱, 남궁인, 윤정섭, 백주연, 정미금
공연일시 : 2014.05.02 ~ 2014.06.01
공연장소 : 성수아트홀
관극일시 : 2014.05.30 pm 8:00
– 역사 속 인물, 가깝게 풀어내기
실존 인물을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작품들은 역사의 무게감 때문인지, 다큐 방식과 유사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몇몇의 대형 창작 뮤지컬에서는 역사에 종속된 개인의 삶을 꽤 비장하게 다루곤 했다. 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장르에서 흔히 접해왔었고, 예상 가능한 결론과 주제로 인하여 지루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실존인물이 호명된 작품들은 화려한 스펙터클과 노래를 내세우면서 관객을 유인하곤 했다. 최근 역사를 다루는 창작 뮤지컬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경우, 개인의 아픔과 심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관객들의 몰입과 이해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뮤지컬<덕혜옹주>는 이러한 동향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덕혜옹주>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라는 역사의 무게감을 덜어내기 위해, 덕혜보다는 그녀의 가족에 집중한다. 이 극은 ‘덕혜의 딸 정혜의 실종’과 그 원인을 찾는 덕혜남편 다케유키의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케유키의 관점에 따라 극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구성을 취한다. 덕혜, 정혜, 다케유키 세 사람은 가족의 구성원인 동시에 상처를 가진 개인이었다. 덕혜는 내선일체의 일환으로 강제결혼을 하면서, 외지에 떨어지게 된다. 그녀는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치매증세가 발발하였으며, 자신과 닮은 딸과 분리되면서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진다. 다케유키는 부모와 부인 모두 국가와 가문의 뜻에 의해 결정된 인물이다. 그는 타인에 의해 계획된 삶이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정혜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국적의 혼란에, 엄마마저 마음대로 볼 수 없다. 볼모로 타국에 억류되어 있는 덕혜에게 정혜는 사는 이유였고, 다케유키에게 정혜는 지켜야할 대상이지만, 정혜에 대한 두 사람의 사랑은 정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 극은 정상적인 가족을 구성해보지 못했던 이들이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도리어 가족들을 상처 입히는 원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덕혜 가족의 해체는 한 사람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종의 아픔을 겪으며 진행된 것이다.
<덕혜옹주>는 한 개인이 수행해야하는 많은 책임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떠올리게 한다. 현대인의 상처는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며, 주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극은 역사 속 인물의 삶을 상처, 책임, 가족, 반복되는 아픔으로 표현한다. 물론 그 방법이 세련되지는 않지만, 현대의 관객과 공감하는 방식 중의 하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집약적인 무대방식과 감정토로의 방식
이 작품은 소규모 무대임에도 과거와 현재가 빠른 시간 내에 변화된다. 이러한 무대 변화는 ‘액자와 문’과 같은 프레임을 활용하면서 가능해진다. 극의 시작과 끝은 사진의 액자 안에서 이루어지며, 문은 시대, 장소, 인물 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특히 덕혜와 정혜가 느끼는 고립감과 소외는 모두 문을 사이에 두고 형상화되었다. 정혜가 이지메를 당한 직후 혼미한 상태는 연속된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덕혜는 늘 문 뒤 너머에서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결국 문은 각 인물의 단절감을 보이는 역할을 한다. 장면배치는 프레임 활용으로 진행했다면, 인물의 진심은 몇 개의 소품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덕혜에 대한 다케유키의 마음은 덧신으로, 정혜의 가족상은 그림으로 제시되는데, 오랜 기간이 지난 뒤 덕혜가 이를 모두 간직하고 있었음을 보여서, 그녀가 기억하려 애썼다는 지표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 작품이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단순하지만 의미부여가 확실한 무대장치와 소품의 덕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상업적 뮤지컬 양식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뮤지컬에서 쇼스타퍼는 릴렉스를 통해 최고조의 갈등에 들어가는 준비 기능을 한다. 이 작품에는 3차례의 쇼스타퍼가 등장하지만, 쇼스타퍼의 본래의 기능보다는, 과도한 코믹성으로 극과 유리되는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한편 이 작품은 총 1시간 40여분 동안 23곡의 노래를 소화한다. 창작소극장 뮤지컬에서 이렇게 많은 노래를 소화하는 것은 흔치않다. 이는 극 진행의 대부분을 노래로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곡들 중 ‘자장가’의 리듬을 활용한 곡이 가장 인상적이다. 단순한 리듬 임에도 덕혜의 모성과 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에, 다른 곡에 끝에 삽입되거나 배경음으로 제시되면서 쉽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극에 노래가 많고, 다양한 곡 배치까지 보여주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아쉽게도 <덕혜옹주>의 대부분 곡은 32마디 이상의 단조 솔로곡으로 구성되었다. 인물의 상처에 주목하다 보니, 서정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곡 선택이 더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음악구성과 편곡을 통해 감정토로 방식을 보완했어야 했다. 반주마저 피아노와 대금만 활용하여, 음악적 다채로움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이렇게 <덕혜옹주>는 소극장 무대를 명민하게 활용하였지만, 뮤지컬 양식화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보인다. 정해진 양식에 맞추는 수동적인 방식보다는 기법적인 차원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아쉽다.
– 창작 소극장 뮤지컬의 숙제
<덕혜옹주>는 1인 2역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자각하려고 애쓴 강직한 덕혜와 정체성을 고민하는 발랄한 정혜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덕혜와 정혜를 한 배우가 연기하면서, 관객 입장에서는 둘 중 누구의 이야기인지 혼동하는 부분도 생겼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의 경우, 뒷모습을 보이는 대역조차 쓰지 않고, 한 사람만 등장하기 때문에 구분이 어렵다. 덕혜와 정혜는 조선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기에 이 둘은 박탈감과 외로움을 지녔다는 부분에서 닮아있다. ‘노래20. 고마워, 날 기억해줘서’는 덕혜와 정혜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이 작품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배우는 하나의 몸에서 목소리를 바꾸면서 두 사람의 목소리를 보여준다.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에서 쓰였던 이 방식은, 두 인물이 반복되는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기재로도 활용 가능함을 증빙하기 때문에 새롭다.
역사에 가려진 개인의 일상을 드러내려는 시도는 최근 뮤지컬의 방식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인 덕혜옹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역사적 사실만을 극화하지 않았다. 덕혜, 정혜, 다케유키의 삶이 서로 겹쳐지면서 각 개인의 역사가 보편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에 희생된 여성’의 이야기로 단순화 될 수도 있고, 작품 전체의 우울한 느낌을 관객에게 요구할 위험성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이 작품은 ‘가족애’를 부각시켰지만, 교차되는 시간구조가 반복되면서, 그 밀집도가 떨어진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전체 극의 길이와 속도, 시간구조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근래 창작 지원을 받고 무대화된 뮤지컬 작품들은 규모를 최소화 하되,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고무할 만하다. 뮤지컬 <덕혜옹주>는 소극장 연극 방식을 차용한 소극장 뮤지컬과 차별화 하는데 성과를 올렸다. 대사 뒤 다시 노래를 넣어 내용이 중복되는 모습이 발견되지 않으며, 간단하지만 스펙터클한 무대, 인물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방식, 주제 의식의 변화에서 진화되었다. <덕혜옹주>는 뮤지컬이 노래를 통해 주 정서를 표현한다는 점을 확실히 이해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할 부분도 노래 부분이다. 일관성을 지닌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노래하고 구성하고 배치하는 방식에 대한 노력들이 좀 더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