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호 편집인의 글)
대학로가 진정한 문화지구로 거듭나려면
..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이것저것 많이 달라졌을 건 당연하다. 그렇다. 소극장도 몇 배로 늘었고, 공연 작품 수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그뿐인가? 번듯번듯한 신축 빌딩에 크고 화려한 중극장들이 들어섰으며, 대학로라는 이름 때문인지 여러 대학의 캠퍼스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학로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청소년 대학생부터 장년층까지 골고루 찾는 것은 물론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대학로는 이제 명소가 된 듯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하철역을 나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소위 ‘삐끼’라는 이름의 호객꾼들이다. 특별히 계획을 갖고 나온 사람들이야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끝내주게 재미있으니” 또 “무조건 싸게 보여줄 테니” 하며 달려드는 그 집요한 공세에 결국 넘어가고 만다.
노점상 역시 그저 낭만으로 보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그들은 어느새 보도를 반쯤 점령하고도 너무도 당당하다. 그 정도 위치에 그 정도 면적에서 안정적으로 장사를 하는 그들의 수입은 아마 우리 연극인들에 비하면 거의 갑부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불편함은 전혀 상관 안 한다. 게다가 하나같이 앞서 삐끼들이 선전하는 바로 그 작품들을 홍보하는 간판 역할까지 하고 있다. 협찬료를 받았는지 광고료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노점상마다 붙박이로 박아놓은 공연물 광고는 우리 연극인들을 절망시킨다.
대학로가 연극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성장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화지구 또한 연극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대학로에는 연극이 설 자리가 없다. 소극장이 많아질수록 연극은, 나아가 문화는 더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 했던가? 대학로는 이제 문화가 없는 천박한 난장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것이 대학로 문화지구 10주년을 맞는 연극인들의 소회라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대학로 문화의 핵은 연극이다. 그런데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제 대학로에 살지 않는다. 어느새 극단 사무실과 연습실은 삼선교, 돈암동을 지나, 미아리 고개를 넘어, 북으로 북으로 멀어져갔다. 그렇다. 대학로는 이제 연극의 생산 현장이 아니다. 다만 생산한 작품을 가져와 판매하는 시장일 뿐이다. 거기서 연극인들은 재벌과 대기업에 눌리고, 억척스런 난장에 밀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구멍가게에 앉아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가엾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니 어찌 대학로가 제대로 된 문화지구로 설 수 있겠는가?
이제 결정해야 한다. 대학로를 이름과 내용이 일치하는 명실상부한 문화지구로 만들 건지, 아니면 이미 비문화 내지 반문화의 불가역 상태로 들어섰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문화지구 포기를 선언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조건은 간단하다. 대학로에 연극인들이 살도록 해야 한다. 값비싼 임대료를 당할 길 없어 떠나가는 연극인들을 경제적 순리라고 방치한다면 결국 대학로는 문화의 원천을 잃고 말 것이다. 건물주를 필두로 한 주민들이 결의를 하든지, 공공이 나서든지 대학로에 다시 연극 연습실과 극단 사무실이 편하게 존재하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연극인들이 답답하면 언제든 찾아가 호소하고 기댈 수 있는 복지 개념의 연극인센터도 있어야 한다. 아울러 영세한 단체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세트 보관 문제를 해결해 줄 연극물품창고 내지는 연극박물관이 들어서야 한다. 그래서 대학로가 다시 연극의 생산 현장이 될 때 비로소 썩어가던 둥치로부터 문화의 새싹이 돋아나게 될 것이다.
부디 현명한 판단으로 대학로가 진정한 문화지구로 거듭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4년 11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