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4년 10월 공연총평/ 박정기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4년 10월 공연총평

 

박정기

 

10월에는 국공립극단의 기획공연과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종로구연극축제와 서울연극협회 각 지부, 서대문 연극협회, 서초연극협회, 성북연극협회, 노원연극협회 등의 창단공연과 창단을 위한 예비공연이 이루어졌다. 또한 각종 명목을 붙인 기획공연과 각 극단의 공연이 줄을 이었다. 그 중 우수작을 평하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평과 서울연극협회 각 지부의 공연은 별도로 평하겠다.

 

1, 명동예술극장 도쿄예술극장 공동제작 하기오 모토 원작·극본, 이시키와 쥬리·성기웅 번역, 노다 히데키 극본·연출의 <반신>

 

명동예술극장에서 하기오 모토 원작·극본, 이시키와 쥬리·성기웅 번역, 노다 히데키 극본·연출의 <반신>을 관람했다.

<반신>은 샴쌍둥이처럼 태어난 일본인 여자쌍둥이의 이야기다.

 

샴쌍둥이는 일란성 쌍태아의 특이한 형태로, 수정란이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불완전해서 쌍둥이의 몸이 일부 붙은 상태로 나오게 된다. 샴쌍둥이는 다수정란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 경우 태어나는데 신생아 5만-10만 명 출생 중 한 번꼴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샴쌍둥이는 1811년 타이에서 가슴과 허리 부위가 붙어 태어난 쌍둥이 형제에서 유래한 말이다. 샴(Siam)은 당시 타이의 이름이다.1811년 5월 타이에서 중국계 타이인인 창과 엥이 태어났는데, 이들은 가슴이 붙은 전방 결합이었다. 키가 157cm나 되었으며 걷는 것은 물론 뛰거나 수영까지 했다. 이들은 1829년 강변에서 놀고 있다가 부근을 지나던 영국 상인에 의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간, 이들은 1832년 한 서커스단에 입단해 인기를 모아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나중에 미국 시민권을 얻어 1843년 두 자매와 결혼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 주(州)에서 1874년에 사망했다. 20세기 전후해 태어난 샴쌍둥이는 600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중 157쌍이 생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3월에 태어난 민사랑/지혜 자매가 있다. 이 자매는 엉덩이가 붙은 채로 태어났으며, 그 해 7월 22일 싱가포르에서 분리수술에 성공했다.

<반신>의 주인공인 쌍둥이 자매는 한쪽은 지능이 제대로 갖춰져 표현도 제대로 하지만, 한쪽은 무척 예쁜 모습인데 지능미달로 늘 어린아이처럼 웃음만 터뜨린다. 그런데 이 자매를 분리수술을 해야 할 일이 극 속에 벌어진다. 자매를 둘러싼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와 가정교사, 그리고 수학교수인 할아버지, 분리수술을 하게 되는 의사, 그리고 자매의 반신에 대비시켜 자매주위에 반신반인의 인물들, 오리엔트 신화의 스핑크스, 그리스 신화의 게리온, 예수교의 가브리엘 천사, 인어공주 모습의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머메이드, 뿔하나 달린 괴물 유니콘, 그리고 사람과 새의 합성 괴물 하피 등을 등장시기고, 현악기와 건반악기 연주자의 연주와 함께 연극을 상상과 환상의 나라로 이끌어 가면서, 마치 디즈니 제작 만화영화나, 프랑스에서 제작한 명작 만화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연극이 연출되고, 대단원에서 쌍둥이 분리수술로 결국 한쪽은 사망하면서 관객에게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남긴다.

무대는 완만한 나선형의 계단이 천정까지 이어지고, 그 중앙을 가로지른 통로가 무대 좌우로 연결된다. 통로 끝은 미끄럼틀로 연결되어 무대로 내려설 수 있게 만들어지고, 배경 막 가까이에 현악기와 건반악기 연주석이 마련되어 있다. 무대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 칠판이 있고, 기초수학의 루트나 분수 의 덧셈 나눗셈이 잔뜩 적혀있다. 그 앞에 나무로 만든 원형 목욕통이 있어, 목욕통을 중앙원형무대로 이동해 사용할 때면, 통속의 물이 소용돌이 현상을 일으켜 사람이나, 신화 속 인물들이 빨려 들어가거나 솟아나오기도 한다. 얼기설기 마련된 계단 앞쪽에 2중 원형무대가 자리를 잡고, 극 전개에 따라 원형무대가 회전하면서 소용돌이 현상이 연출되기도 한다. 무대 좌우에 의자를 늘어놓아 출연자들이 거기에 앉아 등장할 차비를 한다.

쌍둥이 자매는 검은 의상에 검은 띠로 몸이 연결되었음을 나타내고, 언니는 똑똑하고 재주가 있는 여아지만, 미모가 동생에게 뒤져, 용모만 예쁠 뿐 저능아인 동생이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에 늘 상 불만을 갖고, 동생에 대한 미움이 켜져만 간다. 칠판의 수학을 풀이하는 백발의 교수는 대학자이지만 치매현상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쌍둥이의 부모 중 어머니는 자매에게 언짢은 일이 생길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입버릇처럼 된 대사를 반복하고, 미모의 이모는 인물값을 하노라고, 가정교사까지 유혹해 몸을 밀착시키려 든다. 고모는 떠버리에다가 모든 것에 일일이 참견을 하는 성미이고, 가정교사는 순진무구한 청년이지만, 사랑에는 약 하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모에게 유혹당한 후, 몸 접촉에 눈을 뜬 가정교사는 미모의 쌍둥이 동생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여기에 자매의 반신에 대비시켜, 신화 속 인물이나, 전설 속 인물인 반신반인의 모습을 한, 스핑크스, 게리온, 천사 가브리엘, 머메이드, 유니콘, 그리고 하피가 등장해 각자 나름대로의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정적 연기로 무대전체를 누비고 채우며, 회전무대의 소용돌이와 함께 연극을 환상의 나라로 이끌어 간다. 동생의 임신사실이 알려지고, 만삭이 된 동생은 욕조 속에 아기를 낳는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자매는 중병에 걸리고, 분리수술을 않으면 둘 다 목숨이 위태로운 것으로 밝혀지면서 쌍둥이 자매의 분리수술이 시작된다. 그러는 동안 동생이 못하던 말을 하며 언니처럼 똑똑한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대한다. 관객은 언니가 사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안타까워 할 즈음, 언니가 등장하면서 그간 동생에게 품었던 미움을 떨쳐버리고,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받아들이고 자신처럼 동생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전한다. 결국 사망한 쪽은 동생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시신담당자들이 관을 들고 등장한다. 시신을 확인하려고 관 뚜껑을 열지만 시신은 보이지를 않는다. 그 때 신화 속 전설 속 반신 반인의 인물들의 배웅 속에 천정을 향한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는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의 모습이 보이면서 관객은 처연하고 서글픈 심정으로 하늘로 향하는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주인영과 전성민이 쌍둥이 자매로 출연해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요 용이 노수학자와 노 의사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무대를 채운다. 이형훈이 가정교사로 출연해 훤칠한 용모와 호연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박윤희와 이주영이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출연해, 제대로 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서주희가 이모와 인어공주 모습의 머메이드로 출연해, 놀라운 기량과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 그리고 마릴린 먼로를 능가하는 요염한 자태로 남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무대를 가득 채우고 빛을 낸다. 김정호가 전설속의 반인 반 조류의 날짐승으로 출연해 탁월한 연기로 무대를 장식한다. 이수미….고모와 천사 가브리엘….그녀는 자신이 최고기량의 연기자임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김병철이 스핑크스 역으로 전설 속 인물과 신화 속 인물의 대들보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실제 스핑크스일지라도 김병철만은 못하리라. 양동탁이 유니콘으로 등장해 새로운 유니콘 연기의 세계를 개척하는 열정으로 무대를 빛낸다. 정홍섭의 게리온도 관객의 가슴에 깊은 인상를 남기는 연기로 갈채를 받는다.

한정림, 진유리, 황정은, 권나형 등 건반악기와 현악기 연주자들의 연주가 극과 절묘한 어울림으로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무대디자인 호리오 유키오, 조명디자인 한토리 모토이, 의상디자인 히비노 고즈에, 음향디자인 다카쓰 유키오, 암무 샤 다마에, 분장·헤어디자인 쓰게 이사오, 협력연출 성기웅, 조연출 이성구·김정민 그 외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명동예술극장(대표 구자흥)과 도쿄예술극장(대표 후쿠치 시게오) 공동제작 하기오 모토 원작·극본, 이시키와 쥬리·성기웅 번역, 노다 히데키 극본·연출의 <반신>을 연출력이 돋보이는 걸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2, 극단 노을의 외젠 이오네스코 작, 오세곤 번역 예술감독, 이신영 연출의 <수업(授業)>

 

노을소극장에서 극단 노을의 외젠 이오네스코 작, 오세곤 번역·예술감독, 이신영 연출의 <수업(授業)>을 관람했다.

외젠 이오네스코 (Eugène Ionesco, 1909년~1994년)는 실존주의 파에 속하는 프랑스의 시인·소설가·극작가이다. 루마니아 계 프랑스 사람으로 루마니아의 스라티나에서 태어났다. 루마니아식 이름은 에우젠 이오네스쿠(Eugen Ionescu)이다.

유년 시대는 프랑스에서, 청년시대는 루마니아에서 보냈고 1938년 이후 파리에 정주하였다. 1950년 <대머리 가희>(부제 <반 희곡>)가 상연된 이래 이른바 반연극 파(反 演劇 派)의 선단에 섰다. 이후 <수업> <의자> 등의 뛰어난 단막물로 종래의 것과는 좀 다른 초현실주의적인 희곡을 차차 인식시키고, 그 후에는 <무소> <빈사(瀕死)의 왕> <갈증과 기아> 등의 장막 물(長幕 物)로 국립극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반연극의 작가로서 베케트와 더불어 호칭되고 오늘날에 와서는 프랑스의 대표적 극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의 전위적 부조리극, 가령 <수업>(1951), 중기의 <무소(犀)>(1960) 등 사회풍자극과 <빈사(瀕死)의 왕>(1962) 등 내면적 작품의 3기로 나눌 수가 있다. 초기의 작품일수록 대담하며, 일상적인 회화(會話)를 해체하여 그 무의미성을 폭로하기도 하고, 의자를 무대 일면에 늘어놓음으로써 신(神)이나 진실 또는 사상의 공허함을 표현하거나, 사람을 무소로 변신시킴으로써 현대 획일화(劃一化)의 공포를 우화화(寓話化)하기도 했는데, 항상 열정적이고 경쾌함을 작품에 그렸다.

그는 실험적, 초현실적 연극에 풍요한 희극적 표현을 가미함으로써 연극의 친 대중화에 성공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으며 1977년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무대는 강의실이다. 배경 막 가까이 통로가 만들어지고, 배경 쪽의 벽면은 출연자의 동태가 보이도록 망사로 되어있고 강의실 쪽 벽면만 일반 벽과 마찬가지다. 객석 출입구는 강의실의 문으로 설정된다. 배경 쪽 통로의 벽 앞에 책상 크기의 사각의 조형물과, 그보다 작게 만들어진 의자로 사용할 만한 크기의 크고 작은 사각의 조형물이 있어, 차례로 붙여놓으면, 강단과 강단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되고, 책상 같은 조형물은 출연자가 이동시켜 책상으로 사용하고, 작은 조형물은 의자로 사용된다. 책상크기의 조형물은 후에 관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암전상태에서 못을 박는 소리가 계속 들리기 시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서 조명이 들어오면, 아름답고 건장한 체격에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인이 배경 오른쪽의 통로에서 등장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실내에 찢겨 버려진 공책 장을 줍는다. 계속 강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여인은 윤기 있고 쨍하고 울리는 음성으로 문을 열어주겠노라 외치며 계속 종이를 줍고는 문을 열어 여학생을 맞이해 실내로 안내한다. 학생은 젊고 예쁘기 그지없는 여학생으로, 방글방글 웃으며 등장하는 모습에 극장이 다 환해지는 느낌이다. 건장한 체격의 여인은 안쪽을 향해 학생이 수업을 받으러 왔노라고 알린다. 잠시 후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교수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두툼한 서적을 들고 등장한다. 건장한 체격의 여인은 교수에게 무어라 당부를 하고 퇴장한다. 여학생은 박사학위과정을 이수하기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임을 교수에게 알린다. 교수는 제대로 왔다며 여학생을 반긴다. 향후 첫 번째로 수학강의가 펼쳐지고, 초등수학을 질의문답식으로 하는 수업이 시작된다. 1학년 초등학교 학생이나, 유치원 학생이라도 대답을 금세 할, 덧셈 질문을 하는 교수와 여학생의 대답이 이어지고, 그런 여학생에게 총명하고 똑똑하다며 냅다 칭찬을 하는 교수의 모습에 관객이 어리둥절해 할 무렵, 건장한 여인이 망사 밖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데 덧셈이후, 뺄셈의 질문이 벌어지면서 이상 징후가 생기기 시작한다. 덧셈과는 달리 여학생이 뺄셈에서는 초등수학에서부터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고, 머뭇거리기 시작한다. 교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뺄셈에서의 천치 같은 답변에 관객이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 무렵, 돌연 교수가 수십만 단위의 곱셈질문을 홧김에 해본다. 그러나 여학생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답을 말한다. 교수의 계산결과 그 답이 정확한 답임을 알게 되니, 교수는 물론 객석은 경악의 물결로 가득 찬다. 그런데 여학생은 고단위 곱셈을 암산으로 푼 것이 아니라, 그 답을 모조리 암기해 대답했노라는 말에 객석은 폭소로 뒤집어 질 지경이 된다. 수학강의가 끝나고 교수의 인문학 강의가 시작된다. 그러자 건장한 여인이 등장해 교수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지 말라고 제지한다. 잠시 교수와 건장한 여인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전개되지만, 교수의 의지를 꺾지를 못하고 건장한 여인은 물러간다. 교수는 먼저 언어학 강의를 시작하고, 언어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한다. 그런데 여학생의 치통이 시작된다. 교수의 강의가 차츰 열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여학생의 통증도 가중되어 “이가 아파요” 하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한다. 교수는 여학생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강의를 계속하고, 여학생은 재차 삼차 통증호소를 한다. 계속 여학생의 “이가 아파요” 하는 소리가 계속되니, 객석에서도 안타까운 심정이 배가된다. 교수는 학생의 심한 통증을 무시한 채,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여학생을 나무라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학생이 계속 통증만을 호소하니, 교수는 인내심을 잃고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폭력에는 색정적인 모습이 가미되어 교수는 윗몸의 나신을 드러내고 여학생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구부정한 모습과는 달리, 교수의 체격은 청년처럼 당당하고 건강하기가 이를 데 없다. 여학생의 놀래 거부하는 모습과 저항에 부딪히자, 광기와 분기가 탱천한 교수는 벽 문을 열어 칼을 꺼내 여학생을 찌른다. 여학생의 충격과 저항이 잠시 계속되지만, 교수의 칼 찌르기에 견디지 못한 여학생은 마룻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둔다. 건장한 체격의 여인이 다시 등장해 교수를 힐책하고, 자식 다루듯 교수를 매질하고 따귀도 때린다. 교수와 건장한 여인은 여학생의 시체를 책상 같은 조형물 안에 들어다 넣고 뚜껑을 닫은 후 못질을 한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퇴장한다. 잠시 후 강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고, 건장한 여인이 도입에서처럼 등장해 바닥에 깔린 공책 장 찢은 조각을 주우며 문을 열겠노라 외치고, 객석 출입구로 가서 새로 온 여학생을 맞이한다, 그리고 학생이 수업을 받으러 왔다며 안쪽에 대고 외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남수가 교수, 강아름이 여학생, 박소영이 건장한 여인으로 등장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기획 손동영, 조연출 김우종, 안무 민들례, 무대디자인 최병훈, 조명디자인 이일균, 음향디자인 김정훈, 그래픽디자인 김영일, 사진 김홍섭·김진성 등 제작진의 열정도 드러나, 극단 노을의 외젠 이오네스코 작, 오세곤 번역·예술감독, 이신영 연출의 <수업(授業)>을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3, 극단 그린피크의 고재귀 작, 박상현 연출의 <공포>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극단 그린피크의 고재귀 작, 박상현 연출의 <공포>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제정 러시아 말, 안톤 체호프가 희곡 집필을 위해 교외의 한 부농의 전원주택에서 머물며, 집주인과 성직자 등 부유한 사람들의 모습과 하인과 하녀들의 빈한한 삶과 그들의 자살에서 공포를 느끼고, 한편 집주인의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그려냈다.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 있는 항구도시 타간로크(Таганрог)에서 태어났다. 체호프가 열여섯 되던 해인, 1876년 그의 아버지는 파산했다. 파벨은 세간을 정리하고 모스크바로 이사했다. 그러나 체호프는 타간로크 중학교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홀로 고향에 남았다. 아버지가 돈을 보내 주지 않자 그는 돈을 벌어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나아가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도와야 했다. 소년 체호프에게 이것은 혹독한 시련이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체호프가 인간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후 이러한 특성들은 예술적 이미지, 예술적 사실(작품)로 이어졌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어수룩한 사람』과 『가정교사』는 이때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체호프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참 어려운 시기였다. 명문가와는 거리가 먼 집안 내력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어린 나이에 학교 공부와 집안을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었다. 1879년 체호프는 모스크바로 이주해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동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유머 잡지에 글을 싣기 시작했다. 물론 체호프의 문학적 재능은 타간로크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독자들과 폭넓은 관계를 만들어 내면서 체호프가 가진 작가적 역량을 발현하는 것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보는 것이 옳다. 1880년 3월 페테르부르크의 주간지에 <박식한 이웃에 보내는 편지(Письмо к ученому соседу)>가 게재되었다.오만한 어투를 활용한 서간체를 빌려 시골 지주의 교양 없는 상태를 풍자한 이 짧은 작품이 체호프가 지면을 통해 발표한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그 후 체호프는 여러 필명을 이용해 패러디적 성향이 짙은 작품이나 소품을 대중 잡지에 실으면서 인기 있는 유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즐겨 사용한 필명인 안토샤 체혼테(Антоша Чехонте)에 근거해 이 시기를 ‘체혼테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1년에 100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 내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관리의 죽음(Смерть чиновника)』(1883), 『뚱뚱이와 홀쭉이(Толстой и Тонкий)』(1883), 『카멜레온(Хамелеон)』(1884) 등 지금도 회자되고 즐겨 읽히는 뛰어난 작품을 양산했다.1884년 대학을 졸업한 후 체호프는 모스크바 근교에 병원을 개업해 시골 마을이나 소도시에 왕진을 다녔다. 그러면서도 젊고 유명한 예술가들 및 문학가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는 개업의로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1884년 그의 첫 단편집이, 1886년에는 그의 두 번째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이 두 작품집은 작가로서 체호프의 명성을 높여 주었다. 체호프는 의사의 길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의과대학 공부와 개업의 활동, 여기에 지칠 줄 모르는 창작 활동이 겹치면서 폐결핵의 징후를 보인다. 정신착란이 고골의 평생 지병이었고, 신장결석이 투르게네프의 평생 지병이었으며, 간질이 도스토옙스키를 평생 따라다녔다면, 폐결핵은 체호프의 평생 지병이 된다.1890년, 마차와 배를 이용해 시베리아를 통과해서 3개월간의 힘든 노정 끝에 사할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할린 섬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고, 죄수들의 일상을 3개월여에 걸쳐 조사한 다음, 그해 10월 인도, 싱가포르, 스리랑카, 콘스탄티노플, 오데사를 거쳐 12월에 모스크바로 귀환했다. 무려 8개월간에 걸친 길고 긴 여행의 성과는 인상기 『시베리아 여행(Из Сибири)』(1890)과 조사 보고서 ≪사할린 섬(Остров Сахалин)≫(1893)으로 남아 있다. 귀국 후, 1892년에 체호프는 모스크바 근교 멜리호보의 영지를 사들였다. 그곳에서 1897년까지 머문 ‘멜리호보 시대’는 건강을 회복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에 매진하던 시기였다. 1892년 6월 콜레라가 창궐하자 체호프는 톨스토이 등과 함께 구호 활동을 벌였다. 의사로서 봉사했으며 기아의 구원과 학교의 설립에 힘을 기울이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인간 생활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등장인물의 행위와 사고를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밝히려는 자세가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체호프는 1897년 3월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객혈을 하게 된다. 크림반도의 얄타로 거처를 옮겨 요양 생활을 시작한다. 얄타에서 고리키(М. Горьки, 1868~1936)나 부닌(И. А. Бунин, 1879~1953) 등 신진 작가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톨스토이의 병문안을 받았다. 이러한 요양 생활의 와중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Дама с собачкой)』(1899) 등의 소설을 내놓았다.그러나 체호프의 말년을 대표하는 장르는 희곡이었다. 『갈매기(Чайка)』(1898), 『바냐 아저씨(Дядя Ваня)』(1900), 『세 자매(Три сестры)』(1900), 『벚꽃 동산(Вишнёвый сад)』(1903) 등이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공연되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말년에 불후의 희곡 작품을 남겨 놓고, 체호프는 1904년 당시 유명한 요양지였던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폐결핵이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러시아로 옮겨져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공포>는 안톤 체호프의 자전소설처럼 시작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은 대학 과정을 마치고 페테르부르크에서 근무하다가 서른 살에 직장을 버리고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한다. 농장은 그런대로 잘 굴러갔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체호프는 그가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햇볕에 그을리고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그는 일 때문에 녹초가 된 모습으로 정문이나 현관에서 체호프를 맞았으며, 그 다음에는 저녁 식탁에서 졸음과 투쟁을 벌이다가 아내에게 어린애처럼 이끌려 잠자리로 들어가곤 한다. 이따금 그가 졸음을 이겨내고 부드럽고 경건한, 마치 기도하는 듯 한, 목소리로 자신의 훌륭한 사상들을 펼쳐 보이기 시작할 때면 체호프는 그에게서 경영자나 농장주가 아닌 한 지친 남자의 모습을 볼 뿐이다. 체호프가 보기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농장의 성공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하루가 무사히 가기를 바랄 따름이었던 것이다.

 

체호프 그의 농장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해서 한번 가면 이삼 일 정도 묵곤 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실린의 아내 마리야 세르게예브나가 너무도 체호프의 마음에 들었다는 점에 있다. 그녀와 정말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체호프는 그녀의 얼굴과 눈, 목소리와 걸음걸이를 좋아했으며 한동안 못 보면 그녀가 그리워진다. 여기에 과거에는 귀족가문출신이었지만, 음주벽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중년남성 가브릴라 세베로프가 등장하고, 성직자 조시마 신부, 그리고 이 집 하녀였다가 쫓겨난 까쨔가 다시 일하게 되기를 열망하다가 거절당하자 목을 매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니, 체호프는 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소설에 묘사해 간다. 그러다가 실린의 부인 마리야와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감지한 실린은 분노나 항의를 표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주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무대는 회색의 색조로 칠해졌다. 자작나무 숲으로 연결된 경사진 오솔길과 실린 저택의 마룻바닥도 우측상향각도로 경사진 것으로 보이도록 만든 장치다. 하수 쪽 책상과 의자 중앙의 탁자와 소파, 상수 쪽의 높은 탁자 등은 흑색을 띄고, 객석전면의 꽃밭까지 흑색이라, 흑색과 회색조의 무대로 형성되었다. 다만 천정에 매어달린 샹들리에 만 갈색을 띄고 있을 뿐이다.

 

김태근이 체호프, 이동영이 드미트리 실린, 김수안이 마리야, 신덕호가 소시마 신부, 오대석이 가브릴라 세베로프, 최지연이 하녀 빠샤, 전박찬이 요제프 신부, 박하늘이 까쨔로 출연해 성격창출이나 연기 면에서 좋은 기량을 나타낸다.

 

드라마터지 마정화, 무대 박상봉, 조명 남경식, 의상 윤보라, 음악 민경현, 화술 김선애, 분장 이동민·최정현·김주현, 무감 김명환, 조연출·음향보 유옥주, 조명보 임지연, 그래픽 김 솔, 사진 박정근, 기획 드림아트펀드 등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그린피크의 고재귀 작, 박상현 연출의 <공포>를 고품격 고수준의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4, 연극집단 반의 김민정 작, 박장렬 연출의 <이혈>

 

스타시티시어터 예술공간 SM에서 연극집단 반의 김민정 작, 박장렬 연출의 <이혈(異血)>을 관람했다.

김민정은 단국대학교와 서울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해무> <나, 여기 있어!!!> <길삼봉뎐> <미리내> <너의 왼손> <가족의 왈츠>를 발표 공연한 미모의 여류극작가다.

​<이혈(異血)>은 종군위안부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성장해 이름난 만화가가 된다. 그런데 이 만화가는, 일본의 정부고위직 인사 몇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듯, 우리나라 정치인이 일제의 종군위안부관련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면 그가 살해될 것을 예고하고, 실제로 그 정치인은 살해된다.

만화가는 종군위안부였던 여인에게서 태어났기에, 그것을 이유로, 이혈(異血), 다시 말해서 피가 다르다고, 자신을 자식취급 안하는 아버지, 그리고 인척관계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해하기 시작한다.

경찰수사대가 급파되고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결국 한 미모의 여류 범죄 심리 분석관에 의해 범인의 행적이 과학적으로 추적되고, 만화가의 일기장을 통해 살해 용의자인 한 일본인 여인을 알아내지만, 일본여인마저도 만화가에 의해 살해된 후 만화가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가슴 아프고도 충격적인 이야기다.

무대는 만화가의 작업실이다. 무대 왼쪽에 책상과 걸상, 그리고 벽에 만화가의 메모와 그림을 잔뜩 붙여놓았다. 무대좌우로 등퇴장 로가 있다.

배경은 벽돌문양의 여러 개의 가리개로 되어있고, 그 가리개가 열리면 살해당한 인물들이 생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원종철, 신현종, 권남희, 김귀선, 김준삼, 정성호, 정종훈, 권기대, 김지은, 남동진, 김윤태, 문창완, 조예현, 진종민, 김진영, 김 천, 송현섭, 이가을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은 시종일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임선빈, 조연출 서지혜·이재민, 무대미술 엄진선, 조명디자인 김철희, 작곡·음악감독 박진규, 보컬 박선옥, 섹소폰 유리은, 송임규·허윤혜, 브릿지 음악 박진광, 움직임 김민정, 진행 이재화, 의상디자인 양재영, 사진 김명집, 기획 팀플레이예술기획, 제작 YEDO 등 제작진의 열정과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연극집단 반의 김민정 작, 박장렬 연출의 <이혈(異血)>을 걸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5, 극단 유목민의 롤란트 쉬멜페니히 작, 이원양 역, 심현우 연출의 <과거의 여인>

 

소극장 시월(구 배우세상 소극장)에서 극단 유목민의 롤란트 쉬멜페니히(Roland Schimmelpfennig) 작, 이원양 역, 심현우 연출의 <과거의 여인>을 관람했다.

<과거의 여인>과 <황금용>을 번역한 이원양 교수는 서울대 독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연극학을 연구했으며 지난 80년부터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독문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저서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우리시대의 독일연극'(1998), ‘독일어기초과정'(1995) 등이 있고, 한국 브레히트학회 회장(93-95), 한국 독일어교육학회 회장(97-99), 한국 독어독문학회 회장(2000)을 역임하면서 국내 및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하여 학회의 발전을 힘쓰고, 1980년대부터 한·중·일 3국간 학술대회를 정례 화시켜 동아시아 3국간 독어독문학 국제교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1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 1등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롤란트 쉬멜페니히(Roland Schimmelpfennig 1967~)는 <그라이프스발트 가(街)> <아라비안 나이트> <과거의 여인> <동물의 제국> <황금용>을 비롯해 30 편에 이르는 희곡을 집필하고, 뮐하임 페스티발, 테아터 호이테 등에서 극작가상을 수상한 현재 독일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2007년에는 롤란트 시멜페니히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인도의 떠오르는 여성 연출가 줄레이카 차우다리(Zuleikha Chaudhari) 연출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인도참가작으로 공연된바 있다.

2008년에는 연희단거리패의 김경화 작 이윤택· 연출의 <산 넘어 개똥이>를 이원양 교수 의 독역으로 <베를린 개똥이: 이윤택·알렉시스 부크 공동제작>독일공연이 이루어져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과거의 여인>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20년을 살다가 이사를 하려고 짐을 꾸리고 있는 집에, 20여 년 전 남편과 관계를 맺었던 여인이 불쑥 나타난다.

남편은 그 여인을 잘 알아보지도 못한다. 여인은 과거 두 사람의 밀착시절을 상기시키며, 당시의 두 사람이 한 사랑의 약속 때문에 찾아왔노라고 한다.

놀라고 당황한 남편은 아내가 행여 들을세라, 엉겁결에 문을 닫아버린다.

목욕을 하고 나온 아내는 웬 여자소리가 들렸다며 남편에게 묻고, 남편의 당황해 하는 모습에 이상한 예감이 들어 문을 열고, 거기에 서있는 미모의 여인을 발견한다.

아내가 추궁을 하자, 남편은 계속 얼버무리고, 여인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을 태세라, 관객의 안타까움과 놀라움이 증폭된다. 아내의 성난 모습과 한 가정의 가장된 책임감에서 남편은 여인을 냉대하고, 문밖으로 내쫓다시피 한다. 여인의 절망감과 증오감이 교차되며 여인의 복수심 같은 의지가 표출된다.

한편 부부의 아들도 어느덧 19세가 되어 아리다운 처녀와 사랑을 한다. 남편의 젊은 시절을 꼭 빼어 닮은 아들은, 사랑하는 모습도 아버지와 똑같아, 아들이 연인을 대하는 모습에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임을 감지할 수 있다.

부부는 이사를 가야 하기에 짐 꾸리기를 계속해야 하고, 이사일 때문인지 부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과거의 여인>이 한 밤중에 재등장한다. 아들이 그 여인을 맞는다. 사랑했던 남자의 아들임을 알아차린 여인은, 농염한 모습으로 아들을 유혹한다. 아들은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듯 미모와 관능의 화신 같은 여인의 품속에서 이성을 잃고 관계를 맺는다. 관계 후 비몽사몽 같은 후유증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아들에게, 여인은 비닐봉투를 뒤집어 씌워 질식사 시킨다.

남편과 아내는 <과거의 여인>문제를 이해와 관용으로 해결을 한 모습을 보이며, 짐꾸리기를 계속한다. 이 때 아들의 연인이 찾아온다. 남편과 아내, 아들의 연인도 밤새 아들의 행방과 동태를 알아내지 못한다. 마지막 짐 꾸리려고 남은 상자 뚜껑을 젖히는 순간 남편은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진다. 아내가 가서 들여다본다. 오! 거기에는……

무대는 한 저택의 거실이다. 배경 가까이 서너 개의 방문이 있고, 차단막을 차일커튼처럼 끌어 당겨서 문을 개폐시킬 수 있도록 했고, 그 문이 욕실, 아들 방, 부부 방의 출입구가 되고, 무대 상수에 빨간색을 칠한 출입문이 있다. 소품으로 각종 어린이용 장난감이 등장하고, 남편과 아내는 실내복을 착용하는데, <과거의 여인은> 강렬한 붉은 색 원피스 차림이다. 아들과 연인은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복장이다.

이정미가 과거의 여인, 한규남이 남편, 신현실이 아내, 김 결이 아들, 하지은이 연인으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제작감독 손정우, 예술감독 허윤정, 드라마 투르크 심재민, 무대디자인 이윤수, 조명디자인 김용주, 영상디자인 최종찬, 음악감독 박용신, 안무 이영일, 분장디자인 백지영, 의상 박해인, 조명 임해원, 음향 이용경, 조연출 김계민·설수민, 기뫽팀장 이승현, 기뫽 박새롬·동규찬·홍은정·심윤섭·한성호, 오퍼레이터 임종원·신보영, 사진 이종환, 프로그램&홍보영상 김 진, 영상 그림 김결 등 제작진의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유목민의 롤란트 쉬멜페니히(Roland Schimmelpfennig) 작, 이원양 역, 심현우 연출의 <과거의 여인>을 <메데이아>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복수극으로 창출시켰다.

 

6, 극단 놀땅의 최진아 작·연출의 <홍준씨는 파라오다>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극단 놀땅의 최진아 작 연출의 <홍준씨는 파라오다>를 관람했다.

파라오(Pharaoh)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로서 ‘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이라는 칭호와 ‘모든 사원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겸하고 있었다. 이 때 ‘두 땅의 주인’이란 파라오가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 전체의 통치자라는 의미로, 파라오는 두 지역의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 법률 집행권, 조세의 권리와 함께 두 지역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는 하늘에서 땅을 지배하는 신들의 후손으로서, 태양신 라(Ra)에 의해 점지되며, 신과 같은 자격으로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이집트 지역을 보호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여겼다. 또한 이집트 고대 신화에 따르면, 파라오는 신과 여인의 결합의 산물인 빛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파라오는 행정의 책임자인 동시에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으며, 고위 관리들은 파라오가 우주의 조화와 정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행정적 위계질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도 내포하고 있었다. 파라오의 주된 종교적 의무는 사원의 건축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들이 지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거처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으므로 왕들은 신전을 지어 숭배와 제식을 치러야 했다. 이 때 신전은 종교적 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부를 창출하고 관리·배분하는 수단으로서의 경제적 장치이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라오의 권위가 흔들리거나 그 힘이 쇠약해지면, 이는 신들이 돌보아 주지 않아 이집트가 어둠의 시기를 맞아 경제적으로 쇠퇴한다고 여겨졌으며, 따라서 파라오의 강력한 중앙권력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의 죽음은 태양이 사라져 우주의 조화가 흔들리는 사건이었으므로 백성들은 혼란을 끝내줄 후계자를 기다리며 장례를 치르는데, 보통 무정부상태를 피하기 위해 파라오가 생전에 왕좌에 아들이나 후계자를 함께 앉히곤 했다. 죽은 파라오의 육체는 미이라로 만들어지고,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이 준비한 영원의 거처인 무덤에 안장된다.

파라오 왕조는 메네스(Menes) 왕이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하며 세운 왕조(B.C.3500~3150)에서 시작하여 초기 왕조(초대~2대 왕조), 고왕조, 상왕조, 중왕조, 하왕조, 프톨레미 왕조(B.C.332~30)로 B.C. 30년에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기까지 약 3500년에 걸쳐 이어졌다.

무대는 도시의 대로 양쪽의 수많은 건물과 무수한 간판이 배경에 투사된 검은 구름의 영상 아래 펼쳐져 있다. 무대 상수 쪽에는 24시간 편의점의 대형사진이 실제처럼 세워져 있다. 무대중앙에는 탁자 같은 백색 조형물이 한 개 있고, 그 오른쪽에 등받이가 있는 백색의자와 등받이 없는 의자, 그리고 서랍장이 벽면 같은 가리개 앞에 놓여있다.

장면 변화에따라 천정에서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회전하고, 공사장의 거대한 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병원수술실의 은색배경철판이 철 줄에 연결되어 내려오고, 환자이동침대, 링거를 매단 철주, 원형탁자와 술잔이 연기자들에 의해 이동 배치된다.

고대 파라오를 떠올리는 장면은 배경 가까이 천정높이의 계단을 만들어 거기에 피라미드에 부각된 문양의 영상을 투사하고, 주인공 홍 준이 오르고 내리도록 만들었다. 파라오의 의상은 남성 3인의 출연자가 금빛 관과 금빛 의상, 그리고 띠를 가져다 홍 준에게 입힌다.

내용은 낙향해 농사를 짓고, 건축현장에서 폭 크레인을 운전하고, 작은 목욕탕을 운영하는 50대의 주인공 홍 준의 이야기다. 부지런히 일을 하지만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설정이고, 게다가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홍 준은 수술을 받으러 상경을 한다. 입원 후 홍 준은 오랜만에 서울 구경을 한다. 여인둘이 적갈색 의상을 입고 출연하는 연극을 관람하고, 그리고 고궁을 방문한다. 고궁에서 마침 천년의 비밀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집트의 파라오 전을 관람한다.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라서 그런지, 그는 고궁에서 홀연, 기원전 2000년대의 고대 이집트인으로부터 파라오 만이 받을 수 있는 예우를 받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일거수일투족 행동거지를 파라오답게 처신한다, 피라미드를 오르내리고, 파라오의 의상과 관을 쓰고, 자신이 제작한 긴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 눕기도 한다.

수술 날 그는 전라의 몸으로 수술대에 오른다. 하체를 객석에 드러내고, 갑상선 수술을 받는다. 파라오인지, 평범한 가장인지, 마취 후 비몽사몽을 헤매다가 수술이 끝나고, 홍 준은 음성을 잃어버린 듯 한동안은 말까지 못 한다. 그러나 병실을 찾은 아내와 딸과의 대면에서 다시 현실로 되돌아 온 것을 감지한 듯, 다시 두런두런 말을 꺼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용준이 홍 준, 김성연이 아내, 박윤서가 딸, 남수연, 송치훈, 임병찬이 이집트인과 카페장면에 등장하는 인물 역을 한다. 출연자 모두의 호연과 성격창출이 기억에 남는다.

무대 손호성, 조명 김성구, 의상 강기정, 음악 서트 지미, 영상 윤민철, 안무 고지혜, 케이 파트루, 분장 장경숙, 그래픽디자이너 박재현, 사진 김도웅 나종민, 영상촬영 차지성 송영범, 기획 나희경, 무대감독 이준영, 조연출 이기영, 연출부 박성연 유경훈, 기술감독 김원익 그 외 제작진의 열정이 드러나, 극단 놀땅의 최진아 작 연출의 <홍준씨는 파라오다>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7, 극단 Da의 가네시타 타쓰오 작, 기무라 노리코 역, 임세륜 각색·연출의 <고르곤>

 

예술공간 서울에서 극단 Da의 가네시타 타스오(鐘下辰男) 작, 기무라 노리코 (木村典子) 역, 임세륜 각색·연출의 <고르곤(Gorgon)>을 관람했다.

 

가네시타 타스오(鐘下辰男 1964~)는 일본공학원전문학교 연극과 출신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카스토리 엘레지> <한 겨울의 동백꽃> <수인과 전쟁> <온실 앞> <가석방> <바다에 가면> <서유기> <루트 64> <어른의 시간> 을 발표 공연하고, 극단 THE GAZIRA를 창단했다. 현재 오비린 대학, 일본공학원전문학교, 기리코시학원, 예술단기대학 등에서 강의를 한다.

 

기무라 노리코(木村典子 1961~)는 극단 목화에서 기획자로 일하며 <춘풍의 처> <아침 한때 눈이나 비> 등 다수의 작품의 일본 공연을 성사시켰다.기무라 노리코는 프리랜서 기획자로 독립한 후에도 오타 쇼고의 <빈 터>를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연극 최전선에서 번역가로 활동해 왔다. 2004년에는 <바다와 양산>을 제작, 동아연극상도 수상했다. 또 한편으로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연극을 일본에 소개하는 등 한일 연극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학로 무대에 일본 작가의 작품이 일상적으로 공연되고, 일본 극장에 한국 배우가 출연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무라 노리코의 노력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고르곤, 또는 고르고(Γοργών, Γοργώ)는 끔찍한 것들” 또는 “크게 소리치는”으로 번역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포르퀴스와 케토스가 낳은 세 명의 자매로 그라이아이 자매의 동생이다. 이들 세 자매의 이름은 각각 ‘스텐노'(힘센 여자), ‘에우뤼알레'(멀리 떠돌아다니는 여자) 그리고 가장 유명한 ‘메두사'(여왕)이다. 통상 고르곤은 이 메두사를 지칭한다.

 

고르곤 세 자매는 메두사를 제외한 스텐노와 에우뤼알레는 불사(不死)의 몸이다. 그들은 서쪽의 땅, 오케아노스의 저편에 헤스페리데스들이 있는 곳 땅 끝에 살았으며, 머리털은 살아있는 뱀이며, 몸은 용의 비늘로 덮여 있었다. 황금 날개를 달고 있었다고도 한다. 이들의 모습은 무시무시하여 이들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나 동물은 모두 돌로 변해 버린다고 한다.

 

호메로스는 단 한 명의 고르곤만 언급하고 있으며, 그 머리를 방패에 새겨져 적들로 하여금 공포를 일으킨다고 했다. 오딧세이에서도 잠시 고르곤이 언급되었다.

 

에우리피데스나 아이스킬로스 같은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작품에도 고르곤이 나오는데, 아이스킬로스는 그라이아이와 고르곤을 혼동한 듯하다.

 

오비디우스는 조금 다른 고르곤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인으로 특히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에 넵투누스가 그녀에게 반해 미네르바 여신의 신전으로 데려가 함께 사랑을 나누었다. 이에 화가 난 미네르바가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뱀으로 바꾸어 놓고 괴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무대는 한 가정의 거실이다. 문틀 같은 열대여섯 개의 칸막이가 배경에 세워지고, 문과 창문구실을 한다. 무대좌우 객석 가까이에도 등퇴장 로가 나있다. 무대 중앙에 크고 긴 등받이 의자가 놓여있고, 그 앞의 긴 탁자도 놓여 있다. 탁자 좌우로 등받이 없는 걸상이 놓여있다. 무대 하수 쪽에는 계단과 난간이 있다. 조명의 강약과 요령 같은 종소리가 울리면 장면전환이 이루어지고, 현재에서 20년 전 과거로, 또는 그 반대로 상황변화가 이루어진다.

 

연극은 도입에 소복을 한 듯 보이는 젊은 여인의 해설에서 시작된다. 과거 자신이 저지른 살인방화사건에 관해서다. 유부남과 관계를 맺고, 그 부인과 가족의 항의 때문인지, 호텔방에서 유부남을 살해하고 20년을 복역한 이야기다.

 

무대 하수 쪽 난간에 역시 젊은 두 여인이 등장하고, 고종사촌 자매간인데 동년배이고 여고 동창으로 소개가 된다. 몹시 가까운 사이라, 남들이 동성애자로 볼 정도였다며, 돌연 자매 중 한 여인이 상대와 입맞춤을 하고, 입맞춤이 격렬해 보일 즈음 끝을 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상상태로 돌아간다.

 

자매의 가족이 등장한다. 자매의 어머니들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이고, 시누이의 남편은 딸 같은 연배의 여인과 바람을 피워 현재 그 여인이 임신 중이고, 처와 이혼을 할 의사라는 것이 소개가 된다. 올케는 남편과 이혼을 했고, 아들 벌 되는 연하남과 재혼해 살고 있다. 그 연하 남은 동안인데다가 행동거지 또한 청소년과 방불한데, 올케 여인이 무엇 때문에 그런 연하남과 사는지는 여성관객들은 짐작이 간다는 표정이다.

 

시누이의 남편이 등장한다. 올케의 남편과는 달리, 나이가 지긋해 보이고, 건실한 가장의 모습인데, 바람을 피워 소실을 둔 것에서, 겉과 속이 다르다기보다는 남성들 대부분의 심성인 듯싶다. 아내 앞에 꿇어앉아 자신의 불륜을 용서해 달라고 빌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상대여인과의 관계를 단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 객석에 전해진다.

 

시누이의 딸 역시 직장상사인 젊고 잘 생긴 유부남과 관계를 맺어 현재 임신 중이고, 그 유부남 역시 이혼할 의사가 있음을 통정한 상대에게 이야기는 하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는 것도, 시누이의 남편인 그녀의 아버지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오고, 시누이 집에, 올케와 젊디젊은 남편, 올케의 딸이 등장한다. 시누이의 딸과 정을 통해 임신까지 시킨 젊고 훤칠한 모습의 유부남 상사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들고 등장한다. 시누이는 딸의 상대를 냉대하고, 자신이 홀몸으로 딸을 정성스레 키워, 공부를 시켜 명문대학에 들여보내, 자신이 하지 못한 공부를 딸이 대신하고, 자신처럼 언짢은 남편을 만나 불행하게 된 것과는 반대로, 딸이 버젓한 사내와 만나, 남보라는 듯 떵떵거리고 살게 되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음을 비관하고, 딸의 상대에게 당연히 냉대를 하니, 딸은 그런 어머니에게 항의를 한다. 그리고 항의가 격렬해 진다. 그런데 객석에서 보기에도 딸의 항의가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의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생각과 의사가 가감 없이 그대로 반영되는 듯한, 공연이기에, 갈등은 새로운 불씨를 낳고, 모녀의 관계까지 악화일로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올케와 그녀의 딸, 그리고 젊은 남편이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고, 딸의 직장상사인 젊은 유부남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애쓰지만,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한다. 시누이의 회상 속으로 남편이 등장해,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고 자신의 탓이라며 꿇어앉아 비는 모습을 연출하지만, 상황이 반전될 기미는 보이지를 않는다. 게다가 시누이의 낙담과 슬픔은 모든 건강하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시누이의 처지를 공동운명처럼 받아들이기까지 하기에,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점화를 해도, 메리크리스마스의 구호는 나올 명분을 잃고 만다.

 

대단원에서 층계계단 난간에서 마주한 시누이와 딸이 담배를 피워 연기를 깊이 들어 마시고, 미움과 애정 속에서 서로 끌어안는 모습과, 마지막으로 방화의 의사인 듯 라이터의 불꽃을 피워 올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아테나 여신 같은 시누이 역으로 김담희, 올케 역으로 홍윤희, 고르곤(메두사) 같은 딸 역으로 서혜림, 아버지 역으로 승의열, 올케의 젊은 남편 역으로 윤상호, 딸의 직장상사 역으로 고훈목, 해설자와 불륜남을 방화한 여인 역으로 김수연, 올케의 딸 역으로 신소현이 출연해, 각자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사진 김명집, 조명 황종량·이승희, 무대 이소영, 의상 정현정, 음악 사운드 펄케이 정세웅, 무대감독 이정숙, 조연출 문정범, 그래픽디자인 김 솔, 홍보마케팅 바나나문프로젝트 등 제작진의 역량이 조화를 이루어, 근단 Da의 가네시타 타스오(鐘下辰男) 작, 기무라 노리코 (木村典子) 역, 임세륜 각색·연출의 <고르곤(Gorgon)>을 기억에 길이 남을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8, 극단 서울공장과 인도 InKo Centre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임형택 각색·연출의 햄릿 <아바따(Avattar)>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서울공장과 인도 InKo Centre 공동주최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임형택 각색 연출의 <햄릿 아바따(Avattar)>를 관람했다.

아바타(Avatar)는 자신의 분신을 가리킬 때 ‘아바타(Avatar)’란 표현을 쓰는데, 이는 원래 힌두교의 비쉬누 신과 관련된 말이다. 비쉬누 신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 또는 반신반인의 모습으로 출현을 한다.

<햄릿 아바따(Avattar)>는 극단 서울공장의 출연진과 인도의 현대무용가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무용, 그리고 여가수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신비스런 가창력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연출된다.

인도의 국보급 안무가인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는 독일 피나 바우쉬, 영국 핑크 플로이드, 런던 마사 그레이엄, 뉴욕 호세 리몬 등 세계 각국의 예술인과 협업을 해온 글로벌 아티스트다.

1983년 11월 26일에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초청공연이 공간사랑에서 열렸다. 인도의전통무용을 배운 다음 본격적인 현대무용기법을 익힌 무용가로서 31개국에서 공연을 했다.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은 미모의 집시풍의 여가수다. 바울은 방랑하는 탁발승이란 의미이다.

사찰에서 예불 후, 스님들이 네 개의 사발 같은 나무그릇에 밥, 반찬, 국, 물을 담아 식사를 하는데, 그것을 발우공양이라고 한다. 발우공양의 발우가 바로 바울과 같은 뜻이다.

또한 바울(Baul)은 범어인 ‘바툴(Vatul)’, ‘바훌(Vahul)’에서 유래되었는데 ‘바람으로 인해 미쳤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바울(Bauls)’은 음악을 통하여 신에게 다가고자 노력하는 방랑 신도를 일컫기도 한다.

그렇기에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무대에서의 모습과 열창은 신비스럽고 신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고, 속세의 광기와 첨가되어 음악적 신비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아마도 ‘바울’의 유행은 그 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겠지만 이들 ‘바울’의 노래의 추적 가능한 연대는 18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다. 바울은 공명악기인 반스리(Bansri)와 북 형태의 고피 야안트라(Gopi Yaantra)를 사용한다.

무대는 백색의 천으로 무대를 차단해 막 구실을 하고록 설정하고, 무대 좌우로 철제 조형물과 받침대를 2m 간격으로 세 개씩 나란히 놓고, 그 옆에 의자를 배치해 연주자와 출연자가 앉아서 대기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배경 가까이 가로 1m 세로 2m 크기의 세 개의 커다란 투명 가리개를 세워, 조명 각도에 따라 거울로도 사용된다.

무대 좌우에 배치된 등받이 의자는 후에 무대 중앙 객석 가까이로 옮겨, 그 위에 꽃다발을 놓아 화단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무대 전면에 직사각의 커다란 공간에 물을 채워, 연극 후반부 오필리어의 익사 장면에 사용되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객석 전면이 동선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가 부왕의 망령 역을 하고,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이 오필리어의 의식과 내면을 표현한다. 햄릿과 배우들의 극중극 장면에서는 기존의 작중인물이 1인 2역으로 배우 역을 한다. 기타 연주자가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며 배경 막 가까이에서 연주를 한다.

연극은 도입에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절규하는 듯한, 노래와 함께 그녀가 막을 서서히 열면서 시작된다.

햄릿과 부왕의 망령의 조우가 춤사위로 시작되고, 아버지가 독살된 것을 햄릿이 알게 된다. 부왕의 급작스런 죽음에 따른 숙부의 대관식이 이어지고, 햄릿의 모친 거트루드와 숙부 클로디어스의 혼례로 이어지면서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와 오라비 레어티즈의 모습과 동태가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키지만, 햄릿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침잠된다. 연극은 원작의 분위기를 따라가지만,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춤과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노래, 그리고 출연자들의 열연은 관객을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경지로 이끌어 가면서 관객을 완전히 연극에 몰입시킨다.

3막 1장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다”는 무대 아래 객석 가까이에서 시작되고, 극중극 장면은 출연자들이 1인 2역으로 배우 역을 하는 것으로 처리되고, 숙부의 고뇌와 후회의 대사는 배경 가까이에서 햄릿이 칼 대신 권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연출되고, 햄릿이 모친 거트루드 왕비와 하는 대사를 엿듣는 폴로니어스를 살해하는 장면은, 투명 가리개 뒤에 숨은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총을 쏘아 쓰러뜨린다는 설정이다. 오필리어의 죽음은 무대전면 객석가까이 조성된 물웅덩이를 사용하고, 대단원에서의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장면은 세이버(saber) 검으로 이뤄진다. 종장은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절규하는 듯한, 노래로 막을 닫으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가 안무와 부왕망령,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이 오필리어의 영혼과 바울가수, 황성현이 햄릿, 옥자연이 오필리어, 이 경이 거트루드, 이재훤이 클로디어스와 광대, 김충근이 폴로니어스와 광대, 이미숙이 무덤지기와 광대, 박신운이 호레이쇼와 광대, 백유진이 레어티즈와 광대 역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객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안무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 김지윤, 의상디자인 장혜숙, 무대디자인 임 민, 조명디자인 박성희, 분장디자인 백경탁, 무대감독 강 남 강경호, 음향감독 안창용, 영상감독 김 민, 조연출 고해종 김연주 문지영 조성우, 번역 고해종 전미향, 제작감독 박연옥, 제작자문 김지영 이수연, 기획총괄 용소정, 프로덕션 매니저 노은영, 홍보 마케팅 박소연 김민정, 그래픽디자인 이명우, 웹디자인 변영표, 사진 한세영 Amit Kumar, 조명보 문동민, 조명진행 정석영, 음향진행 이솔이 지민영, 의상제작 한보경 이원영, 영상진행 최문혁, 악사 한수진의 비파연주 둥 제작진의 열정과 기량이 일치되어, 극단 서울공장과 인도 InKo Centre 공동주최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임형택 각색 연출의 <햄릿 아바따(Avattar)>를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한 편의 명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9, 공연제작센터의 이상례 작, 윤광진 연출의 <그림자 아이>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제작센터의 이상례 작, 윤관진 연출의 <그림자 아이>를 관람했다.

이상례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하고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가다. 현재 EBS 방송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림자 아이>는 아이를 낳지 못한 한 가족의 입양에 관한 연극이다.

무대는 한 집의 거실이다. 객석에서 보면 입체로 된 긴 사각의 목조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의 조형물이다. 마루와 천정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거실로 들어가는 문과 창문, 그리고 정면의 출입문까지 완벽에 가깝다. 실내에는 의자가 두 개 놓여있다.

무엇엔가 쫓기듯 늘 상 커다란 가죽가방을 끌어안고 다니는 남편, 결혼한 지 이십 여 년 가까이 되었건만 아이를 갖지 못한 아내, 황후마마보다도 더 근엄해 뵈는 시어머니, 부인의 손에 쥐어 살지만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는 큰 소리를 치는 시아버지, 이러한 네 사람이 한 가족이지만 대를 이을 후손이 없을 뿐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으로 설정되었다.

부부는 40대가 넘도록 아기를 낳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 해보았으나, 소용없는 노릇이 되었고, 노인부부는 차선책으로 갓 태어난 아들을 입양시키기를 바라지만 내색을 꺼린다. 남편은 아이를 입양시키기로 결심하고, 입양할 아이를 선별하는데, 나이나 성별을 문제 삼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세 살 미만의 사내아이를 원한다. 아내는 입양자체를 꺼린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임신이 아니 되는 대부분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기에, 이 집에서도 아내 탓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아내는 늘 죄를 짓고 사는 느낌으로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어느 날 이집에 고아원 연합 본부의 종사자가 소녀를 데리고 방문한다. 소녀의 이름은 은차다. 남편이 고아원 연합 본부에 신청을 했지만, 원래는 사내아이로 신청을 했기에 직원에게 항의를 하지만, 소녀는 무의식중에 아내에게 다가가 친근함을 나타내고 가까워진다. 노인부부는 갓 난 남자아이가 아닌데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소녀를, 입양아로 당치 않다며,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고,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그러나 젊은 내외 쪽에서는, 남편보다도 아내 쪽에서, 입양하자는 소리만 들어도 맹렬히 반대의사를 표해 왔음에도, 아내는 소녀를 보자마자 정감을 드러낸다. 소녀 역시 아내를 따른다.

고아원 연합 본부 직원이 양자대면시간이 지났다며, 가족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소녀를 데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장한다.

가족에게는 가족이라는 물웅덩이에 커다란 돌을 던진 듯한, 파문이 인다. 노인부부는 삼년이 아니 된 아들이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소녀가 남기고 간 자취는 쉽게 잊혀 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젊은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는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느끼고 집을 나간다. 남편은 아내를 부르며 뒤따라 나간다. 집에는 노인부부만 남아 애써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자식내외가 나간 집은 더욱 썰렁해 뵐 따름이다.

가출한 아내의 소식을 모른 채 아들이 되돌아온다. 여전히 가죽가방을 꼭 끌어안고… 아버지가 가방을 빼앗아 들여다본다.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가방이다. 노인은 빈 가방을 왜 꼭 끌어안고 다니느냐며 역정을 낸다. 아들은 입양아를 담아올 가방이라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때 뉴스에서 젊은 여인이 하수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나온다. 노인부부와 아들은 그 소식에 전전긍긍한다. 걱정이 태산만해질 무렵, 얼굴에 상처를 입은 며느리가 수척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모두 놀라며 가까이 다가간다. 그 때 다시 고아원 연합 본부 직원이 소녀를 데리고 나타난다. 가족이 반가워하는 모습은 다시 이를 것도 없다. 그런데 직원은 소녀가 다른 나라로 입양하기로 결정되었다며, 대신 세 살 박이 남자아이가 있노라고 설명한다. 노인부부는 대찬성이지만, 며느리는 소녀에게 한 번 든 정을 떨쳐버릴 수 없음을 실토한다. 노인부부가 소년입양을 찬성하자, 소녀는 소년이 세 살인데도 말을 못한다고 알려준다. 노인은 벙어리가 틀림없다며, 소년의 입양도 거부한다. 그러자 소녀는 차츰 말을 가르치면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아내는 그 말에 공감을 한다. 그러자 직원이 그 소년도 입양결정 소식이 왔노라며, 가족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소녀와 함께 나가려고 한다. 그 때 남편이 직원에게 한마디 한다. 둘 다 입양을 하겠노라고, 둘 다 입양을 하는 경우에는 외국으로 입양시키는 것에 우선한다는 말을 하며… 직원도 역시 둘 다 입양을 시키는 경우에는 모든 입양보다 선순위임을 강조한다. 노부부는 물론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만, 어찌 자식의 의사를 꺾을 수 있으랴?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실감 나듯이… 결국 아들내외의 2인 입양의사 결심과 함께 연극은 마무리를 짓는다.

아버지로 홍원기, 어머니로 길해연, 아들로 서상원, 아내로 황연희, 고아원 연합본부 직원으로 한규원, 소녀로 박은채가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폭소와 눈물의 바다로 이끌어 간다.

조연출 정성훈, 드라마투르크 최영주, 움직임지도 양승희, 소리지도 류 미, 무대감독 김성현, 무대디자인 오태훈, 무대작화 김성훈, 의상디자인 정경희, 조명디자인 노명준, 음향디자인 정혜수, 분장디자인 신주연, 소품디자인 최숙경, 포스터그림 김민기, 홍보물디자인 윤여훈, 시진촬영 이지락, 기획 허정이·주정윤 등 제작진의 노력과 열정이 하나가 되어, 공연제작센터의 이상례 작, 윤광진 연출의 <그림자 아이>를 작가의 창의력과 연출가의 탁월한 기량이 감지되는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 동숭교회 문화부 믿음선교단 유리바다 성극단의 엘리자베스 베리힐 작 김상화 역 최종률 각색·연출의 <전율의 잔>

 

엘림홀에서 동숭교회 문화선교팀의 엘리자베스 베리힐(Elizabeth Berryhil) 원작, 김상화 역, 최종률 각색·연출의 <전율의 잔(The cup of trebling)>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나치독일의 히틀러와 동시대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일대기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1906년 2월 4일, 아버지 카를 본회퍼와 파울라 본회퍼 사이에서 여덟 남매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귀족 출신으로 온 가족이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심지어는 토요일이면 가족 음악회가 열릴 정도였다. 루터교 집안으로 어렸을 때부터 신앙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랐다.

본회퍼는 여행 또한 좋아했고 시를 쓰는 등 문학적 재질도 그의 책이나 서신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어머니 파울라 본회퍼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에 불과하다며 그런 게 바로 ‘싸구려 은혜’라고 가르쳤다. 후에 본회퍼가 ‘싸구려 은혜’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튀빙겐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베를린대학교 졸업 때 ‘성도의 교제’란 졸업 논문으로 신정통주의의 거장 카를 바르트까지도 감탄하게 만든다. 25세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보다 먼저 베를린대학의 신학부 강사로 임명을 받는다. 미국으로 건너가 유니언신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하는데 미국의 자유주의신학을 가치 있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서서히 나치의 독재와 국가사회주의에 항거하는 행동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설교와 강연, 방송 연설을 통하여 독일의 제국교회가 침묵하거나, 히틀러에게 손뼉을 칠 때, 히틀러의 부당함을 말하다 제지당하기도 한다.

제국교회가 히틀러를 하느님께서 보내신 권력자로 이해하고 있을 때 이에 반대하는 고백교회가 태동하게 되는데, 본회퍼는 그 주요 멤버가 된다. 결국 그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1943년 4월 체포되어 수형 생활을 하다가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진다.

본회퍼는 많은 여행을 통하여 견문을 넓히고 학술적 의의를 갖기도 하지만, 로마를 여행할 때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씨름을 하는 등 그의 신학적 사고와 신앙적 삶에 보탬이 되는 여로였다. 본회퍼의 교회론은 한마디로, ‘보편적 교회’, ‘개방적 교회’다.

“교회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독일이나 로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민족적 정체성이나 혈통에 제한을 받을 수 없다. 히틀러의 민족주의나 제국교회(당시 독일의 개신교)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교회론 때문이다. 교회론은 개방적이지만, 그의 신학은 자유주의보다는 정통주의에 가깝다. .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싸구려 은혜’는 철저히 배척한다. 본회퍼는 ‘싸구려 은혜’로 살 수는 없었던 사람이다. 그의 신앙은 성경적이고 실천적이며 신앙과 삶이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는 신앙과 신학과 삶이 일치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제국교회처럼 극악한 히틀러에게 충성 맹세를 할 수 없었던 것이요, 분연히 일어나 악과 대항했던 것이다.

본회퍼는 실제로 목회를 했고 신학자로 배우고 가르쳤다. 사상가로 독일 국민에게 악의 실체를 알리는 데 힘을 다했고, 운동가로 몸으로 자신의 사상을 실천했다. 무엇보다 한 신앙인으로 신앙과 삶을 일치시킨 참제자다. 2,000여 년 전 유대 땅에 예수가 있었다면, 100여 년 전 독일에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대에 남에 의해 생이 마감되는 것도 예수생애와 흡사하다.

예수께서 당시 대제사장, 바리새인, 율법사들의 비뚤어진 신앙에 수술칼을 들이대었듯,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라며 제국교회를 호되게 나무랐던 본회퍼. 당시 나치의 국가사회주의와 야합했던 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예수와 나치가 함께할 수 없음을 부르짖었던 본회퍼다.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라는 종교는 결국 유대인 등 이방 민족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한다. 무려 6백 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하지만, 일부 신부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교황 비오 12세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본회퍼는 고백교회라는 참 교회를 탄생시킨다. 동조하는 목사들과 함께 히틀러를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교회가 극악한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려 한다. 고백을 넘어 악을 제거하는 적극적 행동가로 활동한다. 그로 인하여 결국 게슈타포에게 체포되고 나치에 의해 처형되기까지, 그는 신앙과 신학과 삶은 이렇게 일치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떠난다. 예수의 산상수훈을 묵상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 낸 사람, 그가 바로 본회퍼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에 2중의 단을 만들었다. 바닥의 단은 한자 높이이고, 중간의 단은 여덟 자 높이다. 단의 양쪽에 계단이 있어 오르내리게 되어있다. 중앙에 등퇴장 로가 있고, 무대 좌우에도 등 퇴장 로가 있다. 배경에는 영상으로 2차 세계대전 영상과 아우슈비츠에서의 유태인 집단학살 영상이 투사되고, 극의 전개에 따른 훈련, 행동, 고난, 죽음 등의 장면변화를 각 장면의 도입에 문자영상을 투사해 알린다. 그리고 여자 방송보도자가 중간 단에 출연해 시대적 상황과 주요 인물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대부분의 출연자가 각자 맡은 등장인물 역을 하지만, 그 중에는 1인 2역이나, 3역을 하기도 한다.

본회퍼가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은 바닥 단에서 중간 단으로 올라가 암흑 속으로 사라지도록 연출된다.

 

정선일이 본회퍼, 최선자가 유대인 노파, 우상민과 변은영이 본회퍼의 어머니, 박재련이 신학교수, 강성호가 아버지와 교황 그 외의 역, 김민정이 본회퍼의 누이, 김동석이 본회퍼의 교우였다가 변해버린 적대자, 한형섭이 요한, 송승용이 본회퍼의 아우, 문기영이 여교수, 이은미가 방송보도자, 변선옥이 독일여인, 조유현이 게슈타포, 정재우가 게슈타포, 이건영이 독일병사로 출연해 출연자 전원의 열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2014 종교개혁 기념주일 기획공연으로 마련한 동숭교회 문화부(담임목사 서정오)가 주최하고, 동숭교회 믿음선교단과 유리바다 성극단이 제작하고, 탤런트 기독신우회가 후원한 엘리자베스 베리힐(Elizabeth Berryhil) 원작, 김상화 역, 최종률 각색·연출의 <전율의 잔(The cup of trebling)>을 기억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11, 경기도립극단의 이양구 작, 고선웅 연출, 남궁련 협력연출의 <매화리극장>

 

수원시 경기도 문화의 전당 아늑한 소극장에서 경기도립극단의 이양구 작, 고선웅 연출, 남궁련 협력연출의 <매화리극장>을 관람했다.

 

이양구는 영월출생으로 법대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극단 해인의 대표 및 연출가로서 연극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대 연극학과, 신흥대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강의도 맡고 있다. <일곱집매> <핼리혜성> 그 외 작품으로 창의력을 인정받고, 앞날이 기대되는 작가 겸 연출가다.

 

<매화리극장>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자락, 매화나무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 지역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그 지역 원래 거주 인들을 강제로 철거시키고, 아파트 단지가 완성되자 매화나무 있는 마을이라고 <매화리 소극장>이라는 공연장까지 건립했는데, 그런데 소극장이 거의 완공될 무렵 산사태가 발생해 아파트단지를 덮어버리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는 설정이다.

 

근래 급작스런 폭우로 서초구에 있는 우면 산의 산사태로, 주거지역까지 흙더미가 밀어닥치고, 자칫하면 우면산자락의 예술의 전당까지 피해를 입힐 번한 자연재해가 상기되는 연극이다.

무대 중앙에 일 미터 높이와 사방 십 여 미터 넓이의 무대가 만들어 지고, 무대 밑에는 사람이 기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천정에서 조명기구를 매 달았던 철제 파이프가 늘어뜨려져 있고, 접는 철제 사다리를 걸쳐놓고 조명작업을 하도록 해 놓았다. 객석 꼭대기로부터 출연자들이 등장해 무대로 내려오도록 연출을 하고, 무대 좌우에도 등퇴장 로가 있다.

 

<매화리극장>에서 연출가와 배우들의 연극연습 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한 병사가 휴가로 자신이 관계하던 극장으로 돌아와 조명감독에게 인사를 하면서 극장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될 무렵, 엄청난 뇌성벽력과 함께 산사태가 발생하고, 신축아파트단지가 4층까지 매몰된다는 설정이다. <매화리극장>은 주민들의 대피소가 되고, 부모나 형제자매의 참화와 비보를 접한 혈육이나 친지들이 붕괴현장으로 찾아온다. 재해를 당한 인물과 그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연극인들이 <매화리극장> 무대에 한꺼번에 등장한다. 거기에 시신 발굴 작업과 시신을 단가에 싣고 무대 전면에 차례로 늘어놓기까지 한다. 심각한 극적상황과 연극 연습하는 과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제대로 된 한편의 비극이 탄생하는 듯싶다.

 

50년 전 필자가 대학시절에 연출했단 “윌리엄 사로이언”의 <혈거부족>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용은 전쟁의 참화로 갈 곳이 없는 인물들이 폐건물이 된 낡은 극장으로 모여든다. 과거 화려한 명성을 자랑했던 원로 남녀배우와 챔피언이었던 권투선수, 그리고 철거반원의 건물폭파 음에 놀란 소녀가 극장으로 피신해 들어오면서 연극이 시작된다. 원로 배우는 걸인처럼 구걸행각을 다니고, 구걸해 온 것을 나누어 먹고 배가 부르면 화려했던 시절의 명장면을 낡은 극장무대에서 재현한다. 권투선수는 선수시절의 명 시합장면을 회상하고, 후반부에는 서커스단을 이끌던 부부까지 이 극장에 합류한다. 대단원에서 결국 철거반원들에 의해 모두 쫓겨나, 새로운 극장을 찾아 떠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매화리극장>에서 연극인들과 건물붕괴로 참화를 당한 사람들, 그리고 목숨을 잃은 사람, 붕괴된 현장을 정리하는 사람, 그리고 이 지역의 지주라는 여인, 휴가병, 조명기사, 나이든 어머니,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극적으로 정리하는 연출가가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대단원에서 배우와 스텝 진, 그리고 붕괴된 아파트단지 거주자와 관련자, 그리고 사망한 사람들까지 탱고 음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윤재웅, 장정선, 이충우, 강상규, 정헌호, 한범희, 박현숙, 강아림, 김길찬, 서창호, 임미정, 윤성봉, 노민혁, 연보라, 이애린, 채윤희 등 출연자 모두의 열연이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무대디자인 정 영, 의상디자인 오수현, 조명디자인 최보윤, 음악 김태규, 무대제작 스테이지 원, 조명팀 이명진·윤의선·최인수·관태준, 의상팀 고현지·메리엘, 음향팀 권영호, 무대감독 김영기, 조명감독 박용환, 음향감독 정주현, 기계감독 서동권, 제작PD 이수민, 기획 정희섭·이서현 등 제작진의 열정이 합하여, 경기도립극단의 이양구 작, 고선웅 연출, 남궁련 협력연출의 <매화리극장>을 성공작으로 탄생시켰다.

 

10월 11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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