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연극 연출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우상전

               한국에서 연극 연출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우 상전(연극배우)

 

나는 우리의 연출가들에게 불만이 많은 대한민국배우들 중에 한사람일 것이다. 극작가는 있지만 한국에 연출가가 있느냐고 떠드는 사람도 나고, 국립극단 예술감독에 외국연출가를 영입하라고 외치는 사람도 나다. 그만큼 나는 우리 연출가들에게 불만이 많다.

예전에 러시아 연출가 레프 도진이 처음 ‘LG아트센터’에 왔을 때, 우리 연극인들과의 만남의 자리 면전에서 “나는 배우인데, 내 경험으로 대개의 연출가들이 독재자인 경우가 많다. 혹시 당신도 독재자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연출가의 직능’에 대한 세계적 연출가의 특별한 대답을 원한 것이었는데, 순간 그가 너무 긴장을 해 자기 스태프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내가 독재자인가?” 그러자 일동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결과적으로 내가 꺼낸 화두(?)가 재미없게 되어버린 경험이 있다. 솔직히 연극연출가가 독재자가 되기는 너무나 쉬운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건 연극에서의 연출의 ‘기능’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연출가란 대부분이 ‘극단 대표’로서, 또 제작자이자, 대학교수를 겸하고 있는 최고의 ‘지배계급’(?)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한국연극은 그들의 ‘리더십’을 통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한국연극은 연출가들이 제대로 기능을 못해 처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막강한 권력(?)으로 인해서 누구 한사람 나서서 그들을 비판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좌우간 나는 한국연출가들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그 불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자칫 인격모독이 되기 쉽다는 생각에, 요사이 공연된 외국연출가들에 의한 연극과의 비교를 통해서 우리 연출가들의 현주소를 한번 들여다보기로 하자.

 

웬 ‘도제타령’?

 

‘한국연극’ 9월호 ‘한국연극 연출자를 위한 정책 제안’을 읽어보면, 대다수가 한가롭게 ‘도제타령’만 늘어놓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교보문고에 가면 (많지는 않아도) ‘세계연출가들의 열전’에 관한 서적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동시대 연출가론’(최영주 외) ‘현대 러시아 연극연출가론’(전정옥) 등이 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책만 (읽지 않고) 들춰보아도 현대연극에서 성공적인 연출가가 되기 위한 DNA가 무엇인가 정도는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연극인들은 어째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한 발언만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연출가의 기능이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예술가로서의 공헌도보다는 신인연출가들의 ‘작업 태도’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대연극에서 연출가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하고, 한국연극의 부진에 대한 책임이 바로 한국연출가들의 부실함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대학을 마치자마자 자기들끼리 자금을 모아서 바로 현장에 연출자로 데뷔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봤습니다. 또래들끼리의 연극작업은 그 작품의 깊이와 폭, 너비 등에서 그다지 의미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워할 게 무엇인가? 스스로 도태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는 한국연극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지. 지원금만 받으면 도태도 은퇴도 없이 누구나 연명이 가능한 시스템 – 그래서 재능이 없는 사람이 평생을 비비고 있기에 안성맞춤인 한국연극의 환경이 더 문제 아닐까?

“또 젊은 연출가들이 현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경험하고 다양한 시행착오 등을 겪으며 성장의 과정을 즐겨봤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적으로나 인간적으로도 깊이와 폭을 넓혀간다는 것은 좋은 작품,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위해서는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한번 묻고 싶다. 도대체 연출가들 중에 몇 사람이나 깊이와 폭, 너비에서 만족할 만한 작업을 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극단에 들어가 조연출이나 조연출보 또는 연구생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체계적인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게 좋았어요.”

그래, 체계적으로 배운 게 많아서 ‘내용전달’도 안 되는 연극이 태반이고, 연출가의 희곡 ‘독해력’을 의심할 공연이 부지기수란 말인가?

“젊은 연출가들의 경우엔 작가가 연습실에 나타나는 걸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다 만들어놓고 더 이상 개입할 수 없을 정도가 됐을 때 불러서 보여주곤 의견을 묻는 식이죠.” 이건 연출을 하지 못하는 극작가들의 메아리 없는 넋두리일 뿐이다.

“졸업과 동시에 연출로서 활동을 하면, 독재자가 되더라고요. 이미 연출님, 연출님 하고 대접을 받아 버릇하니까 다른 사람 말을 안 듣는 거죠. 안 듣는 게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거죠.”

“젊은 연출자가 직접 쓰고 연출하는 작품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난상토론을 했지만 대본 수정은 끝내 없었어요. 작가가 전혀 (자기의 의견을)반영하지 않더라고요. 다른 작가의 작품일 경우 찢어발기던 연출인데 말이죠. 심지어 런닝타임이 긴데도 잘라내지 않아요.

해서 부디 젊은 연출가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네요. 겸손과 존중의 마음으로 연극과 연극인을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생 그렇게 짧지 않으니, 긴 호흡으로 임해주시길.” 이게 극작가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한국연극의 작, 연출을 겸하는 고질적 병폐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원래 연출가의 기능은 타인과의 타협이 불가능한 ‘독재’가 본류일 수밖에 없다. 연출작업의 특성이 독창성, 개성적일 수밖에 없어 그렇다. 그래서 연출가의 작업에는 반드시 그의 작업을 공인해줄 ‘관객’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관객이 없이 지원금만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니 배타성이 강한 외고집을 통제할 길이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따라서 배우가 잘못하면 ‘배역’만 버리지만, 연출자가 잘못하면 공연 전체가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게 연극의 현실이다. 왜? 영화감독처럼 관객에 의한 퇴출이 없으니 말이다.

국립극단에 있을 때 일이다. 외부에서 불려온 연출가가 캐스팅을 할 때면, 배역 명단을 들고, 사무실 골방에서 백성희, 장민호 선생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재가를 받기 위해 “전하. 윤허하여 주시옵서소!” 연발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윤허’를 받지 못하면 캐스팅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자기 소신으로 캐스팅도 못하는 연출가가 하나 둘이 아닌 현실이 외려 우리의 심각한 문제일 뿐이다.

왜 그럴까? 대다수의 연출가들이 연출로서의 ‘자기세계’(독창성)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감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정이니, 국립극단이 연출할 기회를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황공무지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배울 게 있다고 ‘도제타령’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되레 후배들의 ‘돌출행동적 독자적인 작업’이 너무나 부족한 것을 탓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신인연출가’를 키울 것인가?

 

이동준 정책위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어디서 조연출로서 연출을 배울 수 있다고? 그것이 연출가로서 성장하는 큰 흐름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현재 연출가들이 연극계에 제몫을 다하고 있느냐. 그 기능을 제대로 해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신진이 잘못됐다는 것이 연극계의 대세는 아니라는 겁니다. 지휘자 정명훈처럼 20억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연출가들을 사회적으로 배출해내야 된다는 겁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용을은 토론에서 ‘귀가 번쩍 뜨일’ 말을 하고 있다. “방송에서 연출자로 입봉하려면 최소 5~6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립니다. 하지만 한번 해서 시청률이 안 나오면 바로 아웃입니다.

그러니 한 작품을 목숨을 걸고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과연 우리의 연극 작업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있느냐 하면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는 더 하죠.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신진연출가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또한 한번 실수하면 재기하기가 정말 간단치 않은 곳이 영화계이지요.

현장에서의 농밀한 체험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 그리고 곰삭은 경험 등은 장르불문 연출자가 시간을 두고 쌓아가야 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데 요즘엔 연극을 너무 쉽게들 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성도 좋지만, 결국 연극은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생명력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솔직히 (다른 장르와 달리) 한국연극에서는 아무리 연출가의 ‘은퇴’나 ‘퇴출’을 외쳐보아도 무용한 일이다. 그렇다면 되레 이를 우리의 ‘강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요사이 ‘창조경제’가 뜨면서 “젊은이가 한번 실패했다고 퇴출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이스라엘은 한국처럼 젊은이들이 한번 실패했다고 매몰차게 대하지 않고 다시금 기회를 준다.” 물론 요사이 대세인 ‘벤처’ 때문에 나온 경구(警句)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차피 은퇴도 퇴출도 불가능한데, 이를 우리의 강점으로 바꾸는 정책을 펴는 게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적 상상력’이 뛰어난 또라이(?)에게 ‘미래가 솟아나기’를 기대하며, 신인연출가들에게 지원금을 대폭 쏟아 붓는 지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어떨지?

 

‘스타 연출가’가 필요한 이유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문예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개칭되면서 아르코예술극장을 ‘대관극장’이 아닌 ‘기획제작극장’으로의 변신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저 단체들에게 ‘대관’만 해주고 있을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좋은 희곡(공연)을 골라 직접 제작해서 무대에 올리는 제작극장으로 변신해 운영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최고라고 추앙받던 연출가들을 불러 그들의 공연으로 무대를 꾸몄다. 처음에 두 작품으로 시도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모르고) 객기(?) 넘치게 초대권을 없애고 유료관객만으로 객석을 채우려 들었다. 결과는 그 커다란 극장에 회당 유료관객이 20명을 넘지 못해, 얼마 후 눈물을 머금고 다시금 ‘대관극장’으로 전환해버리고 막을 내렸다.

그리고는 현재는 ‘무용전용극장’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명동예술극장이 문을 닫지 않는 게 신통할 뿐이다.

우리말에 ‘방안퉁수’라는 게 있다. 즉 집안에서는 소리를 잘 내는 퉁소가 밖에 나가면 소리를 못 낸다는 뜻이다. 이게 한국연극의 연출가들의 모습 아닐까?

평론가와 매스컴이 합세해서 대단한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막상 일반 관객을 상대로 공연을 하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방안퉁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명동예술극장에 와서 ‘반신’을 연출한 ‘노다 히데키’만 해도, 그가 현재 도쿄예술극장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데, 그런 그가 연출을 한다고 예고를 하면 일본에서는 이미 6개월 전에 예매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립극단의 무대를 자기 자신이 직접 연출을 해서 객석을 채울 자신이 있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도, 정부에서 주는 예산을 집행해서 국립극단을 운영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하는 연출가는 넘쳐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이는 한국연극에는 제대로 된 공연을 제작할 ‘연출가’가 부재함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객석을 채울 ‘스타’ 연출가가 부재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연출가들은 평론가들을 위해서만 ‘퉁소를 부는’ 연주자라고 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내가 머물던 옛 국립극단도 초대권을 마구 뿌려 객석을 채우고, 그나마도 해오름은 관객을 모으기 힘들어, 일 년에 총 15일 이상 공연하기도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한국의 연출가들이야말로 80석짜리 지하소극장에서 ‘소꼽장난’을 하기에 딱 알맞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절대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중견 연극인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도제 운운’하며 후배들 닦달을 하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질 뿐이다.

그럼 어째서 이런 현상이 신극 100년이 넘은 역사에서 지속되고 있는가를 나의 ‘눈높이’로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요사이 공연된 외국연출가들에 의한 공연을 통해서, 또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영국 NT(국립극단)의 ‘리어왕’과 ‘코리올라누수’

 

올해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 해서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들이 전반기에 많이 공연되었다. 그런데 내가 본 우리의 셰익스피어 공연들은 (한마디로) 내용전달도 제대로 안 되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공연을 자그마치 3시간씩 해대는데 – 나름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인데도, 정말 보다가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러던 차에 국립극장의 해오름에서 두 편의 ‘연극영화’ – 영국의 내셔널 씨어터(NT)가 자기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제작한 ‘리어왕’과 ‘코리올라누스’를 너무나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우선 영상이어서 영화처럼 ‘자막처리’가 가능해 내용전달에 전혀 어려움이 없이 더욱 좋았다. 놀라운 것은 긴 셰익스피어 극의 대사를 자막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축약했는데도, 셰익스피어 극의 진수를 충분히 맛볼 수 있도록 각색된 공연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둘째는 출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보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셋째는 ‘자막처리’로 셰익스피어야말로 너무나 유머와 조크가 뛰어난 작가라는 것을 ‘본토’의 공연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던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의 셰익스피어 극은 번역이 잘못 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유머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연출가들이 엉터리로 각색해서인지, 우리의 공연에서는 셰익스피어의 그런 언어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코리올라누스’를 관람할 때는 (극장 분위기를 모르고) 혼자서 얼마나 낄낄거렸던지 휴게시간이 끝나고 2부를 시작하려고 하자, 안내양이 내 자리까지 찾아와서 ‘웃지 말고 조용히 구경하라’는 주의를 주기도 했다. 연극에 종사한지 45년 만에 처음으로 맛보는 대 굴욕(?)이었다.

다행히 2부 시작하기 전에 영국연출가가 화면에 등장해서 (내용이 비극적인데도) 영국의 젊은 관객들이 농담에 낄낄거리며 반응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2부부터는 우리 관객들도 웃기 시작했다.

후에 들으니, 내가 본 그날의 오전 10시 공연은 주인공인 영국의 영화스타, ‘톰 히들스턴’의 한국광팬들(여성만으로 이루어진)의 아우성(?)으로 별도로 회차를 늘려, 이루어진 ‘특별공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이 공연은 ‘케이 팝이나 뮤지컬공연’ 이었던 셈이다. 나는 “아, 저급한 후진성이여!”를 외쳤지만, 솔직히 외국의 스타를 영상으로라도 보기 위해 아침 10시에 모인 ‘여성영화팬’(?)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현실’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유별난 광기(?)에 누구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 연극판은 그저 앉아서 ‘지원금 타령’ ‘도제타령’만 하고 있으니, 자괴감이 엄습해 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가 직접 무대에 출연하는 공연도 아니고,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대극장에서 자신들의 수호천사(?)가 나온다고 안내양에게 쫒아가 ‘조용히 구경하라’는 주의를 부탁하는, 이런 한국 여성관객들에게 어떻게 한국연극의 미래를 의지할 수 있을까 하는 암담함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넷째는 셰익스피어 공연을 할 때면 우리는 원작을 ‘찢어 발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해부를 서슴지 않는데, 왜 그들은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도 각색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셰익스피어 공연이 자기들에게는 ‘창작극’ 이어서 그런가?

‘코리올라누스’의 경우는 줄거리를 전혀 모른 채 관람을 했는데도 감동의 눈물을 마냥 흘리고 극장 문을 나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왜 우리의 셰익스피어 공연은 내용을 다 아는 레퍼토리로 꾸며지고 있는데도, 내용전달도 안 되고 감동도 전달 받지 못한 채 극장 문을 나서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왜 우리는 어렵게(?) 각색을 하는 것인가?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관객들 (관람 경험이 적어) 관극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고, 무엇보다 연극을 관람하는 횟수가 일천한 한국에서, 연출가들이 그나마 힘들게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어째서 이해하기 힘들게 각색, 번안을 해서 고통(?)을 주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신의 유식함을 뽐내기 위함인가, 아니면 ‘실험극’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셰익스피어 할아버지’를 쪼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쓴소리’를 하자면) 먼저 우리 연출가들이 결국 셰익스피어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독해력’ 부족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자신들이 대단한 ‘지식인’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코리올라누스’를 보면서 느낀 점은, 꼭 거창한 극장에서 어마어마한 무대장치를 하지 않고도 배우들의 연기력과 연출력으로 충분히 성공적인 공연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연만 해도 런던의 버려진 초라한 바나나 숙성창고에서의 공연이었다. 따라서 구태여 연출가가 무대장치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공간구조였다. 하지만 대신에 뛰어난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성 MC가 화면에 나와서 첫날부터 젊은 관객들로 매회 매진을 기록했는데, 이는  ‘톰 히들스턴’이라는 스타 때문이 아닌가 하면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영국의 NT연극도 주인공의 인간적 고뇌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신파’(?)로 극을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국도 서슴없이 ‘신파’를 하는 구나!”였다.

공연을 본 연출가 양정웅도 로비에서 “결국 셰익스피어 공연은 ‘해석’에 있군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각색’의 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연출되고 있었다.

즉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대적 해석과 접근으로 친숙함과 공감을 주는 그들의 셰익스피어 조리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런던에 가서 공연하는 한국공연을 영국인들이 접하면 ‘세익스피어를 능멸하고 있네!’ 하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호황’인 런던의 공연장들

 

얼마 전 연합뉴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 런던의 공연장이 ‘초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런던극장협회와 영국NT가 합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2~13년 공연시즌, 런던의 극장을 찾은 관객은 1년 전보다 늘어난 2천2백만 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이는 박지성이 뛰던 잉글랜드 프로축구인 ‘프리미어리그’의 관중 수보다 많은 수치라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년도에 비해 평균 티켓 가격이 3.7% 하락했는데도 공연관람수입은 우리 돈으로 1조7천7백억 원으로, 런던에 위치한 영화관들의 관람 수입을 능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런던 극장가가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인기 뮤지컬인 ‘라이언 킹’과 ‘빌리 엘리엇’ 등이 있는데, 이런 영국 웨스트엔드의 공연이 미국 브로드웨이 보다 관람 수입에서 20%를 더 앞섰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런던에는 30석 규모의 작은 극장부터 1천500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까지 11만개의 관객 수용능력을 갖춘 241개의 공연 전문극장이 있으며, 3천여 명의 배우와 6천5백여 명의 스태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호황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보조금 삭감에 따른 재정 불안이 여전하며 공연장의 노후화, 대형 공연장으로의 배우 및 관객 편중, 공연장의 도심 밀집현상 등의 문제점이 있음도 전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상상이 불가능한 공연현실이다. 이런 현실이니 아무리 ‘셰익스피어 공연’이라고 해도 런던에서 생존하려면 우리처럼 ‘재미없는’ 공연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아무리 재미가 없는 연극을 만들어 관객들이 외면해도 평론가나 지원금 심사자에게만 잘 보이면 그만이다. 따라서 ‘어렵게’ 만들어 수준이 높은 연극처럼 위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연출가들이 당연히 관객들을 위한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들지 않고, 잔뜩 ‘겉치레’만 하려고 드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SPAF개막작 ‘노란벽지’와 독일연극

 

올해 SPAF의 개막작인 독일 베를린의 샤우뷔네 극단의 ‘노란벽지’의 공연에서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프로그램의 이런 글귀들일 것이다.

‘노란벽지’의 연출가가 영국출신이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아주 색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이즈음 영국 연극문화의 상업주의가 미첼 같은 (영국출신의 연출가) 연출가를 유럽에 빼앗겼다는 아쉬움과 한탄의 소리도 들려온다. 물론 이건 유럽연극을 선호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영웅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대중의 흥미를 조금이라고 부추기기만 한다면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의 넘쳐나는 관객이 줄을 서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베를린의 샤우뷔네에서 활동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첼의 실험은 완고하며 타협이 없다. 대신 새로운 실험을 지지하는 유럽의 관객이 그녀를 찾는 중이다’”는 구절도 보인다.

이런 글들이 영국과 독일의 연극 분위가가 다르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이런 문장들이 강한 의문과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게 사실이다.

좌우간 이런 분위기를 알게 해주는 ‘글귀’는 너무나 많이 눈에 띤다. ‘그가 영국인이고 영국(로얄 셰익스피어와 NT극단)에서 잔뼈가 굵은 연출가지만, 그가 셰익스피어 공연에서는 그녀의 경력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제는 독일 베를린의 샤우뷔네와의 협업을 통해서 ‘유럽의 포스트 아방가르드 계열의 연출가’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유럽 스타일’ 연출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럽적인 영국연출가’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불리는 것은 ‘그가 영국의 고전보다는 체호프, 스트린드베리히, 쥬네와 그리스 비극 등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가 희곡 작품을 존중하는) 영국의 주류 연극 문화에 속해 있으면서도, 망설임 없이 고전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변형시켜 파괴자인가 창조자인가 하는 해묵은 논란이 아직도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런 말들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혹시 우리 연극인들의 기호가 영국보다는 독일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를 기화로 궁금해지는 것은

1. 그럼 우리 대한민국의 ‘연극 분위기’는 무엇일까?

2. 우리의 SPAF는 왜 매년 프랑스, 독일 등의 최첨단의 유럽연극을 개막작으로 선보이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 연극관객들 중에 베를린 샤우뷔네 극단의 팬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 관객들이 이런 유럽의 전위적인 실험극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흥행’을 위한 것도 아니면서 이런 류의 ‘첨단의 실험극을 매번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우리 연극계의 관행(?)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 주한 외국인을 위한 공연?

2. 연극인들을 위한 교육용?

3. 문화부나 서울문화재단 등의 후원체가 유럽연극을 선호해서?

4. 유럽연극을 선망하는 우리 평론가들에게 잘 보여 사후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5. 아니면 주최 측 인사들의 ‘연극적 수준’을 평가받기 위한 선정?

 

혹 실험극을 선호하지 않으면 앞서가는(?) 예술가로 대우받기 힘든 풍토에서 우리의 뿌리 깊은(?)’실험극 콤플렉스’가 작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니면 우리의 ‘문화식민지’ 근성이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영국연극의 ‘대중성’보다는 독일연극의 ‘엘리트주의’를 더 선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연출가들을 포함한 연극판의 ‘엘리트주의’가 ‘파격성’이나 ‘충격적’, 또는 생소함을 갖는 ‘실험연극’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솔직히 객석에서 관객이 흥미를 잃고 졸든 말든 상관없이 연극인들의 만족을 위해서 공연하는 게 한국연극의 ‘엘리트주의’의 전통이 아닌가!

전혀 전위나 실험을 소화할 지적능력도 없으면서, 또 현대예술의 난해성과 다양성을 소화할 처지에 이르지도 못하면서 예술가인 척, 또는 예술가로 대접받고자 하는 우리의 오랜 연극전통, 취향인 ‘엘리트주의’에 의한 ‘허세’ 또는 ‘자기만족’이 주된 요인은 아닐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어차피 한국 땅에서 연극을 ‘흥행’으로 연명할 것도 아니니 이럴 바에는 작품을 다룰 때 되도록 마냥 ‘비틀어대는’(?) 연극을 해서 주변을 놀래 키고픈 ‘숨은 내심’이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지적으로 보이고, 평론가들의 관심을 얻는 게 ‘한국연극판의 전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실험극’에 대한 이해

 

사실 이런 ‘실험극’을 하려면 보통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개막작 ‘노란벽지’를 연출한 케이티 미첼의 연출론에 대한 해설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사실주의에 심리학과 생물학을 결합한 ‘정서생물학’을 응용한 연기 방식을 한 손에 거머쥐고 또 다른 손에는 비디오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통해 실재의 견고함을 주장한다.”

“카메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서사 기법을 카메라 앵글로 쫓아 스크린에 투사함으로써 인물들의 심리와 심연을 관통한다. 이때 배우들이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영상과 함께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음향은 발자국 소리, 빵을 씹는 소리, 쥬스를 목으로 넘기는 소리 등의 효과를 연출하고, 무대 중앙의 연기 공간에 조명이 꺼지면서 관객은 세 개의 공간을 통해 영상과 음향, 목소리가 앙상블로 구축하는 퍼포먼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기술발전에 호응하여 시노그라피를 정교하게 연출하는 한편으로 연극이 ‘수공업’임을 강조하며 ‘배우의 신체표현을 강화하여 영적 세계와 소통하려는 시도’ 역시 이미지 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공연예술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그 외에도 ‘배우의 신체성에 대한 깨달음은 신경과학을 통해 발견한 배우의 정서적 신체에 대한 이해로 발전 한다’ 문구도 보이며, “자극과 의식이 발생하는 0.5초간의 순간의 반응을 확대하여 배우가 신체적 반응과 심리적 반응을 연습을 통해 습득하고 관객에게 그러한 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은 교보문고에 가면 케이티 미첼의 ‘연출가의 기술’(최영주 번역)이 있으니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의 ‘실험극’이 현대예술이 갖는 ‘난해성’을 어떻게 극복하고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인가 하는 것일 거다. 사실 베를린에 샤우뷔네 극단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런류의 연극을 봐주는 ‘독일관객’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베를린 관객들도 (현대미술의 관람객들처럼) 이렇게 투덜대면서 공연을 관람할지 알 수 없다. 지금 현대미술의 화가들이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이를 대하는 관객들은 여전히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미술관에 찾아 갔건만 당최 뭘 봤는지 알 수가 없다.”고 투덜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불만을 해소하려고 유럽 미술계가 현대미술을 이해시키기 위한 각종 저술을 지속적으로 줄기차게 발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긴 SPAF도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방대한(?)양의 해설로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는 것일 거다.

하지만 우리야말로 고작 ‘아이돌’공연에 만족하는 한국의 여성관객을 상대로 어떻게 이러한 연극의 ‘실험성’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실 연극을 ‘실험극’과 ‘상업극’으로 분류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대미술’의 분류에서 따온 아주 한국적인 연극용어 사용인 게 사실이다. 따라서 실험극을 위해서는 분명한 미학적 연출론이 존재해야 하고 이를 위한 연출적 논리가 저술이 가능할 정도로 정리되어 있어야 하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연극이 실험성을 성공시키려면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시각, 청각, 후각 등에 자극을 가하는 도전 정신과 ‘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가! 또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저 앉아서 ‘도제타령’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묻고 싶다.

일본연출가 노다 히데키의 ‘반신’

 

어쩌면 새로움을 추구하는 한국연출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일본의 전위극인 ‘앙그라 연극’일 것이다. (앙그라란 ‘언더그라운드’의 일본식 표기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반신’은 관심이 많이 가는 공연이었다.

실제로 한국의 내로라하는 연출가 치고 일본의 ‘앙그라 연극’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럼 어떤 이유로 일본의 ‘앙그라’연극이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일까?

아마 6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서양의 오리엔탈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서양의 히피문화가 동양의 신비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여기에 한국연극에는 두 가지 ‘결핍’이 존재한다. 우리는 일본과 달리 전통극이 극히 빈약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도 일본처럼 ‘번역극’이 아닌 ‘창작극’이 절대적으로 중요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극작가들이 활발하게 창작극을 생산해냈지만, 이를 전통적인(?) 사실주의가 아닌 무대화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른 연출기법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런 연출기법을 우리의 ‘전통극’에서 찾을 수 없게 되자 일본의 ‘앙그라’ 연출기법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 주된 요인일 거다.

특히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게 바로 ‘스즈키 다다시’의 연출기법이라는 게 통설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의 현대적 연출기법을 이해하려면 크게 영향을 끼친 일본의 현대연극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일본연극의 스타 연출가인 노다 히데키의 명동예술극장이 제작한 ‘반신’을 통해서 거론되고 있는 일본현대극의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의 현대연극이 과연 일본연극처럼 우리의 사회적 변화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현대 연출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0년대

“신 미일안보조약 채택을 계기로 확대된 반대시위는 나리타공항건설반대, 베트남전쟁반대, 70년대 미일안보조약 연장반대로 이어져, 대학분쟁까지 확대된 상황과 ‘소극장연극’의 시발과 ‘앙그라 연극’이 발호하기 시작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리얼리즘 연극의 틀에서 벗어나 언어, 배우의 육체를 정면으로 내세운 연극, 시공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함, 근대성을 부정한 토속성 등의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사회가 경제적으로 차차 안정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급속히 식어가고 성난 젊은이들이 활보하던 거리가 조용해지면서 앙그라연극의 시대도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70년대

그 다음이 “재일교포인 쓰카 고헤이(김봉웅)의 ‘뜨거운 바다’의 등장이다. ‘앙그라 연극’의 배우가 관객을 압도하는 이단자적인 존재였다면, 쓰카 연극의 등장인물들은 분명히 관객보다 못난 사람들이었고, 무대에서 땀 흘리는 젊은 배우들의 존재는 운동선수에 가까웠다. 쓰카 연극에는 스포츠를 관람하는 듯한 상쾌함과 감동, 그리고 웃음과 춤 등의 엔터테인멘트적인 요소가 가득했다.

그의 연극은 매회 매진되었고, 그의 공연장 앞에는 티켓 오픈 3일 전부터 줄을 서서 밤을 새는 팬들이 등장해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매스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출연자들이 너무나 ‘돈벼락’을 심히(?) 맞아 공연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우리 배우들에게 쓰카 고헤이가 고백한 적이 있다고 한다.

 

80년대

“노다 히데키를 필두로 고가미 쇼지의 극단 제3무대, 와타나베 에리코의 극단300, 여성만의 공동창작극단 아오이토리 등이 인기극단으로 부상해, 소극장 붐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

이 시기를 노다 히데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거운 것을 뚫고 나온 전 세대에 비해 우리 세대는 아무것도 짊어질 게 없다.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자각이 있었다. (중략) 그렇다면 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걸 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내 안에서 나온 게 언어의 유희였다. 주제나 사상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말장난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대본을 써 보자. 그걸 통해서 나의 펜 끝에서 나오는 장인적 글쓰기를 보여 주면 돼.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80년대에 가지게 된 생각이다. 취직이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자신의 꿈을 쫒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 연극을 하는 사람과 관객이 갑자기 늘어난 데에는 이런 시대적인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시카와 쥬리는 “노다 히데키의 ‘반신’이 창단 10주년으로 올림픽 체육관에서 올린 3부적 연속공연으로 하루 관객동원 총 2만 6천 명이라는 ‘소극장연극의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80년대 연극의 호황 뒤에는 연극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크게 작용됐다는 점이다.

첫째, 우선 음악, 영화, 연극, 미술 등을 누구나 쉽게 즐기는, 말하자면 문화예술의 산업화되는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첫째로 들 수 있다. 앞서가는 문화예술을 접하는 것이 젊은이의 패션의 일부와도 같아진 것이다.

둘째, 극장건설 붐이다.

셋째, 80년대에 일어난 문화정책 붐이다.

80년대의 거품경제와 함께 부풀어진 연극계에 대한 난색을 표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극도로 말을 아끼는 형식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시도해 온 오타 쇼고는 88년에 자신의 극단을 해산하면서

“지금 일본은 들떠있는 예능적인 문화만 치켜세우는 예술괴멸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게 재미있는가? 나는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인기 절정을 달리던 극단 내부에서도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때의 ‘유행’으로 연극이 소비당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생겨나고 있었다.

이런 현상에 노다 히데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연극은 일회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표현 형태로서 소비되는 운명을 타고났어요. 하지만 소비는 단 한번으로 사라져 버리는 덧없음 속에 아름다움이 있는 그런 소비지, ‘이제 낡았으니까 새것’ 그런 속된 의미의 낭비와는 차원이 다르죠.

그런데 그 당시 우리 극단은 후자의 낭비시장에 끌어들여질 것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고 그게 너무 싫었어요. 아무래도 창작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충동을 발화점 삼아 누구보다 먼저 발을 내디뎌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창작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기를 얻자마자 집단의 포지션으로 정하고, 창작을 고정화해서 상품으로 만들고 싶어 하죠. 그러다가 질리면 쉽게 버리고. 그런데 그런 소비문화에 휩쓸리면 안 되겠다고, 그 때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인기정상을 달리던 그가 자신의 극단을 갑자기 해산한 것은 92년의 일이었다.

 

90년대 이후

‘거품경제가 붕괴한 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연극이었다. 꿈을 좇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해야만 하는 시대가 오자, 환상을 무대 위에 펼쳐놓은 비일상적인 연극은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보다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공감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풍경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은 듯한 히라타 연극은 그런 시대의 기분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90년대 이후의 일본연극 전반의 특징은, 우선 기획사의 프로듀싱 시스템과 극장 자체의 기획제작공연이 늘어나 신극, 소극장연극, 상업연극 사이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해진 것이다. ‘신극’이나 ‘소극장연극’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극단에 대한 집단의식이 희박해졌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극단원이 작가, 연출가 한 명인 극단도 드물지 않기 때문에 공연마다 배우와 스태프를 외부에서 끌어들이며, 이런 형태를 ‘유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연극창작에 있어서 공공극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점도 큰 특징이다. 신국립극장, 세타가야퍼블릭씨어터, 노다 히데키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도쿄예술극장을 비롯, 자체 기획제작을 표방하는 공공극장들이 전국 곳곳에 개관됐다.

이들 극장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제공해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불황 속에서 젊은 연극인들은 주로 가난하고 무기력한 젊은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의 세계를 ‘탈진계’라고 불리는 흐느적거리는 신체성으로 표현해 왔지만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사회나 정치에 눈을 돌려 새로운 시각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노다 히데키의 ‘반신’은 내가 관람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왜? 너무나 일본적이었으며, 80년대의 일본연극의 난해성을 이해하기 힘들어서였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는 체계를 유지하는 일본연극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 평론가들은 공공극장의 발화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은 채, 아직도 입만 열면 80석 짜리 지하소극장의 몰락에 ‘궁상을 떨고’ 있을 뿐이다.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국연극인들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모든 점에서 일본연극과의 ‘격차’를 실감케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실험극’이 바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맥락과 일치하며 변화하고 있다는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일본연극의 진정한 내면보다는 겉모습(형식)에만 주목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극을 통해서 통일을, 북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한국연극, 그렇다고 연극이 우리의 정치와 경제의 현안을 들여다보고 비판하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그저 선거 때나 나서서 구원파의 ‘엄마, 아빠들’처럼 쫒아 다니면서 지지서명이나 하는 저급한 싸구려 정치이슈만 쫒고 있는 보잘것없는(?) 연극인이 아닌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연극’이 나아가야 할 길

 

요사이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진 3개국 공연에 대해, 내가 왜 길게 글을 쓰고 있는지를 조금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긴말이 필요 없다. 결국은 한국연극의 현실과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싶어서다.

지금 한국연극에서 ‘생존’보다 더 급박한 사안은 없을 것이다. 우선 이 엄청난 경쟁 장르 속에서 연극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우선 10월호 ‘한국연극’지의 토론만 보아도 ‘왜 지자체의 공연축제가 연극인들을 배제하고 공무원들이 차지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처지는 런던도, 베를린과도 다르다. 일본 도쿄와도 형편이 다른 게 현실이다. 위의 사례들을 보아도 한국연극은 관객이 아닌 매스컴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사회에서 연극이 해야 할 역할과 기능이 전무한 상태에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일본연극을 들여다보면, 우리 연출가들처럼 ‘실험극’을 하면 당연히 관객이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인식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연극은 관람하고자 하는, 하고 싶어 하는 관객이 없는 곳에서 우리끼리 연극행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여태껏 온갖 문제를 파생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가 어떤 부류의 연극으로 ‘주종’을 삼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장래 한국연극이 생존위해 지향해야 할 공연의 ‘롤모델’은 재일교포 연극인인 정의신이 만든 ‘야끼니꾸 드래곤’류의 연극이어야 하지 않을까?

‘냉, 온탕’을 오고가는 – 슬픔과 웃음이 교차되면서, 특히 한국인 특유의 한(恨)과 해학이 살아있는 연극, 조금은 신파성에 의한 ‘감정몰입’이 가능한 공연이야말로 한국연극이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연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판소리 ‘다섯 마당’이 한국인의 정서를 움직일 공연을 위한 ‘원형질’일지도 모른다, 해학과 한(恨), 풍자, 이걸 살려내지 못하고 계속해 서구의 ‘실험적’ 연극, 고작 지원금을 받아 새로운 사조의 유럽의 첨단의 ‘엘리트 연극’만을 선망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여기는 사람이 나다.

이제는 우리의 정서적 수준에 딱 어울리는, 그리고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소박한 마음으로 한국인들의 감성에 접근하지 않으면 연극의 생존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공연이 영국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NT의 ‘코리놀라누스’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영국의 국립극단도 ‘야끼니꾸 드래곤’과 같은 신파성 공연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공연에 영국의 젊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샤우뷔네와 같은 최첨단의 공연을 선망하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그런 공연을 보면, 흉내라도 낼 능력이나 여건이라도 조성되어 있단 말인가? 그리고 한국 관객의 수준이 독일 ‘베를린’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매번 비싼 외화를 들여 그런 공연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와 의도는 무엇인가? 이제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이런 현실을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머가 살아있는 공연, ‘감동’과 ‘재미’가 있으면서도 비극성을 간직한 한국적 정서를 자극하는 연극이야말로 우리 관객을 위한, ‘연극적 감수성’이 허약한 우리 연극인들의 수준에 딱 알맞은, 그리고 생존이 가능한 연극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이 나다.

따라서 세계를 뒤져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공연, 우리의 진정한 미래에 보탬이 될 공연을 찾아 세계적 축제를 열 의향은 없는가? 언제까지 이런 겉치레로, 허세를 떨면서 생존과 점점 멀어지고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샤우뷔네의 공연’을 보지 말자는 것이나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또 연극의 다양성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오로지 (속된 말로) ‘뱁새가 황새 흉내 내려다 다리 찢어지는 꼴’ 보일 게 아니라 우리의 주체성을 찾자는 것이다.

겉모습이나 말장난이 아닌 이제라도 우리의 본 모습을 인정하면서 지금이라도 빨리 우리의 연극을 새롭게 시작하자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왜 어두울까?

 

일본은 우리보다 일찍이 서양의 뮤지컬을 도입하고 또 일찍 흥행에도 성공해 ‘시키(四季)’라는 재벌(?) 극단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뮤지컬이 모든 공연행위를 ‘싹쓸이’하지는 않는다. 이건 영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들은 여전히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럴까? 어째서 우리는 일본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한마디로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민도가 낮은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 오랫동안 우리는 중국에 대한 모화(慕華)사상, 일본, 미국의 ‘정신적인 식민지’로 살아와 우리 자신과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경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저급한 사회나 집단일수록 자기들의 문화적 주체성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현실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3. 이런 사회일수록 다원주의나 다양성에 취약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다보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항상 정부나 지자체, 후원단체에 돌리며 ‘남 탓’으로 돌리며 ‘반성’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솔직히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재자적 위치’에 있는 한국연출가들의 각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사실이다.

서양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질환적 ‘강박증’을 한국연극의 식자들이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좋은 연극을 만들 재능도 없으면서 부질없이 ‘눈만 높이는’ 허세를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대예술이 난해하면 할수록 나름의 분명한 논리를 찾아야 하고, 분명한 예술적 목적의식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한국연극에는 이런 게 없다. 지금껏 이런 것을 가지려는 노력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외국 연출가를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영입해 SPAF처럼 ‘폼’이라도 잡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이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를 극력 반대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언제나 남만 기웃거리며 사고 있는 처지에서 말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연극의 모든 공연행위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의 관객을 위해 행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일 것이다. 왜? 최소한 한 세대가 지나야 우리의 구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한국에서 요식업을 시작하면서 서구인들 취향에 맞춰 ‘맛집’을 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해서 망하는 식당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우리 관객들의 ‘입맛’에 맞춰 생존할 생각을 하지 않는 연극이 어떻게 이 땅에서 화려한 생존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저 매사에 ‘남 탓’으로 아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한국연출가들에게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 thoughts on “한국에서 연극 연출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우상전

  1. 2014년에 쓴 글이군요.. 지금 제가 읽은 것은.. 2018년에 읽어 봅니다. 긴 글이었지만 마음에 담고 읽은 것은 제가 인천에서 연극연출가를 꿈꾸며 정년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서..그래서 깊게 읽어보았습니다..더 공부하고 많이 생각 해야 겠다는 각오를 가져보았는데..글 감사하였습니다..

  2. 2014년에 쓴 글이 6년이 지난 2020년에도 필요한 것 같네요… 연극연출을 준비하고 나아가는 사람으로서 보고 느낀 것이 많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이번이 아니라 계속 보면서 제 자신을 채찍질 할 것 같네요. 필요한 말씀 감사합니다.

  3. 우연히 검색하다 읽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뼈를 찌르는 말입니다. 저는 90년생이고 제 나이 또래에도 이미 대학교를 졸업하고 선후배를 모아 제작지원을 타내어 연출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허접한 정치담론에 의존한, 그야말로 연극이라고 하기에도 낯부끄러운 프로파간다를 소극장에서 올립니다. 친일 비판, 적폐 비판, 군사독재 비판 아니면 요새 유행하는 퀴어, 페미, 비건 등. 정치담론에 의존하고, 메세지를 부각해야 지원금을 따내기 쉬운 구조에, 지적하신 것처럼 쓰레기 같은 연출을 해도 퇴출되지가 않으니 이런 한심한 극들을 올리고도 젊은 연출가로 활동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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