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만나!
소박한 쾌유의 시간
“COOP 쿱 페스티벌” 선정작 릴레이 공연
오유경(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작: 울리히 흄
각색/연출: 최여림
단체: 극단 작은나무
공연일시: 2015/02/24-03/01
공연장소: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
관극일시: 2015/02/25
황사가 기승을 부리다 못해 중금속 비가 저녁 늦게 내릴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받고 서둘러 대학로로 향했다. 소극장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 그 앞을 수 없이 지나갔지만 그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기는 처음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소극장인데도 예상 외로 넓은 로비 공간이 갖춰져 있어 깜짝 놀랐다. 더 놀란 것은 그 무시무시한 날씨 경고에도 불구하고 저녁 8시 공연에 아이들 관객이 벅적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동극? 공연에 대한 특별한 사전지식이 없이 서둘러 찾아간 터라 의아했다. 공연정보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살폈다. 공연시간 평일 저녁 8시, 토요일 4시, 7시, 일요일 4시. 아동청소년 관람객을 주 타켓으로 하는 공연의 배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검색을 해보니, 이 작품에 관한 두어개의 표제 기사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을 위한 아동극’, ‘어른들은 배워가고 아이들을 알아가는 새로운 세상’, ‘아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특별한’ 세상’…… 아! 아동극이 아니다. 아동의 시각을 배우는 혹은 순수한 동심의 시각을 다시 되돌리는 어른을 위한 아동극. 어른을 위한 재교육 시간. 순수를 잃어버린 어른들을 순수를 간직한 어린 아이들이 가르치는 것이다. 세상을 읽는 방법을 다시 가르치는 이 작품의 주 관람객 타켓은 실제 ‘어른들’인 것이다. 어른들의 스승인 아동 관객들이 먼저 공연장에 입장했다.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스승님들은 위해 입장 순서를 양보한다. 작품 시작 전부터 마음이 노골노골 무장 해제됐다.
발랄하고 친근한 반복 멜로디의 구슬 같은 피아노 live 연주. 검은색의 기본 큐빅 1개와 온통 하얀색으로 색칠된 (속된 용어로) 일명 아시통 4개, 역시 하얀색으로 색칠된 키 작은 꼬마나무사다리 1개. 무대 둘레를 건성으로 둘러 친 군데군데 구겨진-심지어 갈라진 부분이 재단도 되어있지 않은-가장 기본적인 검정 배경천들이 단지 배우들의 대기공간과 분리시킬 목적 외엔 아무 의도가 없다는 듯 무심한 것이, 본인에겐 왠지 연극을 한참 공부하던 학교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친숙한 편안함을 주었다. 그에 비해 확고한 live연주를 위해 무대 한 켠을 차지한 씬저사이저, 드럼용 심벌(안타깝게도 전문 악기용어를 알지 못한다), 그 밖의 각종 타악 리듬을 구성하는 악기들의 배열은 고급스럽고 수준 높은 전문공연이라는 강한 인상을 준다. 공연시작과 함께 이야기꾼(storyteller) 2명과 펭귄배역을 맡은 3명의 배우가 무대 뒤에서 활력 있게 튀어 나왔다. 순간 펭귄 세 마리(?)에게서 찰리 채플린이 연상된다. 코메디아 델 아르떼의 아를리키노와 풀치넬라를 연상시키는 광대 이야기꾼들은 작품 속 해설을 담당하는 동시에, 한 명은 젬베와 함께 연주자의 옆으로 가서 대부분의 소리효과를 담당하고, 다른 한 명은 펭귄배역의 배우들과 함께 하며 비둘기배역을 담당한다.
작품 <8시에 만나!>는 독일작가 울리히 흄이 10년 전 희곡으로 먼저 쓰고 동화로 출판한 것을 2010년 우리나라 출판사(현암사)가 아동동화로 번역출판 하였고, 이를 다시 최여림 연출이 대본으로 각색한 것이다. 동화 『8시에 만나!』는 2006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아동문학상과 2006년 독일 아동극 대본상을 수상했고, 우리나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초등학생이 읽으면 좋을 도서목록에 그 이름을 올렸다.
보이는 거라곤 눈과 얼음밖에 없는 남극. 어린 펭귄 세 마리는 발로 서로를 투닥 거리며 지루함을 달랜다. 이 때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하느님이 곧 홍수를 내리실거라 알리며 그 중 펭귄 두 마리에게만 노아의 방주에 오를 초대장을 주고, 방주 앞에서 8시에 만나자 약속하고 가버린다. 펭귄 두 마리는 친구를 두고 갈 수 없어 나머지 한 마리를 가방에 넣어 함께 노아의 방주에 오른다. 각 동물마다 두 마리 이상은 탈 수 없는 방주. 어린 펭귄들은 어떻게든 서로를 감추어 주며 생존을 이어가고, 방주관리자 비둘기는 결국 그들의 비밀을 알아차린다. 그러는 와중에 방주는 육지에 닿고, 펭귄과 비둘기는 노아의 배웅을 받으며 방주에서 내려 눈과 얼음이 있는 고향 남극으로 돌아와 다시 즐거운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펭귄배역을 맡은 세 배우는 각각 매우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각자의 펭귄을 매력 있게 표현한다. 관습적 말투를 지양하고 설득력 있고 자연스러운 진정성(믿음)으로 승부한다. 특히 키 작은 펭귄역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다. 해설과 비둘기를 연기한 이미라 배우는 단순하면서도 적합한 신체동작을 통해 비둘기를 연상시키는 어떠한 의상이나 소품의 도움 없이도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다. 해설과 연주를 동시에 소화한 또 한 명의 배우는 마지막 궁금했던 노아로 등장하여 재미있는 반전을 책임진다. 연출은 구체적인 무대와 소품, 의상, 조명(빛) 등을 최소화하거나 과감히 생략하여 기본적인 무대소도구만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객이 더욱 더 배우들의 행동과 말에 집중하게 하여 이야기가 주는 의미의 힘을 자연스럽고도 강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연출과 연기양식에 큰 지지자는 당연 음악이다. 노선락 음악감독은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멜로디의 작곡은 물론 ‘Be Happy’, 카르멘 등 관객에게 이미 친근한 노래를 편곡하여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이 역할들 곧 펭귄들의 즐거움에 함께 쉽게 동화되어 즐기도록 유도한다. 또한 비, 천둥, 등 소리효과와 이야기의 중요 감성과 구성의 포인트마다 음악으로 환기를 주어 자칫 단순하고 예상 가능한 극 진행에 활력과 역동적인 극적 재미를 더한다.
작품 《8시에 만나!》는 “COOP 쿱 페스티벌” 선장작 릴레이 공연의 두 번째 작품이다. 2014년 9월 제1회 극장나무협동조합 “COOP 쿱 페스티벌” 낭독공연에서 가장 호평 받은 세 참가극단의 작품을 새롭게 무대화했는데, 작품 《8시에 만나!》는 극단 작은나무의 작품이다. 극단 작은나무는 상임연출이 존재하지 않은 극단으로 최여림 연출(극단 달과 아이)을 초빙하여 이 작품을 준비했다. 극장나무 협동조합은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6개 극단-씨어터오컴퍼니, 노래극단 희망새, 제자백가, 우리연극 덧뵈기, 경험과 상상, 락버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극장나무협동조합은 극단들이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극장을 확보하고 수준 높은 공연을 제공하고자 하며 공연은 물론, 어린이 연극교실, 연극강좌 등도 개최하고자 한다. 현재 연극계는 독립적인 극단이 단독으로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재정적인 이유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예전처럼 한 연출의 스타일을 답습하며 극단에 소속되어 남고자 하는 단원들의 수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자구책이 마련되고 있는 요즘, 협동조합은 아직은 쉽게 실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한계점과 조건들을 수반하고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극장나무협동조합의 활동이 이러한 상황에 훌륭한 대안적 사례의 하나로 거듭 발전하길 기대한다.
작품 속에서 어린 펭귄은 말한다. ‘(모든 생명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대홍수는 하느님의 실수라고!’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고. 하지만 실수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모두 언제나 착할 순 없지만 잘못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하느님까지도! 또 비둘기는 말한다. 방주 속에선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함께 생존할 수 없다고. 사슴이 사자 옆에서 편히 잠잘 수 있는 세상! 방주 속에선 모두 함께 화해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어른들이여, 당신은 지금 세상이란 방주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아이들이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