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악적인 B급으로 위선 마주하기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신영미(이화여대 박사수료)
작: 최치언
연출: 김승철
드라마터그: 배선애
단체: 창작공동체 아르케·창작집단 상상두목
공연일시: 2015.3.12 – 2015.3.29
공연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관극일시: 2015.3.25
청량리역 앞에는 목탁을 두드리는 사람과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목탁 소리와 찬송가의 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져 목탁을 반주 삼아 주님을 찾는 듯 보인다. 아! 참으로 연극적이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연극적인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연극인지 혼란스럽다. 동시대의 부조리한 상황을 목도하자니 더욱 그러하다. 현실인 줄 알았던 것이 연극이고, 연극인 줄 알았던 상황이 현실이었다는 극중극중극 장치가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을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하 소뿔/소뿔선생)의 포스터는 띄어쓰기 없는 제목만큼이나 산만하고 원색적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연상된다. 과장된 수사와 액션, 문어체적 대화, 노골적인 개그는 두 작품의 공통분모다. 그러나 연극 <소뿔>은 러닝타임 2시간 20분을 저속하고 거친 코드로 주행하면서도 정치적인 메타포가 진하게 풍긴다. 더불어 실체 없는 허상을 좇는 인간군상을 나무라는 메시지까지 담겨 있다.
B급을 규정하는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주류에서 벗어난 하위문화(sub-culture) 중 대중에게 지지받는 콘텐츠를 B급 문화라 칭한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풍자에도 불구하고 주류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저항문화와 구별된다. 그런데 <소뿔>의 김승철 연출이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B급 장치를 선택한 사실에만 조명하면 겹겹이 쌓여 있는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B급 문화가 현실의 한계 내에서 작동하는 비 주류적 가치를 옹호하는 반면, 연극 <소뿔>은 기성 사회 권력을 해학적으로 야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중(愚衆)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지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연극은 공연감독(신현종 분)이 관객석으로 올라와 큐 사인을 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는 “이번 공연은 기존의 연극들처럼 억지로 주제의식 막 우겨놓고 뭔가 있는 척하는 그런 연극이 아닙니다. 쇼와 연극과 퍼포먼스가 결합된 무협 액션 판타지 공연이 될 겁니다. 골 비어 보여도 좋으니까 그냥 재밌게만 하세요. 재미가 주젭니다.”라고 공표한다. 연극은 황당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극중극인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리허설 중 소뿔선생 역을 맡은 배우가 무대 뒤 통로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수사관 K(김수현 분)가 범인을 찾는 과정이 그려지는 동시에 공연 밖 현실에서도 한우의 소뿔이 잘려 나가는 사건이 병치된다. 공연감독의 발상으로 탄생한 소뿔선생이 실제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믿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90분 동안 관객석에서 관객처럼 앉아있던 수사관 A(민병욱 분)가 등장하고 연극은 극중극중극의 복잡한 액자구조로 넘어간다. 무대는 하나지만 3~4가지의 시공간이 겹쳐지며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처음부터 실체 없던 소뿔 선생을 잡기 위해 정부와 언론은 여론 몰이를 하고, 의심 없이 휩쓸리는 대중의 모습이 재현된다. 연극과 현실이 복제되는 혼란 속에서 주인공 황백호가 현실보다 리얼한 이곳에 진짜 없는 건 현실이라 외치고 객석을 질러 공연장 밖으로 나가며 연극은 막을 내린다.
사실 커튼콜이 없어 막을 내린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무대 위에서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을 수백 번 죽인다고 현실 속의 소뿔선생이 죽는 건 아닐 겁니다. 전 이제 진짜 귀신을 잡으러 갈 겁니다. 이곳에 갇혀 실체 없는 이름과 싸웠구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이름과 싸웠구나.” 퇴장 후 극장 밖에 서 있는 황백호(박완규 분)는 여전히 연극 속의 황백호인지, 현실 속의 황백호 또는 배우 박완규인지 명확하지 않다. 물론 이 부분은 관객이 해석해야 할 과제이다.
<소뿔>은 무대와 객석, 연극과 현실의 탈 경계로 연극이란 장치를 의도적으로 드러낸 메타연극이다. 극 속의 작가와 감독은 연극이 어떠해야 한다는 메타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에게 혼란을 준다. 연출이 3중 구조라 밝혔음에도 필자는 5중 구조로까지 읽힌다. 무대 이야기에 집중할 만하면 극중극 속의 감독과 작가, 수사관이 관객의 몰입을 차단한다. 연극과 현실의 구분을 희석시키면서 표출하고자 한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
극중극의 작가(이준혁 분)는 언어로 싸우고, 언어로 사기치고, 언어로 권력을 훔치는 정치인은 작가와 비슷하다고 토로한다. 감독 역시 과장하고 말 바꾸는 기자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라 폄하한다. 표면적으로 이 공연은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언론은 국가와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기능하고 대중은 언론의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SNS 등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국민이 작가며 기자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개인은 왜곡 보도에 흔들리는 객체에서 나아가 그것을 재생산 하는 주체가 되었다. 현실에서 소뿔 절단 사건이 발생하자 대중은 범인을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으로 부른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실체 없는 배우가 다양한 경로의 정보 조작에 의해 진짜 범인으로 규정된 것이다. 실체 없는 허상인 소뿔선생이란 존재에 뜨겁게 분개하다 한 순간에 추앙하는 대중의 위선은 우리 사회의 민낯 같아서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배우들의 제스처가 전개되는 곳이 무대라는 전제를 둔다면 객석이야말로 간과할 수 없는 무대 공간이다. 이번 공연에서 주요 인물의 중요한 대사는 객석에서 발화된다. 무대와 관객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부터 관객은 관찰자의 역할에서 나아가 참여자로 거듭난다. 건물 전체에 폴리스 라인이 쳐진 남산예술센터에 입장한 순간부터 관객은 공연에 개입된다. 대기하는 동안 극 속의 여경 옹양(박시내 분)이 다가와 말을 걸기도 한다. 즉 이번 연극의 무대 공간은 관객과 맺을 수 있는 다양한 관계가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 무대 중앙 사각의 링은 역동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허상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앞좌석의 관객은 객석 뒤쪽에 자리한 작가와 감독의 제스처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무대를 연구한 흔적이 돋보이고 결과적으로 드라마센터 구조의 특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반영했다.
음향 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4인조 밴드의 라이브 음향은 배우의 행동과 합이 맞아 B급 장치인 만화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했다. 이번 공연에서 음향은 무대 행위에 함축적인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으나 배우와 함께 생동했고 극 상황에 상응하는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조명은 단순히 배우나 무대를 비추는 것에서 나아가 의미 산출에 참여했다고 판단된다. 극중극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순간, 소격효과로 관객석의 조명을 밝혀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데 일조했다. 또한 절권도의 뿌리인 영춘권을 익힌 18명의 배우가 링 위에서 태권도, 유도, 킥복싱, 택견, 가라데, 당수도 등의 무술을 구현하는 장면에선 상당한 에너지가 전달됐다. 배우들의 몰입도와 조화가 극의 완성도에 기여했기에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작품이라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노골적인 계몽조의 대사가 넘쳐 교훈적으로 전달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코르네이유의 극시론에서 교훈극은 의연한 정신의 소유자가 격언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연극에서 극중극의 다른 배우들이 권력에 의해 수정되는 대본에 순응하는 반면 황백호는 변화하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즉 행동하는 유일한 캐릭터다. “일어서라! 민중은 그래야 하는거야”, “현실을 변하게 하려고 연극한다!”, “우린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길을 찾고 있어.” 등 계몽조의 발화와 더불어 극중극, 현실에서 반복해 읊는 <황무지>(T.S. 엘리엇)의 ‘4월’도 깨우침이란 은유로 읽힌다. 또 B급 장치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면 좀 더 저급하게 노골적으로 유치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이 장치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전형성을 탈피하기 어려운 제약이 있으나 섹시한 여경 옹양과 순정파 장미 모두 섹슈얼만 강조하다보니 둘의 차별점이 무화됐다. B급 장치의 중요한 코드는 웃음이다. 폭소 대신 실소가 터진 순간도 있지만 독특하고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었다. 극중극, 메타 형식으로 연극과 현실의 동질성 또는 연극적으로 재구축된 현실을 보며 관객은 무대에 투영된 자신을 발견한다. 복잡한 겹의 액자구조로 인해 반복되는 대사와 극 행동은 관객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여지를 두었다. 관극 후 의미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작품 속의 대사처럼 길을 잃지 않는다면 긴 여운이 남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