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호 편집인의 글)
연극이여, 오랜 무기력의 더께를 털고 일어나 걸어라!
대학로극장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충북 단양군 영춘면으로 내려가 만종리대학로극장을 열었다. 극장 폐쇄를 앞두고 상여를 앞세워 시위를 벌이던 모습은 몹시 슬펐다. 시골로 내려가 새로 시작하겠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왠지 낙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가슴이 짠했다. 그러나 개관식에 와달라는 정재진 선생의 전화를 받으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것은 갈수록 무거워지는 짐에 종말이 뻔히 보이는 대학로 생활을 청산하고 홀가분하게 새 삶을 시작한 이가 세상을 향해 전하는 밝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더 이상 그렇게 칙칙하고 어두운 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밝은 세상으로 나와 한껏 날아보자는 동참의 손짓이었다.
연극인, 아니, 연극쟁이들에게 연극은 생명이다. 그것을 못 하게 된다는 건 죽음과 같다. 그러니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건 바로 생명을 얻는 일이 된다. “주경야연(晝耕夜演)”이란 신조어는 연극의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최대의 비책이었다. 물론 막바지에 몰리기 전까지 그건 머리 속에나 존재하는 비현실적 낭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벼랑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내는 순간 그건 연극을 사뿐히 안아 올리는 현실의 날개가 되었다.
사실 연극인의 귀촌귀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몇 해 전 국립극단 배우였던 이상직이 구례로 내려가 군립극단 ‘마을’을 창단하고 생태마을 ‘누룩실’을 일구고 있다. 그 또한 화려한 국립 배우로부터 주경야연의 귀농연극인으로 변모한 뒤 차근차근 연극의 씨앗을 뿌리고 연극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연극계에 울리는 희망의 메시지는 또 있다. 변방연극제 임인자 예술감독의 실험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모금으로 4,900만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은 무모해 보였다. 그러나 이심전심 동병상련의 마음이 작용했는지 모금 마지막 날 목표를 달성했다. 아마도 정부 지원금의 후진성에서 비롯된 이번 시도가 실패로 끝나 결국 언제까지고 그렇게 종속된 채 무기력하게 끌려가면 안 된다는 절박함의 표출일 것이다.
물론 상당 부분 동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이 방식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걱정들을 한다. 그러나 일단 한 고비 넘겼으니 이제부터 차분히 장기적인 방책 마련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앞의 두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자칫 꺾일 뻔한 무릎이 최악의 위기를 피한 것일 뿐 완전히 기력을 회복해서 뛰게 되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은 여전히 죽음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죽을힘을 다해서, 안간힘을 써서, 그야말로 기를 쓰고 그 구렁텅이를 탈출해야 한다. 대학로라는 구렁텅이, 명예라는 구렁텅이, 지원금이라는 구렁텅이, 겉모습만 그럴듯한 채 실제로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그것들은 연극을 옥죄며 연극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덫일 뿐이다. 사실 정재진과 이상직과 임인자는 연극 동네에 비상벨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니 빨리 탈출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 무기력에 빠진 채 하루하루 간신히 명맥을 잇는 따위의 일은 그만둬야 한다. 오랜 세월 덕지덕지 쌓인 더께를 털어버리고 일어나 걸어야 한다. 용기를 내서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믿고 과감하게 뛰쳐나가야 한다. 그렇게 연극의 새 날을 우리 스스로 찾아 열어야 할 것이다.
2015년 8월 3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