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이별 영이별>
박정자의 낭독콘서트
산울림 개관 30주년 기념공연
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오유경
원작: 김별아
연출: 최치림
각색: 전옥란
출연: 배우/박정자, 해금/이자연, 기타/이정엽
공연일시: 2015/07/16 ~ 26
공연장소: 소극장 산울림
관극일시: 2015/07/23
신용선 화백의 단종부부 그림이 무대벽면에 흐른다. 푸르고 붉은 강렬한 색채 속에 그려진 단종의 얼굴엔 눈동자가 없다. 길고 무거운 침묵이 무대와 객석 사이로 흐른다. ‘흐른다…….’ 작품 《영영이별 영이별》의 키워드(keyword)를 떠올린다면 ‘흐른다…….’가 아닐까? 바람도, 수묵화 그림 속 영월의 강 물결도, 정순왕후의 가슴 속 서러움과 그리움도 덧없는 무정한 시간과 함께 고즈넉이 무대 가득 흐른다.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정비다. 계유정란으로 세조가 등극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던 단종은 3년 만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귀양을 간다. 폐위된 왕의 운명이 그렇듯 유배간지 5개월 만에 단종은 사사 당한다. 젊은 목숨을 잃은 단종과 달리 정순왕후는 걸인으로, 천을 염색하여 연명하는 날품팔이로, 종국엔 뒷방 늙은이로 여든 둘의 생애를 끈질기게 살아간다. 그녀는 세조의 죽음과 예종, 성종을 거치며 세조의 치세의 덧없음을 목격한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김별아의 장편소설을 각색한 작품 《영영이별 영이별》은 정순왕후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죽음을 맞고 영(靈)이 된 정순왕후는 망자의 고개를 넘기 전 자신의 장례절차를 지켜보며 짙은 회한에 잠긴다. 공연은 정순왕후의 현재와 과거의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죽는 날까지 침묵해야 했던 기구하고 애달픈 사연을 죽어서 혼백이 되어 굽이굽이 펼쳐낸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 숙부들의 쟁투, 정략결혼이었지만 아내의 소반을 챙겼던 어린 남편의 마음과 그를 향한 정순왕후의 가슴시린 사랑의 서사가 깊고 노련한 한 배우의 목소리, 입김 하나하나, 단아하고 절제된 손짓과 몸짓을 통해 들려지고, 보여지고, 그려진다. 공연 한 편이 한 폭의 수묵화. 담담하고 호방하고 애틋하다.
휘어진 나뭇가지의 보면대 다리, 나무의자, 무대 공간 뒷벽에 드리워진 투명 막, 투영되는 물결, 바람에 흔들리는 풀숲, 억새들, 산, 바위, 휘날리는 염색 천, 소나무, 바람소리, 늦은 여름 가득한 매미소리, 허망한 풍경소리, 지난 세월에 스러져간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 해금과 기타 연주의 절묘한 조화, 마음을 울리는 진혼곡-정선아리랑, 휘엉청 밝은 달, 가슴을 저미는 정가. 내내 마음을 울리던 슬픈 해금과 기타의 합주는 정순왕후가 염색 일을 말할 때 유일하게 경쾌하고 밝게 연주된다. 역시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생기 있다. 조용한 번개, 시나브로 움직이는 빛-빛도 정서와 같이 수묵화를 그린다. 하얀 모시적삼, 금테안경, 하얀 고무신, 단아하게 쪽진 백발머리, 사뭇 들어 올려 허공을 헤집는 손짓, 가슴 속 응어리를 움켜잡은 주먹 쥔 손, 뱉어지고 되뇌어지는 주옥같은 이야기들, 결코 거칠지 않으며 나직이 강단 있게 파고드는 목소리. 그녀가 문득 일어선 순간, 시간과 공간은 그 흐름을 멈춘다. 객석과 무대, 그 사이에 퍼지는 가득 찬 기운, 집중의 시간. 마지막 회한을 다 쏟아낸 여든 두 살의 백발여인이 이승을 등지고 돌아서는 그 마지막 걸음. 그 순간 영상으로 투영되던 혼례복 입은 아리따운 젊은 여인(정순왕후)이 하나 되어 함께 저승으로 떠난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오롯이 걸어 나와 2015년 후손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살아있는 인물, 정순왕후, 그녀를 만났다. 꽃 한 송이. 스러지는 마지막 여운이 짙다. 가슴이 먹먹해 온다.
소극장 산울림이 올해 30주년이다. 22살, 아무것도 모르던 열혈 철학도(본인)가 처음 연극을 접하고 또 시작한 곳이다. 깔깔깔 웃으며 스스럼없이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냉정한 딸에게 폭풍 같은 수다를 늘어놓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의 배우 박정자-개인적으로는 선생님이시다-도 그 무대에서 만났다. 그로부터 스물다섯해도 훌쩍 지나 철학도는 연출가가 되고 그 무대에서 깊은 배우, 존경하고 한 없이 배우는 선배님, 선생님, 배우 박정자를 다시 만났다. 관람하던 날은 간만에 시원스레 장대비가 내렸고 본인은 배우를 꿈꾸는 극단의 어린 식구들을 데리고 부러 찾아온 길이었다. 공연시작 전 분장실로 찾아뵈었을 때 그 분은 이미 공연 3시간 전에 도착해 작은 분장실 깊숙한 곳에서 깊고 진지하게 대본과 마주하고 계셨다. 성스러운 순간의 목격이다. 그 분의 무대를 무엇이라 평하겠는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걸. 공연을 본 후 어김없이 자기반성이 따라 왔다. ‘에고! 나는 아직도 심상이 번잡하고 말이 많구나. 언제 저렇게 그 자체로 충분하게 비워낼 수 있을까’ 연기를 열망하는 학생들에게 늘 말한다. 배우는 매개자다. 인물의 영혼을 담는 그릇. 그날 본인은 정순왕후를 만났다.
영도교. 영영이별 영이별 다리.
나의 혼백은 지금 그 다리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당신을 태운 사인교가 다리를 건너 멀어져 갈 때
나는 차마 안녕이란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끝끝내 이별의 인사를 건네지 못한 채,
우리는 영원히 열일곱 소년과 열여덟 소녀로 붙박여 버렸습니다.
우리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하루 바삐 내가 늙게 하여 주시옵고 나의 젊음을 가져가 주십시오.
왜 자진하지 않는가.
나는 누추하고 비루한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자연으로부터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가혹하지만 그럼에도 사람 밖에는 의지할게 없더이다.
좋아서 공연 중에도 두서없이 서둘러 기록했던 정순왕후의 말, 공연대사다.
소리도 빛도 정서와 같이 수묵화를 그린다. 모든 것이 소리이고 모든 것이 몸짓이며 모든 것이 언어이다. 정순왕후를 만나고 그녀에게 귀 기울이며 휴식하던 시간. 박정자의 낭독콘서트, 작품 《영영이별 영이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