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광복70주년 기념, 분단 70년 관련 공연총평/ 박정기

2015 광복70주년 기념, 분단 70년 관련 공연총평

 

광복70주년을 맞이하여 국공립극단에서는 단 한 편의 광복70주년기념, 분단 70년 관련 공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극단과 몇몇 문인단체 에서는 광복절을 전후한 자발적인 기념공연으로 애국심 고취와 공연예술계의 귀감이 되었기에 소개한다.

 

1, 극단 후암의 차현석 작·연출의 <자이니치>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극단 후암의 차현석 작·연출의 <자이니치(在日)>를 관람했다.

 

차현석(1974~)은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석사, 중앙대예술대학원, 그리고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영상문화학과 박사다. 2003년 동아대학교 주관 동아문학상 ‘시계’ 희곡상 당선작가다.

 

작품으로는 2001년 극단 후암 창단공연 <눈내리는 밤> 작 연출, 셰익스피어 <오셀로> 제작, 각색 연출, 2002년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보는 <구명시식> 연출, 2003년 스타시티 1관 개관기념공연 <사랑, 영혼, 그리고 춤> 셰익스피어 <리어왕> 각색 연출, 재공연 셰익스피어 <리어왕>, 2004년 서울하이페스티발 참가(퍼포먼스 연출) 서대문 형무소, SK 창립51주년 기념콘서트 <미래를 향하여> 제작 연출, 2006년 한.일 평화콘서트 제작, 2007년 대학로 스타시티2관 개관 및 주식회사 이지 컨텐츠 그룹 설립, ㈜이지컨텐츠그룹 주관 <색깔 놀이터 전시> 제작, 2008년 대학로 스타시티 3관 개관, 스타시티3관 개관기념공연 창작뮤지컬 <온리 러브> 작 연출, 2009년 연극 <충주시대> 각색 연출, 2009년 폭스캄마앙상블제작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무대총감독, 2004년 9.11 테러추모기념 <뉴욕진혼제> 작 연출, 2005, 2007년 일본아사히야마 음악제 참가 한국 측 PD, 2010년 이후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각색 연출, <침팬지-인간보고서> 작 연출, 오페라 <현해탄> 작 연출, 오페라 <햄릿> <라 트라비아타> <마술피리> 연출했다.

 

2011년 오페라 <햄릿>으로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월전문화재단상 , 2013년 <맥베스-미디어 콤플렉스>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 연출상, 2015년 연극 <흑백다방> 작·연출로 서울연극인대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학로 스타시티·극단 후암 대표, 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 숙명여대 문화관광학부 겸임교수다.

 

무대는 일본가옥 14조 다다미방이다. 배경 가까이 10폭 병풍이 둘러있고, 그 앞에 커다란 관이 가로 놓여있다. 관 앞에 작은 제사상이 있고, 놋으로 만든 커다란 용기와 징이 제사상 양쪽에 놓여있다. 제사상 위에는 촛대에 초가 켜져 있고, 향로와 술잔이 보인다. 제사상 앞에는 방석을 깔아놓았다. 객석 출입구 쪽 통로가 등퇴장 로로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검은색 기모노를 입은 여인의 등장과 해설에서 시작된다. 여인이 퇴장을 하면, 상복을 입은 남성들이 차례로 일본식 다다미방 빈소에 등장을 해 절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장남, 삼남, 사남, 그리고 막내가 한국에서 돌아온다. 모두 재일교포이고 친형제인 것으로 소개가 된다. 장남은 반백으로 인물이 잘 생긴데다가 위엄과 통솔력이 있어, 형제들의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차남의 장사를 지내기에 인물 생김새를 알 수는 없으나, 평소 술 담배를 아니 하고 고기도 먹지를 않아 불도를 닦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삼남은 훤칠한 키에 미남형이라 여성관객의 시선을 끌지만, 이북 말씨를 쓰고, 기타를 치며 임진강이라는 북의 음악극 주제가를 부르는가 하면 계속 북을 찬양하기에 인기가 반감된다. 사남은 체격이 좋고, 유도선수인지, 가라데 선수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툭하면 무력부터 사용하는 것을 보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인상이다. 막내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앳된 모습에 예쁘장한 생김새와는 달리 말이 거칠고 성질도 난폭하다. 마지막으로 영화배우라는 중년 남성이 역시 한국에서 문상을 하러 빈소로 들어온다. 죽은 차남은,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영화배우인 이 남성에게 거액의 투자를 하고, 20억 원의 받을 돈이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시신을 한국으로 옮겨다 묻어주면,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한다는 유언을 남겼기에 이 영화배우가 일본으로 건너온 것으로 소개가 된다.

 

이야기는 2011년 일본 후꾸시마에 쓰나미가 밀어닥친 때로 되돌아간다, 둘째는 쓰나미 당시 실종되었다가 그 이듬해에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설정이다. 그러니 시신의 훼손이 오죽하랴? 여하튼 초상을 치르게 되고, 한국에 있는 막내에게 연락을 해 막내가 도착한다. 원래 이들 형제는 월북을 한 아버지 때문에 재일거류민단이 아닌 조총련 소속이 되고, 친북성향을 띄고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막내만 친북성향을 떨쳐버리고 한국으로 가서 스타급 야구선수로 활약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막내를 형제는 변절자라고 생각을 하고 반기지를 않는다. 삼남은 말씨도 이북말씨를 사용하고, 막내를 변절자로 몰아붙이기나 하고, 사남도 막내와 말다툼을 하면, 우선 무력부터 사용을 해 막내를 제압하려 든다. 막내도 운동선수인지라 행여 질세라 형에게 맞서면서 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대든다. 영화배우라는 인물은 이들 형제들의 모습을 덤덤히 지켜보며 스타급 운동선수인 막내에게는 아는 체를 하고, 다정하게 대한다.

 

차남의 시신을 한국으로 옮기는 데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왜냐하면 쓰나미 당시 후꾸시마 원전유출사고 로 인한 방사능 누출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것을 문제 삼아 수출입의 통제는 물론 입국승객까지 철저한 검색을 하고 있는 판국에, 원전유출사고 피해자의 시신을 받아들이기가 만무하다며, 영화배우는 난색을 표하지만, 막대한 빚을 탕감받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신을 한국으로 운반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형제들은 시신을 화장해 그 유골을 한국으로 보내 납골당에 안치시키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유골을 한국으로 옮겨 설사 납골당에 안치시킨다고 해도, 방사능 때문에, 먼저 안치된 유골의 가족들 반대에 부딪히게 되리라는 생각 또한 떨쳐버리지 못한다. 의논 끝에 형제는 우선 시신을 화장해 유골을 한국으로 옮겨가기로 하고, 영화배우에게 책임을 지고 그 일을 맡아달라며, 그래야 빚을 완전 탕감해 주겠다고 약속을 한 후, 차남의 시신을 화장한다. 형제들 집에 남은 영화배우는 막내에게 야구공에 사인을 해 달라며, 집에 두고 보관하겠노라 간곡히 청을 한다. 막내는 사인을 해 준다.

 

장남을 비롯한 형제들이 화장장에서 돌아온다. 화장이 끝나야 유골을 가져오기에 사남만 아직 화장장에 아직 남아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잠시 후 사남이 유골함을 가지고 등장을 한다. 그런데 사남의 말로는 차남의 유골을 들고 오는 길에 산속에 모두 뿌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모두 아연실색을 하고, 영화배우는 빚이 탕감될 기회가 사라졌다고 실망을 한다. 그러자 사남은 사실은 차남의 유서를 작성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가족들이 사남이 유골을 실제로 산속에 뿌렸는지 확인을 하려고 유골함의 뚜껑을 연다. 유골함은 역시 비어있고, 거꾸로 들고 흔드니, 무엇이 딸랑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좀 전에 형제들이 나누어 먹었던 우매보시의 씨처럼 생긴 물건이다. 형제들은 그 씨앗이라도 한국으로 보내자고 한다. 영화배우는 유골이 없음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고 나간다. 막내도 한국으로 가겠다며 일어선다. 그러자 장남은 막내를 제지하며 놀라운 사실을 막내에게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월북을 하자, 장남은 아버지의 젊은 부인과 관계를 맺었고, 장남의 씨를 잉태한 젊은 부인이 출산과 동시에 사망하니, 장남은 새로 태어난 아기를 막내형제로 입적시킨 사실을 고백한다. 큰형인줄 알았던 인물이 친 아버지임을 안 막내의 충격이 오죽하랴? 그러나 다른 형제들은 이러한 사실을 벌써 알고 있었는지 덤덤한 모습이다. 그 때 떠났던 영화배우가 되돌아온다. 실은 막내가 사인을 해 준 야구공을 두고 갔기에, 그걸 가지려고 되돌아 온 것이다. 형제들이 영화배우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한다. 우매보시 씨라도 한국으로 가져가 달라는.

 

영화배우는 형제들의 간곡한 부탁에 승낙을 하고, 유골대신 씨가 든 유골함을 들고 퇴장한다. 그 뒤를 막내가 뒤 따르고, 형제들이 차례로 뒤를 따라 퇴장을 하면, 연극 도입에 등장했던 검은색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다시 등장해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신현종이 아버지, 이황의가 삼남, 공재민이 사남, 윤상호가 막내, 정성호가 영화배우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시종일관 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조명 주성근, 조명오퍼 김영성, 조연출 강정한·김나눔, 미술 박 윤, 사진·디자인 이준석, 진행 주미란, 기획·홍보 후플러스, 주관 서울연극협회, 협찬 넥센히어로즈·코리아나화장품 등 스태프와 제작진의 열정이 드러나, 극단 후암의 차현석 작·연출의 <자이니치(在日)>를 광복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은 우리에게 재일거류민단의 현실과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2, 신시컴퍼니의 조정래 원작, 김대성 작곡, 고선웅 극본·가사·연출의 뮤지컬 <아리랑>

 

LG아트센터에서 신시컴퍼니의 조정래 원작, 김대성 작고, 고선웅 극본·가사·연출의 뮤지컬 <아리랑>을 관람했다.

 

조정래(1943~)는 광주 서중학교, 보성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국문과 출신의 소설가다. 현대문학에 <누명>과 <선생님 기행>으로 추천 완료되고,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빙판> <어떤 전설> <청산댁> <황토> <허깨비춤> <방황하는 얼굴> <검은 뿌리> <비틀거리는 혼> <대장경> <어떤 솔거의 죽음> <불놀이> <마술의 손> <상실의 풍경> <유형의 땅> <누구나 홀로 선 나무>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인간연습> <오 하느님> <황홀한 글 감옥> <허수아비 춤> <정글 만리> 등을 집필 발표했다.

 

소설 <아리랑>은 수 천 년의 도작농업사회가 식민지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수많은 김제평야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떠났고, 더 많은 사람들은 식민지가 되어버린 평야에 남아서, 소설 속으로 풍요로운 등장인물들을 배출시킨다.

 

김제 사람들은 <아리랑>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핵심을 이룬다. 싸우는 아나키스트 지식인 송수익과 머슴 출신 독립군 대장 방영근, 그리고 모성을 대표하는 감골 댁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들의 고향은 모두 김제평야이고, 그들의 이념적 색깔의 편차에 관계없이 그들의 목표는 평야의 회복이다.

 

<아리랑>과 함께 김제평야에 서면, 논에 모 한 포기 꽂는 일이 곧 역사임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에서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념과 행동노선의 편차로 분열되지만, 그 많은 노선들은 결국 다시 민족의 운명을 지향한다. 그래서

<아리랑>속의 민족주의는 현실을 설명하고 미래를 가리키는 여러 사상과 노선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노선들의 역사적 바탕이며 공통된 지향성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순하고도 치열한 삶의 본능이며, 그 본능의 정당성이다.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 단순성은 여러 갈래의 노선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성을 갖는다.

 

뮤지컬 <아리랑>의 도입도 김제평야 죽산면에서 시작된다. 한일합방 직전부터 8·15 광복까지가 시대 배경이고 김제 만경평야, 군산 항구에서 부터 하와이, 만주, 중앙아시아, 소만국경 등 한국 유민(流民)과 저항세력들의 발길이 닿았던 많은 지역들이 포함된다. 반상의 타파가 있었지만, 신분이 다른 남녀 간의 사랑이 전개되고, 지고지순의 사랑과 동물적 본능이 동시에 교차되어 묘사된다. 조선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감골 댁, 친일의 앞잡이로 묘사되는 양치성, 의병역할을 하는 공허스님, 그 외 등장인물 모두가 당대를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이 된다.

 

무대는 극전개의 따른 장치의 변화나 무대바닥의 이동이 시선을 끌고, 배경 막과 극장 양 벽면에 투사되는 영상의 다 채 다양 함, 직선으로 표현되는 LED 조명이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음악은 개개 인물과 성격에 따르는 노래가 아닌, 흡사한 노래를 출연자들이 나누어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작곡의 비장 침울함은 작품에 어울리고, 합창은 감동을 유발시킨다. 뮤지컬의 전반부는 압축되고 빠른 극 전개와 시각 청각 위주의 연출로 내용전달에서 불명확함이 드러나고, 후반부는 감골 댁 위주의 지나친 인물부각으로 전반부와의 형평을 잃어 완만한 느낌이다. 그러나 무대전체를 예외 공간 없이 동선으로 사용하는 연출력은 살만하다.

 

서범석, 안재욱, 김우형, 카이, 윤공주, 임혜영, 김성녀, 이소연, 이창희, 김병희, 박시범, 함건수, 최명경, 류창우, 정찬우, 한동규, 최영화, 심완준, 정동진, 이재현, 서형훈, 강동주, 길현주, 우철호, 이주성, 최광희, 심건우, 윤정열, 이승일, 신우석, 변호준, 고철순, 고정희, 최미용, 연보라, 지새롬, 안민정, 김지현, 박현선, 이진경, 손문, 이예진 등 출연자들의 호연과 열창은 갈채를 받는다.

 

오케스트라 지휘 오민영, 연주 노현주, 손아롱, 김혜련, 김홍민, 이시현, 최용석, 문지영, 이도윤, 김영수, 박명호, 손승용, 최유진, 유종미, 김광학, 정상진, 박솔지, 김인수 등의 연주는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프로듀서 박명성 안무 김현, 음악감독 오민영, 조연출 이지영, 컴퍼니매니저 양능문, 연출부 이환 장혜정, 무대디자인 박동우, 음향디자인 김기영, 조명디자인 Simon Corder, 영상디자인 고주원, 의상디자인 조상경, 분장 가발디자인 김유선, 소품디자인 조윤형 그 외의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신시컴퍼니의 조정래 원작, 김대성 작·편곡, 고선웅 극본·작사·연출의 뮤지컬 <아리랑>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3, 하나예술원 꽃뜰 힐링 시 낭송협회의 엄경숙 제작, 최상기 기획·각본, 전세권 연출의 시극 <3발의 총성 그날>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하나예술원 꽃뜰 힐링 시 낭송협회의 엄경숙 제작, 최상기 기획·각본, 전세권 연출의 광복 70주년기념 시극 <3발의 총성 그날>을 관람했다.

 

<3발의 총성 그날>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시극이다. 하나예술원 꽃뜰 힐링 시낭송협회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애국·애족·애천사상을 재조명하고, 자라나는 세대의 올바른 국가관 정립을 위하여 마련한 시극(詩劇)이다.

 

하나예술원(원장 엄경숙)은 꽃뜰 힐링 시 낭송회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재능기부 등 다양한 활동으로 많은 행사에서 시 낭송과 음악이 있는 공연과 연출로 병원, 복지관 등 문화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시 낭송회 영역을 확대 운영하고 있는 단체다.

 

시극은 도입에 김정철 단장이 이끄는 어린이 합창단이 등장해 <우리는 알아요> <꽃 같은 소녀를 어쩌나> <무궁화 동산> <원더풀 코리아> 등을 노래해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곧이어 서예가 초당 이무호의 붓글씨 퍼포먼스가 펼쳐 화선지 전지를 여러 장 붙여 만든 긴 두루마리에 사람 키만 한 커다란 붓으로 대야에 담긴 먹물을 듬뿍 찍어 <3발의 총성 그날> <대한독립만세>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서 갈채를 받는다.

 

시극이 시작되면 하수 쪽에 병풍이 펼쳐있고, 그 앞 용상에 앉은 황제 고종의 독백이 시작된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고뇌와 울분으로 포효하듯 읊조린다. 곧이어 시극의 해설자가 등장해 역사적 상황을 객석에 전한다.

 

영상으로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 투사되고, 하얼빈 역과 이등 박문(伊藤博文)을 환영하는 인파가 역시 영상으로 투사되면서 돌연 3발의 총성이 울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30대 초반의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가 무대로 뛰어 들어온다.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는 곧바로 일본헌병에게 체포되어 끌려간다.

 

장면 전환이 되면 중국인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義擧)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주점으로 몰려 들어가 이등 박문(伊藤博文)을 사살한 것에 축배를 든다.

 

안 의사는 끌려가 동양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한 일이라고 자신의 거사의지를 밝힌다. 그러나 일본헌병은 이등 박문(伊藤博文)은 훌륭한 수상이자 일본의 국부 같은 인물이라며 안 의사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다.

 

법정에서 안 의사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배경 막에 안중근 의사의 휘호가 영상으로 투사된다. 필체의 바르고 정연하고 아름답기가 안중근 의사의 곧은 마음과 정신에 비교된다.

 

안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가 눈물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펼쳐진다.

 

“내 아들아! 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모두의 분노를 세상에 알린 장한 일이다. 우리 민족의 대의를 위해 두려움 없이 죽음을 택한 네가 아니냐…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 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여기고 상고할 생각은 하지마라, 그것은 효도가 아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일을 한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부탁하는 건 사리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일본인들이 영웅으로 떠받드는 이등박문을 죽인 너를 살려줄 리가 없다. 큰 뜻을 품고 한 일이니, 죽음 또한 그래야 한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아들아 잘 가거라…어미는 현세에서 너를 다시 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 내세에서 다시 만나자.”

 

등장인물들이 안중근 의사 관련 조지훈(趙芝薰) 시인과 그 외의 시인들의 안 의사 의거를 칭송하는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른다. 안 의사의 아름다운 부인이 남편의 교수형 당한 소식에 울음을 터뜨리며 비통해 하는 모습이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대단원에서 해설자가 등장해,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현재까지 안 의사의 무덤이나 유해를 찾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전하면서, 시극은 출연자 전원의 “장부가”와 “아리랑” 합창으로 감동적인 마무리를 한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홍보대사 김현철이 고종황제, 하나예술원 원장 엄경숙이 안중근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 유재필이 해설자, 허갑주와 조동문이 중국인, 송수복이 주모, 임현정과 허봉인이 동인, 이경선이 헌병, 이계열이 미조부치, 이현옥이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가 이수옥, 고인화 장경숙 정명례 박명숙이 시 낭송을 하는 인물로 출연해,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제작 엄경숙, 조명 김종호, 영상 배기태, 음악 돌코사운드, 분장 김다인, 홍보 오부원 등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일치되어, 하나예술원 꽃 뜰 힐링 시 낭송협회의 엄경숙 제작, 최상기 기획·각본, 전세권 연출의 광복 70주년기념 시극 <3발의 총성 그날>을 고품격 고수준의 걸작 서사시극으로 탄생시켰다.

 

4, 극단 독립극장의 광복70주년기념공연 김수미 작, 구태환 연출의 <달의 목소리>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극단 독립극장의 광복70주년기념공연 김수미 작, 구태환 연출의 <달의 목소리>를 관람했다.

 

<달의 목소리>는 여자독립군 정정화(鄭靖和) 선생의 전기 <녹두꽃>을 1인극으로 구성한 연극이다.

 

정정화(鄭靖和) 선생은 한성부에서 태어나 1910년 어린 나이에 김의한과 결혼했다. 남편은 구한말 고위 관료인 김가진의 아들이었다. 시아버지 김가진은 1919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격 망명했고, 정정화(鄭靖和)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1920년 역시 상하이로 망명했다. ‘연로하신 시아버지를 모셔야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녀는 감시가 덜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역할을 맡아서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10여 년간 자금 모금 책,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또한 중국 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이동녕, 백범 김구 등 임정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을 조직하여 간부를 맡았고 충칭의 3·1 유치원 교사로도 근무했다. 1943년 대한애국부인회 훈련부장이 되는 등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광복 후 인생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미군정의 홀대 속에 1946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고, 오랫동안 임시정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구 선생은 암살되었다. 6 25사변 중 김의한은 안재홍, 조소앙 등과 함께 납북되었으며, 남한에 남은 정정화(鄭靖和) 선생은 부역죄로 투옥되는 등 고초를 치렀다.

 

정정화(鄭靖和) 선생은 1991년에 서거하고, 198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았다.

 

저서로는 회고록 <녹두꽃(1987)>, <장강일기>를 남겼다. 이 회고록을 토대로 연극 <장강일기>와 <치마>, <아! 정정화> 등 여자독립군 정정화 선생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연극을 극단 독립극장에서 공연하고, 2015년에는 <달의 목소리>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무대는 대학의 강의실처럼 만들었다. 책상과 의자가 줄줄이 가로 놓여 정돈되어 있고, 책상마다 갓을 씌운 전구가 달려 빛을 발하고 있다. 무대 좌우로 등퇴장 로가 있고, 배경에 영상으로 기관차의 달리는 모습과 한반도와 만주지역 지도에 정 선생의 행로가 화살표로 소개가 되고, 상해 불란서 조계 안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치, 정정화(鄭靖和) 선생의 사진, 남편과 시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김구 선생을 비롯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과 이봉창, 윤봉길, 안중근 의사 같은 독립투사의 사진도 투사되고, 2차 대전, 일본 원폭투하, 6 25사변, 그리고 하늘에서 눈꽃송이가 날리는 영상이 투사되어 강의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무대 상수 쪽에는 건반악기와 현악기 연주석이 있어 연주자들이 극의 도입부터 대단원까지 연주를 하고, 정정화(鄭靖和) 선생 역을 하는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의 혼신을 다한 열연과 노래도 네 곡이나 감상할 수 있다.

 

예술감독 권성덕, 제작감독 이문수, 라이브 연주 피아노 김예나·이지윤, 첼로 김시은, 무대미술·의상 임일진, 음악 김태근, 분장 김선희, 사진·그래픽 김 솔, 영상감독·조명 한원균, 영상제작 손희영, 조연출 노헌열, 스크립터 곽태관, 기획 심만정·김정아·김선희 등 스태프 모두의 애국심이 제대로 발휘되어, 극단 독립극장의 김수미 작, 구태환 연출의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의 모노드라마 <달의 목소리>를,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해도 좋을 애국심 고취 1인극으로 만들어 냈다.

 

5, 관악극회의 이순재 예술감독, 이수인 작·연출의 <헤이그 1907>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이순재 예술감독, 이수인 작·연출의 <헤이그 1907>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1907년의 헤이그 밀사사건을 다룬 연극이다.

 

1905년 일본 제국주의는 서유럽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한국의 보호국화를 승인받은 뒤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이에 대해 고종은 헐버트를 통해 “보호조약은 병기로 위협하여 늑정(勒定)했기에 전혀 무효하다”는 내용의 급전을 미국 정부에 전달했으나, 미국은 반응이 없었다. 또한 고종은 서울의 각국 공사들을 상대로 조약의 부당성을 호소했으나 역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후 1907년 1월 16일 고종은 영국인 베델이 경영하는 〈대한매일신보〉에 미국·프랑스·독일·러시아 원수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했으나, 박제순(朴齊純) 친일내각이 21일 이를 위조라고 했다.

 

이에 고종은 같은 해 6월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이 회의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주창으로 열리는 회의로 40여 개 국의 대표 225명이 참석하는 것인데, 주로 중재재판·육 해 전 법규 등을 논의하지만 사실상 열강간의 식민지 쟁탈전에 따르는 분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법 회의였다.

 

고종은 전(前) 의정부참판 이상설(李相卨), 전 평리원검사 이준(李儁), 전 러시아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李瑋鍾) 등 3명을 평화회의에 파견하여 러일전쟁 이후의 일제의 침략상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폭로함으로써 열강의 동정과 후원을 얻어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1907년 4월 극비리에 서울을 출발한 이준(李儁)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李相卨)을 만나 6월 4일 그와 함께 페테르스부르크(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전 주(駐)러시아 공사 이범진(李範晉)과 이위종(李瑋鍾)을 만났다. 먼저 이준·이상설·이위종 3명의 특사는 ‘장서'(長書:控告詞)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제2차 만국평화회의 주최의 주창자이며 의장국인 러시아 정부의 지지와 후원을 기대하고 보름이 넘도록 이범진과 함께 러시아 외무부의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별다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6월 19일 페테르스부르크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 도착한 뒤 ‘장서’와 그 부속 문서인 ‘일인불법행위’ 1권을 프랑스어로 인쇄했다. 같은 달 25일에 만국평화회의 개최지인 헤이그에 도착하여, 28일 장서와 문서를 일본을 제외한 40여 개 참가국 위원들에게 보냈다. 7월 9일 밀사들은 우선 만국평화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러시아 대표 넬리도프를 방문하여 한국의 공식 대표로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넬리도프가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므로 네덜란드 정부와의 교섭을 권하여 곧 외무장관을 방문했으나, 네덜란드 정부의 소개가 없다는 이유로 만나지도 못했다.

 

이에 영국·미국·프랑스·독일의 대표위원을 만나 지원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했고, 그들은 네덜란드 외무대신에게 서한을 급송하여 면회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나 이를 전후하여 이 같은 사정이 각국 신문기자에게 널리 알려져 매일 각국 기자와 답지했는데, 특히 영국인 윌리엄 스태드가 회장인 국제협회의 후원을 얻어 그 회의의 회보인 〈쿠리에르 드 라 콩페랑스 Courrier de la Conférence〉에 장서의 전문을 게재했다.

 

특히 7월 9일에는 협회의 회합에 귀빈으로 초대되어 이위종이 프랑스어로 ‘한국의 호소’라는 제목의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이 연설 후 각국 신문에서 매일같이 한국의 사정을 논해서 ‘억일부한'(抑日扶韓)의 여론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국 대표들에게 외면당하여 본회의 참석은 좌절되었다. 참석이 좌절되자 이준은 일본에 의해 폭력적으로 자행된 잔인한 재앙에서 조국을 지키지 못하는 근심이 분통이 되어 화가 나고 기가 막혀 음식을 끊었고, 그로 말미암아 병이 생겨 7월 14일 유숙한 호텔에서 병사했다.

 

한편 이위종은 국제협회에서의 연설 직후 잠시 페테르스부르크에 돌아갔으나, 이준의 순국을 알리는 급전을 받고 18일 헤이그에 돌아왔다. 이후 이상설과 이위종은 헤이그 사행 전에 이미 계획된 여정인 각국 순방외교에 나서 한국의 독립과 영세중립화를 역설했다. 이후 이들은 궐석재판에서 이완용 내각에 의해 사형·종신형을 받음으로써 끝내 귀국하지 못했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7월 3일 밀사파견 사실을 알고는 일본 장교단을 거느리고 고종을 찾아가 협박한 후 고종의 폐위를 일본 총리대신에게 건의했다.

 

이에 이완용 내각은 7월 6일 어전회의를 소집하여 고종에게 일제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8일 일제 통감부는 궁금령(宮禁令)을 실시하여 고종을 감금하고, 17일 이완용·송병준 등으로 하여금 고종에게 퇴위하도록 협박하게 했다. 마침내 20일 일본 군대의 포위 속에 고종은 순종에 대한 양위의 형식을 빌어 사실상 폐위당했다.

 

이어 일제는 한국 군대를 해산시키고 한일신협약을 강요하여 한국의 내정까지 장악함으로써 합병의 형식만 남겨놓게 되었다.

 

무대는 여러 개의 기둥과 아치형의 문이 있는 건물이 자리를 잡았고, 건물 앞 공간은 대궐 어전, 헤이그 투숙호텔의 프론트, 만국평화회의장 정문, 신문기자협회 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의자를 들여다 출연자들의 좌석으로 사용을 한다. 옛날 우리 동요와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홍수(Wasserflut, 넘쳐 흐르는 눈물)”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극의 비장 침울한 분위기와 어울린다.

 

연극은 안나 슈티겔이라고 하는 미모의 유대여인의 해설에서 출발한다. 고종황제와 이등 박문(伊藤博文), 그리고 대신들과 수행원이 등장하고, 이등 박문에 의해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장면이 바뀌면 전(前) 의정부참판 이상설(李相卨), 전 평리원검사 이준(李儁), 전 러시아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李瑋鍾) 등 3인이 고종황제의 밀지를 소지하고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는 네델란드의 헤이그에 도착한다. 당시 한복에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던 우리의 선조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특사 3인의 서양식 정장차림이 이채롭다. 3인이 투숙한 헤이그의 호텔에서 유대 여인 안나 슈티겔과 만나는 장면이 그려지고,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의 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방해공작으로 특사들의 참석이 무위가 되는 과정이 소개가 된다. 이들의 3인의 통분을 영국인 기자 스태드가 기자협회보에 소개를 하고, 세계기자협회 회의장에서 이위종(李瑋鍾)이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연설을 해 갈채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3인은 황제특사로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제각기의 사정에 따라 헤어지게 되고, 이준(李儁)은 애국충절의 본고장이라는 함경도 북청인 답 게 분신을 한다. 특사를 파견한 책임을 지고, 고종황제가 폐위되고 조선왕조가 역사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과정과 대단원에서 3인의 특사 중 이위종(李瑋鍾) 을 연모하던 여인인 안나 슈티겔의 마무리 해설로 연극은 끝이 난다. 그리고 배경막에 투사된 자막으로 안나 역시 나치 독일에 의해, 다른 유대인처럼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소개가 된다.

 

송흥진, 이 길, 박재민, 나호숙, 윤정금, 정창옥, 김인수, 곽지숙, 류근욱, 정문선, 홍승오, 이인석, 옥자연, 징한나, 윤대홍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갈채를 받는다.

 

제작고문 신영균·이순재, 제작총괄 윤완석, 제작기획 김은자·박경일, 제작책임 나호숙·김일호·김인수·조인경·설경수·천승욱·이현숙·백용호, 조연출 차주영, 드라마터그 이진숙, 무대감독 이종성, 기술감독 문원섭, 무대 정 영, 무대제작 수 무대, 무대제작보 김찬동·강세미, 조명 성미림, 영상 이찬규, 음악감독 강민석, 음향 엄태훈, 의상 김미나, 분장 김근영, 소품 박현이 등 제작진과 스태프 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극단 관악극회 광복70주년기념연극 이순재 예술감독, 이수인 작·연출의 <헤이그 1907>을 한 편의 걸작 서사극으로 탄생시켰다.

 

6, 문학의 집 서울의 광복 70주년, 분단 70, 문인극 <하꼬대 마을 사람들>

 

문학의 집 서울 중앙홀에서 광복 70주년, 분단 70년 문인극, 전옥주 작, 임선빈 연출의 <하꼬대 마을 사람들>을 관람했다.

 

전옥주(田玉柱 1939~) 작가는 경북여자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을 졸업하고『현대문학』에 희곡 「운명을 사랑하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공연윤리위원회 무대예술분야 전문심의위원. 소극장 연극촌 운영. 한국여류문학인회 간사. 한국희곡작가협회 부회장. 극단 동인극장 대표 등을 역임했다.

 

한국문학상과 한국희곡문학상을 수상했고, <운명을 사랑하라>,<밀알>,<용이 승천 못하면>, <선택된 인간>,<방황자들의 대화>,<어느 과도기에서>, <초(超) 아담과 이브>, <불청객>, <낮 공원산책>, <목녀(牧女)>, <연상반응>, <수염이 난 여인들」, <불행한 행운아>, <아가야 청산가자>, <꺾어 들어오는 빛>, <노부부의 선글라스>, <기다리는 사람들>, <가을바람 소슬바람>, <아들의 허상(虛像)>, <영혼의 소리>, <마을> 등의 희곡을 발표했다.

 

<하꼬대 마을 사람들>의 하꼬대는 북에 고향을 둔 사람과 그 자녀들이 모여 사는 휴전선 접경지역의 마을 이름이다. 원래 학수고대하듯 통일을 염원한다는 뜻의 학고대가 “하꼬대”로 바뀌어 불려졌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증기기관차 시절의 기관사가 디젤기관차로 바뀌면서 퇴직을 하고, 실향민이 모여 사는 하꼬대 마을에 정착해 통일을 기다리다가 저세상으로 떠났고, 그 아들이 부인과 사별한 후, 하꼬대 마을에 철마상회라는 조그만 가게를 열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무대는 옛날 연기를 내뿜고 달리던 기차의 모형이 상수 쪽 객석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바로 옆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다. 배경에 바로 그 칙칙폭폭 시절의 기차가 영상으로 투사되고, 부근 풍경도 소개가 된다. 중앙에 철마상회라고 쓴 간판이 바람에 날려 떨어져 나무 벤치에 기댄 채 쓰러져 있고, 하수 쪽에는 의자가 있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인근에 산이 있어 등산객도 가끔 이 철마상회 앞에서 쉬며 음료와 주류를 마신다. 등산객도 실향민이라 자기의 고향을 밝히며 그리는 마음이 관객의 가슴 깊이 전해진다. 실향민인 마을사람들과 등산객이 어울려 술을 마시는 장면이 연출된다.

 

모친이 저세상으로 가고, 홀로 남아 가게를 하는 아버지를 대하는 딸의 효성이 연극 속에 그려지고, 홀로 된 이웃 여인이 가게주인을 대하는 마음이 은근하다. 마을사람들이 철마상회에 들러 통일이 올 날과 북의 고향 땅을 다시 밟기를 원하는 정경도 제대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실향민 마을도 개발로 철거대상 지역이 되고, 철거반장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철거반장도 실향민의 후예라, 같은 실향민을 어찌 내쫓으려 하느냐고 촌로에게 핀잔을 당한다. 꾸중이 심해지자 철거반장은 참다못해 고백을 한다. 철거반장직을 못하겠다고 건설회사에 사표를 냈노라고….. 술이 한 순배 돌아가고 동네 여자 노인이 등장해 자신은 스스로 떠나기로 했다는 마음을 밝히며, 이웃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여자노인이 광복 70년, 분단 70년 동안 실향민들의 뼈저린 통일염원을 훌훌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가게 앞에 자리한 사람들의 등을 두드리며 마을을 떠나는 담담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객석은 눈물의 바다가 된다.

 

등산객과 마을사람들이 돌아가고 떨어진 간판을 들고, 다시 달아야 하느냐 말아야하느냐 망설이는 주인 앞에 이웃 여인이 미소를 띠고 가까이 다가온다. 두 사람의 운명처럼 다가서는 모습과 모든 출연자가 다시 등장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배우 송영학이 철마상회 주인, 그의 딸로 한분순 시조시인, 이웃여인으로 안영 소설가, 동네 여자노인으로 최금녀 시인, 동네노인으로 홍성훈 아동문학가, 철거반장으로 윤효 시인, 실향민 가족으로 백시종 소설가, 권남희 수필가, 김숙희 시조시인, 그리고 등산객으로 엄기원 아동문학가, 서정란 시인 등이 출연해, 독특한 감성전달과 호연으로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제작 문학의 집 서울, 후원 서울특별시, 협찬 한국마사회, 기획 김후란(문학의 집 서울 이사장), 조연출·음향감독 김선영, 무대디자인·조명감독 한상훈, 영상감독 최주용, 안무 최혜정, 분장 최혜정·김은지, 진행 이희자·김미녀 등 제작진과 스태프 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2015 광복 70주년, 분단 70년, 문인극 전옥주 작, 임선빈 연출의 <하꼬대 마을 사람들>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7, 임진택의 작창·출연·연출의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

 

은평 문화예술회관 숲속 공연장에서 임진택 창본 작창·출연·연출의 창작판소리 <백범(白凡) 김구(金九)>를 관람했다.

 

임진택(1950~)은 김제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편제 보성소리 명창 정권진 님(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의 제자가 되어 소리를 배운 이른바 ‘비가비광대’다. ‘민중문화운동 1세대’인 임진택은 전통판소리의 박제성을 극복하려한 ‘살아있는 판소리꾼’일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서 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 · 민중예술의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마당극운동’을 주도한 연출가이자 문화운동가다.

 

작품으로 <오적> <똥바다> <남한산성> <오월광주>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작창·출연·연출한 판소리 명창이자 대가다.

 

동포 여러분 !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옛날 일본에 갔던 박제상(朴堤上)이, “내 차라리 계림(鷄林)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倭王)의 신하로 부귀를 누리지 않겠다” 한 것이 그의 진정이었던 것을 나는 안다. 제상은 왜왕이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을 준다는 것도 물리치고 달게 죽임을 받았으니, 그것은 “차라리 내 나라의 귀신이 되리라” 함에서였다.

근래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를 어느 이웃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 밖에 볼 길이 없다. 나는 공자·석가·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는 것은,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을 주장하여, 민족주의라면 마치 이미 진리 권외에 떨어진 생각인 것같이 말하고 있다.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 적이려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남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요 내요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四海同胞)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 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경제상·사회상으로 불평등·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알력·침략,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으로 작고 큰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의 불안과 도덕의 타락은 갈수록 더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이라고 믿는다. 이러하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리 삼천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自屈之心)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이었다.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의 우리 민족이 옛날의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소리 : 1부, 왕기석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부, 왕기철 – 전주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 2001),

3부, 임진택 – 창작판소리 <똥바다>, <오월광주>, <백범 김구> 작창,

병풍그림 : 임옥상,

주 최 : 서울시, 주 관 : 광복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추진단,

후 원 : 은평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 사업회(회장 김좌동)

 

제작진과 스태프 진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합하여, 광복70주년기념 임진택의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를 애국심 고취의 성공적인 판소리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8월 31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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