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저작권 합리화를 위하여/ 오세곤

[제 59호 편집인의 글]

연극계 저작권 합리화를 위하여

연극계는 소규모 극단이 많다. 아니, 영세한 극단이 많다. 돈도 돈이지만 이런 저런 행정 절차도 서툴고 부담스럽다. 그 대표적인 게 저작권이다. 뮤지컬은 이미 산업화 쪽으로 많이 가 있으니 저작권에 상당히 익숙하다. 그런데도 복잡한 저작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니 뮤지컬 제작이나 하면 모를까 일반 극단들은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아예 조용히 몰래 지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꽤 많은 희곡을 번역했다. 그래서 자주 극단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어떤 작품을 공연하려고 하니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다. 아예 연락 없이 공연하는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일단은 반갑다. 그런데 국공립극단이나 시설이 아닌 경우 상대방은 대부분 아주 조심스럽고 뭔가 주저하는 태도이다. 바로 번역료를 어떻게 할지 묻는 순간이다. 사실 전화를 받는 입장에서도 엉거주춤할 경우가 많다. 대답을 늦게 하면 혹시 번역료 얘기가 없어서 그런 걸로 오해할 거 같고, 그렇다고 번역료에 대한 얘기도 없는데 무조건 허락한다 말하기도 곤란하고, 어쨌든 잠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곤 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난 분명한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일단 저작권료는 4%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이윤택 선생에 제안에 의해서 정해진 거다. 이윤택 선생이 내가 번역한 장 주네 작 <하녀들>과 이오네스코 작 <수업>을 처음 공연할 때 일이다. 작가로서 자신이 5%로 하고 있으니 번역은 4%로 하자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수용했고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그렇게 내세우고 있다.

물론 그렇게 제대로 번역료를 받아본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 난 상대방이 번역료 얘기를 꺼내면 우선 수익이 있는지 묻는다. 대부분 없다고 대답한다. 그럼 번역료를 안 받겠다고 한다. 그럼 먼저 놀라고 송구해 하며 조금이라도 보내겠다고 한다. 물론 지원금이라도 받았으면 성의껏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아니면 그럴 필요 없다고 한다. 다만 번역자 이름을 분명히 넣고 나중에 공연 자료를 보내주는 걸로 족하다고 한다. 그래도 상징적 액수라도 보내는 극단들을 만났을 땐 여전히 순박한 우리 연극 동네를 느끼며 흐뭇해진다.

근 20년 전 얘기다. 손톤 와일더 작 <우리 읍내>를 대구시립극단이 공연하기로 하면서 내게 번안을 부탁해 왔다. 원작 저작권 확보까지 부탁한다는 말을 선선히 수용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에이전시에서 온 회답을 받곤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 커다란 대구문예회관을 모두 유료 객석으로 계산하여 저작권료를 책정한 것이었다.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당시 내가 받은 수고료의 절반 이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번안을 위한 현장 조사에 그 나머지 절반이 들어갔으니 난 완전 무료 봉사를 한 셈이다.

그때 저작권 대행사에 대한 느낌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 그 자체였다.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로 대부분 초대 손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는데도 돌아온 답은 원칙이 그렇다는 말뿐이었다.

이러니 웬만한 극단은 겁이 나서 저작권자에게 연락을 못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저작권 확보 없이 하는 공연이 때로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정색을 하고 문제 삼으면 당장 심각한 법적 제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난 오래 전부터 우리 예술 지원의 형태를, 맞춰서, 찾아서 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산 지원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행정 지원이나 컨설팅 지원까지도 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저작권 관련 지원도 극단들에게는 대단히 요긴할 것이다. 사실 저작권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 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서라기보다는 그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번역 대본 사용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극단들 중 번역자 동의를 받았어도 다시 원작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저작권 관련 지원은 그 수혜자가 극단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익이 없으면 번역료를 안 받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별도의 직업이 있기 때문일 뿐, 만약 전업 번역가라면 얘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 우리 희곡 번역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 하는 것도 그것이 직업으로 자리 잡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작권 관련 지원이란, 특히 해외 작품과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행정 지원과 함께, 국내 작가와 번역가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저작권료 지원까지를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21세기도 벌써 15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여전히 원시 상태에 머물고 있는 연극계 저작권 관련 수준을 합리적으로 끌어올리는 최소한의 방법이 될 것이다. 겁내고 피하는 대상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함께 만드는 동지로 작가와 번역가들이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우리 연극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초석이라 믿는 바이다.

2015년 9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