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5년 10월 공연총평
10월에는 각종연극제 행사가 성공적으로 펼쳐지고, 제3회 한국여성극작가전, 그리고 한국연극협회의 연극인선영 순회참배가 있었다.
1, 극단 초인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정의 재구성·연출의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드라마 맥베스>
예술공간 서울에서 극단 초인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정의 재구성·연출의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드라마 맥베스>를 관람했다.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드라마 맥베스>는 여배우의 1인극이다. 여배우는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수형자로 설정이 된다. 그녀가 연기를 할 때에는 죄수복 위에 장군 맥베스의 코트를 걸친다. 그리고 그녀의 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가 소개가 되고, 그 알바 대상의 부유한 가정과 가족의 그녀에 대한 차별과 냉대가 펼쳐진다. 그녀는 복수심을 품게 되고, 그것이 마녀들의 예언대로 왕권찬탈을 위해 덩컨 왕을 살해한 맥베스의 모습에 비견된다.
무대는 무대 네 귀퉁이에 사각의 입체 조형물을 배치하고, 하수 쪽 벽 중앙에도 직사각의 입체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여배우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맥베스의 줄거리대로 연기를 시작한다. 승전한 장군 맥베스가 뱅코우와 함께 귀국하는 길에 마녀들을 만나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게 되고, 뱅코우도 아들이 대대로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두 장군은 왕과 국민의 환영을 받지만, 맥베스 부부는 왕권찬탈을 위한 흉계를 꾸미고 급기야 덩컨 왕 살해하고, 뱅코우마저 죽이려 들지만 뱅코우는 피신을 한다. 왕좌의 오른 맥베스에게 덩컨의 모습이 헛것처럼 등장하면서 결국 그가 덩컨을 암살한 것이 드러난다. 물론 뒤쫓아 뱅코우를 살해한 것까지….
붉은 베개를 소품으로 사용해 암살 장면에서 베개를 단도로 찌르고 그 안에 들어있는 닭털을 꺼내 무대에 흩어놓는다. 마녀장면에서는 인형을… 물론 조명의 색상변화로도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오페라의 아리아와 영화 부베의 연인의 음악이 삽입되면서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버남의 숲이 움직여 공격을 해 오고, 뱅코우의 아들 맥다프가 등장해 자신은 여인의 몸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제왕절개로 나왔음을 알리니, 맥베스는 칼을 떨어뜨리고 패전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여배우의 모노드라마는 혼신의 열정으로 열연을 한다.
대단원에서 여배우는 장군 복을 벗어놓고 죄수복차림으로 관객에게 절을 하는 장면에서 공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로 마무리가 된다.
연기파 여배우 이상희가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모노드라마의 새 경지를 펼쳐 보인다.
조명 박연용, 음악 조선형, 조명보 이보람, 음향보 이슬기, 무대 안창복·김영건, 영상 신상호, 디자인 우지은 등 스태프 전원의 열정이 드러나, 극단 초인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정의 재구성·연출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드라마 맥베스>를 1인극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모노드라마로 탄생시켰다.
2, 2015 SPAF 공식초청작 극단 서울공장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임형택 연출의 <햄릿 아바따>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15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식초청작 극단 서울공장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아스파드 데부·김소이 안무, 임형택 연출의 <햄릿 아바따(Avataar)>를 관람했다.
아바타(Avatar)는 자신의 분신을 가리킬 때 ‘아바타(Avataar)’란 표현을 쓰는데, 이는 원래 힌두교의 비쉬누 신과 관련된 말이다. 비쉬누 신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 또는 반신반인의 모습으로 출현을 한다.
<햄릿 아바따(Avataar)>는 극단 서울공장의 출연진과 인도의 현대무용가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무용, 그리고 여가수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신비스런 가창력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연출된다.
인도의 국보급 안무가인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는 독일 피나 바우쉬, 영국 핑크 플로이드, 런던 마사 그레이엄, 뉴욕 호세 리몬 등 세계 각국의 예술인과 협업을 해온 글로벌 아티스트다.
1983년 11월 26일에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초청공연이 공간사랑에서 열렸다. 인도의전통무용을 배운 다음 본격적인 현대무용기법을 익힌 무용가로서 31개국에서 공연을 했다.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은 미모의 집시풍의 여가수다. 바울은 방랑하는 탁발승이란 의미이다.
사찰에서 예불 후, 스님들이 네 개의 사발 같은 나무그릇에 밥, 반찬, 국, 물을 담아 식사를 하는데, 그것을 발우공양이라고 한다. 발우공양의 발우가 바로 바울과 같은 뜻이다.
또한 바울(Baul)은 범어인 ‘바툴(Vatul)’, ‘바훌(Vahul)’에서 유래되었는데 ‘바람으로 인해 미쳤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바울(Bauls)’은 음악을 통하여 신에게 다가고자 노력하는 방랑 신도를 일컫기도 한다.
그렇기에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무대에서의 모습과 열창은 신비스럽고 신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고, 속세의 광기와 첨가되어 음악적 신비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아마도 ‘바울’의 유행은 그 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겠지만 이들 ‘바울’의 노래의 추적 가능한 연대는 18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다. 바울은 공명악기인 반스리(Bansri)와 북 형태의 고피 야안트라(Gopi Yaantra)를 사용한다.
무대장치는 무대좌우로 철제 조형물과 받침대를 2m 간격으로 세 개씩 나란히 놓고, 그 뒤쪽에 의자를 배치해 출연자가 앉아서 대기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배경에 연주석이 마련되고 건반악기, 타악기, 기타,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하모니카를 악사들이 연주한다.
배경 앞에 열 그루의 나무를 세우고, 그 앞에 가로 1m 세로 2m 크기의 세 개의 커다란 투명 가리개를 세워, 조명 각도에 따라 거울로도 사용된다.
무대 좌우에 배치된 등받이 의자는 후에 무대 중앙 객석 가까이로 옮겨, 그 위에 꽃다발을 놓아 화단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무대 전면에 직사각의 커다란 공간에 물을 채워, 연극 후반부 오필리어의 익사 장면에 사용되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객석 전면이 동선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가 부왕의 망령 역을 하고,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이 오필리어의 의식과 내면을 표현한다. 햄릿과 배우들의 극중극 장면에서는 기존의 작중인물이 1인 2역으로 배우 역을 한다. 연주자들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며 배경 막 가까이에서 연주를 한다.
연극은 도입에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하늘 끝까지 울리는 듯한, 맑고 청아한 노래와 함께 그녀가 얇은 백색 막을 서서히 열면서 극이 시작된다.
햄릿과 부왕의 망령의 조우가 춤사위로 시작되고, 아버지가 독살된 것을 햄릿이 알게 된다. 부왕의 급작스런 죽음에 따른 숙부의 대관식이 이어지고, 햄릿의 모친 거트루드와 숙부 클로디어스의 혼례로 이어지면서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와 오라비 레어티즈의 모습과 동태가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키지만, 햄릿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침잠된다. 연극은 원작의 분위기를 따라가지만,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춤과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노래, 그리고 출연자들의 열연은 관객을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경지로 이끌어 가면서 관객을 완전히 연극에 몰입시킨다.
3막 1장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다”는 무대 아래 객석 가까이에서 시작되고, 극중극 장면은 출연자들이 1인 2역으로 배우 역을 하는 것으로 처리되고, 숙부의 고뇌와 후회의 대사는 배경 가까이에서 햄릿이 칼 대신 권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연출되고, 햄릿이 모친 거트루드 왕비와 하는 대사를 엿듣는 폴로니어스를 살해하는 장면은, 투명 가리개 뒤에 숨은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총을 쏘아 쓰러뜨린다는 설정이다. 오필리어의 죽음은 무대전면 객석가까이 조성된 물웅덩이를 사용하고, 대단원에서의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장면은 세이버(saber) 검으로 이뤄진다. 종장은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맑고 청아하고 애절한 느낌의 노래로 막을 닫으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가 안무와 부왕망령, 파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이 오필리어의 영혼과 바울가수, 황성현이 햄릿, 구시연이 오필리어, 이설이가 거트루드, 이도엽이 클로디어스, 김충근이 폴로니어스, 이미숙이 무덤지기와 광대, 박신운이 호레이쇼, 백유진이 레어티즈, 악사로는 건반 이성영, 트럼펫·하모니카 김여레, 타악 김태훈, 베이스 원훈영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물론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의 무용과 바르바띠 바울(Parvathy Baul)의 노래가 어우러져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낸다.
안무 아스타드 데부(Astad Deboo) 김소이, 음악감독 윤경로, 무술지도 이상철, 기술감독 정태진, 무대디자인 임 민, 조명디자인 박성희, 조명어스스턴트 김명식, 조명 팀장 문동민, 사운드디자인 안창용, 사운드 오퍼레이터 조현정, 영상디자인 김 민, 의상디자인 자혜숙(상명대 교수), 의상 어시스트 한보경, 의상팀 김경민·이희주, 사진 Amit Kumar·한세영· 영상연출 강남, 프로듀서 InKo Centre 등이 조화의 극치를 이루어, 극단 서울공장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임형택 각색 연출의 <햄릿 아바따(Avattar)>를 2015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식초청작에 걸 맞는 고품격 고수준의 명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3,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Equus)>를 관람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는 1926년 잉글랜드의 리버풀에서 출생했다. 1935년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사를 했으며, 쌍둥이 형제인 안토니 쉐퍼와 함께 영국 세인트폴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1944년 두 형제는 학교를 떠나 군징집 대신 모집한 탄광근무를 지원하여 3년간 켄트와 요크셔의 탄광에서 일했으며, 이후 고향에 돌아온 피터는 케임브릿지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54년 런던에 있는 ‘부지 앤 호크스’ 악보 출판회사에 근무하던 중 그의 작품 <소금의 땅(The Salt Land)>이 영국의 한 TV에서 제작되고, 라디오 드라마인 <돌아온 탕부(The Prodigal Father)>가 BBC에서 방송되었다. 이후 두 개의 미스터리 소설(쌍둥이 형제 안토니와의 공동 집필), TV 스릴러 한 편을 썼고, 주로 문학과 음악에 관한 비평을 런던의 잡지에 실었다. 그 후 1964년 에스파냐의 잉카제국 침략을 주제로 한 서사시적인 희곡 <태양제국의 멸망(The Royal Hunt of the Sun)>이 영국 국립극단의 치체스터 페스티벌의 오프닝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국립극단의 정규 레퍼토리로 런던의 올드빅 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1965년 뉴욕에서도 공연되어 관객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피터 쉐퍼의 작품 중 최초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그 뒤에 쓴 <에쿠우스(Equus)>와 <아마데우스(Amadeus)>가 성공적인 공연을 거쳐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쉐퍼에게 토니상을 연속으로 안겨 주었으며 두 작품 모두 영화화되었다.
<에쿠우스(Equus)>는 말(馬)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자신이 사랑하던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 스트랑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피터 쉐퍼가 2년 6개월 동안 집필 1973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이 작품으로 1975년 토니상 최우수 극본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에쿠우스>는 영국,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며 그때마다 장기 흥행을 이루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9월 극단 실험극장에서 초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아마데우스(Amadeus)>는 1981년 토니상 최우수극본상과 1985년 제57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피터 쉐퍼가 음악계에서 떠도는 루머인 모차르트의 독살설에서 착안해 집필한 희곡이며, 이 작품은 연극보다도 영화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의 작품으로는 단막코미디 <블랙코미디(Black Comedy)>, <새하얀 거짓말(White Lies)>, <고해를 위한 전쟁(The Battle of Shrivings)>, <요나답(Yonadab)>, <고곤의 선물(The Gift of the Gorgon)> 등이 있으며, 현존 영국 극작가 중 가장 성공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
신정옥(申定玉 1931~) 교수는, 과거 영미희곡이나 구주대륙의 희곡을 일본어판을 참고해 번역한 1세대 번역가들과는 달리, 원작을 직접 번역한 영문학자이다. 최근까지 영미희곡과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번역 완간하는 등 한국연극계의 이바지한 공로가 지대하다. 현재 경향의 각 극단에서 신정옥 교수의 번역본으로 공연되는 영미희곡작품이 계속되고 있다.
<에쿠우스>영화로는 1977년에 시드니 루멧이 감독하고, 리처드 버튼과 피터 버스, 콜린 블레이커리, 조안 플로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둔바 있다.
피터 쉐퍼는 <에쿠우스>를 통해,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 충실한 지적 인간의 모습으로 닥터 마틴 다이사트를 등장시킨다. 그러나 다이사트는 알런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알런과 말, 그리고 알런에게 다가서는 한 여인과의 관계에 의해, 일곱 마리의 말의 눈을 알런이 찌르게 된 동기가 밝혀지면서 닥터 다이사트는 자신을 최고 권위자라고 자부했던 것에서 물러서 자신의 부족함과 몽매함을 깨닫게 된다.
알런에게 있어서 말은 신과 다름이 없다는 점, 그렇다면 알런의 반항심과 적개심은 어디로부터 창출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도덕심과 종교적 신앙에서 영향을 받는다. 늘 바이블을 들고 다니면서 어느 장소에서건 바이블을 꺼내 보이는 어머니의 과잉신앙과 이와는 대조적인 아버지의 무신론적 사고와 행동이 알런을 혼돈의 세계로 유도한다.
알런은 대다수 사람들의 통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알런의 이러한 사고는 여자 친구인 질과 마구간에서의 최초의 성 접촉에서 드러난다. 말들이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성행위를 질책하듯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알런은, 신처럼 여기던 말들의 눈을 하나하나 모조리…..
그런 후 알런은 법정에 서게 되고, 가정법원의 여판사 헤스터는 그녀의 경륜과 경험으로, 알런이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에서의 치료가 우선임을 감지하고, 친지인 닥터 마틴 다이사트에게 안내한다. 처음에 다이사트는 알런에게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찾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알런이 7세 어린아이시절 초원과 벌판을 달리는 말과 기수를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기수가 자신을 말 등에 태웠을 때의 기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향후 세상의 모든 것보다 말을 사랑하게 되고, 말을 신처럼 여기게 된 사실을 알아내고는, 인간의 고정관념에 대한 지성인 다이사트의 참 고뇌가 극의 진행에 따라 드러나게 된다. 알런이 성숙해 가면서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성과 본능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여자친구의 손에 영화관에서 도색장면을 관람하게 되고, 아버지에게 들켜 많은 관객이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혀 끌려 나오는 수치를 당한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알런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극장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나,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말라며 가버린다. 하늘처럼 생각했던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거리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그 후 계속 남아있는 본능적 충동 감으로 해서, 알런은 여자 친구인 질과 어두컴컴한 마구간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관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아닌, 많은 말들의 눈이 질과의 성행위를 질책하는 듯싶은 눈빛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착각하고, 알런은 달려들어 하늘처럼 여기던 말들의 눈을 모조리 꼬챙이로 찔러버린다.
알런에게 정상의 세계를 되찾아 주려는 임무를 맡은 닥터 다이사트의 딜레마는, 전문적 의료행위나, 도덕적, 또는 종교적 치료로, 알런의 정신상태를 여판사 헤스터의 요구대로 정상화시킬 수 있겠는가, 가선과 진선, 본능과 그 처리를 도덕적, 종교적 잣대로 측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등을 진정으로 고뇌하며 자신의 무능 몽매함을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태훈이 다이사트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간다. 차유경이 여판사 헤스터로 출연해 작품의 중량감을 더하고, 품격 높은 무대로 만들어 간다. 유정기와 이양숙이 알런의 부모로 출연해 출중한 기량을 보인다. 알런 역의 남윤호와 질 역의 박서연이 호연과 열연, 그리고 전라를 보이며 열연을 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안석환, 서영주, 서광일, 유지은이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노상원, 너제트, 은경균, 김태완, 조민교, 김재훈, 김성호, 임동현 등 말과 코러스로 출연한 출연자 전원의 매력적으로 다져진 몸매와 율동, 연기호흡 의 일치는 일품으로, 관객의 우레와 같은 환호와 갈채를 받는다.
기획 제작 이한승, 미술 신종한, 음악 김태근, 의상 조문수, 조명 조인곤, 음악 김태근, 안무 김윤규, 가면디자인 정윤정, 분장 김선희, 사진 이강물, 홍보영상 김 솔, 그래픽 다홍디자인·윤영준, 조명오퍼 김소영, 음향오퍼 강주희, 무대감독보 신현일, 조연출 김소영 등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일치되어, 극단 실험극장의 피터 쉐퍼(Peter Shaffer) 작, 신정옥 역,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Equus)를 탁월한 표현력과 박진감 넘치는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4,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대본구성·연출 <백석우화,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게릴라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대본구성·연출 <백석우화(白石寓話),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南 新義州 柳洞 朴時逢 方)>을 관람했다.
백석(白石, 1912~1996)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기행(夔行) 또는 기연(基衍)으로 불리었다. 작품에서는 거의 ‘白石(백석)’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 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그 뒤 8·15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함흥 소재)·여성사·왕문사(일본 동경) 등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다. (한때 북한에 남아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실치 않음) 백석은 그 시대 어느 문학 동인이나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
백석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이를 계기로 <마을의 유화>·<닭을 채인 이야기> 등 몇 편의 산문과 번역소설 및 논문을 남기고 있으나, 실제로는 시작(詩作) 활동에 주력한다.
1936년 33편의 시작품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한 시집 <사슴>을 간행함으로써 문단 활동이 본격화된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기까지 60여 편의 시 작품을 자신이 관여했던 <여성>지를 비롯하여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다.
1937년 겨울, 백석은 두 해 동안 묶여 있던 신문사 교정직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려고 함경도로 간다. 그는 이때의 전후 상황을 같은 해 9월 <조선일보>에 게재한 산문 <가재미·나귀>라는 글을 통해 밝힌다. 여행을 즐기던 그는 이 무렵 여러 고장을 돌아다니며 고유의 민속, 명절, 향토 음식 같은 갖가지 풍물과 방언 등을 취재해 시에 담아낸다. 이런 풍물과 방언은 특히 <남행시초(南行詩抄)>를 기점으로 이후 해마다 나오는 백석의 기행 시 형식의 연작시에서 표현된다. 이후 연작시를 주로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은 분단된다.
백석은 토마스 하디의 <테스>와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을 번역하기도 하고, 꾸준히 시를 발표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쉽게도 분단 이후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진 것이 없다.
백석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으로 입지를 굳힌다. 그의 시는 발표될 때마다 화제를 낳고, 그의 시가 실린 잡지는 책방에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토속성과 모더니티 시기 <구인회>를 비롯한 모더니스트들의 서구적 취향과 달리 백석은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이면서도 또 다른 향토 시인 김소월이 무색할 정도로 작품 속에 북녘 지방의 토속 방언들을 꽉꽉 채워 넣었다. 이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가늠하기 힘든 북쪽 지방의 방언들을 백석은 시 속에 아름답게 녹여낸다. 백석의 현저한 토속어 지향의 시 세계는 한국인의 얼과 넋을 황홀할 정도로 빼어나게 담아낸다.
사랑은 시의 자양분이듯, 백석의 작품도 그를 스쳐간 아프고 애틋한 사랑에서 완성된다. 당대 인기가 컸던 모던 보이 백석은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다. 노천명(1912~1957)과 최정희(1906~1990) 등 당대 주요 여류 문인도 백석에 대한 애정을 작품으로 표현할 정도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로 시작하는 노천명의 대표작 <사슴>의 사슴은 백석을 가리킨다.
이런 인기에도 백석의 사랑은 늘 비극적이다. 백석이 ‘란(蘭)’이라 지칭한 경남 통영 출신의 박경련은 그가 평생을 두고 사랑한 여인이다. 백석은 이화고녀를 다니던 박경련을 보고 한눈에 반했지만 박 씨 집의 반대로 결혼은 무산된다. 박 씨가 그의 친구이자 조선일보 동료 기자였던 신현중과 결혼하자 충격을 받고 백석은 함흥으로 떠난다. 박 씨를 만나기 위해 통영을 찾았던 기억은 시 <통영>등과 <남행시초>연작으로 남게 된다.
북에서 남쪽의 친구 신현중에게 써 보낸 시의 제목이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南 新義州 柳洞 朴時逢 方)>이다.
요정 대원각의 주인으로 법정 스님에게 길상사를 기부한 김영한 씨와의 사랑이야기도 회자가 되곤 한다. 실연의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던 백석은 1936년 함흥 영생여고보 회식에서 만난 기생 김 씨와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김씨를 ‘자야’라 부르며 잠시 동거하기도 했지만, 1939년 백석이 만주로 떠나며 헤어지게 된다.
자야는 1938년 발표한 백석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속 나타샤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백석과 헤어진 뒤 그녀는 백석을 그리며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한다. 자야는 책 <내 사랑 백석>에서 “백석이 사귄 다섯 여자 가운데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자야였고, 자신 또한 백석에 대한 사랑을 평생 올곧게 간직했다”고 말한 바 있다.
백석은 몇 작품을 제외한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철저히 억누르는 극도의 절제를 발휘한다. 바로 이런 것이 백석을 모더니즘적 시인으로 불리게 하는, 그러면서도 다른 모더니즘 시인들과 구별하게 하는 특징이다. 반 도시(反都市)적, 산촌(山村)적 성격은 백석의 시를 더욱 독특하게 보이도록 한다.
시집 『사슴』에는 총 3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도시 문명 또는 도시 감각에 바탕을 둔 시는 한 편도 없다.
흔히 백석 시에 나오는 시골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안온하고 풍요로운 전원으로 비춰진다. 때론 이런 그의 시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비판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삭이려는 시인의 힘겨운 얼굴이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음악시극 <백석우화>의 무대는 신문사의 편집실도 되고 북한문화예술위원회가 되기도 한다. 왼쪽에 책장과 긴 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오른편에는 소형 피아노가 놓여있다. 그 앞쪽으로 의자가 놓여있다. 당대 유명문인들이 등장하면 배경벽면에 문인들의 약력이 영상으로 투사되고, 백석의 시가 나열되면서 그 시를 노래로 부르면, 작곡자가 소개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북과 채를 든 소리꾼이 등장해 백석의 시를 소리하듯 읊는다. 작중인물들이 해설자 역할을 하고, 당대의 문인들과 백석과 연관이 있는 여인들이 등장해 독창과 합창으로 관객을 음악시극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피아노 연주자의 기량은 출중하기 그지없고 백석역의 배우는 실제 인물이 백석에 방불하다. 6 25 동란 중에도 백석은 고향을 떠나지 않지만, 북에서는 억지춘향으로 붙인 불온 시인이라는 명목으로 백석은 농장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된다. 거기서 마지못해 백석이 쓴 북을 칭송하는 글로 한동안 대접을 받고 명목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시작 발표대신 동요나 동화에 손을 대고, 백석이 소개한 이솝우화와 연관된 사건으로 해서 그는 삼수갑산으로 유배를 당하고, 그의 전 작품이 폐기 처리된다.
향후 30년 가까이 삼수갑산에서 지내며 백석은 시작을 했어도, 자신이 쓴 글을 곧바로 불쏘시개로 사용을 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그의 말년이자 한때 남북교류가 행해지던 당시, 고향후배의 자손이 남한에서 출판된 백석의 시집을 들고 방문한다. 백석이 가족과 함께 놀라고 기뻐하는 모습을 기념 촬영하는 장면과 소리꾼의 창과 출연자 전원이 백석 시를 합창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을 맺는다.
오동식, 김미숙, 이승헌, 강호석, 김아라나, 이동준, 허가예, 이혜선, 신명은, 서민우, 황근복 등 출연자 전원의 1인 다 역으로서의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열연과 열창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작곡 음악감독 권선욱, 작창 이자람, 작창협력 이지숙, 서도소리 강효주, 정가 박진희, 안무 박소연 등 스태프 전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대본구성 연출의 <백석우화(白石寓話)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南 新義州 柳洞 朴時逢 方)>을 독특하고 탁월한 한편의 음악시극(音樂詩劇)으로 탄생시켰다.
5, 극단 진일보의 김경익 작·연출 <아리랑 랩소디>
혜화동 동국소극장에서 극단 진일보의 김경익 작·연출의 <아리랑 랩소디>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한 유랑극단의 이야기다. 공연장소의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건 공회당에서건, 제대로 된 무대이건 아니 건을 불문하고, 우선 관객의 눈길과 관심을 끌어들여야 하기에, 공연 직전의 배우들의 묘기나 장끼가 한꺼번에 연주와 함께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시대적 배경이 일제치하라는 설정이고 당시 극단 토월회를 이끌었던 박승희의 행적을 뒤쫓는다.
조선후기에도 광대는 최하층 천민으로 취급되고, 비록 일제의 신학문과 예술에 대한 깨우침이 있었다고는 하나, 광대는 사사건건 연희활동에 제약을 밭고 숱한 검열의 대상은 물론 공연허가증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을 극복하면서 활동을 벌여야 했던 당시의 정황이 이 극에서 재현된다.
연극 <아리랑 랩소디>는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과 나운규의 <아리랑>을 접목시켜 재창작한 작품이다.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은 1975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치독일 휘하의 세르비아의 우쥐쩨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곳 시민들과 <쇼팔로비치 유랑 극단 단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희곡이다. 공연을 위해 전쟁지역을 마다않고 순회하며 공연해야 했던 극단 사람들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 사람들에게 연극이라고 하는 꿈과 이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을 절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극단 진일보의 공연에서는 나치 휘하의 세르비아를 일제치하의 조선으로 바꾸고, 온갖 제약과 방해를 극복하고 공연을 해야 했던 한 유랑극단의 고난과 애환의 행각을 그려낸 연극이다.
원래 <아리랑>은 박승희와 박진(朴珍)의 재기공연작품으로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으로 막을 올리고, 최승희(崔承喜)의 무용과 함께 1929년 11월초에 막을 올렸다.
내용은 일제의 식민통치로 토지를 잃고 북간도로 가는 한 실향민가족의 참담한 이야기다. 식민지수탈로 인한 민족의 궁핍과 수난을 반영했기에, 연극 이 공연이 되자 <아리랑 고개>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때부터 우리의 전통적인 민요인 <아리랑>은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아리랑 랩소디>에서는 유랑극단 단원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공연활동을 펴는 대목이 단연 볼거리다. 온갖 악 조건을 인내로 극복하고 유랑극단을 이끌어 가는 극 단장이자 아버지 같은 박승희, 탁월한 연기력으로 만 가지 역을 해내는 여배우 이며 극단의 어머니 같은 존재인 나영자, 마치 햄릿 같은 성격설정으로 현실과 연극 속에서 구분 없이 방황하는 남자배우 오희준, 아름다운 한 송이 꽃 같은 여배우 극단의 막내 김춘심이 단원이고, 여기에 유랑극단이 집을 풀고 머무른 집의 주인이자 술병을 늘 상 들고 다니는 주정뱅이 남편, 남편대신 가정을 억척스럽게 이끌어가는 욕쟁이 아주머니인 그의 아내, 이 내외의 아들은 말썽꾼이라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는 설정이다. 여기에 이 마을의 파출소장이 등장해 유랑극단을 통제하려 들면서 여배우에게 음흉한 눈길을 퍼붓고, 파출소 소속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방범대원 춘보, 그리고 백정의 아들이자 고문기술자에다가 피에 굶주린 야수 같은 모습의 박살제가 등장해 미모의 여배우 춘심에게 사랑을 느끼고 피범벅이 된 채찍을 버리고, 짐승 같은 모습에서 이성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차례로 펼쳐진다.
유랑극단은 도입에 이 지역 파출소의 공연허가증과 통행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접하게 된다. 물론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파출소장이나 임시직인 방범대원도 연극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연극에서의 역할 이름과 실제 이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가명사용 운운하며 범죄자 취급을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진다.
마을사람이나 집주인도 유랑극단 단원을 비천한 광대나 상것으로 취급을 한다. 그래도 유랑극단 단원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결심은 흔들림이 없다. 단원 중에는 지나친 열정 탓인지 연극과 현실을 구별 짓지 못하는 인물인 오희준이 있다.
젊은 미모의 여배우를 두고, 파출소장은 물론 집 주인까지 침을 흘리는 것으로 연출되고, 악의 화신처럼 묘사되어 등장하는 범죄자 고문 담당자인 박살제 역시 여배우 김춘심의 미모에 첫눈에 반한다. 김춘심은 부근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와 몸매를 자랑을 하고, 그것을 보고 치근거리는 집주인을 보고 그의 아내가 욕설을 바가지로 퍼 붇는다. 그리고 집주이 내외의 아들이 범죄자로 몰려 파출소에 수감된 것과 박살제에게 고문을 당해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당연히 공연을 두고 파출소장과 유랑극단 단장의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희극적으로 연출된다.
칠흑 같은 밤, 잠시 집밖으로 나온 김춘심에게 박살제가 슬그머니 다가선다. 경악하면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는 김춘심, 엉뚱한 마음을 먹고 다가선 박달제는 김춘심이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주변의 꽃 이름을 묻는 것에, 박살제는 원래 이 고장에서 태어나 잘 안다며, 꽃 이름 하나하나를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가깝게 된다. 그러나 몰래 이를 지켜본 마을사람들은 김춘심을 백정의 아들과 관계를 맺는 추잡한 여인으로 몰아붙여 집단구타를 한다. 김춘심은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만다.
파출소장은 유랑극단의 공연허가증을 김춘심의 몸을 대가로 맞바꾸려한다. 당연히 단원들의 반대에 접하게 되고, 희준이 등장해 현실과 연극을 구별 못하는 행동을 보이니, 파출소장은 희준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리고 김춘심에게 흉수를 뻗치려는 순간, 박살제가 등장해 춘심을 보호하려드니, 파출소장과 박살제의 결투가 벌어진다. 박살제는 파출소장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자신은 총격을 받고 쓰러져 절명한다. 김춘심이 박살제에게 다가가 부등켜안고 통곡을 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간다. 집주인의 아들은 죽은 오희준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말이나 석방된 것으로 소개가 된다.
대단원은 유랑극단의 박승희 단장이 죽은 단원 오희준의 무덤을 뒤로하고 단원들과 함께 다음 공연할 고장을 향해 출발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정희중, 지연우, 나하랑, 이현주, 장태민, 정명군, 신화철, 김덕환, 부혜정, 이승현, 유희제, 김도훈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기획 박정실, 무대미술 박은혜, 작곡 최우정, 편곡 신유진·최이삭, 안무 김종일, 조안무 황설악, 영상 송영범, 조명 박선교 등 스태프 전원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극단 진일보의 김경익 작·연출의 <아리랑 랩소디>를 우수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6,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에드워드 올비 작, 이경후 번역, 이병훈 연출의 <키 큰 세 여자>
명동예술극장에서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작, 이경후 역, 이병훈 연출의 <키 큰 세 여자(Three Tall Women)>를 관람했다.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년 ~ )는 미국의 극작가ㆍ연출가다. 워싱턴 출생으로 생후 2주일 만에 뉴욕의 대부호인 올비가(家)의 양자가 되었다.
번뜩이는 통찰력과 재치있는 대사로 결혼생활을 소름끼치게 묘사하면서 실재와 환상을 파헤친 작품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1962)로 잘 알려져 있다.
올비는 입양아로 뉴욕 시와 그 근처의 웨스트체스터 군(郡)에서 성장해 초트 학교(1946 졸업)와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에 있는 트리니티대학에서 공부했다(1946~47). 처음에는 소설과 시를 썼으나, 1950년대말 희곡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초기의 단막극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1959) <모래상자(The Sandbox)>(1960) <미국인의 꿈(The American Dream)>(1961) 등은 아주 성공적인 작품들로, 올비는 이 작품들을 통해 미국인의 가치와 인간의 상호관계를 치밀하게 파헤친 비평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첫 장막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1966 영화화)를 꼽는다. 모욕과 굴욕, 야만적인 재치, 고통스런 대결로 가득 찬 이 희곡은 즉시 찬사를 받았으며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밖에도 장막극 <꼬마 앨리스(Tiny Alice)>(1964) <미묘한 균형(A Delicate Balance)>(1966.퓰리처상 수상) <바다 경치(Seascape)>(1975.퓰리처상 수상) 등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각색한 작품을 발표했다. 창작 외에도 많은 연극을 연출했으며,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강연도 했다.
최초의 단막극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가 독일(1959)과 오프브로드웨이(1960)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폭력이 커뮤니케이션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 작품은 베케트 연극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한데 감동적인 우화와 신랄한 대사는 올비 특유의 것임이 분명하다. 이어서 교통사고로 죽은 흑인 블루스 가수 베시 스미스를 다룬 <베시 스미스의 죽음>(1960), 미국인의 생활을 통렬하게 풍자한 <미국의 꿈(The American Dream)>(1961), 그 밖에 <모래상자(The Sandbox)>(1960) 등이 계속 나왔다. <베시 스미스의 죽음>은 인종 문제를 다루어 사회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작으로는 <상자> 등이 있는데 매우 실험적인 단막극이다. 그 외 카즌 맥컬즈의 소설을 각색한 <슬픈 카페의 노래>가 있다. 에드워드 올비는 80년대 들어 한 동안 주춤하기도 했는데 <키 큰 세 여자(Three Tall Women)> (1991)로 재기에 성공했다.
에드워드 올비는 이 작품을 통해 다소 도전적이고 정열적인 20대, 중년을 넘어선 50대, 그리고 노년의 90대 여성을 등장시켜 제각기 연령에 따르는 인간의 사고, 특히 정상적인 사고가 후퇴하고, 신체마저 온전한 체형이 유지되지 않는 노년의 주인공과 그를 대하는 중년과 청년의 시각과 사고를 무대 위에 그려내고, 2막에서 노년의 주인공의 젊은 시절을 재현시켜 그녀의 우아하고 정정한 모습을 보이는 독특한 극작술로 극 비평가 그룹 상을 수상하게 된다.
<키 큰 세 여자>의 한국초연은 1991년 4월 극단 여인극장에 의해 신정옥 번역, 강유정 연출로 장중동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4월에 공연되었다.
국립극단의 백수련이 90대 노인 역을, 캐나다에 거주하다 이 작품을 위해 귀국한 실험극장 단원 이정희가 50대를, 신인이자 미모의 이현순이 20대를 맡아 호연을 보였다. 극단 여인극장에서는 1996년 6월에 종로 연강홀에서 재공연을 했다. 국내 대표적 여배우인 김금지와 이용이, 그리고 손봉숙이 노인과 중년, 젊은 여성을 각각 맡아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쳤다. 당시 무대미술은 송관우, 음악은 박형신이 각각 맡았다.
금번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공연에서는 연극의 도입에 망사막에 주인공이 젊은 시절 승마를 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담은 마름모형의 사진액자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사진액자가 잔뜩 걸려있는 영상이 투사되면서 막이 올라간다. 막이 열리면 초 호화주택의 거실이고, 중앙에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다. 침대 머리 위로 망사막에 투사되었던 사진액자들이 실제로 벽 전체에 걸려있다. 벽면 양쪽으로 커다란 창이 있고, 역시 망사휘장을 늘어뜨려 놓았다. 장식장과 탁자와 의자가 무대에 배치되고, 고급스런 장식물들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극장의 이층 오른쪽 발코니에는 연주자가 자리를 하고, 섹소폰 연주와 함께 막이 오르고, 대단원에서 그의 연주로 막이 내려간다. 거동불편한 주인공은 철제 환자이동 보행 기구를 사용하고, 간병인이 늘 따라다니며 보행 기구를 의자너머로 옮겨놓기도 한다. 2막에서 침상에 누워있는 노인 역은 인형으로 대체를 한다. 소품으로 서류가방과 서류가 사용되기도 한다. 이번 극에서는 출연자들의 의상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등장인물은 귀족적이고 자존심에 고집불통이인 92세의 노인이 환자이동 보행 기구에 의지해 등장하고, 52세라지만 나이가 더 젊어 보이는 미모의 간병인, 그리고 26세의 젊고 빼어난 미모의 재산관리인 등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인공은 젊은 이상주의자에서 중년의 현실주의자가 되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제 정신이 반, 치매증세가 반인 모습의 노인으로 변모해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으로 묘사된다.1막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과 그녀의 삶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젊은 재산관리인, 그리고 넓은 관용으로 노인을 감싸고 재산관리인을 다독거리는 간병인, 이들 세 여인이 노인의 서류서명과 관련 갈등국면이 펼쳐지고 팽팽한 긴장감에서 연극이 진행된다. 그러다가 노인이 침대로 가 누우면서 임종을 한다는 설정이다. 2막에서의 노인의 시신을 침대에 둔 채 과거로 회귀한다. 노인이 초로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간병인과 재산관리인은 노인의 중년 및 처녀시절을 각각 상징하는 분신으로 출연해, 갈등국면이 다시 한 번 펼쳐지지만, 대단원에서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박정자가 90대의 노인, 손 숙이 50대의 간병인, 김수연이 20대의 재산관리인, 아들로 허민형, 색소폰 연주자로 최관식이 등장해 호연과 성격창출, 그리고 연주로 연극을 이끌어 가고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기획 박현숙, 무대 박동우, 조명 이동진, 의상 송은주, 드라마트루크 이은기, 분장 김종한, 영상 정재진, 소품디자인 김상희, 음향 최환석, 화술지도 류 미, 조연출 이상희, 연출부 이은송 그 외의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원작, 이경후 번역, 이병훈 연출의 <키 큰 세 여자(Three Tall Women)>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7, 극단 애플씨어터의 안톤 체홉 작, 전 훈 번역·연출 <챠이카>
혜화동 눈빛극장에서 극단 애플씨어터의 안톤 체홉 작 전 훈 번역·연출의 <챠이카(갈매기)>를 관람했다.
안톤 체홉(러시아어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영어 Anton Pavlovich Chekhov,문화1860~ 1904)은 의사, 소설가, 극작가다.
체호프는 모스크바 예술극단과의 유대가 강했고,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다. 1901년에 결혼한 “올리가 크니페르”는 예술극단의 여배우이기도 했다.
1887년에 쓰여진 <이바노프>는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희곡 <프라토노프>와 <숲의 정(精)> 실패는 체호프의 극작을 한때 멈추게 했으나, 이 무렵에 쓰인 단막극 <곰>(1888)이나 <결혼신청>(1889) 등은 다행히 성공을 거두었다.
체호프의 본격적인 극작은 1896년의 <갈매기>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 및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1), <벚꽃동산>(1903) 등은 모두 체호프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근대극 가운데 걸작이며 새로운 형태의 회화극(會話劇)을 확립했다.
<갈매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초연 때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으나 2년 후에 다시 새로 설립된 모스크바 예술극단이 다루었을 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희극으로서 쓰여진 이 작품을 오히려 비극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가 진정으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다고 체호프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후 체호프의 작품은 모두 모스크바 예술극단이 상연하게 됐다.
<바냐 아저씨>는 앞서의 <숲의 정>을 다시 쓴 것으로서 그 톨스토이즘이나 멜로드라마의 성격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세 자매>는 초연 후 전집에 수록되자 다시 고쳐쓴 바 있다. 마지막 작품인 <벚꽃동산>은 체호프가 44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바로 그해 그의 생일에 초연의 막이 올랐다.
연극 <챠이카(갈매기)>의 무대는 배경과 좌우 벽에 자작나무가 둘러섰다. 왼쪽에 가설무대가 있고, 막은 좌우로 열고 닫게 되어있다. 공연시에는 무대 오른쪽에 앉을 수 있도록 등받이 없는 긴 나무벤치가 사용이 된다. 문틀이 무대 좌우에 서 있어 등퇴장 로가 되고, 책장과 장식장, 그리고 안락의자가 배치되고, 무대 오른쪽에 긴 벤치가 세로로 놓여 후반에 침상으로 사용되고, 벽면 가까이에 놓인 탁자위에는 술병과 술잔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환자이동용 의자가 사용되고 죽은 갈매기와 박제된 갈매기가 소품으로 등장한다. 계절변화에 따른 출연자들의 의상도 눈길을 끈다.
연극은 원작대로 펼쳐진다. 꼬스챠는 가족들 앞에서 니나를 주연으로 자신의 희곡을 공연한다. 하지만 공연하기에 앞서 니나에게 키스를 퍼붓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꼬스챠의 어머니 아르까지나는 아들의 공연을 가볍게 여기고 처신한다, 이 때문에 화가 난 꼬스챠는 공연을 중단하고, 막을 닫아버리고, 자리를 떠난다. 그 사이 니나는 명성 있는 작가 뜨리고린을 소개받게 된다. 뜨리고린이 인사로 좋았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니나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남은 관리인의 딸 마샤는 닥터 도른에게 자신이 꼬스챠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르까지나는 자신을 자랑해 보이고, 아르까지나의 부친 쏘린과 닥터 도른은 언제나처럼 논쟁을 벌인다. 아르까지나는 시내로 나가겠다고 하지만 주택관리인 사므라예프는 말을 내주지 않으려 한다. 자리에 동석해있던 니나는 갈매기를 사냥하고 돌아오는 꼬스챠를 반기지만, 작가 뜨리고린 때문에 기분이 상한 꼬스챠는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며 자리를 떠난다. 뜨리고린과 니나는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은연중에 마음이 밀착되는 정황을 보인다. 사므라예프의 부인 뽈리나는 닥터 도른에게 좋아하는 심정을 드러내며 가까이 다가간다. 닥터 도른은 자신은 55세라며 늙은 나이임을 애써 강조를 하지만, 뽈리나에게는 도른의 소리가 더욱 다정하게만 들릴 뿐이다.
이런 경황 중에 꼬스챠는 자신이 사랑하는 니나가 작가 뜨리고린에게 보이는 열정을 감지하고 일종의 시기심과 질투에 따른 증오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까지 기도하지만 실패로 그친다.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은 모스크바로 돌아가기로 한다. 마샤는 술에 취해 작가 뜨리고린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사랑을 하지는 않지만 메드베젠꼬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아르까지나는 아들 머리의 붕대를 갈아주면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공연관계나 작가 뜨리고린 때문에 틀어졌던 어머니와 아들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은 출발한 다. 그러다가 지갑을 일부러 탁자 위에 놓고 나간 뜨리고린은 잠시 되돌아 와 니나와 상면한다. 장차 배우가 되려는 니나가 뜨리고린에게 보이는 기대와 열정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2년이 흐른 것으로 설정된다. 그 사이 꼬스챠는 소설가가 된다. 꼬스챠의 설명으로 니나가 뜨리고린의 사생아를 낳고, 아이는 죽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결국 뜨리고린은 니나와 헤어져, 옛 애인인 아르까지나와 재결합하고, 니나는 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한 채 자신의 고향으로 잠시 되돌아 온 상태다. 관리인의 딸 마샤와 메드베젠꼬는 결혼했지만 두 사람사이에 사랑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닥터 도른의 종용으로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은 아르까지나의 부친 쏘린을 만나기 위해 돌아온다. 노년의 쏘린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인다.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을 비롯해 사람들이 거실에서 카드놀이를 하다가 내실로 이동을 한다. 그 사이 혼자 작업실에 남아 집필을 하던 꼬스챠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초라한 모습의 니나와 상면한다. 하지만 꼬스챠는 니나를 반기고 사랑하고 있다는 심정을 몸과 마음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 소리가 니나에게는 당나귀 귀에 코란을 읊는 격이라, 니나 자신은 여전히 뜨리고린을 사랑하고 있음을 꼬스챠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니나는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꼬스챠를 떠나간다. 니나가 떠나자마자 꼬스챠는 탁자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니나가 나간 출구로 향한다.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 그리고 카드놀이 참가자들이 다시 무대로 등장해 판을 벌일 때 총성이 울린다. 닥터 도른이 약품이 폭발한 듯싶다며 출구 쪽으로 간다. 잠시 후 도른이 나와 역시 약병 폭발소리였다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뜨리고린을 손짓해 부른다. 닥터 도른은 뜨리고린에게 어서 아르까지나와 함께 이 고장을 떠나라며, 꼬스챠가 자살한 것을 뜨리고린에게만 알린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 속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그간 국공립극단을 비롯해 많은 극단에서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공연했지만, 이번처럼 적절한 출연진의 기용은 없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중인물의 성격에 걸 맞는 배우를 선정한 것으로 평가하겠다.
쏘린 역의 정상철은 물론, 사므라예프 역의 문영수의 배역선정은 적절해 극의 주춧돌 역할을 했고, 도른 황찬호, 뽈리나 김가영, 마샤 안나영, 메드베젠꼬 문영동 등의 출연진은 극의 대들보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으며, 아르까지나 조경숙, 뜨리고린 김진근, 꼬스챠 이동규와 니나 정유안은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킬 정도의 매력적인 모습과 탁월하고 출중한 연기로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이주화, 심려진, 신철진, 김대건, 서경화, 김세동, 서승희, 한범희, 장정인 등이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무대 Dmitree JH, 음향 Nikita Project, 조명 Team 3XL, 조연출·드라마투르기 임주희, 연출부 이도경·권대현, 무대감독 김정현, 무대매니저 임주희, 분장 김수경, 하우스매니저 맹호영 그 외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애플씨어터의 안톤 체홉 작, 전훈 번역·연출의 <챠이카(갈매기)>를 연출력이 감지되고, 출연진의 성격창출과 호연이 길이 기억에 남는 우수 걸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8, 한일합작연극 성기웅 작, 타타 준노스케 연출의 <태풍기담(颱風奇譚)>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한일합작연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성기웅 작, 타다 준노스케 연출의 <태풍기담(颱風奇譚)>을 관람했다.
성기웅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국 예술 종합 학교 연극원 예술 전문사 연출과를 졸업하고, 2003년 <삼등병>을 집필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형사 홍윤식> <소설가 구보씨의 경성 사람들> <태풍기담>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정물화> <서울노트> <재생> <과학 하는 마음> <해님 지고 달님 안고> 발표 공연하고, 현재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된 앞날이 발전적으로 기대되는 작가 겸 연출가다. 2011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2013년 두산연강예술상 공연부문 수상, 같은 해에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연극부문 수상자이다.
타다 준노스케(多田淳之介)는 일본 공립극장 후지미 시민문화회관 예술감독이자 극단 도쿄 데쓰락 대표로 작가 겸 연출가다. 한일합작연극 <모험왕>과 <신모험왕>을 성기웅과 공동집필하고 연출했다.
<세 사람이 있어> <재 생> <로미오와 줄리엣> <왈츠 맥베드> <리어왕> <햄릿> 그 외 작품을 쓰거나 연출했다.
2015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인 연출가로 기록된다.
<태풍기담(颱風奇譚)>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변형시킨 작품이다. 템페스트의 시대적 배경을 조선왕조말기로 바꾸고, 일본이 조선을 병탄(倂呑)하자 왕은 공주를 데리고 절해의 고도로 피신을 해 국권회복을 노린다. 그러나 왕의 아우는 일본에 동조를 하고 일본 귀족인 공작의 딸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국권회복을 염두에 두고는 있으나, 이미 조선은 패망해버린 것으로 설정이 된다.
왕은 섬의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고, 도술까지 부려 위세를 떨친다. 그러나 공주는 원주민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망나니로 등장하는 캘리번에게 까지 정을 쏟는다.
그런 와중에 왕의 도술로 태풍이 일어나고, 유럽을 순방하고 오던 일본공작일행의 선박이 난파를 당하고, 일행은 이 섬에 도착을 하게 된다. 일행 중에는 왕의 아우 내외와 호시탐탐 일본국권찬탈을 꾀하는 인물과 선박의 인부들도 함께 표류해 도착한다. 그리고 공작의 젊고 잘생긴 아들인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외따로 도착한다. 공주가 난생처음 원주민이 아닌 외지 인물인 공작의 아들을 대하고, 첫눈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공작 아들 역시 공주의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미모에 반해 운명처럼 이끌린다. 공작의 아들은 문학서적을 늘 손에 들고 다니고, 두 사람은 조선어와 일본어라는 언어의 불통을 한문필담으로 극복해 간다. 부모가 태풍으로 인해 익사한 것으로 안 공작아들은 아름다운 공주와 부부의 연을 맺기로 한다. 공주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 원주민 망나니가 그 동안 난파한 선박의 인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부하로 삼고, 부하들이 망나니를 왕처럼 대접을 하는 바람에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망나니는 공주가 외지인에게 마음을 쏟는 모습에 분노를 표하고, 공작의 아들에게 결투를 청한다. 두 사람이 대결을 하려하니, 공주는 당연히 말리려고 애쓴다. 이들은 싸우며 퇴장을 한다.
일본공작과 왕의 동생부부가 등장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등장해 자리에 눕는다. 공작을 암살해 정권을 찬탈할 틈을 노리는 인물들도 함께 도착해, 모처럼 기회를 잡은 듯, 공작을 암살하려 장검을 뽑아든다. 왕이 도술로 암살자 두 사람을 제지한다. 왕의 뜻을 따르는지 하늘에서 커다란 그물이 암살자 머리위로 떨어져 두 사람을 덮어버린다. 그런데 떨어진 그물은 만국기로 되어있다.
왕과 왕의 아우의 상면이 이루어진다. 아우는 왕에게 깍듯이 황제예우로 대하고, 무릎을 꿇어 큰 절을 올린다. 공작도 왕에게 큰 절을 올린다. 왕은 노여움을 풀고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세 개의 태극문양으로 된 기가 진수성찬으로 묘사된다. 이 자리에서 왕은 극진한 예우를 받지만, 조선은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나라일 뿐, 국권회복은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왕은 한숨과 함께 깨닫고 왕은 자리를 뜬다.
포식을 한 후 공작과 왕의 아우 내외는 그 자리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다. 그 때 암살자들이 그물을 젖히고 나와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살육이 벌어진다. 모두 그 자리에 쓰러진다.
공작의 아들이 등장해 이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망나니 일행이 돌아온다. 망나니와 인부들은 공작의 아들을 싸움 끝에 살해한다. 물론 공작의 아들이 사관학교출신이라 무예가 출중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검보다 들고 다니던 책을 중히 여겼기에 공작의 아들은 결투에서 패해 쓰러진다. 그의 시신에 태극문양의 기가 덮여진다.
망나니는 그동안 행해진 왕의 도술이 왕의 온갖 서적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알고, 망나니는 부하로 삼은 난파선의 인부들과 함께 왕의 서적을 모조리 가져다 쌓아놓는다. 그리고 불을 붙인다. 왕이 돌아와 이 광경을 보고 분노한다. 그리고 불을 끄라고 명을 한다. 그러나 왕의 말을 듣는 사람을 아무도 없다.
그때 태풍이 다시 일기 시작하고, 요란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왕을 비롯해 원주민과 선박의 인부들이 경악하며 하늘을 본다. 폭음과 연기 속에서 섬의 화산이 폭발한다. 천지가 붉은 빛으로 변하며 화산폭발의 굉음과 더불어 장관을 이룬다.
대단원에서 다시 청명한 날씨로 회복이 된 섬의 풍경이 펼쳐지고, 공주가 어린애를 안고 원주민 망나니와 함께 가벼운 걸음으로 등장해 주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함께 등장한 선박인부들이 손에 일장기를 펄럭이며 퇴장하면 공주와 망나니도 뒤따라 퇴장하고, 극의 도입에서처럼 미모의 여자정령의 마무리 책읽기와 함께 연극은 끝이 난다.
정동환이 조선왕, 박상종이 왕의 아우, 오타 유타카가 공작, 나가이 히데키가 남작, 전수지가 공주, 야마자키 코지가 공작의 아들인 장교, 마두영이 원주민 망나니, 나츠메 신야가 선박인부, 백종승이 선박 인부, 조아라가 섬의 정령인 가희, 이토 카오리 섬의 정령 무희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이너 시마 지로, 조명디자인 이와키 타모츠, 협력연출 민새롬, 의상 김지연, 분장 장경숙, 드라마터그 마정화, 번역 이시카와 쥬리, 미술코디네이터·소품 유영봉, 음향 정혜수, 무대제작총괄 최영길, 무대제작소 무대위의 사람들 주경석, 조연출 정 현, 무대감독 구봉관·안경호, 통역·제작보 김정민, 제작 고주영·야노 사토시, 기획·제작 마츠이 켄타로, 디자인 투바이투 하석현, 사진 이강물 등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한일합작연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성기웅 작, 타다 준노스케 연출의 <태풍기담(颱風奇譚)>을 창의력과 연출력이 감지되는 걸작변형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 NA 뮤지컬 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주아 각색·연출의 창작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NA 뮤지컬 컴퍼니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주아 각색·연출의 창작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했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2층 구조의 건물 조형물에 다섯 개의 방을 만들어, 2층 중앙 방은 베로나 영주, 그 하수 쪽 방은 줄리엣, 상수 쪽 방은 몬테규 부부, 아래층 중앙은 출입문, 하수 쪽 방은 캐플릿 부부, 상수 쪽은 몬테규 부부나, 독약 판매자의 방으로 설정된다. 도입이나 중반에 망사막을 건물조형물 앞에 드리우고, 베로나 시의 풍경, 웅장한 돔 형 건물의 내부, 숲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호수 등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무대 바닥에는 한단높이의 마루를 깔아 거기에 영상을 투사해 호수나 수영장에 물이 넘치는 것 같은 효과를 창출해 낸다. 음악연주는 녹음으로 처리되고, 무대 좌우는 등퇴장 로, 한단 높이의 단 아래 쪽은 거리나 통로로 사용된다. 출연자의 의상과 분장, 그리고 가면과 소품이 극의 시대적 배경을 짐작토록하기에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 조명의 극적효과 창출이 감지되기도 한다.
작품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베로나 (Verona). 몬태규 가 (Montague 家)와 캐퓰릿 가 (Capulet 家)라고 하는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두 가문이 있었다.
몬태규 가의 아들인 ‘로미오 (Romeo)’는 원래 ‘로잘린 (Rosaline)’ 이라는 여성을 사랑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순결을 맹세한 상태였고, 로미오는 이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 있었다. 몬태규가의 가주는 방안에 틀어박혀 폐인 상태가 되어버린 아들이 걱정되어 가문의 일원인 ‘벤볼리오 (Benvolio)’를 시켜서 사정을 알아보게 하는데, 로미오와의 대화에서 그가 상사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낸 그는 다른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고 로잘린을 잊어버릴 것을 권유한다. 로미오는 로잘린보다 아름다운 여인은 있을 수 없다며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캐퓰릿 가의 무도회에 로잘린도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선 마지못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로미오는 벤볼리오와 그의 친구 ‘머큐시오 (Mercutio)’와 함께 캐퓰릿 가의 무도회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캐퓰릿 가의 영애 ‘줄리엣 (Juliet)’을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날 밤 로미오는 한밤중 담장을 넘어 캐퓰릿 가의 저택에 몰래 숨어들어가 작품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을 가택의 발코니에서 연출한 뒤 서로 결혼할 것을 약속한다. 두 사람은 두 가문을 서로 화해시킬 방법을 물색하고 있던 ‘로렌스 신부 (Friar Laurence)’의 도움으로 비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한편, 캐퓰릿 가의 성마른 ‘티볼트 (Tybalt)’는 몬태규 가의 일원인 로미오가 자기 가문의 무도회에 숨어들어왔던 것을 직접 목격하여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 그는 바로 로미오를 처단하려고 했지만, 캐퓰릿 가의 가주가 모든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티볼트를 막았다.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났던 그는 이를 매우 치욕적으로 여겼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밀 결혼식 이후, 우연히 거리에서 로미오, 머큐시오, 벤폴리오와 마주친 티볼트는 로미오를 즉시 처단하려고 하지만,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이었던 티볼트와 차마 결투를 할 수 없었고, 급기야 로미오가 싸우지 말고 좋게 넘어가자고 티볼트에게 애원하기에 이른다. 남자답지 않은 로미오의 행동을 지켜보던 머큐시오는 보다못해 직접 티볼트와 결투를 벌였고, 로미오는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만 그 사이 벌어진 티볼트의 기습공격으로 머큐시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 죽어가면서 그는 몬태규 가, 캐퓰릿 가 두 가문에 저주를 내리고 로미오를 원망하며 퇴장한다. 로미오는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고 자신의 행동을 크게 뉘우치며 복수를 다짐하고, 얼마가지 않아 티볼트는 로미오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이미 극 초반부터, 세대를 걸쳐 지속되는 두 가문의 갈등에 지쳐버린 베로나의 영주는, 도시 내에서 싸움을 일으키는 모든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상태였다. 로미오 역시 꼼짝없이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었으나, 영주의 자비로 인해 ‘만토바(Mantua)로의 추방’에 그치게 되었고 소식을 전해들은 로렌스 신부는 로미오에게 그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지만, 로미오는 줄리엣이 있는 베로나를 떠난다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고문이라며 오히려 비통해한다. 자비로운 영주의 결정을 감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로렌스 신부는 로미오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꾸짖지만, 이윽고 신부는 로미오를 달래기 위해, 로미오가 만토바에 있는 사이에 자신은 비밀리에 올려졌던 두 사람의 결혼식을 모두에게 알려 두 가문을 화해시킨 뒤, 영주에게 탄원하여 로미오를 면죄시키고 두 사람을 맺어준다는 계획을 세우고, 로미오는 그제서야 진정하여 신부가 시킨대로 줄리엣의 방으로 가게 된다. 두 사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룻밤을 보낸 뒤, 로미오는 영주의 형을 이행하기 위해서 베로나를 떠나 만토바로 향한다.
하지만 줄리엣의 아버지, 캐퓰릿 가의 가주는 줄리엣을 ‘패리스 백작 (Count Paris)’에게 결혼시키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이런 아버지의 명령을 들은 줄리엣은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격노한 아버지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설상가상으로 처음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을 지지했던 줄리엣의 유모도 로미오가 추방된 지금에서는 차라리 패리스 백작과 결혼하는 것이 낫다며 조언까지 한다.
계획이 틀어지자, 로렌스 신부는 마신 이를 일정시간 동안 ‘가사 (假死)’ 상태로 만드는 ‘비약 (秘藥)’을 준비하고 두번째 계획을 세우는데, 이는 줄리엣과 패리스의 결혼식이 이루어지기 전 로렌스 신부가 준 비약을 마시고 가사상태에 빠져든 줄리엣을 가족들은 그녀가 죽었음을 착각하고 그녀를 무덤에 안치할 터이고, 그 사이 로렌스 신부 자신이 쓴 편지를 받은 로미오는 계획의 전말을 전달받게 되며, 이후 몰래 줄리엣의 무덤에 잠입해 가사 상태에서 깨어난 줄리엣을 데리고 만토바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계획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계획은 실패할 위험이 없어보이던 괜찮은 계획이었다.
로렌스 신부에게서 계획을 전해들은 줄리엣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상태였고, 망설임 없이 신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녀는 패리스 백작과의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말하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크게 만족하며 결혼식 날짜를 당겨 혼사를 서두르기를 결정하고, 또다시 계획이 틀어지는 느낌을 받은 로렌스 신부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한편, 계획의 전말이 담긴 로렌스 신부의 편지를 로미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토바로 향한 존 신부는 편지 전달에 실패한다. 당시 만토바 주변에는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었고, 병이 확산도니 집에 머물렀다는 의심을 받은 존 신부는 집안에 격리되었었기에 만토바로 나갈 수 없던 것이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존 신부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로렌스 신부는 뭔가 단단히 틀어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즉시 빠루를 들고 줄리엣이 갇혀있을 무덤으로 향한다. 로미오가 돌아오기 전에 관 뚜껑을 열고 줄리엣을 자신의 방에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이미 몬태규가의 하인 ‘발타자르 (Balthasar)’가 줄리엣이 죽었다는 사실을 로미오에게 알린 상태였고, 소식을 전해들은 로미오는 독약을 사들고서 줄리엣이 잠들어있다던 무덤으로 향한다.
발타자르와 함께 무덤에 도착한 로미오는 자신이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엿보기라도 했다간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서 무덤 바닥에 뿌려버리겠다고 협박했고, 그를 납골당 바깥에 세워놓은 채 줄리엣의 무덤 앞에서 슬퍼한다. 하지만 납골당은 이미 줄리엣의 무덤을 먼저 찾아온 패리스 백작이 로미오가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선 몸을 숨겨둔 상태였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밀결혼식에 대해 알 턱이 없던 그는 티벌트를 죽인 로미오가 줄리엣의 시체에게 무언가 몹쓸 짓을 하려 한다고 여겨 로미오와 결투를 벌인다. 패리스를 알아보지 못한 로미오는 자신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미친 사람을 건드리지 말고 도망치라며 경고를 하지만 그런 협박이 통할리 없는 패리tm는 로미오를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한다. 이에 로미오는 패리스와의 결투를 시작하고, 결과는 패리스의 죽음으로 끝난다. 자신이 방금 죽인 사람이 패리스라는 것을 확인한 로미오는 불운하기 짝이 없기로는 우리 둘 다 마찬가지라고 한다. 다음 장면은 줄리엣을 따라가기 위해 독약으로 자살하는 로미오로 장식되고, 잠시 후에 깨어난 줄리엣은 죽어버린 로미오를 보고 슬퍼하며, 로미오의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결국 두 사람의 죽음으로 두 가문의 오랜 불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음악극의 내용과 진전은 원작에 충실하다. 주요출연진의 독창곡이라든가 합창곡, 그리고 배경음악이 극의 흐름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출연진의 가창력과 호연이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잔치장면에서의 군중무용이나 잔치음식을 나르는 하인들의 율동도 수준급이라 안무가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1시간 45분의 공연이 무척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젊은 관객 뿐 아니라, 노년의 관객까지도 즐길 수 있도록 연출한 연출가의 기량이 감지되는 공연이다.
신 민과 오정석이 로미오, 이지유가 줄리엣, 이주영이 몬태규, 이효심이 몬태규 부인, 이준녕이 캐플릿, 이은주가 캐플릿 부인, 김재민이 머큐쇼, 우영민이 밴볼리오, 한상돈이 티볼트, 신시은이 유모, 심형준이 영주, 허세직이 패리스 백작, 윤승욱과 김태향이 로렌스, 나정혁이 존 신부, 그리고 서일환, 김희연, 신성진, 원다연, 정소영, 김찬후 등 출연진의 호연과 열창 그리고 검 대결과 율동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기획 전명철·노주현, 기획보 김소리, 조연출 이정연, 음악감독 시온성, 안무감독 김상준, 영상디자인 신정엽, 무대디자인 이윤수, 조명디자인 장영섭, 의상디자인 이혜정, 무대감독 신정식, 분장디자인 희 메이크업, 인쇄디자인 이지현, 경미연 등 제작진의 열정과 (주)이화공업의 후원이 형상화 되어, NA 뮤지컬 컴퍼니의 윌리엄 셰익프피어 원작, 이주아 각색·연출의 창작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걸작 음악극으로 창출시켰다.
10, 극단 대학로극장과 창작집단 상상두목의 최치언 작, 이우천 연출의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알과핵 소극장에서 극단 대학로극장·창작집단 상상두목의 최치언 작, 이우천 연출의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잔 사람들에게>를 관람했다.
최치언(1970~)은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났다. 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1학년이던 1999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당선돼 등단했다. 2001년에는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2003년에는 우진 문화재단 장막희곡 공모에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시집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 할 수 있다’ 시화집 ‘레몬트리’ 외에 희곡 ‘코리아 환타지’, ‘밤비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언니들’ 등을 집필하였으며 극작가 및 총체극 연출가로 활동했다. 2009년 대한민국연극대상 희곡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 대산문학 희곡상, 2012년 전주영상위원회 시나리오 우수상, 2014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및 작품상 수상했다. 바로 이 수상작이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이다.
작품으로는 <코리아 환타지> <연두식 사망사건> <너 때문에 산다>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사랑해줘, 제발> <언니들> <미친극> <꽃과 건달과 피자와 사자> <삼국유사 프로젝트-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숲속의 잠자는 옥희> <소뿔 자르고 주인이 오기 전에 도망가 선생> 등이 있다.
무대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청년의 옥탑 방이다. 건물 지붕을 약식으로 조성하고, 벽에는 책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과 책 뭉치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냉장고가 보이고, 중앙에 바퀴가 달린 환자용 침대가 놓여있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긴 안락의자도 문 입구에 놓여있다. 문은 틀만 세워져 있다. 탁자 위에는 소형 라디오도 보인다.
청년은 동화작가다.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부모가 없고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간 후 뇌성마비를 앓는 것으로 설정된다. 청년이 장기매매를 하겠다고 신청을 했는지, 청년의 신장 하나를 구입하러 온 여인이 찾아온다. 여인은 아이가 있고, 그 아이에게 빠른 기간 안에 신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것으로 소개가 된다. 여인은 청년을 관찰한 뒤, 신장을 떼어갈 의료진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되어있다. 청년은 여인에게 본명을 무시하고 임 애자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따귀를 때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여인은 불응하지만 청년의 급작스런 밀착에 순간적으로 따귀를 때린다. 본래 임 애자라는 여인은 청년처럼 뇌성마비를 앓는 처녀의 이름이고, 청년의 첫사랑이라는 설명이다. 여인은 임 애자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차츰 자제를 하고 받아들인다. 여인이 돌아가면, 청년의 이모가 긴 빗자루를 들고 마녀행세를 하며 등장을 하고, 이모부는 천정에 달린 밧줄을 타고 날아 들어온다. 냉장고 속에서는 청년의 형제로 보이는 남성이 머리카락과 눈썹에 서리가 낀 모습으로 등장해 부산을 떤다. 세 남녀는 청년을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친자식이나 형제처럼 대한다. 청년은 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차근차근 동화를 써 간다. 여인이 다시 등장해 장기 값을 치르고, 장기구매와 관련 있는 남성도 등장해, 청년의 장기를 떼어가겠다고 하니, 청년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면서, 이 언짢고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언젠가 선(善)의 화신(化身)이 등장해 장기를 떼어감과 동시에 자신을 구원해, 온전한 신체로 만들어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또 그러기를 소망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남성은 욕설을 퍼붓고 떠나간다. 이모와 이모부가 언제나처럼 소란을 떨며 등장하고, 냉장고 속에서 남성이 다시 나오고, 장기매매 관련회사 여직원 3인이 청년을 감시하듯 지켜보면서 한바탕 화려한 장끼자랑을 펼치기도 하지만 청년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여인의 고뇌가 객석에 전달된다. 시간이 흐르고, 이모부 그리고 이모와 함께 청년의 소망을 들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검은 모자와 검은 옷에 검은 가방, 그리고 검은 신을 신은 신사가 자신이 바로 선의 화신이라며, 방벽을 넘어 차곡차곡 쌓아놓은 벽의 책 뭉치를 밟고 방바닥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청년의 신장을 떼어낼 차비를 한다. 그러나 청년은 그 사나이를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신장떼어내기를 거부하고 동화를 계속 쓴다. 결국 검은 옷의 신사도 빈손으로 되돌아간다. 여인은 청년의 동화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한다. 동화 속에서 청년과 청년의 첫사랑 여인인 임 애자가 등장해 함께 뇌성마비 증세를 보이며 지고지순의 사랑이 펼쳐지기도 한다. 잠시 후 장기구매와 관련 있는 남성이 서류뭉치를 들고 등장한다. 그리고 청년이 예전에 신장 하나를 떼어낸 사실이 적힌 서류를 보인다. 청년이 신장을 떼어준 여인의 이름이 임 애자라는 게 밝혀진다. 여인은 경악한다. 신장이 하나밖에 없는 청년에게서 어찌 신장을 떼어낼 것이며, 더구나 시각을 다퉈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면서 여인은 분노와 절망감에서 오열(嗚咽)한다. 장기매매 남성은 청년을 죽도록 폭행하기 시작한다. 여인은 그러한 남성에게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른다. 남성이 씩씩거리며 퇴장하면, 이모와 이모부, 냉장고 속의 인물, 그리고 검은 옷의 신사가 다시 등장해 쓰러진 청년을 끌고 퇴장한다. 여인은 청년의 자리로 가 청년이 마무리 하지 못한 동화를 자신이 직접 가필(加筆)을 해서 완성시킨다. 그러는 과정에 여인은 차츰 뇌성마비환자로 변모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정우준이 청년, 이지하가 여인, 이승훈이 이모부, 천정하가 이모, 강진휘가 장기매매 회사 남성, 권택기가 검은 옷 신사, 황무영이 냉장고 속 남성, 박서혜가 뇌성마미 첫사랑 처녀, 이훈희·최소영·박정화가 장기매매회사 여직원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관객을 시종일관 연극에 몰입시키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투르크 양근애, 무대 임 민, 조명 류백희, 의상 박인선, 음악 서상완, 분장 이지연, 소품 이 설·오정민, 기획홍보 원인진·구한민, 조연출 임지성, 조명감독 이승주, 조명오퍼 황환준, 음향오퍼 김진호, 분장보 나소라·이수경, 홍보물디자인 우소영, 사진 신희준 등 전원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극단 대학로극장·창작집단 상상두목의 최치언 작, 이우천 연출의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를 창의력이 돋보이고, 연출력이 감지되는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