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들’의 ‘하늘로 뻗는 뿌리’
김 향 (연극평론가)
작 : 백석우화
구성/연출 : 이윤택
단체 : 연희단거리패
공연일시 : 2015/10/12-11/1
공연장소 : 연희단거리패
관극일시 : 2015/10/31 4 pm.
연희단거리패와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2015년 <문제적 인간 연산>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내는 평문을 쓴 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백석우화>를 거의 극찬하는 평문을 쓰게 되었다. 지난번 혹평의 요지는 ‘대사 및 무대적 상상력의 깊이가 얕고 동시대에는 궁 내의 권력쟁투 속에서 어미에 대한 그리움과 복수심으로 폭력을 행사한 연산에 대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사상의 벽에 막혀 살았던 백석의 깊은 슬픔과 고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시와 음악적 상상력 그리고 간결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 같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한 인물의 연대기를 서사적 장치를 동원하되 그 장치보다 백석의 내면이 강조되는 흐름을 만들어내어 깊은 공감을 유발했던 것이다. 시인에서 삼각산의 촌로로 자기의 삶을 다한 백석을 이윤택은 천재시인 또는 위인으로 그리기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주변의 이웃을 섬겼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시인’으로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이 모던보이 시절 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나타샤가 누구냐’는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연애쟁이처럼 사는 듯하였으나 친일적인 문학활동을 뒤로 하고 만주로 떠나 한동안 절필하게 된다. 만주로 함께 떠났던 세 번째 부인과 이혼하여 피폐한 생활을 하던 중 해방이 되었어도 계속 북에 남아 자신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으로 발표하면서 남한의 문단에서 천재시인으로 추앙되었으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남한에서는 그의 시집이 출간될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백석은 사상이 미약하고 감상적이라는 이유로 삼수갑산이라는 농장으로 유배된다.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지은 동시가 아동의 세계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 선동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상적 문책을 당했던 것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던 백석은 다시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당의 사상과 타협하는 ‘보고서 형식의 수필과 서한들’을 쓰지만 끝내 그는 평양으로 복귀하지 못했고 백석은 후에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삼수갑산 협동농장으로가 37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자로 살다 생을 마친다.
“…(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눈은 푹푹 내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1)
평양에서 시골로 유배되어 가면서 백석은 모던보이 시절 쓴 인용문의 구절, 즉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한 구절을 읊조린다. 일제시대 때에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면, 이번에는 당의 명령으로 시골로 이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모던보이 연애쟁이 시절 쓴 시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그러나 백석은 여전히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평생을 협동농장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가 ‘세상과의 대결에서 지지 않는 방법’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웃 농부들을 섬기며 사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이 요구하는 대로 ‘인민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노동자로 단련’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단련의 내용이 당을 향한 것이 아닌 ‘노동자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96년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떴을 때 “평양에서는 온 사람은 없었고 삼수갑산 지역주민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2)고 한 것이 바로 백석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농부: 어이구 선생님도……이제 그만 편하게 하십시오. 하루 몇 번을 만나도 이렇게 인사하 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백석: 별 말씀을…… 이 협동농장에서 내가 잘 하는 거라곤 사람 알아보고 인사하는 일 뿐 인 걸 그 덕에 이렇게 어울려 살고 있으니 너무 탓하지 마시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거듭 허리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3)
그는 인용문에서처럼 농부들을 섬기며 그러나 씨감자를 거꾸로 심는 서툰 농부로 살아가는 중에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의 마지막 구절과 같은 삶의 의지, 즉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4)에서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갈매나무’와 같은 삶은 사상의 벽에 가로막힌 시인이 시 쓰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양식이 될 하늘로 향한 뿌리를 내리는 일”5), 즉 현세에서는 지면에 발표할 수 없지만 협동농장 생활 37년 동안 거의 매일 쓴 글을 말년에 불쏘시개로 쓰며 하늘로 올려 보내는 일이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가 쓴 시가 하늘 양식으로 차고 넘쳐 조금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남한의 천재적인 극작가 이윤택에 의해 관객들의 영혼을 채우는 ‘생명의 언어’로 복원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백석우화>에서 복원된 백석의 ‘생명의 언어’는 문단에서 논하듯, 한국의 토속적인 언어 구사 및 그 정서 표현에 능한 천재적인 시인이라는 평가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윤택이 형상화 한 백석은 동시대 관객들에게 괴리감을 주는 시인이 아니라 ‘갈매나무’ 같은 삶을 살려 애쓰는 다중들과 같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남한에서는 새천년을 맞이한 지 15년이나 지난 이때에 정부 주도의 신검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도자 개인의 신념에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인권억압이 횡횡하고 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피켓을 들고 ‘갈매나무’처럼 맞서는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피켓의 문구는 결코 백석의 시처럼 아름답고 정제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거칠고 투박하지만 백석이 원했던 ‘갈매나무’ 같은 삶, 즉 이웃(국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에서 우러난 문구로 세상에 외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들의 소리는 동시대 위정자들의 귓가에 닿지 못하고 심지어 일부 이웃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나 백석의 시가 그러했듯 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들은 ‘갈매나무’처럼 죽을 때까지 당당하게 이웃(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인간의 소중함과 민주와 자유’를 외칠 것이며 그 소리는 하늘의 양식이 되어 후대의 인류에게 ‘생명의 언어’가 될 것임을 <백석우화>를 통해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들’에게 경의를, 그들의 ‘하늘로 뻗는 뿌리’에 희망을.
1) 이윤택 대본구성·최영철 엮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우화 그리고 서른 세 편의 시』, 도요, 2015, 118~119쪽.
2) 위의 책, 78쪽.
3) 위의 책, 55쪽.
4) 위의 책, 148쪽.
5) 위의 책,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