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6년 9월 공연총평
북의 핵실험 망동과 경주 지진 대란에도 불구하고 연극인들의 열정은 더욱 고조된 느낌이다. 9월 공연총평과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 페스티벌 공연총평, 그리고 제18회 충남학생연극제 심사평을 별도로 게재한다.
1, 김태수 레퍼토리극단 코러스의 김태수 작 김학재 연출의 웃어요 덕구씨
여우별씨어터에서 김태수 레퍼토리극단 코러스의 윤주상 예술감독, 김태수 작, 김학재 연출의 <웃어요 덕구씨>를 관람했다.
김태수 작가는 KBS 방송작가를 거쳐 대전일보 신춘문예에서 희곡 ‘파멸’이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베아트리체는 순수의 시대로 떠났다>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운현궁에 노을지다> <트라우마 IN 인조> 그 외에 다수 작품을 발표 공연했다. 제3대 한국희곡작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예술전문대학 교수다.
김학재는 제4회 고마나루전국향토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고, <웃어요 덕구씨> <트라우마 인 인조> <운현궁에 노을지다>에 출연해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영화 <길> <가문의 위기> <부활> <이끼> <한반도> <청춘만화>에 출연하고, 드라마 <장희빈> <장길산> <태양인 이제마> <야인시대> <포세이돈> 그 외의 다수 작품에 출연한 훤칠한 미남배우로 <웃어요 덕구씨>를 연출해 기량을 발휘했다.
무대는 천덕구의 고물상 겸 집이다. 하수 쪽에 각종 농기구와 운동기구를 비롯한 중고기구와 아래 위단에 쌓여있고, 정면에는 여러 가지 정비기구가 눈에 띈다.
위의 단으로 오르도록 철제 접는 사다리를 단에 걸쳐 놓았다. 오른쪽은 천덕구의 방 겸 부엌으로 조리대가 앞쪽에 가로 놓이고, 가구와 의자가 놓여있고, 내실로 통하는 복도가 있다.
천덕구는 독신이다. 상처를 하고, 자식들을 장가를 보냈기에 둘 다 서울에서 사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천덕구는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이 들 때까지 늘 아내생각을 하며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천덕구는 아내가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내와의 겸상을 차리고, 함께 들 수저를 놓고, 아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물론 연극에서는 아내가 실제로 등장을 하고, 천덕구의 대화 상대가 되도록 연출된다.
천덕구 내외의 모습이 하도 정겨워 관객은 실제인 것으로 여기고 관극을 하게 된다. 장남에게서 전화로 연락이 온다. 아버지의 생신을 서울에서 버젓이 차려드리겠다는 통화다. 물론 천덕구는 기뻐한다. 그리고 생일날 서울에 갈 새 옷가지도 마련을 한다. 그런데 천덕구의 아내는 함께 갈 생각을 않는다. 천덕구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싶다. 관객에게는 이상스런 생각이 든다.
생일 당일 날 천덕구는 잘 차려입고 상경을 하려 집을 나선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천덕구가 다시 들어가 받으니, 장남에게서 온 전화다. 사업차 외국출장문제로 생신을 차려드릴 수 없다는 내용이다. 천덕구는 실망한 표정이지만 자식에게 내색을 않고, 잘 다녀오라고 한다. 방으로 들어오는 천덕구를 아내가 맞이한다.
이웃 친구가 연장을 빌리러 들어와 천덕구을 찾는다. 이웃 친구가 천덕구의 입장을 표현하는데서 천덕구가 혼자 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에는 차남의 전화가 걸려오고, 차남이 결혼을 하게 되었노라 아버지에게 전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생신잔치를 잘 채려드리겠노라 약속을 한다. 천덕구는 다시 기쁜 표정이 된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고물정리를 시작하며 철사다리로 위의 단으로 올라간다.
이웃 친구가 등장해 빌려간 공구를 되돌려 주려고 들어와 천덕구를 찾는다. 천덕구는 위의 단에서 응답을 한다. 그러나 친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안 들리는 성싶다. 이웃 친구는 한참을 찾다가 공구를 걸이에 걸고 되돌아 나간다. 관객이 천덕구의 죽음을 의식할 즈음 천덕구 앞에 아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덕구와 아내의 대화가 시작된다. 다정하기가 다시 이를 데가없다. 천덕구 내외의 다정한 모습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용이가 아내, 이영석이 남편으로 등장해 호연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권범택, 조은정, 황인보, 진 현 등 출연자들의 성격창출과 호연도 조화를 이룬다.
예술감독 윤주상, PD 임덕희, 조명감독 이승호, 음악감독 김예슬, 무대디자인 박재운, 디자인 강지우 등 스텝 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김태수 레퍼토리극단 코러스의 윤주상 예술감독, 김태수 작, 김학재 연출의 <웃어요 덕구씨>를 친 대중적인 연극이자 감동폭탄을 선사하는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월 4일
2,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창단공연 김석만 예술감독 박경희 작 유환민 연출의 요셉 임치백
명동성당 야외극장에서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창단공연 김석만 예술감독, 박경희 작, 유환민 연출의 <요셉 임치백>을 관람했다.
박경희 작가는 방송예술교육진흥원에서 방송대본과 시나리오 창작을 가르쳤고 현재는 싼투 아카데미 원장으로 방송 드라마와 시나리오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방송드라마 <기다리는 빛> <나의 부모님> <이것이 인생이다>외의 다수 작품을 집필했고, 영화로는 <2000 여고졸업반> <시집가는 날> <그날> <여보, 미안해> 외의 많은 시나리오를 썼다. 희곡으로는 <달님과 손뼉치기> <롤렉스 금장> <세 여자의 파티> <독도는 우리 땅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어린왕자> <트라이 앵글> <5학년 5반 맹춘자> <울 엄마 부티투짱>외의 많은 희곡을 발표 공연한 미모의 중견여류작가다.
유환민(44세) 신부는 가톨릭 사제이면서 연극인이다. 그는 2002년 서울대교구장이던 정진석 추기경(당시 대주교)으로부터 연극을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당시 유 신부는 “교회의 최우선 사명은 복음 전파인데 성경이라는 텍스트는 변치 않으니까, 21세기에 걸맞게 예술을 통해 복음의 가치를 녹여내면 풍요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정 대주교가 최종결정권자인 교구 인재양성위원회에 취지를 설명했었다.
유 신부는 곧장 김광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을 찾아갔다. 사제로서 연극을 공부하려는 까닭과 자신의 문화예술관을 얘기하자 김 원장은 ‘그 참 재미있다’면서 ‘연출 공부’를 권했다. “김 원장께서 제가 좋은 연출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교회에 이바지하려면 연극 제작 메커니즘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게 연출이니, 그걸 공부하라고 하신 거죠.”
한예종에서 연출을 전공한 유 신부는 2011년에 이어 2013년 변두리 철거민 문제를 다룬 연극 <없는 사람들>을 서울 홍대 부근 가톨릭청년회관 소극장에서 올렸다. 그가 근무하던 곳 바로 건너편이 ‘두리반’이었고, 그때 마포지역은 철거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2012년과 2013년엔 프랑스 극작가 이오네스코의 <왕 죽어가다>를 각색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고 2016년 병인순교 150돌 기념 연극 <요셉 임치백> 연출을 맡았다.
성 임치백 요셉(Josephus)은 서울서 멀지 않은 한강변의 어느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모친을 잃고 홀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10여 년 동안을 글방에 다녔고, 무술과 예도를 배워 향락을 즐기는 친구들과 상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유순하고 효심이 지극한 까닭에 덕을 거슬린 적은 없었다고 한다. 가정을 이룬 후 1830년경에 아내와 아들을 먼저 입교하여 그에게도 세례받기를 권하였으나 그는 항상 “뒷날에 입교하겠다.”고 말하며 미뤘지만, 신자들을 깊이 신뢰하여 그들을 형제와 같이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무엇보다도 즐겁게 여겨 몸 둘 곳이 없는 신자 4, 5명을 그의 집에서 살게 하였다.
1835년에 박해가 일어나 마을에서 가까운 몇몇 신자가 잡히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하였고, 자진해서 포졸이 됨으로써 더욱 열심히 그들을 도와주었다. 1846년 6월 선주였던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를 따라 연평도로 나갔다가 함께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갇힌 해주까지 달려가 아들의 석방을 청하였다. 이때 황해도 감사는 그의 요구를 묵살하고 도리어 그를 옥에 가두었다가 서울로 압송하였다.
서울로 잡혀온 그는 포청의 옥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나 불타는 신부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어느 날 갇힌 신자들에게 “나도 오늘부터는 성교회를 믿겠소. 너무 오랫동안 끌어왔었소.”라고 말하였다. 김 신부는 그날부터 기도문을 가르쳐 요셉이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주었다. 전에 임 요셉과 친하게 지내던 포졸들은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배교하기를 권하였으나 그는 “천주는 나의 임금이시며 아버지시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을 결심을 하고 있고, 이미 죽은 사람이니 다시는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며칠 후 형리들은 그의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자식들의 처지를 보아서 배교하라고 말했지만, 인정에 끌려 천주를 버릴 수 없다고 하자 형리들은 노하여 그를 거꾸로 매달고 물매질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형리들에게 “당신들은 죽은 사람을 때리니 헛수고만 하는 것 아니오”라고 태연히 말하였다. 그 후 3개월이 지나 그는 곧 사형선고를 받으리라는 소문이 들리자 즐거운 마음으로 신자들에게 “나는 본래 아무런 공적도 없었는데 천주의 특별한 은혜로 여러분보다 앞서서 천국에 가게 되면 반드시 천국에서 내려와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이신 천주의 나라로 안내할 터이니 여러분도 용기를 내시오” 라고 말했다. 그 후 포장 앞에 끌려가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네가 천주교를 믿는다니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옥에 온 뒤로부터 경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외워보아라.” “아직 모두 외우지 못합니다.” “십계명도 모르면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천국에 가려면 여기 있는 이 마티아처럼 유식해야 한다.” 하고 말하자, 요셉은 머리를 흔들며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자녀가 무식하면 효도할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무식한 자녀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모께 대한 책임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배운 것은 없으나 천주께서 저의 아버지이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포장은 그를 고문하라고 명하여 대꼬챙이로 요셉의 살을 찌르게 하고 세 번이나 주리를 틀게 하였다. 이 때 요셉이 신음소리를 내자 포장은 “만일 네가 그러한 소리를 내면 그것으로써 배교행위라고 보겠다.”라고 소리치자, 요셉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잔악한 고문을 받아 결국 정신을 잃고 밖으로 끌려나왔다. 그 후에도 요셉은 거듭 고문을 받았으나 변함이 없자, 때려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져 정오부터 해질 때까지 물매질을 가하였으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를 옥안으로 끌고 가서 목을 졸라 죽였다. 이때가 1846년 9월 20일이요,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무대는 거대한 십자가형의 무대를 야외무대에 가설하고, 십자가의 머리 부분과 발부분에 수목조형물을 설치했다. 십자가 머리 부분 외곽에 연주석을 마련해 연주자들이 착석하고, 십자가의 팔 부분은 등퇴장 로가 된다. 음악과 음향효과로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조명의 변화로 장면전환이 이루어진다. 십자가 주위에 객석을 배치해 관객이 서로 마주보며 관극을 한다.
150년 전의 이야기지만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눈부신 속도로 변해버린 생활과 문화 때문이리라, 동서양의 구별도 없고, 의식주는 물론 의식과 사고자체가 대부분 서양풍으로 바뀌었으니….종교는 더 말해 무엇 하랴?
최주봉, 심우창, 박경득, 유순철, 양영준, 이승호, 유태균, 장영주, 이명희, 류재필, 차재성, 반혜라, 김발렌티노, 박기산, 고은별, 승주영, 박정희, 남희주, 이가은, 류시현, 구대영, 윤태웅, 홍여준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특별출연한 염수정 추기경의 호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음악 김지은, 노래 오지나, 타악 정다휘의 연주는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절묘한 마무리를 한다.
무대디자인 박상봉, 의상 분장 손진숙, 조명디자인 조성오, 음향디자인 박호준, 분장 김미숙 이정희, 트러스 이명후, 무대렌탈 이기업, 무대제작 태극무대, 조명 제이라이트, 음향 사운드인글로벌, 기술감독 노민수, 사진작가 김주형, 소품 영주소백산예술촌(촌장 조재현), 홍보마케팅 조은실 김소여, 김은균, 티켓매니저 신선미, 조연출 강진광 권용준 윤지태, 시각디자인 박주순 성효진 유전귀, 서예 전각 김창현, 기획 이종열 이태실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서울가톨릭연극협회(회장 최주봉) 창단공연 김석만 예술감독, 박경희 작, 유환민 연출의 <요셉 임치백>을 친 대중적인 공연이자 걸작 성극으로 탄생시켰다.
9월 5일
3, 제1회 으랏차차 세우다 작품공모 당선작 홍건모 작 연출의 맞장
세우아트센터에서 제1회 으랏차차 작품공모 당선작 이훈희 작 연출의 <맞장>을 관람했다.
홍건모는 충남 예산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다. 이번 <맞장> 당선으로 작가로 거듭 나고 장래가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젊은 연극인이다.
<맞장>은 평생 장을 담그던 노인의 이야기다. 우리 고유의 전통인 장을 담그려면 메주 소두(닷 되들이 말) 1말(보통크기 3덩이), 소금 소두 6∼7되, 물 2말을 준비한다. 메주는 덩어리가 작으면 그대로 쓰고 크면 반으로 쪼개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은 후, 하루 전에 준비해 둔 소금물을 붓는다.
메주가 떴다가 가라앉으면 간이 싱거운 것이므로 소금을 더 넣어야 하는데 이때 소금물의 일부에 다시 소금을 풀어 간을 맞춘다. 메주가 물위로 1cm정도 떠오르면 적당하다.
소금물은 독에 가득 채워준다. 처음 부었던 소금물은 시일이 지나 메주가 불게 되면 조금씩 줄고 볕을 쬐는 과정에서도 조금씩 줄어든다. 그러므로 장을 담고 남은 소금물을 따로 독에 담아 두었다가 줄어드는 수 분량만큼 조금씩 채워주면 좋다.
그리고 수면 위로 나온 메주의 겉면에 소금을 한줌씩 뿌려 주어 노출된 메주 덩어리에 잡균이 붙지 못하게 한다. 또 숯, 대추, 고추 등을 한 독에 서너 개씩 띄운다. 숯은 나쁜 냄새를 빨아들이므로 새 숯보다는 불 붙여 빨갛게 달군 숯을 소금물에 넣어 불이 꺼지면 바로 뚜껑을 닫는다.
간장과 된장 가르기: 보통 40∼60일 정도, 3월장은 40∼50일 정도 지나면 장을 뜬다. 날이 따뜻할수록 발효기간이 짧다. 또 그 해에 장을 가르지 않는 경우에는 8월에 볕을 더 쬐지 말고 메주덩이 위에 소금을 하얗게 얹어 겨울을 보낸 후, 그 이듬해 돌이 되는 달에 간장과 된장을 가른다. 이렇게 하는 것은 된장보다 맛있는 간장을 얻기 위해서다.
장을 가를 때 용수가 있으면 가운데 용수를 박고 간장을 떠낸 후에 메주를 들어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불은 메주가 부서지지 않도록 잘 건져내고 항아리 바닥에 남은 메주 부스러기는 체로 받쳐서 건진다. 건져 낸 메주는 다시 소금을 넣고 버무려 다른 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는다.
된장과 분리된 간장은 날간장이라 하여 향이 미숙하고 각종 효소와 미생물이 그대로 있어 저장성과 맛이 떨어지므로 분리한 간장은 따로 불에 달인다. 이것은 간장이 부패함을 막고 농축시켜 진한 맛을 얻기 위함이다. 간장 달이는 온도는 섭씨 80℃의 온도에서 10∼20분 정도 지속해서 달이며, 달이면서 생기는 거품은 걷어낸다. 간장이 좀 묽은 것 같으면 오래 끓이고, 달인 장은 완전히 식힌 후 독에 붓고 뚜껑을 닫는다.
장독 관리: 장 담근 후 사흘쯤은 장독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햇볕이 좋은 날 아침에 뚜껑을 열어 하루종일 볕을 쬐고 저녁에 덮는데, 항아리 주둥이에 망사를 씌워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한다. 망사 위에 소금을 한 줌 올려놓는 것도 벌레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장독관리는 반드시 행주를 꼭 짜서 주변을 닦아내는 방법으로 청소해야 하는데, 물기가 들어가 장맛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렇게 볕을 쬐어 숙성시키는 기간은 보통 30∼50일 정도이다. 좀 더 진한 간장을 얻기 위해 백일이 지난 후에 장을 뜨기도 하는데, 대개 40일 정도만 지나면 간장의 맛과 향취가 충분히 우러난다. 또 장독을 편편한 장소에 놓아, 기울어짐으로 해서 물이 빈 편에 백태가 끼는 것은 막아줌이 좋다. 특히 곰팡이가 피기 쉬운 여름철의 장 관리는, 장 위에 떠있는 곰팡이는 걷어내고 소금을 넣고 팔팔 끓인다. 달인 간장을 장독에 다시 부을 때는 먼저 장독을 소주로 헹궈 살균한 다음 햇볕에 바싹 말려 사용한다.
평생 맛 좋은 장을 담아 팔면서 사는 정 노인, 이런 인물이야말로 문화재가 아닐까? 물론 가족과 자녀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지지만 <맞장>은 소재발굴과 창의력에서 수준급 연극이다. 다만 제목은 <맞장>이 아니라 <맛장>으로 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무대는 정면에 노인의 초막 같은 집이 있고, 좁은 마루도 놓여있다. 커다란 항아리가 마당에 놓이고, 메주덩이를 줄에 매달아 말리는 게 보인다. 집의 쪽마루 위에도 메주덩이를 말리고 있다. 집 상수 쪽에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있고 하수 쪽 길은 부엌으로 통한다. 마당에 수돗가가 있고, 커다란 독이 놓여있다. 장은 담은 수많은 독은 객석에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내용은 노인이 사는 한적한 시골집에 수양딸이 찾아오고 친 딸도 찾아오지만, 친딸은 말썽꾸러기라는 설정이고, 수양딸이 효성스런 모습이다. 이 집에 도둑이 든다. 그러나 노인의 강한 대처와 설득으로 도둑은 그만 꿇어앉는다. 도둑은 파산을 해 빚쟁이를 피해 도망을 다닌다는 설정이다. 도둑은 노인에게 장 담그는 기술을 하나하나 배우게 되고 나중에는 수양아들 노릇도 하게 된다. 노모가 등장해 출연자들과 대화를 하지만, 작고한 인물로 설정이 되고 극의 후반에 가서야 환상 속의 인물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80이 가까운 장 담그는 노인이 장 담그는 법을 수양아들에게 전해주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생을 보낸다는 내용이 마치 된장찌개에 보리밥 그리고 숭늉 맛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박정순이 장 담그는 노인, 김담희와 도레미가 수양딸과 친딸, 황재희가 노모, 홍도영이 도둑으로 출연해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책임프로듀서 김희민, 협력프로듀서 이훈희, 제작감독 임 일, 음악 김민수, 작곡 홍보라, 무대 김솔잎, 조명 박준범, 음향 배용기, 의상 윤희정, 분장 김종숙, 조연출 박창준 등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제1회 으랏차차 작품공모 당선작 홍건모 작 연출의 <맛장>을 기억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9월 10일
4, 극단 작예모의 이희준 작 이민서 연출의 관부연락선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극단 작예모의 이희준 작, 이민서 연출의 <관부연락선>을 관람했다.
이희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와 NYU 뮤지컬극작전공 석사(MFA) 출신이다.
14회 “내 마음의 풍금” (2008)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을 수상했다.
뮤지컬로는 “바실라” (2015,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마마 돈 크라이” (2015, 쁘띠첼 씨어터), “런웨이 비트” (201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미오 프라텔로” (2014, 대학로아트원 씨어터 3관), “미아 파밀리아” (2013,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헤이, 자나!” (2013, 코엑스아티움 현대아트홀), “쌍화별곡” (2012, 유니버설아트센터), “미남이시네요” (2012,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파리의 연인” (2012, 디큐브아트센터), “미녀는 괴로워” (2011, 충무아트홀 대극장), “내 마음의 풍금” (2011, 호암아트홀), “마마 돈 크라이” (2010,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달콤한 인생” (2010, 예술마당 4관), “사춘기” (2008~2009, 해치홀), “첫사랑” (2007,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 등을 발표공연하고, 연극으로는 “듀스” (2013, 씨어터 송), “애너벨 리” (2011, 나은 씨어터)를 발표공연했다.
이민서는 독립영화 ‘곡선’의 주연 뿐 아니라 ‘해어화’ ‘뷰티 인사이드’ ‘자매의 방’ 외의 다수작품에 출연한 미모의 여배우로 ‘관부연락선’으로 연출가의 첫발을 딛게 되었다.
<관부연락선>은 1905년 9월 산요기선주식회사(山陽汽船株式會社)에 의해 개설되어 조선의 부산항과 일본의 시모노세키항을 연결하던 해운 노선. 명칭의 부관/관부는 각각 부산(釜山)과 시모노세키(下關)의 한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경부선철도의 부산잔교역과 일본의 산요 본선 시모노세키역을 연결하는 노선이었기 때문에 연락선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1945년 6월 공습과 어뢰/기뢰의 의한 공격이 잦아지자 정기 항로로서의 부관연락선은 휴항하였고, 사실상 이것으로 부관연락선의 역사는 끝난다. 이 노선은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인 1970년 6월부터 부관페리/관부페리에 의해 부산과 시모노세키간에 항로가 복구되어 지금도 운항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철도연락선이 아닌 일반 카페리 노선으로 운항 중이므로 완전히 같지는 않다.일제강점기 당시 인적/물적 수송의 대동맥 중 하나로 식민지 시기 사회/경제에 큰 영향을 끼친 해운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부연락선에 홍석주라는 여인이 화물칸에 타고 밀항 중인 것으로 설정이 되고, 바다에 사람이 빠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들어 구해내니, 바로 윤심덕이라는 여인이고, 윤심덕은 바다에 빠져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홍석주와 함께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을 한다는 내용이다.
윤심덕(尹心悳, 1897년 7월 25일 ~ 1926년 8월 4일)은 일제 강점기의 성악가이자 가수 겸 배우이다. 화가 나혜석과 함께 1920년대의 신(新)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기주(韓琦柱)와 함께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였다.
평양에서 4남매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남포로 이주하여 자랐다. 아버지 윤호병과 어머니 김씨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 신교육을 받도록 했다. 윤심덕은 숭의여학교를, 언니와 여동생은 이화학당을, 남동생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윤심덕의 형제들은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여동생은 피아니스트이고 남동생 윤기성은 바리톤 성악가였다. 1920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에서 주최한 도쿄 음악학교 동창회의 음악회에서 피아노 듀엣곡의 일종인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을 연주했던 윤성덕이 동생이다.
윤심덕도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에는 의사와 교사가 되기 위해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다녔다가, 음악 공부에 뜻을 두었다.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건너간 뒤, 아오야마가쿠인을 거쳐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윤심덕은 도쿄 음악 학교 최초의 조선인 학생이었다.
윤심덕은 활달한 성격이라 도쿄의 남자 유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키가 크고 목이 긴 서구형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21년에는 유학생들이 계획한 순회공연에 참여했다가 극작가이며 와세다 대학 학생인 김우진을 만나게 되었다. 김우진은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1924년에 도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고,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교사로 임용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혼담이 깨지는 등 개인적인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다. 부호의 첩이 되었다는 스캔들로 도피까지 한 끝에, 김우진의 권유로 토월회에 들어가 배우로 일하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로 꼽히는 〈사의 찬미〉를 녹음하여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1926년 레코드 취입을 위하여 오사카에 있는 닛토[日東] 레코드 회사에 갔다가 윤심덕은 그해 8월 3일에 김우진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에 탑승했으며, 4일 새벽 4시 쓰시마 섬(대마도)을 지나던 중 자살하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1926년 8월 5일자 사회면에서 이들의 자살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지난 3일 오후 11시에 하관(시모노세키)을 떠나 부산으로 향한 관부연락선 덕수환(배 이름)이 4일 오전 네 시경에 쓰시마섬(대마도)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으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수색하였으나 그 종적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 선객 명부에는 남자는 전남 목포시 북교동 김우진이요, 여자는 윤심덕이었으며, 유류품으로는 윤심덕의 돈지갑에 현금 일백사십 원과 장식품이 있었고 김우진의 것으로는 현금 이십 원과 금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情死-연인끼리의 동반 자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
윤심덕 은 영화와 연극으로 제작되었으나, ‘윤심덕이 죽지 않고 구조되었다’라는 독특한 발상의 연극은 처음이다.
내용은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으로 밀항 중이던 홍석주라는 여인이 한 밤에 돌연 사람이 물애 뛰어드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구해낸다. 김우진과 윤심덕은 사실대로라면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윤심덕은 홍석주의 구조를 받고 살아남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두 여인은 화물칸에서 함께 부산으로 향하고, 배에서 급사노릇을 하는 청년에게 도움을 받는다. 홍석주는 자신의 일기장에 시모노세키에서 부산까지의 여정을 기록을 하고, 윤심덕과의 만남을 상세히 기록한다. 일기장는 ‘사의 찬미’ 같은 윤심덕의 명시가 당연히 소개가 된다. 두 여인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회상하고 때로는 다투고 또 화해하며, 당시 동경유학생들이 좋아하고 즐겨 먹던 슈크림빵을 들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관부연락선이 부산항에 도착을 하고, 두 사람은 각기 갈 길을 가게 된다는 마무리다.
이재혜가 홍석주, 한해인이 윤심덕, 최원석이 배의 급사 역으로 출연해 호연을 펼친다. 홍석주와 윤심덕으로 출연한 여배우의 미모와 발군의 연기력은 실제 역사적 인물들인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급사로 출연한 최원석은 젊은 신인배우로, 작가 겸 연출가이자 명배우인 최원석과는 동명이인인 미남배우이다.
음향 플레이백 오퍼레이터 김현영, 음악감독 박병준, 무대감독 배하늘, 홍보디자인 유수진, 홍보총괄 이은지, 무대 Super Adviser 정 영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작예모의 이희준 작, 이민서 연출의 <관부연락선>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9월 10일
5, 대학로 홍대 아트센터 대극장의 연희단거리패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
대학로 홍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일대기이다.
이중섭의 호는 대향(大鄕).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이희주(李熙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五山高等普通學校)에 들어가 당시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任用璉)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文化學院)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독립전(獨立展)과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자유전의 개칭)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일시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 사변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제주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밀항하여 가족들을 만났으나 굴욕적인 처가 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운명한다.
화단 활동은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朴古石)·한묵(韓默)·이봉상(李鳳商)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其潮展)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을 위시하여, 평전(評傳)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다.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自傳的)인 요소이다.
「싸우는 소」·「흰소」(이상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황소」(이상 개인 소장)·「투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집떠나는 가족」(이상 개인 소장)과 그밖에 수많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들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극작가 김의경(金義卿, 1936~2016) 선생은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원 연극학과를 수료하였으며, 1983년 미국 하와이대학 연극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사무국장‧부위원장을 거쳐 1994년 3월 이후 회장을 맡았으며, 한국연극협회에서는 상임이사‧부이사장‧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 및 대표,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장, 국립극장 공연과장 등을 지냈다. 1976년 9월 극단 현대극장을 창설하고 동 대표를 역임하였다. 그는 한국연극의 국제 교류에 노력한 연극인으로서, 1967년 이후 국제극예술협회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있으며, 기타 국제교류에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단막극 「애욕(愛慾)의 우화(寓話)」(실험극장 초연, 1963)가 문공부 주최 신인예술상 연극부문에서 단체상을 수상하여 인정을 받고, 『문학춘추』에 「갈대의 노래」(1964), 「신병후보생」(1964)이 추천 완료됨으로써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한산성」(1973), 「논개」(1975), 「함성」(1976), 「원효대사」(1976), 「북벌」(1978), 「삭풍의 계절」(1982),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1984),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985), 「조국은 외롭지 않다」(1986), 「처용무」(1987), 「길 떠나는 가족」(1991) 등이 있다. 1975년 희곡 「남한산성」으로 제11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로 제22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다시 받았으며, 1991년엔 「길 떠나는 가족」으로 제15회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 1989년엔 문화훈장 ‘관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희곡집 『남한산성』(1977)이 있고, 그 외 번역서로 『세계 신경향 희곡선』(1976), 『연극론 12장-아더 밀러 연극론집』(1978), 『스즈키 연극론』(1993), 『경극과 매란방』(1993) 등이 있다.
이윤택(1952~)의 연희단거리패는 1986년 7월 부산 가마골소극장 개관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민간 소극장 연극 정신과 방법론을 탐구하는 실험극단으로 출발했다. 이후 서울 게릴라극장과 밀양연극촌을 중심으로 지역과 경계를 넘나들었다. ‘오구’, ‘바보각시’, ‘느낌극락같은’, ‘시골선비 조남명’, ‘아름다운 남자’ 등 전통과 동시대를 만나게 하는 작품은 물론 ‘햄릿’, ‘허재비놀이’,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코마치후덴’, ‘피의 결혼’ 등 해외극을 한국의 독자적인 현대연극 양식으로 수용하는 작품들로 호평 받았다.
1990대 이윤택은 일본의 도야마 현 도가예술촌으로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도가무라는 1973년 원래 다섯 채의 갓쇼즈쿠리(짚으로 지붕을 엮는 방식의 전통 가옥 형태)를 모모세강 유역에 모아 「도가 갓쇼문화마을」이라 이름지었다.
1976년에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가 이끄는 와세다 소극장(현 극단 SCOT : Suzuki Company of Toga)이 이곳으로 거점을 옮기고 갓쇼즈쿠리의 민가를 개조하여 「도가산보」라 이름짓고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각지로부터 수많은 관객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지혜가 서려 있는 산촌에서의 예술 활동으로서 각 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82년에는 그리스 식의 야외극장(이소자키 아라타 설계)을 신설, 스즈키 다다시는 그 동안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살려 일본 내 최초의 세계 연극제 「도가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또 1983년에는 스즈키가 창출한 배우 훈련법인 스즈키 트레이닝 메소드를 가르치는 「국제 연극 하계대학」을 열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시설이 도야마 현으로 이관되어, 갓쇼 문화마을은 도야마 현립 도가 예술공원이 되었다. 그 후로 도야마현 난토시 (도가마을은 2004년 행정구역 합병으로 난토시가 되었다.)에 의해 극장, 연습실, 숙소 등이 차례로 정비되어, 현재 주변의 「도가다이산보」,「리프트 씨어터」를 포함한 7개의 극장, 연습실, 200명 이상 숙박 가능한 숙소에 이르기까지 무대예술의 일대 거점이 되었다.
매년 여름에 이루어지는 「SCOT 썸머 시즌」, 다국적 배우에 의해 올려지는 무대공연, 전 세계의 배우를 위한 스즈키 트레이닝 메소드 교실, 아시아 각국의 연출가들에 의한 「아시아 연출가 페스티벌」, 일본의 젊은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인 콩쿨」, 「고교생 하계 연극교실」등의 인재 육성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이윤택은 일본 도야마현 도가예술촌을 방문한 후 1999년 1월 고향 밀양의 한 페교에 연극촌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창고극장, 숲의 극장, 우리동네극장, 가마골소극장, 스튜디오극장, 성벽극장이 차례로 건립되고, 자료관, 사무실, 편의점, 식당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윤대성 문학관이 들어서고, 해마다 7월과 8월이면 밀양연극제를 개최해 금년 2016년에는 제16회 밀영여름공연예술제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로 인해 밀양시에는 2016년에 국립극장에 버금가는 밀양아리랑 아트센터를 개관하고, 12일간의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작품으로 전석매진이라는 대성황을 거두었다.
이윤택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 낙동강 끝자락 마을 도요리 도요마을 중심에 있는 폐교에도 각종 발표와 워크숍을 할 수 있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마을 주변 빈집을 사들여 예술인 숙소, 연기 훈련장, 출판사, 카페, 방문객 숙소 등으로 수리해 도요 예술공동체를 형성했다. 거기에 도요출판사까지 차렸다. 2016년에는 20년만에 시집과 시극<숲으로 간다>를 집필하고 출판했다.
이윤택은 대도시 중심과 국공립공연장 위주의 공연예술 활동이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한 친자연적, 친환경적 공연예술 장을 건립, 공연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한국공연예술의 발전과 창달을 선도하고 우리 연극을 세계정상급 수준으로 이끌고 있는 문화대통령 감이라 할 수 있다.
무대는 객석을 향해 낫을 내려놓은 듯한, 낫 모양의 언덕길이 상수에서 무대 중앙을 향해 구부려져 내려오도록 만들어지고, 배경 가까이 산봉우리 형태의 조형물 여러 개를 무대좌우로 이동시키면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인형극에 사용되는 어린이 모형 인형을 비롯해 나비, 소, 커다란 물고기, 꽃게 등의 종이바탕에 대나무 살을 붙여 만든 조형물을 출연자들이 들고 그 행세를 하며 등장하고, 객석 하수 쪽에 연주석을 마련해, 타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피리와 노래로 극적 분위기 창출에 기여한다. 배경에 영상으로 1956년 9월 6일에 사망한 화가 이중섭의 기일을 비롯해, 6 25사변이 발발한 1950년과 1951년 등 년대가 영상자막으로 투사된다. 이중섭의 그림이 움직이는 화폭으로 재현된다.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작품의 소재인 소, 게, 새, 물고기, 어린이 인형이 천재적인 설치미술가 이영란의 손길로 되살아나 등장한다. 오케스트라 박스에 앉은 연주자들의 연주음은 극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이끌어 가고, 출연자들을, 움직이는 소조상(塑彫像)으로 연출해낸 연출가 이윤택의 예술혼은, <길 떠나는 가족>을 한 폭의 역동적인 조형예술적 연극작품으로 그려낸다.
극중 일제의 패망은 히로히도 일본왕의 육성방송을 통해 전달되고, 6 25사변은 북한군의 복장으로 등장한 출연자를 통해 식별이 된다. 이중섭이 일본으로 건너간 장면은 일본전통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에 의해 구별되고, 동란시절의 어려운 모습은 지게를 이중섭과 길거리 주막을 통해 전달된다. 도입과 대단원에서 낫 형태의 언덕길로 마치 동화 속의 생명체 같은 한지종이와 대나무 가지로 제작된 인형들이, 출연자들의 작동으로 춤추듯 무대를 가득 채우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2인 또는 3인의 출연자가 이중섭 작품 속의 생명체를 마임으로 표현하거나 캔버스의 이젤형상으로 서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이중섭으로 출연한 연기자가 이젤에 화판을 놓고 잠시 소의 머리를 그리는 장면은 연극의 백미(白眉)라 하겠다. 대단원에서 출연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들이 이중섭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듯 퇴장하는 장면은 기억 속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듯싶은 명장면이다.
구상 시인의 해설로 시작된 연극은 현대 서양화가 중 피카소를 비롯한 야수파를 소개하면서 이중섭의 그림이 야수파 계열의 화풍을 지니고 알린다. 이중섭의 고향 원주에서의 모습이 부친과 모친과 함께 펼쳐진다. 일제치하에서 군대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택하고, 그의 소 그림을 야마모토라는 일본여인이 좋아하면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6 25사변 발발로 부인은 아이와 함께 일본으로 떠난다.
이중섭은 남하해 국제에서 지게꾼 노릇을 하며 지낸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화업에 몰두하지만 이중섭은 캔버스를 구입할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가 구상 시인과 재회하게 되고, 화가로서의 작품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외국작품의 모작이라는 비평을 듣게 되면서 분노와 심적 고통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결국 1956년 9월 6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별세한다.
윤정섭이 이중섭으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작화로 갈채를 받는다, 김소희가 어머니와 주모 등 1인 다 역으로 출연해 인기를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오동식 역시 1인 다 역으로 출연해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 일본여인으로 허가예가 출연해 호연과 열창으로 갈채를 받는다. 정연진, 이동준, 신명은, 안윤철, 박정우, 현슬기, 박현승, 오혜민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성격창출 그리고 노래는 물론, 인형과 함께 벌이는 움직임은, 무대를 이중섭 화백의 그림의 세계로 창출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해낸다. 특히 주인공 이중섭의 절규 이후의 정적과 느린 인형의 움직임은 이윤택 연출가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탁월한 예술적 기량이다.
윤현종, 전상민, 김시율 등 연주자의 기량이 극 분위기를 100%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김시율의 열창은 기억에 남는다.
미술감독 이영란, 무대제작 김경수, 조명 영상디자인 조인곤, 안무 김윤규, 작곡 윤현종 전상민 김시율, 인형제작 이영란 박경자 그 외의 제작진과 기술진의 기량과 열정이 드러나, 대학로 홍대 아트센터 대극장(극장장 고희경) 연희단거리패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좋을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9월 17일
6, 공상집단 뚱딴지의 김이설 원작 황이선 각색 연출의 환영
선돌극장에서 공상집단 뚱딴지의 무대로 만나는 소설, 김이설 원작, 황이선 각색 연출의 <환영>을 관람했다.
김이설(1975~)은 충남 예산 출생으로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열세 살」로 등단했다. 제1회 황순원 신진문학상과 제 3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으며,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경 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빈 집> <오늘처럼 고요히>를 발표했다.
윤영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무능력한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젖도 떼지 않은 갓난아이를 집에 두고 백숙집에서 날품을 판다. 윤영이 견디기 힘든 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가족이다. 남편은 공무원 시험에 자포자기한 상태, 여동생은 자신의 돈까지 떼어 먹은 주제에 끊임없이 돈을 달라고 전화한다. 암에 걸린 아빠를 내팽개친 엄마는 새로운 남자와의 새살림을 위한 방 한 칸을 구해달라고 윤영을 들볶는다. 지옥 같은 현실은 그녀를 백숙집 별채에서 몸으로 남자를 받아내는 극한의 선택으로 내몬다. 그렇게 윤영의 삶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
윤영이란 인물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결국 그 현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결국 끝을 낼 수 없는 삶의 고리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시작이었다’는 문장과 상통한다. 슬프지만 현대인들은 태생적으로 빈부든 계급이든 벗어나기 힘든 굴레를 갖는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인물이 만들어져 나온 소설이다. 이 인물이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설정이다.
<환영>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음’이란 뜻의 환영(歡迎)과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란 뜻의 환영(幻影)이다. 연극 <환영> 속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가 한꺼번에 겹쳐진다. 지옥 같은 현실이 윤영을 환영하고, 그 지옥 속에서 윤영은 환영 같은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윤영의 모습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바라보게끔 만든다.
황이선은 원래 사회복지사였다. 일반 회사에도 있었고, 정신병원에서도 근무하다가스물 다섯 나이에 서울예대 극작과에 들어갔다. 공산집단 뚱딴지에 들어가 문삼화 연출가의 조연출을 하다가 극작과 연출을 하면서 기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팩토리 왈츠>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비잔틴 레스토랑> <러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봄은 한철이다> <리어> <모든 건 타이밍II> <앨리스를 찾아서> <프로메테우스>를 집필 또는 연출한 장래가 발전적으로 기대되는 건강한 미녀 연출가 겸 작가다.
무대는 입체로 된 정사면체의 조형물 여러 개를 합쳐놓고 방으로 사용하거나 분리 이동시켜 의자로 사용한다. 삼면벽은 각기 두 개의 문이 있어 등퇴장 로 구실을 하고, 문을 모두 닫으면 주인공이 역경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현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출연자들은 낭독공연처럼 시작을 하지만 대사를 암기해 실제 연극처럼 연출된다. 주인공의 감정상승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대사전달은 칭찬할만하다.
김 설이 주인공 윤영 역, 리우진이 왕사장 역, 김지원이 어머니와 공판장 여인 역, 문병주가 남편, 이준희가 아빠, 노준영이 여동생, 문승배가 손님, 이인석이 태민 역을 하며, 출연자 전원이 제대로 된 성격창출과 1인 다 역의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다만 비속어욕설이라든가 외설적 성행위 묘사는 공연예술을 발전시키는데 장애적 요소가 될 뿐이다.
드라마터그 이주영, 무대디자인 김혜지, 조명디자인 김용호, 음악 레인보우99 이성신 박지혜, 조연출 이준희, 오퍼레이터 김용운 신재윤, 그래픽디자인 황가림, 사진 이정훈, 홍보마케틴 나희경 등 스탭 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공상집단 뚱딴지의 무대로 만나는 소설, 김이설 원작, 황이선 각색 연출의 <환영>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9월 18일
7,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예술감독 김호준 작 연출의 본격폭발 15분과 김진선 작 이준우 연출의 못
한성대 전철역 5번 출구 부근 여행자극장에서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예술감독, 김호준 작 연출의 <본격폭발, 15분>과 김진선 작, 이준우 연출의 <못>을 관람했다.
1, 김호준 작 연출의 <본격폭발, 15분>
김호준은 여행자의 배우로 <보물섬> <내 아내의 모든 것> <174517> <성년 B> <화학작용 선돌편 4주차> 드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발휘하고, <본격폭발, 15분>으로 첫 연출에 입문했다.
<본격폭발, 15분>은 이안 랭커스터 플레밍(Ian Lancaster Fleming,1908~1964)의 영화 <007 제임스 본드(James Bond)> 시리즈 중 해저 핵시설을 파괴하는 제임스 본드의 활약을 떠오르게 한다. 제임스 본드가 핵폭발 장치를 연결하는 전기선을 차단하지만 결국 해저 핵시설은 폭발되고 마는 내용이다.
무대는 문이 잠긴 지하실이다. 문이 열리면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창문도 나 있다. 무대 바닥에는 남은 시각이 표시된 영상판과 그 밑에 독일어로 폭발물 표기가 된 상자가 놓이고, 남녀 다섯 명의 인부가 작업 중 바닥에 놓인 것이 폭발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러나 지상으로 오르는 문은 잠겨있어 폭발장치를 연결하는 선을 제거하지 않으면 폭발로 모두 죽게 된다. 마침 시각표지가 가동되면서 남은 15분 동안 연결선을 차단해야 한다는 설정이고, 인부 한 명이 폭발물에 연결된 세 개의 선중 하나를 뽑기 시작한다. 잠시 가동시각이 멈추니 인부들은 환호를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시각이 다시 가동되지 시작한다. 인부는 나머지 두 개의 선도 뽑아버린다. 그러자 닫혔던 철문이 열린다. 그러나 15분이라는 시각이 흐른 후다. 인부들은 계단을 오른다. 그 때 굉음이 울리고 결국 폭탄은 폭발하고 마는 결말이다.
이화정, 방원식, 정회권, 정인혜, 이동희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2, 김진선 작, 이준우 연출의 <못>
<못>의 작가 김진선은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출신이다. 공대에서 문예창작과로 전과했고, 소설과 희곡을 집필하고 신춘문예 희곡으로<카페 돌로스>가 당선된 이후 <심야정거장>과 <못>을 발표 공연한 장래가 발전적으로 기대되는 미모의 신진여류작가다
이준우(1985~)는 홍익대학교 영상영화학과 출신으로 영화 <유리> <막차탄 동기동창> <가위손>에 출연하고, <내 아내의 모든 것> <장례> <청춘 여행자> <광인들의 축제><바다 한가운데서> <버스 기다리는 남자> <못>을 연출하고 영화 <장례>로 미국과 프랑스 필름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못>은 피서가 끝난 바닷가의 한 카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피서객이 모두 돌아간 카페에 함께 일을 하던 몇 사람이 남아 떠날 차비를 한다.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바닥에 깊이 파인 <못> 자국을 들여다보고, 라면을 끓여 먹고, 남은 술을 마시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티격태격도 한다. 그러다가 창밖에서 웬 여인이 혼자서 비바람 속의 바닷가를 배회하는 것을 바라다보기도 한다. 여인 한 사람이 우산을 받고 등장하니, 모두 반긴다. 제일 맏형의 애인인 듯싶다. 둘째는 기타를 연주하고, 맏형은 여인과 정담을 나누고, 막내는 배회하는 여인을 찾으려는 듯 밖으로 나간다. 그러다가 역시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을 하고 담배을 피워물고, 막내가 다시 되돌아오고, 형의 여인을 두고 맏형과 둘째가 또 티격태격을 하다가 그치면, 라면 끓인 냄비에 밥을 넣고 둘러앉아 먹다가 맏형의 여인이 다시 우산을 펴들고 퇴장을 하면, 둘째는 바닥의 못 자국에 담배를 꽂아놓고 들여다보면 새로 카페를 찾아 들어오는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은희, 안태랑, 한상훈, 김성규, 그리고 여성출연자가 출연해 절제된 연기를 보인다.
기획 및 홍보 이정은 김혜연 김현지, 조명 여국군, 음향 안형록, 무대디자인 이은규, 무대감독 김동균, PD 최경훈 박정민 김상보, 포토그래퍼 김주한 등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예술감독 김호준 작 연출의 <본격폭발, 15분>과 김진선 작, 이준우 연출의 <못>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9월 24일
8, 연극집단 뮈토스의 오경숙 재구성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1984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연극집단 뮈토스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조지 오웰 원작, 재구성 연출 오경숙의 <로미오와 줄리엣@1984>를 관람했다.
<로미오와 줄리엣@1984>는 시대적 배경을 조지 오웰의 <1984>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끌어 올렸다.
《1984년》(Nineteen Eighty-Four)은 1949년 출판된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1984년을 전체주의가 극도화된 사회로 상정하고 쓴 미래 소설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더불어 이후 디스토피아(dystopia, 반(反) 이상향)를 다룬 대부분의 예술작품에 영향을 준 원형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 이후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오웰족'(Orwellian)이라고 부르게 될 정도로 파급력을 가졌다. 작품의 제목인 1984는 작가가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48년의 뒷자리 년도를 뒤집은 것이다.
전체주의는 모든 걸 통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람의 마음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1984>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자 조지 오웰이 소설 속에서 미래로 예견했던 전체주의의 가장 마지막 맥락이었다. 과거에 <1984>는 미래소설이었지만 지금은 과거소설이 되어버렸다.
<로미오와 줄리엣@1984>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떻게 생존하고 사랑할까를 함축적으로 그려낸 연극이다.
오경숙은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미국 뉴올린즈대학 연극학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대학원 연극학과를 졸업(MFA)했다. 현재 우석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이고 연극집단 뮈토스의 대표이다.
엘렉트라, 커렐, 정화된 자들(Cleansed), 리퀘스트 콘서트, 뮈토스 3부작-트로이 원정/아가멤논의 귀향/신들의 선택, 레옹세와 레나, 트래비스티스-취리히 1917(Travesties, 그리스비극3부작-전쟁과 살인 그리고 신, 말하는 여자(Dictee), 영국왕 엘리바베스, 유형지, 깨끗한 집, 로미오와 줄리엣@1984를 연출한 미모의 여류연출가다.
무대는 탁자 다섯 개가 사선으로 비치되어 있다. 무대 좌우에 커튼으로 가려진 등퇴장 로가 보인다. 탁자위에는 전화기와 피아노 박자기가 놓여 째깍 째깍 소리를 낸다. 검은색 의상의 다섯 출연자들은 1968년판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1923~)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레너드 위팅(Leonard Whiting, 1950~)과 올리비아 허시(Olivia Hussey, 1951~)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하고, 극중 내용처럼 장검으로 결투를 하며, 원수로 지내는 캐플릿과 몬테규 집안이 아닌, 본래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남자 주인공 윈스턴은 줄리아라는 여성을 만나 모처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1984년으로 옮겨 온 로미오는 캐플릿 가의 가면무도회에서 줄리엣과 만나 역시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로미오가 결혼한 줄리엣은 바로 1984년의 줄리아 라는 설정이다. 결혼을 한 로미오는 본색인 사상결찰 오브라이언의 모습을 드러내고, 법규를 어기고 결혼한 윈스턴과 줄리아를 체포 구금시키고 고문까지 가한다. 결국 윈스턴과 줄리아 두 사람은 갈라서게 된다. 그리고 줄리아는 줄리엣의 모습으로 자살을 한다. 로미오는 줄리엣의 죽음을 보고 충격으로 그 옆에서 자살을 한다. 석방된 윈스턴과 줄리아는 결국 다시 대면을 하게 되지만, 사상과 사랑의 자유가 통제된 사회, 또는 의식이 기계적으로 구축된 사회를 보면서, 마치 현재 모든 사람이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만을 들여다보고 매달리는 기계적 현실과 비교하게 되고, 기계적으로 구축된 사회에서 자유스런 사상이나 사색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됨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남승화, 주예린, 김상혁, 박진원, 최선경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극적분위기 상승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감정의 상승이 아닌 음성만 상승시킴이 흠이라면 흠이다.
무대디자인 박장렬, 조명디자인 김철희, 의상디자인 이신옥, 움직임 이윤정, 분장 김성희, 사진 김명집, 캐스팅 디렉터 김준삼, 조연출 오세준, 조명오퍼 김나라, 분장보조 박지연, 그래필 김우연, 기획 이창훈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연극집단 뮈토스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조지 오웰 원작, 오경숙 재구성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1984>를 기억에 길이 남을 실험극의 창출이자 깊은 사색적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9월 24일
9, 세명대학교 공연영상학과 제9회 졸업공연 이정하 지도교수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원작 신동현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
알과핵 소극장에서 세명대학교 공연영상학과 제9회 졸업공연 이정하 지도교수,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원작, 신동현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를 관람했다.
안토니에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1916~2000)는 스페인의 극작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의 현대 스페인 극작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1934~36년에 마드리드와 과달라하라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스페인 내란(1936~39) 당시에는 공화국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민족주의자들이 사형을 선고했으나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6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했다.
1949년 희곡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로 주목을 끌었고, 권위 있는 문학상인 로페 데 베가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 빈민가의 가난한 아파트 주민들이 겪는 좌절을 현장감과 객관성을 갖추어 묘사하고 있다. 같은 해에 발표한 단막극 〈모래 위에 쓴 글자 Palabras en la arena〉는 그 뒤에 발표한 많은 희곡처럼 또 다른 스페인 문학상을 받았다.
2번째 장편 희곡 〈불타는 어둠 속에서 En la ardiente oscuridad〉(1951)에 등장하는 맹인들의 집을 소재로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꿈을 짜는 직공 La tejedora de sueños〉(1952)은 신화적인 내용이며, 〈이레네 보물 Irene o el tesoro〉(1955)은 공상적인 이야기이다. 그가 다룬 기본 주제는 인간적 행복에 대한 갈구와 그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오늘은 축제일 Hoy es fiesta〉(1957)에서는 사실적·냉소적인 소재로 다시 마드리드의 빈민가를 묘사했다. 그는 아서 밀러의 문체를 흉내 낸 사실주의를 추구했는데, 후기 작품들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또한 그는 브레히트의 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역사극들을 썼는데, 이러한 작품으로는 찰스 3세 시대에 스페인을 현대화하려던 개혁의 실패를 다룬 〈나라를 위한 몽상가 Un soñador para un pueblo〉(1959), 벨라스케스에 관한 〈시녀들 Las meninas〉(1961), 프랑스 대혁명 기간의 파리를 무대로 한 〈성 오비디오의 음악회 El concierto de San Ovidio〉(1963), 스페인 내란을 다루고 있는 〈지하실의 창 El tragaluz〉(1968) 등이 있다. 후기에는 〈이성(理性)의 꿈 El sueño de la razón〉(1970)·〈발미 박사의 이중생활 La doble historia del doctor Valmy〉(1978) 등을 썼다. 1971년에 스페인 학술원 회원으로 뽑혔으며, 그에 관한 연구로 R.L.니콜라스의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비극 The Tragic Stages of Antonio Buero Vallejo〉(1972)이 있다.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는 2000년에 서울대학교에서 송지현 기획, 노성민 연출로 공연되었고, 2007년에는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오태석 예술감독, 이송 연출로, 백성희, 이승옥, 오영수, 최상설, 이혜경, 이상직, 서상원, 계미경, 이은희, 이문수, 우상전, 김종구, 조은경, 남유선, 김진서, 곽명화, 한윤춘, 안민석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두었다. 2015년에 국립극단에서 김윤철 예술감독 강량원 연출로 재 공연되었다.
<어느 계단 이야기>는 마드리드의 한 허름한 연립주택 계단을 배경으로 한다. 모든 사건의 중심적 공간은 계단으로서, 이곳을 중심으로 한 네 가족, 등장인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대를 물려 이어가는 사랑, 증오,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며 사건 들이 전개되어 나간다.
모두 3막으로 구성되어 제1막은 1919년의 어느 날, 제2막은 10년이 흐른 1929년의 어느 날, 제3막은 20년이 지난 194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막은 1919년의 어느 날이다. 홀아버지의 무남독녀인 엘비라, 홀어머니의 외아들인 페르난도, 철도 공무원인 아버지 그늘 아래서 어머니와 건달 오빠 페페와 살아가는 카르미나, 걸걸한 성격의 소유자인 파카와 잘못된 딸 로사를 못 마땅히 생각하면서도 아버지로서의 정 때문에 조용히 딸을 돕는 후안, 그리고 그의 장남이면서 노동자인 우르바노. 한 연립주택의 1호, 2호, 3호, 4호의 1실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잘생겼지만 게으른 낭만주의자인 페르난도와 현실적이지만 희망이 없는 우르바노는 친구 사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인 엘비라는 아버지를 이용해 잘생긴 페르난도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페르난도는 아름다운 카르미나를 사랑한다. 페르난도는 카르미나에게 이 구질구질한 연립주택을 떠나자며 장미빛 미래를 약속한다.
2막은 1929년의 어느 날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으로 설정이 된다. 페르난도의 어머니와 카르미나의 아버지, 엘비라의 아버지가 죽어나갔을 뿐 이 연립주택의 사람들은 그다지 변화가 없다. 카르미나에게 사랑을 약속했던 페르난도는 결국 현실에 굴복하여 돈 많은 엘비라와 결혼하고, 배신당한 카르미나는 곁을 지켜주는 우르바노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자유분방한 로사와 바람둥이 페페, 트리니 등 주변 인물들의 자잘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희망 없는 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3막은 1949년의 어느 날이다. 또 다시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페르난도와 엘비라 사이에서 난 아들 페르난도와, 카르미나와 우르바노 사이에서 난 딸 카르미나가 자라 성숙해지고, 이들은 부모의 맹렬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연애를 시작한다. 서로 맞닿지 못했던 부모들의 애정은 배신과 절망, 혐오와 비난으로 어긋나 있지만 두 젊은이는 사랑을 약속한다. “카르미나,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앞으로 십장이 되어 돈을 많이 벌 것이고 즐겁고 깨끗한 가정을 꾸밀 거야. 여기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나는 공부를 더해 이 나라 제일가는 기술자가 될 거야….” 아들 페르난도는 딸 카르미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20년 전에 페르난도가 카르미나에게 했던 것과 똑 같은 말로 새로운 약속을 하며 둘은 끌어안고 입 맞추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중앙에 이층으로 오르는 긴 계단이 있고, 계단 위 무대 좌우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그 통로 좌우 벽면에는 마치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처럼 1실마다 문이 있고, 모두 네 개의 방문이 달린 것으로 보아 4가구가 사는 건물임을 알 수가 있다. 통로 밑은 커다란 공간인데, 건물 외부와 통하는 통로로 되어있다. 출연자들의 의상이 스페인 풍이라 여럿이 출연할 때면 마치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움직이는 그림을 대하는 느낌이다.
연극은 도입에 나이든 페르난도가 높은 계단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다가 페르난도는 다리를 휘청거리게 되고, 다시 몸의 중심을 잡으면 암전과 함께 1막의 첫 장면인 전기요금 수취인이 방마다 노크를 하며, 문을 열고 나온 여인들에게 고지서와 요금을 수취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마당에는 나무로 된 긴 등받이 의자가 놓이고, 어린이는 인형으로 대체한다. 소품으로 빵이 봉투에 담겨 운반된다.
연극은 원작의 줄거리대로 전개되고, 100년 전의 스페인 서민들의 삶이 5, 60전의 우리의 삶과 별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20대 젊음에서부터 50대의 연령으로 되기까지 출연자들의 사랑과 삶, 고통과 애환이 펼쳐지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연극에 시종일관 몰입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대의 구애를 하던 모습과 말투를 꼭 빼어 닮은, 원수지간 같은 상대가족의 자녀의 사랑이 부모대의 모습대로 펼쳐지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박용진, 이지수, 김명현, 김도연, 김한솔, 김선진, 윤영진, 전창진, 이현욱, 정민채, 이대현, 박별이, 김아름, 김기현, 구하은, 박지은 등 출연자 전원의 작중인물다운 성격창출과 절제된 호연은 갈채를 받는다. 김한솔과 김선진의 라틴 댄스는 수준급이다.
무대감독 진운성, 음향오퍼 신연주, 조명오퍼 김지은, 기획 배진한, 의상 송일아, 소품 고영현, 분장 김은소라, 진행 조재일 천세영, 음향디자인 노영섭, 홍보 최재석, 연기지도 성경선, 영상촬영 깁ㅁ대선 김동기, 플라멩고 지도 김선화, 영상편집 김대선, 무대디자이너 임은지, 조명디자이너 임해원, 학과 행정조교 최강혁, 학과 기술조교 권정현 그 외의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세명대학교 공연영상학과 제9회 졸업공연, 이정하 지도교수,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원작, 신동현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를 졸업공연에 걸 맞는 우수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월 25일
10, 인천 극단 놀이와 축제 김문광 작 진정하 연출의 고금소총
인천 문학경기장 내 문학시어터에서 극단 놀이와 축제의 김문광 작, 진정하 연출의 <고금소총(古今笑叢)>을 관람했다.
<고금소총(古今笑叢)>은 민간에 전래하는 문헌소화(文獻笑話:우스운 이야기)를 집대성한 설화집으로, 대략 19세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속에 수록된 소화집의 편찬자는 대개 알려져 있다. 1947년송신용(宋申用)에 의하여 ‘조선고금소총(朝鮮古今笑叢)’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배본에 ≪어수록 禦睡錄≫이, 제2회에 ≪촌담해이 村談解頤≫·≪어면순 禦眠楯≫이 한 권으로 묶여 정음사(正音社)에서 출판되었다.
1959년 민속자료간행회에서 ≪고금소총≫ 제1집이 유인본으로 간행되었는데, 이 속에는 서거정(徐居正) 편찬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 홍만종(洪萬宗)의 ≪명엽지해 蓂葉志諧≫, 송세림(宋世琳)의 ≪어면순≫, 성여학(成汝學)의 ≪속어면순≫,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 부묵자(副墨子)의 ≪파수록 破睡錄≫, 장한종(張寒宗)의 ≪어수신화 禦睡新話≫, 그 밖에 편찬자 미상의 ≪기문 奇聞≫·≪성수패설 醒睡稗說≫·≪진담록 陳談錄≫·≪교수잡사 攪睡襍史≫ 등 모두 789편의 소화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1970년조영암(趙靈巖)은 ‘고금소총’이라는 표제로 소화 379편을 번역하고 그 원문까지 인용하여 명문당(明文堂)에서 발간한 바 있다.
소화(笑話)로서의 특징은 한문소화로서 일반적인 소화와 구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소화는 구전하여 전래하는 구비전승인데, 여기에 수록된 소화는 이미 몇 백 년 전에 문헌으로 정착되어 전하고 있고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수집, 편찬한 작자들이 대개 한학자이자 문장가요, 관료나 양반들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분·성격·주제·구성 등이 일반 구비소화와 판이한 데가 있다.
오직 웃음을 유발시키는 이야기요, 단편형식을 취하는 점에서는 일반소화와 다를 바 없으나, 역시 문장화되어 전하기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짜임새나 표현기교는 훨씬 세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한문소화는 학자나 양반 등의 특정인에 의하여 수집, 편찬되었기 때문에, 편찬자의 창의와 윤필(潤筆)이 가미되어 순수한 구비전승물로 볼 수 없으며, 좀더 과장하여 편찬자의 창작적 의도에 의하여 씌어진 것도 있다.
김문광은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졸업. 만화가 출신이며, 유학 후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H2’, ‘환타지스타’ 등 수백 권의 만화를 번역. 그 외 소설, 논문, 영상, 희곡, 비즈니스, 전문서 등의 번역서가 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번역과 창작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인천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천 문학시어터 극장장이다.
진정하는 배우이자 연출가다. 극단 놀이와 축제, 씨∙아리 소극장 대표, 학산소극장 예술감독이다. 1989년 11월 극단 미션 창단대표, 유리동물원, 민들레 작은 천국, 쥬라기 사람들, 아일랜드 외 20여 작품 출연했다. 뮤지컬 가스펠 나의이름 버리고, 불의가면 외 10여 작품 연출하고, 천지창조와 그 밖의 일들 외 40여 작품 기획, 제작했다.
무대는 텅 비어있는 공간이다. 사운드 디랙터 지종호는 음향효과와 음악, 그리고 백색 연기를 분무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색담콘서트 ‘고금소총’은 색깔 넘치는 사또 일가의 요절복통 야담 한마당으로 극단 ‘놀이와 축제’에서 준비했다. 고전 해학집 ‘고금소총’을 바탕으로 엮은 가금 따끈한 가족이야기로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고을 사또 박명준은 매일 매일 골치가 아프다. 몸 뜨거운 아내가 밤마다 보채는 데다 발정 난 강아지 같은 아들 준구 녀석이 온 동네 처자들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동네가 조용할 날이 없다. 생각다 못해 장가를 들이고자 하니, 소식을 들은 준구는 색시 될 처자를 보겠다고 야밤에 담을 넘고, 준구를 짝사랑하던 몸종 앵두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노총각 이방의 가슴에는 불이 붙는다. 여기에 새로 들어온 며느리까지 합세해 한판 색깔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진다.지혜롭지만 한량 기질 넘치는 사또 박명준, 그 아비를 딱 닮은 아들 준구, 맨날 당하는 줄도 모르고 잡혀 사는 아내 오씨, 준구를 몸으로 키운 몸종 앵두, 그런 앵두를 짝사랑하는 충직한 이방, 그리고 멋모르고 시집온 몸 뜨거운 어린 며느리 이슬이. 이 야하지만 행복한 사또 일가의 왁자지껄한 일상이 마당극의 형식을 빌어 펼쳐진다.조선시대 민속야담집 ‘고금소총’의 에피소드를 발췌해 하나의 드라마로 엮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쓴 김문광 문학시어터 극장장은 “고령화시대에 들어 중장년층의 건강한 성을 다룬 코미디가 있어도 좋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작품을 준비하게 됐다며 “일종의 회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어서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춰 능청스러우면서도 낯뜨거울 수 있는 대사들을 읊어댄다. 그럼에도 천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모두 가족이고 서로 사랑함이 마땅한 부부이기 때문”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이 작품은 제33회 인천항구연극제에 처음 제작 참가했으며, 이후 3주간 대관공연을 해 많은 관람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황도석, 지성근, 최미라, 배소희, 이병철, 이기석, 김시진, 함혜영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에 따른 밝고 희극적인 성적 표현은 관객의 폭소를 유발하고 갈채를 받는다, 연출가 지정하와 사운드 디랙터 지종호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놀이와 축제의 김문광 작, 진정하 연출의 <고금소총>을 중장년과 노년층에 어울리는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9월 30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