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 페스티벌 공연총평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금상 수상작과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공연이 있었다.
1, 대전극단 나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의 윤미현 작, 김상열 각색 연출의 <철수의 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 페스티벌 대전극단 나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의 윤미현 작, 김상열 연출의 <철수의 난>을 관람했다.
윤미현은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2004년 [통조림] 세계의 문학 중편소설등단, 2012년 [우리 면회 좀 할까요?]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 당선, 2012년 [텃밭킬러]한국공연예술센터 <봄작가, 겨울무대> 작품 선정, 2012년 [평상] 서울연극협회 <2012 희곡아 솟아라> 공모당선, 2014년 <젊은 후시딘> <팬티 입은 소년>을 발표 공연하고, 2016년 서울연극제 <장판>으로 희곡상 수상, 2016년 <철수의 난>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미모의 여류작가다.
김상열은 극작가 겸 연출가로 현재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수 및 방송공연예술학과 학과장으로 재임 중이며, 대전대학교 목요문화마당 문화예술감독, 대전 대학연극페스티벌 공동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대표적인 극작 및 연출작품으로는 제27회 전국연극제에 대전 대표작으로 출전하여 영예의 대상(대통령상) 수상작인 <소풍가다 잠들다>를 극작, 연출하였으며, <옛사랑>, <아파트 놀이터에서 생긴 일> 등의 작품이 있고, 2016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연출상과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무대는 허름한 네 개의 나누어진 공간에 하수 쪽에서부터 구멍가게, 세탁소, 채소가게, 그릇가게가 이어져 있고, 그 가게들의 위쪽은 대로이지만 비포장도로다. 주변에 억새풀이 풍경을 이루고 있다. 네 가게 앞 통로에는 가로로 움푹 파인 커다란 웅덩이가 있어 바닥에는 물이 흐르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극중 작업부들이나, 토끼가 그 속에서 기어 나온다.
무대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는 연주석을 마련하고, 전자건반악기, 타악기 현악기 등을 연주한다.
내용은 전쟁이 곧 발발할 것이라는 국민 대다수의 생각 때문에 생업이나 직업을 중단하고 국외로 떠나거나 포기한 상태라서 가게에는 손님이 끊어진지 오래고, 세탁소는 세탁물을 맡기고는 아예 찾아가지도 않고, 채소가게는 장사는커녕 채소농사를 짓지를 않아, 산에서 도라지를 캐어다가 껍질을 벗겨 가족들이 먹을 뿐이다. 가전제품을 취급하고 라디오나 축음기를 수리하던 가게는 세탁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같은 제품이 고물상처럼 잔뜩 쌓여 있고, 탁자에는 고장이 난 라디오를 올려놓고 수선 중인 것으로 설정된다. 그릇가게 역시 벽에는 수많은 철 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을 매달아 놓았지만, 손님 발이 끊어진지 오래라, 여주인 아낙은 플라스틱 함지박에 식기를 담거나, 수저를 담아 웅덩이에 내어다 버리는 게 일이다.
연극은 도입에 웅덩이에서 커다란 토끼가 등장을 하고, 출연자들의 생활모습이 펼쳐진다. 도라지 껍질을 계속 벗기는 노부부, 함께 작업을 하는 동네 장정들이 물웅덩이에서 기어오르고, 그들은 할 일이 없으니, 술을 마시는 것이 일인 듯싶고, 막걸리나 소주가 떨어진지 이미 오래니, 에틸알코올에 곡식분말을 섞은 뿌연 용액을 술대용으로 마시는 모습이 연출된다.
주인공인 철수는 체구가 작달막한 소년체구의 인물이라, 소형 냉장고 속에서 등퇴장을 하고, 전쟁발발예고로 모두 피란을 가고, 남자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야채가게 집 딸은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을 붕대로 감고 등장을 한다. 철수는 경찰공무원시험공부를 십년간 계속하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정신이상증세인지 이웃이나 가족까지 의혹과 불신의 눈으로 보고, 아버지가 이웃 장정과 무선전화 통화나, 라디오 수리하는 것을 적과 내통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극의 후반에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
작가는 전쟁발발의 예감을 극으로 묘사를 하고, 그로인한 국민들의 생업포기와 무기력이 생산중단과 경제파탄으로 이어져, 극심한 생활 곤궁으로 나타난다. 극중 등장인물들이 식량이 떨어진 상태에서 풀뿌리나 캐어다 먹고, 들짐승이나 산짐승을 잡아먹는 모습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도입에서 토끼가 등장하는 것처럼 대단원에서 물웅덩이에서 핵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 암흑 속에서 번쩍이는 토끼형상의 전기섬광이 이동하면서 극은 마무리가 된다.
<철수의 난>은 일종의 희극처럼 시종일관 펼쳐지지만, 관객의 가슴속에 전쟁발발 예측과 그와 연관된 생업중단이 생활파탄으로 이어지고, 인간의 무기력과 사고력 상실을 극 속에 적나라하게 그려내어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전은영, 지선영, 김성우, 배다솜, 이시우, 남명옥, 조중석, 정아더, 성용수, 손정은, 임황건, 오해영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오재진, 조연출 이우진, 조명감독 윤진영, 음악감독 김지탁, 무대디자인 정 영, 무대제작 수 무대, 의상 남은경, 인형 제작 이익주, 마임지도 이정훈, 분장 이재균, 무대감독 정우순, 사진 허윤기, 소품 음향크루 김현숙, 영상촬영 강용운, 조명크루 서채현, 기타연주 송재형, 음향크루 송윤아 임기훈, 무대진행 송부영 손해달, LED 이순철 이향희, 진행 도영실 박은숙 서은덕 임지은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대전극단 대전극단 나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의 윤미현 작, 김상열 연출의 <철수의 난>을 작가의 창의력과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감지되는 걸작연극으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다.
8월 31일
2, 경남극단 현장의 임미경 작, 고능석 연출의 <강목발이>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경남극단 현장의 임미경 작, 고능석 연출의 <강목발이>를 관람했다.
<강목발이>는 경남 의령의 <의적 맹 개목과 강목발이> 설화에서 소재를 딴 희곡이다.
<강목발이>는 의적이라는 설정이고, 억울한 죽음을 당해 저승길을 거부하고 인간의 몸에 붙어 있다가 부친격인 도축업자의 도축의식으로 저승사자들과 함께 인감의 몸에서 나와 저승길로 간다는 내용이다.
이 연극에서는 도축업자가 아들 몸에 달라붙은 <강목발이>를 도축의식으로 제거한다. 고기 관 주인이 도축의식을 무당 못지않게 진행한다는 설정이 무리이기에 작품해설을 읽지 않고 공연만 본다면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강목발이>라는 의적의 설명도 부족하다.
의적 <강목발이>는 진양에 있어서는 홍길동(洪吉童)에 버금가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강목발이는 지금의 진양군 대곡면 대방산 줄기 가정(佳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한 도승(道僧)이 찾아와 사립 밖에서 물었다.
도승이 찾아온 것은 비범한 인물이 태어날 줄 알고 왔는데 시를 넘겨 대적(大敵)이 날 시에 태어난 것을 알고는 걱정을 하며 돌아갔다.
태어난 아이는 천부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어려서 글도 배웠는데, 머리는 좋았으나 글공부를 게을리 하면서도 남의 눈을 속이는 일에는 탄복을 금치 못했다.
어느 날은 그의 숙부가 방바닥에 엽전을 던져놓고 아무도 모르게 가져보라며 시험해 보았다. 강목발이는 밖을 잠깐 나왔다가 들어오더니 “숙부님 가져갑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엽전이 금세 없어졌다. 강목발이는 밖에서 발바닥에 보리밥알을 이기어 붙였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강목발이가 남의 눈을 속인다고 그러기에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고 의심했으나 그게 사실이었다.
숙부는 방바닥에 놓인 목침을 들고 그의 다리팍을 내리쳤다. 이때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녔다고 하나 신빙성은 적다.
그 뒤에도 진주 인근의 살만하다는 부잣집은 도둑을 맞았고, 대신 가난한 집에는 쌀이며 돈이 쌓였다. 이때부터 의적 강목발이의 일화는 삼남 일대에 번져 나갔다.
그때 관아의 꾀 많은 형리(刑吏)가 있어 “진양 성을 한 식경(10분 정도)에 세 바퀴만 돌면 모든 도적질한 허물을 벗겨 주겠다.”고 했다. 강목발이는 일생의 실수인 줄 모르고 한 식경 안에 외다리로 진양 성을 세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하여 그는 형리의 함정에 빠졌고, 삼남 일대에 번진 의적은 강목발로 판명되었으며, 그는 구 법원 앞 객사(客舍) 뜰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 <강목발이>의 혼령이 도축업자의 아들 몸에 붙어 아들은 평생을 노름이나 하고 지낸다는 설정이고, 저승사자들이 강목발이를 잡아가려고 극에 등장해 시종일관 지켜본다. 도축업자는 부인이 없기에 문 여사라는 여인을 흠모하고, 여인도 도축 업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아들은 노름빚을 청산하기 위해 부동산 업자를 데려다가 집문서를 내어준다. 당연히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부동산 업자와 부친의 승강이와 폭력이 벌어지는 속에 강목발이도 변을 당한다. 지키고 있던 저승사자와 이 집터의 대감격인 두꺼비가 이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강목발이는 아들의 몸에서 나오게 되고, 저승사자들이 강목발이임을 확인하고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도축의식을 무당 못지않게 진행하며 <강목발이>를 떠나보내지만 공연 내내 온건한 성품을 유지하던 모습과는 달리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도축의식을 진행하니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차라리 문 여사를 무녀로 설정을 하고 의식을 진행하도록 했으면 납득이 가지를 않았을까?
대단원에서 아버지와 문 여사가 있는 방에 아들이 식사 상을 차려서 들여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최동석, 송광일, 감수희, 정대영, 김도영, 박진희, 이재선, 박현민, 김진호, 등 출연진의 호연과 악사 김한준, 황이나의 연주와 소리는 갈채를 받는다.
안무 오세란, 움직임지도 고재경, 기획 이진희, 무대디자인 박범주, 무대구성 이재선, 무대제작 강선녀, 조명디자인 이금철, 음향감독 황윤희, 음악편집 송광일, 의상 박진희 김도영, 진행 이동은 박지영 등 기술진의 열정이 드러나, 경남극단 현장의 임미경 작, 고능석 연출의 <강목발이>를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금상 작으로 결정했다.
9월 3일
3,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의 둘라트 이시베코브 작, 김엘레나 연출의 <여배우>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의 둘라트 이시베코브(Dulat Isabekov) 작, 김 엘레나(Alena Kim) 연출의 <여배우>를 관람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극장은 디아스포라의 고난을 겪고 있는 구소련 한인들의 삶을 예술화 시켜 온 공간이다. 그리고 현재 10여 만 명의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구소련 중앙아시아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강제 이주 이후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우리민족의 문화적 전통과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고려극장은 그 중심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에서도 가장 오랜 문화 기관 중 하나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8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려극장 무대에서 250여건의 연극과 콘서트 프로그램이 상연됐고 5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그것을 관람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고려인 혹은 러시아 극작가들에 의해 창작되거나 번역 번안된 200여편의 연극들을 통해 고려인들의 삶과 문화 역사가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희곡들이 단순히 예술적 의미만을 지닌 것들이 아니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던 지사들이나 일반적인 고려인들의 삶을 다루거나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 <흥부전> 등의 고전을 다루는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기록물들이 상영되었다.
고려극장의 극작가들이 우리의 고전작품들을 연극의 소재로 많이 다룬 이유는 민족정신의 확산 및 확인이라는 현실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구소련의 살벌했던 동화정책에 따라 잊혀져가는 모국어를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박탈감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연극 장르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했다. 온갖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매년 몇 편씩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사실을 그런 절박감의 소산이었다.
또한 전후시기에 고려극장은 다른 민족들의 고전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고려인 관중들을 소련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들의 문화유산과 접촉시키는 것이 또 다른 극장의 과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무대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극작가들은 물론 서유럽의 고전들도 상영되었다.
고려극장이 한국 고전에 기반을 두거나 역사적 인물을 형상화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우리 민요나 노래들을 모국어로 공연했던 것은 고려인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보다 저 중요한 것은 고려극장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어 공민적 권리를 제한 당했던 고려인들에게 몸에 맞는 옷, 맛있는 음식, 따뜻한 집이 되어 지친 삶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 연극사에도 드문 일이며, 동시에 우리 해외 동포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 예술단이자 극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인들에게 민족문화 수호자로서 큰 역할을 해온 고려극장이 평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재정의 어려움을 겪거나, 제대로 된 공간을 갖추지 못하기도 했다.
1937년 강제이주 당시 극장은 카자흐스탄과 우스베키스탄으로 나뉘어 이주됨으로써 한동안 두 개의 극장으로 존재했다.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은 1942년 우슈토베로 옮겨져 주립극장이 되었다. 1947년에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고려극장이 해체되어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으로 재결합되었다. 1959년에 다시 크즐오르다로 이주한 극장은 사할린조선극장을 합병하였고, 1963년에 국립극장 지위를 얻었다. 1968년에는 수도 알마티로 이전하여 “국립조선음학희극극장”으로 개명하였다. 같은 해에 가무단 “아리랑”을, 1993년에는 민속악단 “사물놀이”를 창단하였다. 고려극장은 소련의 해체로 위기를 겪었지만 극복하였고, 극장은 1997년 한국 교육원으로 옮겨갔다가. 2004년 현재의 극장 건물로 입주하였다.
이러한 고려극장의 역사는 구소련 고려인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극장이 걸어온 운명에는 마치 거울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극장은 다수의 표창과 상을 받기도 하였는데, 1982년에는 소비에트 극장 예술 발전에서 세운 공로와 극장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하여 “영예표식” 훈장을 수여받았다. 한국과 러시아와의 수교이후인 1992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민족 극장 연극 축제에서 극작가 한진의 작품인 ‘나무야 흔들지 마라’로 일등상을 타기도 했으며, 2005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영예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현재도 고려극장은 모든 전통 민족예술 장르들 즉 극단, 사물놀이 팀, 민족무용단과 성악단을 가지고 있으며 카자흐스탄 다민족 다문화의 떼여낼 수 없는 부분으로 인식 되면서 민족 특성, 얼과 언어를 보존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문화를 풍부히 하고 있다.
고려극장에서 우리 말 연극이 공연되는 한 고려인들의 민족의식은 유지될 것이고, 고려극장이 문을 닫거나 고려극장에서 우리 말 연극이 사라지는 순간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들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한민족의 민족적 표지(標識)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극장은 고려인들에게 우리 민족문화를 유지시키고, 발현시키는 가장 큰 힘이다.
극작가 둘라트 이사베코브의 작품과 김 엘레나 연출로 이루어진 이 연극은 명 여배우 아이굴 아싸노바의 이야기다. 연극대학에서 배우의 직업을 전공하고 공화국의 이름난 배우가 되기까지 그 녀에게는 성공과 실패도 있었고 자체 희생과 좌절도 있었으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극에 대한 열정의 불변함을 보여준다.
무대는 천정에서부터 휘장처럼 여러 개의 흰 백색의 천을 늘어뜨리고 중앙의 열린 공간에 안락의자를 비스듬히 배치했다. 발레단이 출연해 장면변화마다 여배우의 심정을 무용으로 표현을 하고 늘어뜨린 백색 천을 얽도록 하거나 이동시켜 조형예술미를 창출시킨다. 러시아풍의 음악연주로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주인공 여배우의 사고(思考)와 대치되는 사고를 녹음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여배우의 의상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관객의 눈길을 끌고, 카자흐스탄의 대중가요를 여배우가 열창을 해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내용은 남편이 출장한 사이에 여배우는 연출가와 가까워진다. 두 사람의 가까운 장면을 귀가한 남편이 보고 질투와 분노로 여배우와 결별을 선언한다. 당연히 여배우는 연출과 불륜관계가 아니라고 변명을 하지만 남편은 믿지를 않고 떠나간다. 낙담을 한 여배우에게 한 기업의 행사에 참석하면 고급 승용차를 경품으로 제공하리라는 전갈을 받는다. 여배우는 참가해 환영과 상당한 접대를 받고 주최 측에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청을 받는다. 여배우는 거절하다가 결국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녀의 노래솜씨는 좌중과 관객의 갈채를 받고 경품인 차의 열쇠도 받게 된다. 그런데 행사기업의 대표가 가면을 벗으니, 여배우를 젊은 시절에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던 남성임을 알고는 여배우는 곧바로 실망해 돌아온다. 이번에는 한 젊은 남성이 꽃을 들고 방문한다. 내쫓으려 하다가 여배우는 방문 내역을 듣는다. 여배우가 젊은 시절 화재현장에 있을 당시 불길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소년이 성장해 자신을 찾아온 것을 알고는 반겨 맞는다. 그런데 장성한 소년이 자신보다 여배우가 훨씬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미모의 여배우이기에 연모의 정을 고백하려고 찾아온 것을 알고는 여배우는 젊은 남성을 잘 타일러 돌려보낸다. 여배우는 1인극을 통해 자신의 길이 연극이고 연극배우의 길을 끝까지 가겠노라는 의지를 보인다. 그때 남편이 되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사과를 하고 여배우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가까이 다가가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으면, 여배우가 남편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여배우로 백 안또니나(Antonina Pyak), 남편으로 최 로만(Roman Tsoy), 연출가로 마흐삐로프 알리쉐르(Alisher Mahpirov), 기업가로 김 세르게이(Sergey Kim), 그 외 유가이 보리스(Boris Yugay), 리 알레크산드르(Alexandr Li), 톡삼바예바 꿀랴쉬(Toksambayeva Kulyash), 아지갈리예프 메이람베크(Azhigaliev Meirambek), 윤 예브게니야(Yevgeniya Yun)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노래 그리고 춤을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조명감독 스삐줴보이 블라지미르(Spidzevoi Vladimir), 음악감독 음향 윤 게오르기(Georgiy Yun), 의상 스트렐리코바 리아나(Strelnikova Liana), 기획 번역 최영근(Choy Yen Gyn) 등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의 둘라트 이시베코브(Dulat Isabekov) 작, 김 엘레나(Alena Kim) 연출의 <여배우>를 기억에 길이 남을 명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월 7일
4, 강원도 속초연합의 이 반 작, 변유정 각색 연출의 <카운터 포인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강원도 속초연합의 이 반 작, 변유정 각색 연출의 <카운터 포인트>를 관람했다.
극단 ‘파람불’, ‘소울시어터’, ‘청봉’이 함께 연합하여 제작한 작품<카운터 포인트>는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 반(본명 이명수, 1940~) 선생은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나 속초에서 성장했다.1961년 숭실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입학, 1992년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예술철학) 학위 수여, 1966년 잡지 ‘새벗’에 작품 발표, 1968년 서울YMCA 소극단 ‘탈’의 연극 활동 주도 극작가로 활동 시작, 1969년 동극집 ‘주근깨미 꼬마천사’ 출간, 1976년 극단 현대극장 창단 멤버로 연극의 전문화, 현대화 운동에 적극 가담, 1979년 희곡 ‘그날, 그날에’로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희곡상 수상, 1984년 희곡 ‘바람타는 城’으로 제20회 동아연극상 희곡상 수상, 1989년 희곡 ‘아버지 바다’로 문예진흥원 우수희곡 공연지원금, 크리스찬문학상 수상, 2005년 희곡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으로 제2회 창조문예상 수상했다.
숭의여대 교수, 덕성여대, 한국외국어대, 카톨릭대, 동국대 강사 역임, I.T.I 한국본부 희곡분과위원장, ASSITEJ(한국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 역임, 동북아시아 기독작가회의 한국 회장 역임. 2008년 8월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정년퇴임한 극작가다.
변유정은 춘천교대부설초교 재학시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전국대회에서 전 종목 우승까지 휩쓸었던 이력을 갖고 있다. 1993년 춘천극단 연극사회의 ‘종로고양이’로 연극무대에 선 후 뮤지컬과 연극 40여 편에 출연했다.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김광림교수가 희곡을 쓰고 연출한 ‘우투리’에서 당초 남성역할이었던 무당역을 맡아 격렬한 전통연희와 연극을 동시에 소화해 냈다. 2004년 우투리’ 세 번째 버전에서는 주인공 우툴어멈에 발탁돼 프랑스 파리 카르투슈리 태양극장에서 호연을 펼쳤다. 2007년 오스트리아 여성 아이다 카릭이 연출을 맡은 ‘트로이의 여인들’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랐다.변유정의 능력은 일본의 세계적인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 연출 ‘엘렉트라’ 출연으로 절정의 빛을 발하게 된다.
연출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변유정은 춘천극단 연극사회의 작품 연출로 연출가로도 데뷔했다. 김유정 소설 원작‘금따는 콩밭’을 연출, 강원연극제 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2015년 속초 극단 파람불의 연극 <전명출 평전>으로 전국연극제 대상을 받았고, 2016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속초연합의 <카운터 포인트> 연출로 금상을 수상함으로써 장래가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미녀 연출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카운터 포인트>는 부제인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처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들어온 서양문물을 익히고 들어와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죽게 되는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보다는 끼리끼리의 정권야욕을 위해 붕당을 결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왕조 중엽 친 청 친 명 중립적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축출하고, 바보군주 인조를 왕으로 모신 무리들이 조선 5백년간의 종주국 노릇을 하던 명나라만 추종하고, 신생 후금 국을 오랑캐라 업신여긴다. 당시 후금국은 명나라를 정벌하고 중국을 통일해 청나라가 된다. 조선은 명을 추종하던 무리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청의 개국을 당연히 도외시한다. 이에 분노한 청은 조선을 침략해 그 국력을 과시하고 인조의 항복을 받아낸다. 인조의 장자 소현을 비롯해 수많은 남녀가 인질로 청나라 수도인 심양으로 끌려간다. 아버지인 인조와는 달리 명석한 인물인 소현은 청나라에 들어온 서양 여 러나라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혁신시키고 발전적으로 이끌려 한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보다 붕당의 이익과 안위만을 꾀하는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는 바보군주 인조로서는 소현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비극적 내용이다.
소현세자의 볼모생활은 심양일기에서 자세히 전해진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고,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 당했다는 설이 떠도는 왕세자. 소현세자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극적인 삶이었고, 그만큼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KBS <최강칠우>와 <추노>는 모두 인조를 악역으로, 소현세자를 도탄에 빠질 조선을 구할 성군이 될 인물로 묘사했다. 최근 방영하는 tvN <삼총사>에서는 소현세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소현세자에 대한 아쉬움을 더욱 강하게 내비친다. 정말로 소현세자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패전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개혁할 인물이었을까?소현세자를 다루는 작품들에서는 그를 명민하고 인정이 많은 인물로 소개하곤 하는데, 덕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1637년 <소현 심양일기>에는 소현세자가 병자호란 이후 청으로 끌려가면서 지나치는 촌가의 백성들에게 “마을 사람 1백여 명이 병화를 피해 석굴에 숨었는데, 세자가 쌀 몇 말을 나누어 주었다”고 적혀 있다. 일기 곳곳에는 이런 일화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함께 지낸 신하가 관직에서 물러나면 끊임없이 사람을 보내 건강을 챙겼다 한다. 소현세자가 삼전도에서 왕이 직접 머리를 조아리고 이마를 땅에 찧는 항복 예식을 치를 때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은 그의 성품을 보여준다. <인조실록>은 “이때 세자가 상(인조)의 곁에 있다가 울음을 터트리자 상이 달래었다”고 기록한다. 백성에게 베푸는 것을 아끼지 않고, 주변 사람을 두루 챙겼으며, 아버지의 치욕에 울음을 참지 못하는 심성을 가졌으니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연극 <카운터 포인트>의 소현세자의 모습도 이런 성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대는 수많은 가리개와 높은 단위에 있는 어의로 꾸며져 있다. 가리개를 이동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어의는 하수 쪽을 향해 기울어진 형국이고, 어의가 놓인 높은 단은 바퀴가 달려 출연자들이 회전을 시키고 객석 가까이 끌고 오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희랍극에서 보듯 수많은 남녀 코러스가 백색의상차림으로 등장해 마치 시를 읊듯 하는 대사로 연극을 이끌어 가고 극의 중간과 대단원까지 코러스가 등장한다. 병자호란 전후해 벌어지는 왕과 대신들의 모습과 청나라 홍타시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의 모습이 연출된다. 극의 후반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활동은 가로로 연결된 가리개 앞부분 객석 가까이에서 연출되고, 서양신부 탕약망과의 대화도 무대 전면에서 이루어 진다. 극의 말미에 소현세자가 귀국을 하면, 만국전도가 그려진 병풍이 펼쳐지고, 무대 전면에 지구의, 십자가 조형물, 성모상, 신문물을 수록한 책자 등이 나란히 놓인다. 대단원에 사약을 마신 후 세자빈에게 기대어 수명을 다하는 소현의 의연한 모습과 함께 코러스의 시를 읊는 듯싶은 마지막 대사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석경환, 박문수, 김영주, 전은주, 김일태, 남호섭, 정경숙, 김강석, 감성호, 민 경, 윤국중, 박유덕, 최덕춘, 아정민, 최은희, 전혜숙, 김수정, 남희영, 고문선, 박소연, 임수아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열정을 다한 호연과 열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제작감독 남성진, 무대감독 음악 장태준, 조연출 사진 음향오퍼 손미애, 분장 정지호 최춘희, 오하나, 의상 박현주, 무대디자인 김일태, 무대제작 디자인 공간, 무대조감독 이민영, 조명디자인 남궁진, 조명감독 이후림, 조명오퍼 박정원, 조명 스라파이트, 홍보 신오일 김태영, 진행 권다림 최정원 전인혁 이상렬 안정민 박영서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강원 속초연합의 이 반 작, 변유정 각색 연출의 <카운터 포인트>를 국민 모두가 관람해야할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월 11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