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윤대성희곡상 수상작 공연총평
윤대성(尹大星)은 1939년 만주 모란강(牡丹江)주변에서 윤석주(尹錫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적단과 독립군, 일본군이 혼재해 있던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는 해방이 되면서 서울로 월남하였고,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전공과 상관없이 그는 1962년에 개설된 드라마센터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제1기로 졸업(1964)한다. 이러한 그의 극작가로서의 수련과정은 드라마센터 아카데미 졸업 후 한일은행에 취업함으로써 잠시 주춤한 듯하였으나, 직장연극 「손님들」을 발표하면서 계속 이어진다. 이 작품은 1964년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도 극작 워크숍의 간사를 맡아보던 그는 1967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출발」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극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최근까지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윤대성의 작품 세계는 주제의식과 표현방법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등단 이후부터 다양한 연극 양식들을 활용하여 사회 전반의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낸 198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들이 그 하나이고, 청소년에 관심을 두고 ‘별’ 시리즈를 창작하던 시기가 두 번째, 마지막으로는 1990년대 이후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부부관계와 여성에 관심을 보인 작품들을 발표한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에는 작가로서의 다양한 실험의식이 돋보인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망나니」(1969), 「미친 동물의 역사」(1970), 「노비문서」, 「너도 먹고 물러나라」(1973), 「출세기」(1974), 「신화1900」(1982) 등이 이 시기 작품들이다. 인간관계의 근원을 묻는 부조리한 구성은 물론,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주기 위해 전통적 연극 양식인 굿의 형식을 빌기도 하고, 서구 서사극의 양식적 특징들을 이용하여 인물의 상황을 표현하기도 하는 등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다양한 연극 양식을 이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 윤대성의 연극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시기 작품들은 내용면에서도 사회 현실 속에 나타나는 부조리하고 모순에 가득 찬 면면들에 대해 그 원인을 살펴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 역사적 사건인 ‘만적의 난’을 소재로 하여 권력의 야만성과 이기적 측면을 비판하기도 하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피폐화 시키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이 시기 윤대성의 작품은 사회구조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별 구성원들의 책임의식을 희곡 속에서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시기는 서울예술대학의 전신인 서울예술전문대학의 교수로 취임한 이후에 발표한 작품들이 해당되는데,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방황하는 별들」(1985), 「꿈꾸는 별들」(1986), 「불타는 별들」(1989)의 이른바 ‘별’ 시리즈이다. 청소년들의 방황과 우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노래와 춤을 곁들이는 등 뮤지컬적 면모를 보이는데, 대상이 청소년으로 한정되면서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어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세 번째 시기는 ‘이혼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세 편이 기획 공연되기도 했던 「당신, 안녕」, 「두 여자 두 남자」, 「이혼의 조건」과, 「WWW.(원제:세 여인)」(2005)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작품들은 주로 중산층 부부들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관계의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주면서 이 시대의 진정한 인간관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모순, 부조리함, 외로움, 그밖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그의 최근 작품 속 논리는, 등단 이후 끊임없이 사회현실에 천착하던 윤대성의 작가의식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전환점을 맞은 윤대성의 죽음예찬 시리즈가 등장한다. 그의 관심은 인생의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용서와 배려, 사랑과 나눔 같은 포용적 사상에 집중된다. 작가 자신의 현실과도 관련이 깊은 듯싶다. 죽음예찬 3부작이라고 일컫는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2010),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2011), <동행>(2012)으로 죽음으로 다가가는 노년의 삶을 노년작가 시선으로 진솔하게 그려냈다.
1939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 1945년 서울로 월남, 1961년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70년 한일은행 퇴사 후 전문 극작가 길 선택, 1973~80년 MBC TV 전속작가 <수사반장> 집필, 1980년 서울예술전문대학 교수 임용, 1986~87년 MBC TV <한 지붕 세 가족>(1년간 45편) 집필, 1993년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선임,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선임, 2015년 ‘윤대성희곡상’ 제정
1,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의 김세한 작, 안민열 연출의 <니 애비의 볼레로>
밀양연극촌 가마골소극장에서 제2회 윤대성희곡상 수상작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의 김세한 작, 안민열 연출의 <니 애비의 볼레로>를 관람했다.
김세한(1989~)은 공연기획사 아이디서포터즈와 협동조합 프로시니엄 대표이사로 2013년 “백돌비가”로 벽산희곡상 수상, “외판원이 가지고 간 것은 조그만 이야기 하나였다”로 청춘 단막극장 당선, 2016년 “니 애비의 볼레로”로 윤대성 희곡상에 당선된 발전적인 앞날이 기대되는 작가다. 뮤지컬 “원이 엄마”를 발표 공연했다.
<니 애비의 볼레로>는 필리핀에서 나고 자란 한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혼혈)인 아버지의 이야기다. 무대는 한 도시의 옥탑방이다. 조리대를 비롯해 살림세간이 방에 배치되고, 벽은 상싱적인 형태로 세워지고, 옥상으로 나가는 공간을 통해 도시의 상공이 내려다보이는 듯싶다혼혈인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고, 아들은 기타연주에만 골몰하다. 이 집에 서울대에 합격한 장녀 설란이 오랜만에 집을 찾아오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아버지와 차남 설찬은 음식을 가득 준비하고 설란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설란이 아닌 낯선 사람, 인도인이다. 이어 뒤늦게 나타난 설란은 배가 만삭이다. 아버지 자신은 혼혈인이지만, 딸이 인도인과 맺어지는 것에 노골적인 반대의사를 보인다. 사위가 될 인도인에게 호감은커녕, 박대까지 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보다 못한 차남인 아들이 아버지를 말리려들지만, 한국에서 혼혈인으로 현재까지 박대를 받아온 아버지로서는 딸이 국제결혼을 하는 것에 찬성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위가 될 인도인은 신분이나 인물은 물론 학벌과 소속기업도 나무랄 데가 한군데가 없지만, 아버지에게 끝까지 예의를 지켜 공손하게 결혼승낙을 청한다.
대단원에서 아버지의 승낙이 떨어지고, 사위될 사람과 딸과 아들이 기쁨을 드러내면, 작고한 어머니가 옥상에 등장해 차남의 기타연주에 맞춰 춤사위를 벌이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임유송(아버지 역), 박재선(설란 역), 박건일(설찬 역), 김성원(아브찬 핫산 역), 김규미(무희 역)가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무대감독 정성태, 조명오퍼 도영우, 음향오퍼 김지수, 무대크루 전인호, 프로필사진 김경인, 제작 김은환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의 김세한 작, 안민열 연출의 <니 애비의 볼레로>를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2, 우리극연구소 연구실험공연 임은재 작 김소희 연출의 <두 개의 달>
게릴라극장에서 제2회 윤대성희곡상수상 임은재 작, 김소희 연출의 <두 개의 달>을 관람했다.
<두 개의 달>은 우리극연구소 연구실험공연이다.
서울 예술대학 극작가를 졸업한 임은재(34세)는 CJ문화재단 꿈 키움 창의학교 공연부문 작가 대 멘토이자 극단 목화 기획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예쁜 모습의 여성연극인이다.
김소희는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경기대 연극영화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현재 연희단거리패 대표이자 연기생활 30년을 한 미모의 여배우로 각종 연기상을 수상했고 최근 몇 작품의 연출에서도 놀라운 기량을 발휘했다.
무대는 중앙에 커다란 침대가 놓이고, 머리맡에 링거를 주사할 장치도 보인다. 침대 주변에 책장, 냉장고, 오른쪽에는 가는 끈으로 촘촘히 연결된 휘장이 있고 그 뒤에 좁은 공간이 있어 사람이 누울 수 있다. 무대 하수 쪽에는 수돗물을 틀고 받을 수 있는 장비도 만들어 놓았다. 그 옆에 빨래 감을 넣을 수 있는 통이 있다.
연극은 도입에 암전 속에서 자동차 사고 음이 들리고, 조명이 들어오면 식물인간으로 설정된 남편을 아내가 돌보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아내는 수건을 빨아 남편을 씻어주고, 기저귀도 갈아주면서 베게잇과 침대보나 이불천도 바꿔주는 장면이 펼쳐진다. 베게나 이불 천, 사용한 수건은 빨래 통에 집어넣는다. 그러는 동안 남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물론 남편은 무응답이다.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는지 못 듣는지 알 수 없지만, 의사의 등장으로 비록 식물인간이 되어 거동은 못해도 환자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한다. 남편의 친구라는 의사 역시 같은 차에 탑승하고 있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다행히 환자의 아내처럼 다치지를 않았다는 설정이다. 남편은 2년째 혼수상태이고, 남편의 친구인 의사는 2년 동안 한 결 같이 친구의 병문안을 오고 진찰을 하며 친구부인을 위로한다.
의사가 여느 때처럼 다녀가는데 폭우가 쏟아져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물론 비를 흠뻑 맞았다. 환자의 아내는 의사의 옷을 벗게 한 다음 수건을 가져다주고 등을 닦아 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몸에 손을 대면서 두 사람은 몸을 밀착시키게 되고 서로 격정적으로 끌어안고 몸을 합친다. 두 사람의 행위가 끝나면 비도 그치고 의사는 돌아간다.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행위가 계속되고, 여전히 말을 건네다가 반복되는 행위가 지긋지긋한지 아내는 언성을 높이고 빨래 통에서 베게나 천을 꺼내 남편에게 던지기 시작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며 대야의 물을 남편에게 끼얹고 남편의 목을 조이기 시작한다. 거의 살해 직전까지 갔을 때 남편이 일어나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아내의 목을 조인다. 아내가 실신하니, 남편은 아내를 번쩍 안아 침대에 눕히는 장면에서 암전된다.
다시 조명이 들어오면 아내는 남편에게 “내가 미웠지? 다 알고 있으면서 암말도 않고 누워있느니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한다.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만 한다. 의사가 들어온다. 남편은 벌떡 일어나 의사에게 덤벼든다. 자신을 속였다며 칼까지 뽑아들고 의사를 겨눈다. 의사는 친구를 속인 적이 없다며 남편을 밀친다. 아내가 두 사람을 말린다. 남편은 아내에게 똑 같은 말을 한다. 자신을 속였다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남편이 친구에게로 가지 그랬느냐고 하니, 아내는 부인이 있는 사람이라 못 갔노라고 대답한다. 의사가 나간다. 남편은 아내를 침대에 눕히고 욕정이 폭발한 듯 달려든다. 그러나 아내는 차디찬 나무토막 같다.
조명이 들어오면 의사와 환자의 아내가 행위를 끝내고 옷을 입는다. 아내는 의사에게 필로우 섬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의사가 가지고 하지만 아내는 고개를 젓는다.
장면이 바뀌면 연극의 첫 장면에서처럼 아내가 남편을 돌본다. 베게 잇을 바꾸고, 몸을 닦아준다. 폭우소리가 들리고 의사가 다시 등장한다. 아내가 의사를 기다렸다는 듯 희색이 만면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동주가 남편, 이혜선이 아내, 이창주가 의사, 최동혁이 의사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출연자들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설정이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킨다.
성관계에 대한 도덕적 종교적 관념의 장막이 젖혀져 가는 듯싶은 느낌의 연극이다.
무대디자인 이윤택, 조명디자인 조인곤, 안무 김윤규, 움직임지도 박소연, 조연출 표영주, 무대감독 김한솔, 사진 김용주, 홍보디자인 황유진, 기획 오동식 원선혜, 홍보 노심동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제2회 윤대성희곡상수상
우리극연구소 연구실험공연 임은재 작, 김소희 연출의 <두 개의 달>을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을 성적고정관념 탈피연극으로 창출시켰다.
다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보다 더 나쁜 것이 성적방종과 타락이고 한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장강의 물결이 이미 넘실거리고 흐르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10월 15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