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매미의 절박한 울음소리는 그냥 묻히고 말았다
<붉은 매미>
정윤희
작/연출 김낙형
단체 극단 竹竹
공연일시 2017.6.29.~7.9.
공연장소 대학로 나온씨어터
관극일시 2017.7.1.
젊은 여자는 무대 위에서 두 번 피를 흘렸다. 독이 오른 무수한 말들 속에 둘러싸여 제대로 아프다고 외쳐보지도 못했다. 다들 격분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혹은 억지로 감정을 억눌러가며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펼친다. 심지어 그들은 세상을 향한 굳건한 신념을 내비치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많은 이들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논리의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 사이 젊은 여자의 호소와 신음 소리는 너무나 쉽게 묻히고 말았다.
첫 번째 피를 흘렸던 건 무릎을 다쳐서이다. 아마도 치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어둡고 위험한 거리를 걷다가 그리 된 모양이다. 아픈 다리를 절뚝이며 그녀가 무대 위로 모습을 보였을 때 그녀를 마중 나왔던 그녀의 아버지는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한 사내와 격렬한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다니던 길로 지나가려 했으나, 이 길은 이 아파트 소유의 길이니 이제부터 지나갈 수 없다고 사내가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 단지 사람들은 더 이상 막 되먹은 청년들과 학생들이 내는 소음과 담배연기로 불편을 겪고 싶지 않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은 멀어 목적지까지 20분이나 더 걸리고, 가로등도 없는데다 공사 중이어서 우리의 아이들이 이용하기에 위험하다고 호소했으나 그건 당신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이 길을 지나가면 당신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오히려 이 길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자신에게 감사하게 될 거라는 궤변까지 늘어놓는다. 화가 끝까지 오른 아버지는 무릎에 피를 흘리며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고 신음하는 딸을 외면해 버리며,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내는 아버지의 고집으로 딸이 더 힘들어한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어서 집으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역시 이 길로는 지나갈 수 없다고 가로막는다. 젊은 여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파서 주저앉아 버린다. 사실 깨진 무릎이 아닌 남몰래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아이가 더 문제였다. 그런 그녀에게 한 부인이 나타났다.
부인은 남편이 며칠 출장을 나간 사이 집을 나와서 이 젊은 여자와 지내게 된다. 처음에는, 적어도 이 부인만큼은 다른 어른들과는 조금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아파하는 젊은 여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보살폈으며, 회사 일에 매달리며 맹목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남편의 가치관에 반항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지난 며칠 간 이 젊은 친구들을 만나 즐거웠다고 말하고, 남편은 아내가 이들과 무슨 불순한 일을 벌였는지 추궁한다. 남편은 자신이 성실하게 살고 있으며 남들이 꿈꾸는 성공도 이루었으니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었으며, 꼭 아이가 필요하다고 부인에게 호소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살고 있는 그런 세상에 아이를 들여놓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또 다시 어른들의 격렬한 대화를 지켜보며 젊은 여자는 두 번째로 피를 흘렸다. 불편한 듯 눈치를 보며 말없이 화장실을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다가 일을 냈다. 아이가 필요한 남편과 아이를 가질 의사가 없는 부인의 막장 대화 중, 아이러니하게도 짧은 아기 울음소리에 이어서 변기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지난한 싸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 속에서 명분과 가치관과 논리는 그저 어른들에게 속한 것들일 뿐,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결국 자신의 한계만 드러내 보이는 언어와 같이 공허한 것일 뿐이다.
젊은 여자는 또래 집단 안에서도 고립감을 느낀다. 만삭인 이 여자의 직업은 하필이면 피팅 모델이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사진가는 생존을 위해, 모델의 몸이 아주 불편한 상황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녀를 자기 멋대로 휘두르려고 한다. 하루 종일 무기력한 채 소파에 누워만 지내는 남동생은 누나가 갑자기 집을 나가 낯선 아주머니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해 하며 누나에게 돌아와 달라고 매달린다. 비록 자신이 이 모양으로 지내고 있지만 우리 가정은 문제가 없는 가정이고, 우리는 예전처럼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부부가 싸우는 와중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는 그녀와 매우 친한 사이인 듯 보였지만, 그녀에게 큰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기성세대에 대한 적개심을 분출하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낯선 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어 즐겁게 보냈다던 그 며칠도 단절된 세계 속에서 각자가 보낸 각자의 시간들일 뿐이었다. 결국 논리를 가장한 모든 말들은 아픔의 호소였고, 그저 되풀이되다가 자기 안에 갇혀버렸다. 언어 역시 깊은 병에 들고 말았다.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매미는 목청껏 울지만 그들이 붉은 빛깔을 띠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발견해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