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IS 한담만문] 연출의 미래/ 백승무

TTIS 한담만문

 

연출의 미래

 

백승무(TTIS 편집주간 대행)

 

스타니슬랍스키가 연출시대를 개창한 이후 100년이 훌쩍 넘었다. 배우가 연극의 꽃이라면 연출은 연극의 정신이다. 연출의 중요성을 논하는 것은 불필다언이다. 오늘날 연출은 극단의 미학적 지휘자일 뿐만 아니라 밥벌이를 책임지는 가장과 공연제작을 총괄하는 기획자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그 지위의 비중과 범위만 따지면 대한민국 연출은 연극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연출이 이처럼 막강하고 중차대한 지위와 역할을 맡은 시대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중책임과 과다역할은 머잖아 해소될 듯하다. 기획극장과 대학 측이 연출노동자들을 자신의 권력 속으로 급속히 편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이 대학교수가 되는 것 자체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예술적 승인과 경제적 안정화 절차이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도 존재한다. 문제는 대학 측이 연출예술가를 다루는 방식의 획일성과 저급성이다. 사람을 키우고 예술을 부흥시키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에 들어간 많은 연출들이 양적·질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양산하는 걸 보라. 이 시대 대학은 연출예술의 무덤이다. 현대판 파우스트 계약에 다름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 간판 연출들이 혀짤배기 대학생들 데리고 학예회를 하는 동안 그가 일궈왔던 극단은 해체수준으로 방치된다는 것이다. 생존에 급급한 대학 측이 극단의 사정과 연출의 예술적 소임에 대해 배려할 리 만무하다. 어린 대학생에게 연출을 빼앗긴 극단은 각자도생에 내몰린다.

 

기획극장이 연출예술을 망가뜨리는 횡포 또한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연출술은 개인기나 특장기가 아니라 오랜 극단활동이 빚어낸 앙상블의 총체이다. 하나의 공연은 연출의 것이 아니라 극단의 것이다. 연출이 기획극장에 불려다니며 재간을 부리는 동안 극단은 또다시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한다. 물론 일부 극장은 연출과 함께 단원까지 기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단 외형이 유지되는 신생극단이나 효과가 있지 이미 외인구단화된 기성극단은 하나마나이다. 일회성 계약방식도 극단의 지속성과 결합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다. 기획극장은 연출이 아니라 극단을 불러야 하며, 1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맺어야 하고, 공연의 저작권도 계약이 종료되면 극단에 반납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근시안적 제도가 지속되면 연출은 기획극장의 용병이 되거나 대학의 예술행정병이 되고 말 것이다. 연출에게 극단을 돌려줘야 한다. 연출과 극단을 분리시키는 온갖 제도는 철폐되어야 하고 지원형태는 극단 단위로 재편되어야 한다. 극단이 기획극장에 고용되기 위한 취업학원이 되거나 연출 정규직화를 위한 보조배터리가 되어선 안 된다. 연출이 살려면 극단이 살아야 하고, 극단이 살려면 연출을 기획극장과 대학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작품) 중심적인 현재의 지원제도도 문제다. 무형의 공연은 지원하면서 정작 중요한 인적 인프라(작가, 연출, 배우) 지원에는 인색하다. 성과우선주의 때문이다. 외형적 결과만 중시하고 사람과 조직을 키우는 데는 소홀하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유기적 결합은 이미 망가졌고, 시너지 효과는 바닥난 지 오래다. 대학로의 하드웨어(극단)는 붕괴 임계점에 다다랐다. 서둘러 지원정책을 하드웨어 위주로 변화시켜야 한다. 연극인들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지원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하고 요구해야 한다. 장기적 비전을 토대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방식으로 지원하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출의 미래는 잿빛이다.

2 thoughts on “[TTIS 한담만문] 연출의 미래/ 백승무

  1. 정말 반가운 글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오세곤편집장은 대학과 교수에 관한 글만 쓰면 예민하게 반응했다. 글의 삭제도 불사하면서 말이다. 이건 오교수가 교수협의회 등을 통해 실질적인 리더로서, 대학과 교수의 노조적 성격의 임무를 대표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연극계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쇄신돼 이에 대한 솔직한 글이 가능해졌다.

    1. 과연 연극의 학교교육이 연극창조에 이바지 하고 있는가? 아니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가?
    2. 우리의 대학교수들은, 연극계에서 안정된 수입과 명예를 누리면서 그런 미션을 완수할 의식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김재엽, 김미도교수처럼 교수들이 행하는 정치행위가 연극에 어떤 도움을 주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번 기회에 적나라하게 파헤쳐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간과 건강이 허하는 한 이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머지 않아 전개하고, 이에 대한 많은 의견과 반론을 기대해 볼 것이다.

  2. 우리 대기업, ‘귀족노조’에는 이런 계약이 존재한다. 노조원이 자기 자식을 자기 회사에 취업시킬 수 권한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정년이 되어 나가도, 자기 아들이 대를 물려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노동계약이 존재 한다. 내가 여기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연극계의 일을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의 대학은, 또 교수들은 자기 제자들이 졸업 후에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있는가? 지금 한국은 ‘청년실업’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이게 두려워 자식도 낳지 않고 있다. 이런 판국에 연극대학은 이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 연극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긴 덕분에 그래도 많은 교수들이 먹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곳은 뮤지컬과 영상매체로 그들이 이 덕분에 인력난을 해소하고 있다. 값싸고 실력있는 ‘화류계 노동자’를 구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다. 지금 우리 연극대학이 이에 크게 공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대해 대학은 어떤 발언을 하고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넥플렉스가 번창하고 ‘파친코’가 난리를 치는 이 호시절에 그래도 삶에 여유가 있는 교수들이 나서서, 자기들의 공로를 내세워, 국가나 지자체, 그리고 기업이나 방송 등에 ‘발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렇게 나서면 외려 ‘순수예술’인 연극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배우들이 화류계에서 수입을 많이 얻을수록 연극계도 풍성해진다. 보아라! 이순재 신구 등의 선생님들이 평생 연극에만 종사한 분들이 아니다. 그래도 그분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연극의 명맥을 유지해 온게 그분들이 화류계에서 활동을 한 덕분이다. 그곳에서 수입을 얻어 늙으막에라도 연극을 하고 있는 거다. 우리가 지금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연극계를 개선시키려 해도 방법이 없다. 차라리 화류계를 번성시키는데 크게 공헌을 하라! 언제까지 TV방송을 하지 않는 유럽 연극계만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도 우리 자신의 형편과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젊은 놈들이 연극계를 버리고 다른 직업에 종사할수록 연극계는 점점 더 황폐해진다. 그들이 화류계에서 활동할수록 연극계에 건질 게 생긴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획기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대학이 ‘워크숍 공연’으로 명맥을 유지할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런 교육으로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고리따분한’ 생각을 버리는 게 생존전략이 된다. 연기교육시간에 ‘입을 안 벌리고’ 대사를 친다고 제자들을 욕할 게 아니라, 이제는 연극의 생존을 위해서도 교수들부터 자기들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제자들을 대학원에 많이 진학시킨다고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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