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연극평론』 2017년 가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진부함을 넘어설 수 있는 전통의 현대화가 요구된다
– <박흥보씨 개탁(開坼)이라>
김향
작/연출: 임영욱
학술협업 : 신호림
단체 : 창작집단 희비쌍곡선
공연일시 : 2017/6/9-6/10
공연장소 : 남산골한옥마을
관극일시 : 2017/6/9 8pm.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화 작업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전통문화 전수자에서 이제는 동시대적인 작품을 만드는 생산자가 된 젊은 예술가들은 전통 레퍼토리 원형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에서 경험되는 자기의 생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면서 관객과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다. 남산골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2017 기획공연 ‘전통, 길을 묻다’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창작집단 희비쌍곡선의 <박흥보씨 개탁(開坼)이라>(출연 박인혜, 이한밀, 악사 김성근, 정상화, 심미령, 편곡 유찬미)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일종의 ‘창작 판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흥보가> 강의 퍼포먼스’ 형태였다는 점에서 독특했다고 할 수 있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 방식은 아니었고 관객들에게 ‘다함께 생각해 보자, 고민해 보자’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함께 그 질문에 답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대의 ‘돈이 없어 살기 힘든 삶’을 환기시키며 <흥보가>에서는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필수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임영욱은 평이해 보이는 연출 속에서도 과거와 현실이 상상 속에서 교차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시쳇말로 요즘 국악계 ‘대세’라고 얘기되는 박인혜 소리꾼이 출연하여 잘 배운 소리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특히 융합적인 콘셉트를 기본으로 하면서 판소리(음악)와 문학(학술)의 만남을 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리꾼 1인’과 ‘실명의 박사’를 등장인물로 하는 대본이 쓰였고 이들은 기왕의 극 장르에서와 같은 ‘주인공’, ‘조연’ 또는 ‘해설자’ 등 특정한 역할 개념 없이 무대에 등장해 서사를 이끌고 있었다. 박인혜 소리꾼은 소리와 더불어 자신의 실제 삶을 드러내고 있었고 ‘실명의 박사’ 역할은 이한민이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이한민은 자신이 박사 역할을 맡은 ‘이한민 배우’라고 밝히면서 실제 자신의 삶과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이들 배우들은 각자 자신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흥보가>에 대한 질문과 사유를 하고 박녹주 바디 <흥보가>에서 선택한 몇 대목을 들려준다. <흥보가> 대목을 부르지만 ‘흥보와 놀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흥보가>의 ‘제비’와 ‘궤’를 소재로 ‘강의식 서사’로 재창작하고 이를 무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감정이입적 스토리텔링을 해체하고 연극배우와 소리꾼이 관객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강의식 서술 방식이라는 독특한 면모를 보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도가 어떠한 의의가 있을까.
새로운 재구성, 그러나 탁견(卓見)이 부재한 ‘강의식 서사’
<박흥보씨 개탁이라>는 판소리 <흥보가>의 서사 흐름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임영욱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되었다. 그래서 박인혜가 부르는 판소리 대목 역시 판소리 <흥보가> 흐름에 따르지 않으며 다음의 대목 순으로 불리고 있었다. ‘흥보 제비 구원-떴다 보아라’로 시작해 ‘흥보 마누라 만류’ – ‘박타는 대목’ – ‘흥보처 탄식-음식타령’ – ‘송편타령’ – ‘흥보 차림새’ – ‘두번째 박타는 대목의 비단타령’ – ‘비단 꾸미기’ – ‘화초장타령’ – ‘세 번째 박타는 대목’ – ‘제비 노정기’로 이어지고 ‘놀보 제비 몰러 나간다’로 마무리되었다. 주되게는 흥보가 세 개의 박을 타는 대목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원작의 소리 대목들을 순서에 상관없이 삽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흥보가>는 흥보가 쫓겨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흥보와 놀보 소리를 모두 생략하고 흥보가 제비를 구해주고 그 제비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새소리와 더불어 공연이 시작되고 박인혜 소리꾼이 등장해 첫곡으로 ‘떴다 보아라 저 제비’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곧 신호림 박사 역을 맡은 이한민 배우가 등장해 자기 소개를 하고 <박흥보씨 개탁이라>가 여러 바디 중 하나인 박녹주 바디 <흥보가>를 토대로 하며 <박흥보씨 개탁이라>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또 다른 바디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한다. 이어서 박인혜 소리꾼이 자기 소개를 한 뒤 <흥보가>의 동시대적 의미에 질문을 던지고 무대 전면 휘장의 글귀를 읽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 위 중앙에는 궤짝이 있고 그 위로 조명이 비치고 있었고 또 양옆에는 의자가 있고 왼쪽 작은 탁자 위에는 책들이 쌓여 있었다. 무대 전면 흰천에는 “천불생 물혹지이 지부장 무명지초”라고 쓴 글귀가 있었는데, 박인혜는 그 글귀를 읽으며 ‘하늘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낳게 하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은 기르지 아니한다’라는 의미라고 해석하며 ‘하늘이 무너져도 누구나 먹고 살 길이 있다’는 메시지가 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이 글귀가 <박흥보씨 개탁이라>를 창작하게 된 주요한 사설이었다고 설명한다. 배우 이한민은 과거에도 동시대에서 여전히 ‘가난’은 중요한 사회적 의미라고 이야기하며 <흥보가>가 동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음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잘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곧 관객의 시선을 무대 위 ‘궤’ 속으로 안내한다. 소리꾼은 ‘박타는 대목’을 노래하면서 박 속에서 나온 ‘궤’에 쓰여 있던 ‘박흥보씨 개탁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하고 박사는 그 속에 무엇이 들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런데 관객들은 입장료를 교부하며 ‘궤 속에서 나오길 바라는 그 무엇’을 적으라는 설문지를 받은 바 있고 입장하면서 그 설문지를 작성해서 제출한 상태였다. 이 대목은 관객들의 그러한 선(先) 작업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며 소리꾼은 ‘궤 속에서 딱 한 가지만 나올 수 있다고 가정하자’며 사유를 풀어간다. 이들은 흥보의 박 속에서 나온 ‘쌀과 돈’, ‘비단’, ‘집’의 흐름에 따라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첫 번째로 이들은 <흥보가>의 자식들이 다채로운 음식과 장가를 보내달라고 하는 ‘흥보처 탄식’ 대목을 노래하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박녹주 바디에는 없고 김연수 바디에 있는 ‘흥보 아들 송편 타령’ 대목을 노래하며 음식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삶의 조건인지에 대해 사유한다. 두 번째로 이들은 <흥보가>에서 흥보가 사령 만나러 가며 남루하지만 갓과 두루마기를 차려 입는 장면을 언급하고 ‘비단타령’을 노래하며 인간에게 의(衣) 생활 역시 중요한 삶의 조건의 하나라고 사유한다. 그리고 ‘비단타령’에서 흥보와 흥보처가 각각 흑공단과 송화색 비단으로 새까맣고 샛노랗게 옷을 지어 입는 것을 보며 이들에게는 ‘안목’이 없었다는 지적을 한다. 그리고 놀보 서사의 주된 대목인 ‘화초장’을 불러들여 놀보 역시 ‘화초장’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목’ 없는 인물이었음을 지적하고 ‘화초장 대목’을 불러준다. 박인혜 소리꾼은 이한민 배우가 ‘안목없음’을 지적했던 것을 넘어서 가치관, 지혜, 지식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언급한다. 세 번째로 이들은 ‘궤’ 속에서 ‘집’에 나오기를 바라는 열망을 이어간다. 흥보가 세 번째 박을 탔을 때 흥보집을 지어주기 위해 인부들이 나왔던 장면을 노래하고 연출가가 목소리로 등장해 ‘젊은 예술가들이 서울에서 활동할 때에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집’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궤’ 속에서 나오기를 바라게 되는 세 가지 요인은 흥보가 타는 세 개의 박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것이 결국 인간 삶에서 필요한 요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박인혜와 이한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먹을 것이 중요하지만 그 먹을 것은 그냥 먹을 것이 아니며,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더 잘 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고, 또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를 가리려다가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신들의 사유를 정리한다.
이미 공연의 내용에 대한 결론을 내린 뒤 에필로그인 듯 박인혜는 ‘제비 노정기’를 부르고 이한민과 더불어 ‘제비’와 ‘궤’의 사전적 정의를 읊는다. 그리고 관객들이 설문지에 썼을 법한 ‘궤’ 속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다채로운 소망들이 소개된다. 박인혜는 정리하는 대사로 ‘궤는 비어 있으며 관객들이 그 궤를 통해 바라는 것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는 응원을 보내고 ‘놀보가 제비 몰러 나가는 대목’을 불러주며 <박흥보씨 개탁이라>의 막을 내린다.
이 새로운 창작 판소리의 내용 전개는 기왕의 <흥보가>에 대한 고답적인 주제의식 즉 형제 간의 우애를 넘어서 ‘배고파 서글픈’ 소리 대목의 정서와 ‘박을 타서 부자가 되었다는 환상’을 동시대적 의미로 해석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흥보가>를 ‘이야기와 정서’를 중심으로 경험했던 것과 달리 ‘사유하도록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적 접근’이 실제 공연에서는 지루하고 그리 새로운 ‘탁견(卓見)’이 아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학술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 질문과 대화를 통한 시도는 바람직할 수 있지만 정서적 경험보다 생각을 유도하는 것의 내용이 그리 새롭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원작 <흥보가>에서는 개연성이 결여된 우연적인 사건의 흐름 속에서, 환상적인 이야기의 힘과 소리의 서정성이 감동적으로 경험되는데 반해, <박흥보씨 개탁이라>에서는 ‘그 환상을 깨고 동시대적 의미를 찾아가자’는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설득력은 있지만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것에 특정한 공식은 없을 터인데 공식을 찾아나가려는 학구적인 자세가 흥미를 잃게 하지는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바람’이 단순히 의식주를 넘어서는 것임을 알면서도 인간의 ‘욕망’ 또는 ‘일탈된 감정, 예를 들면 질투심’ 같은 비이성적인 것을 배제한 것에 대해 재고할 필요도 있을 듯하다. 관객과의 대화 때(2017.6.9.) 작가 겸 연출가가 ‘욕구’에 대해 고민했다는 언급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흥보는 선하다’는 설정을 넘어서지 않으며 ‘흥보도 인간적인 욕망과 질투심이 있는 인간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감정을 어떻게 잘 통제할 수 있었을까’라는 현실적인 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작진은 작품을 보는 관객들 역시 ‘흥보처럼 선할 것이다’라고 여기고 이 세상 다수의 사람들이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과 질투심으로 인해 ‘놀부를 넘어서는 악행’을 벌이고 있는 점을 간과한 것이 <박흥보씨 개탁이라>가 흥미롭지 못했던 요인의 하나였다고 여겨진다.
<흥보가>의 권선징악적 결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흥보처럼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놀보처럼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주제의식을 동시대적으로, ‘흥보처럼 질투와 욕망을 다스리며 살면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고 놀보처럼 질투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면 혼자만 망한다’는 내용으로 사유해 본다. 동시대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이유를 언급하며 너무나도 뻔한 ‘의식주의 결핍’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굶어죽을 지경의 흥보가 그 인간적 욕망을 조절하며 제비를 잡아먹지 않고 구해줄 수 있었던 마음, 부당하게 자신을 쫓아내고 몰매까지 놓은 놀보를 용서하고 자신의 재산을 반이나 나누어줄 수 있었던 여유’가 환상적인 <흥보가>에서는 수긍되지만 동시대에는 공감할 수 없다는 ‘질문’에서 이 작품이 시작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물론 ‘욕망’이 반드시 필수적인 ‘전통의 현대화’ 공식은 아니다. ‘전통의 현대화’ 과정에서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고 <박흥보씨 개탁이라>가 ‘먹고 사는 문제’로 고통 당하는 동시대 관객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 “다 먹고 살 길이 있을 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려 한 것에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그러한 위로가 ‘진부한 위로 문구’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탁견’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진부한 듯 새로울 수 있는 연출 방식
이 작품에서는 판소리와 문학의 융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호림 구비문학 박사의 도움을 빌었고 그 젊은 박사는 극 중 이한민이라는 배우의 연기와 영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실제 인물을 등장인물로 설정한 것은 <박흥보씨 개탁이라> 연출 방식의 독특한 면으로 언급할 수 있겠다. 박사 역할을 맡은 이한민 배우와 영상을 통해 등장하는 실제 박사가 <박흥보씨 개탁이라>의 흐름을 끌고 가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인혜 소리꾼의 유려한 소리와 더불어 두 인물은 <흥보가>에 대한 사유를 <박흥보씨 개탁이라>로 풀어내면서 새로운 내용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한민 배우는 자신의 실제 외모와 옷차림, 살고 있는 집의 규모 등에 대해 사실대로 언급하고 신호림 박사와 다른 인격체의 배우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신호림 박사는 질문에 답하는 박학다식 친절한 선생님 이미지로 영상을 통해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 질문은 ‘흥부’와 ‘흥보’의 차이였고 두 번째 질문은 <흥보가>에서 선인으로서의 ‘흥보’와 악인으로서의 ‘놀보’ 이미지에 대한 것이었다. 세 번째 질문은 왜 판소리를 공부하게 되었느냐는 다소 사적인 질문이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흥보가>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적층적으로 변모했으며 ‘흥보’와 ‘놀보’는 선하고 악한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 현대적이고 자신은 <심청가>의 심봉사에 공감해 논문을 썼고 관객들 역시 다수의 고전문화에서 공감하는 바가 많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한민 배우가 무대에서 배우 자신의 모습으로 때론 신호림 박사라는 등장인물로 연기하는 중에 주되게 막이 바뀔 때에 ‘막간’에 신호림 박사의 영상이 투영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박흥보씨 개탁이라>는 진지하게 ‘전통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에 대해 탐구하며 ‘궤’를 통해 물질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무형의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하는 창작 판소리였다고 여겨진다. 동시대 미디어매체를 활용하여 진부한 듯하면서도 서사적인 방식에 얽매이지도 않는 자유로운 연출 방식을 보인 것이 돋보이지만 내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때론 산만하고 진부하게 경험되는, 그래서 ‘새로울 수 있었지만 진부한’ 강의식 퍼포먼스가 된 듯하다. 판소리 오대가를 겸손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엉뚱하게 즐기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근래 <필경사 바틀비>로 ‘시간’과 관련된 예술적인 창작판소리를 추구하는 창작집단 희비쌍곡선, 그리고 희비쌍곡선 배우이자 뮤지컬 <아랑가>처럼 창극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판소리 이수자 박인혜는 한국 창작 판소리계의 주목받는 새로운 세대임에 분명하다. 그렇기에 기대하는 바가 크며, 전통의 현대화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매번 아쉬워하기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김향
연극평론가, 성결대 파이데이아학부 조교수, 연세대 공연예술연구소 전문연구원. 희곡/공연의 실제와 창극의 이론적 체계화를 위해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젠더이론과 공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