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The Move 4월호에 게재된 글의 재수록입니다.
긍정적인 지역 극단의 주목할 만한 활동 : <미드나이트 포장마차>
김창화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부회장)
평균 경력 15년 이상의 연극인들이 모여 결성한, 극단 ‘미르 레퍼토리’는 2018년 창단 10주년 기념, 시즌 공연으로, 극단 대표이자 작가이며, 연출가인 이재상이 직접 쓰고 연출한 “미드나이트 포장마차”, “현자를 찾아서”와 독일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를, 지난 4월 24일부터 시작해 6월 3일까지 신포동 북카페 ‘북앤커피(다인아트)’와 인천 아트 플랫폼 공연장에서 일주일씩 공연한다. 창단 10주년 기념시즌의 첫 번째 작품인 “미드나이트 포장마차”는, 다른 술집이 문을 닫을 늦은 시간에 장사를 시작하는, 심야 포장마차 주인 (하성민 역)의 넉넉한 마음쓰임과 푸짐한 입담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타고난 스토리텔러로서, 스스로 쉼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작가 이재상의 ‘오마쥬(hommage)’처럼 느껴지는 주인의 넉살은, 말로만 끝나지 않고, 원래 북 카페로 사용하던 공간에 새롭게 무대를 구성한 김예기의 솜씨로, 실감나는 포장마차에서, 직접 국수를 삶아, 배우들에게 제공해 준다. 그래서 객석에 어묵국물 냄새가 폴폴 풍기고, 갓 삶은 국수를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출연진을 보면, 입에 침이 넘어간다. 이른바 ‘하이퍼 리얼리즘’처럼,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에서 적절하게, 실감나게, 심야의 포장마차가 재현된 것이다.
전반적으로 희극의 요소를 많이 담고 있었는데, 사실은 19세기 영국의 ‘웨스트 엔드’에서 런던시민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한 몸에 담았던, ‘풍속 희극’의 전통과 유사한 일화와 공연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십대 후반의 젊은 남(강륜석 역), 여(임혜승 역)와 술 취한 30대 남(권훈 역), 여(이한솔 역), 오십대 초반의 남(최희열 역), 여(양은영 역)와 칠십대의 노년 남(양창완 역), 여(김용란 역)가 등장하는 이 연극은 인천이라는 지역에서 꾸준하게, ‘예술로서의 연극’, ‘살아있는 연기’, ‘인간 영혼의 진보’를 극단의 이념으로 삼고, 꾸준하게,성실하게 성장해 온 극단의 진면목이 그대로 다 드러나는 공연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경제적 어려움과 집안의 반대로 고민하는 이십대 후반의 남, 강륜석은 여자 친구인 임혜승과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임혜승은 화가나, 남자친구를 떠난다. 실직한 뒤, 아내의 식당일을 도우며 살아가던 오십대 초반의 남자 최희열이 이 젊은 남녀의 ‘사랑싸움’에 끼어들고, 각자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삼십대 취객 권훈과 이한솔은 우연히 포장마차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급속히 친해진다. 칠십대가 되어서야 겨우 만난, 첫 사랑의 연인인 양창완과 김용란도 이곳에서 옛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의외의 사건으로, 엄청난 비밀이 밝혀진다. 그리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이 작품은 2011년 ‘미르 레퍼토리’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많은 관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처럼, 현실에서는 다 이루지 못한 ‘꿈’과 ‘욕망’이 한 밤의 포장마차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희극적 장치와 함께, 풀려나가는 “미드나이트 포장마차”는, 작가 이재상의 인간에 대한 넉넉한 시선과 푸근한 입담이, 아주 여유롭게 느껴지는 공연이면서, 인천 시립극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김용란과 같은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와 이제 막 극단생활을 시작한 젊은 단원들의 앙상블이 좋았던 공연이었다.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소품으로 쓰였던 소주와 국수, 어묵으로 관객을 무대로 안내해서, 술판을 벌였던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의 공간적 거리에 있는 인천은, 문화적인 거리로는 벌써 십여 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연극발전의 속도는 이렇게 문화적 성장과 같이 달리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극단 ‘미르 레퍼토리’가 지키고 있는 인천의 ‘연극 풍경’은, 한국 연극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품고 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임혜승이 아니라 임해승으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