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연극>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글의 재수록입니다.
발랄하고 낭만적인, 뮤지컬 <레드북>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교수, 뮤지컬평론가)
작: 한정석
음악: 이선영
연출: 오경택
주최: 바이브매니지먼트
공동제작: ㈜스타라이트엔터테인먼트, ㈜에프엔씨애드컬쳐
공연일시: 2018/02/06-03/30
공연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관극일시: 2018/02/25 2pm
“짝사랑인줄 알았던 안나는 브라운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주저함 없이 그에게 키스를 한다. 독서를 통해 사랑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했던 브라운은 안나의 적극적인 리드에 조금 당황하지만 이내 사랑의 실제에 돌입한다. 재빠르고 강렬하게 이어지는 그들의 행위에는 거침이 없다.”
<레드북> 2막의 한 장면이다(참고로 나는 안나와 브라운을 유리아와 박은석이 연기하는 날 관람했다). 뮤지컬 <레드북>은 이 장면을 위해 달리고, 또 이 장면의 열도(熱度)를 지키기 위해 달려가는 작품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결론짓는 로맨틱 코미디류 뮤지컬 양식이다. 그러나 <레드북>의 첫 인상이 이 양식적 프레임에만 갇히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이 뮤지컬(특히 국내 창작뮤지컬)에서 쉽게 시도되기 어려운 ‘여성 주인공’, 그것도 ‘확실한 주관을 갖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브라운과의 첫 육체적 접촉이 안나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저 장면을 작품의 ‘핵심’으로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무르익은 로맨틱한 무드도 없고 남성 주도의 스펙터클도 없는, 그저 어느 순간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한 묘사. 2015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고,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우수 신작에 선정되어 2017년 1월 단 2주간 이루어진 시범공연에서 큰 호응을 얻은 것 역시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의 전형성을 조금 비껴난 이러한 특징들에 기인한 바가 크다.
심각한 이야기를 발랄하게
빅토리아 시대에 하녀로 살던 안나가 ‘내’가 누구인지 자각한 후 자신의 주체성을 실현하며 산다는 <레드북>의 이야기는 여성들이 스스로 젠더적 모순점을 발견했던 당대의 현실에 토대를 둔다. 빅토리아 중기 이후, ‘숙녀’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 자체’의 삶을 회복하자는 논제가 일련의 여성 잡지의 기획과 담론으로 등장했다. ‘일 하는 여성’의 가치와 이에 대한 자각을 강조했던 당대의 목소리는 이후 급진적인 여성 운동가의 실천적 행동 및 여성권리에 대한 폭넓은 주창과 연결되었다. 이들의 노력은 ‘무용성’이 여성의 최고 미덕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관에 대한 도전으로서, 철저하게 유용성과 무용성의 세계로 이분화 되었던 젠더적 감수성과 관념에 대한 반발이었다. 안나의 소설이 실린 <<레드북>>은 여성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 일원들의 작품으로 사회에 균열을 내는 급진적인 여성 잡지라는 점, 안나가 <<레드북>>을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창구로 활용한다는 점 등은 이와 같은 실제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레드북>은 심각한 현실적 모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뮤지컬 텍스트’라는 점에서 특유의 감수성을 보여준다. 안나가 ‘여성의 성’을 다루는 소설 작가로 성장한다는 설정은 애초에 <레드북>이 뮤지컬의 전형성을 완전히 피해가지 않을 것임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렇다. 안나는 슬퍼질 때마다 ‘남성-올빼미’를 욕망하는 자신의 내밀한 성적 욕망에 귀 기울여 도발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자유롭고 여성 주도적인 젠더적 감수성을 쌓아간다. 그녀의 이런 특징들은 모든 것에 냉담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브라운의 할머니 바이올렛에게 활기를 선물하고, 단번에 로렐라이 언덕 일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기여하며, 문학평론가 존슨의 성추행을 시원하게 물리치는 바탕이 된다. 드라마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이 장면들은 모두 과장된 톤으로 코믹하게 연출되어 있는데, 특히 목소리의 톤을 바꿔가며 리드미컬하게 장면을 끌고 가는 바이올렛과 도로시(로렐라이 언덕의 회장)를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김국희와, 여장 남자 로렐라이를 파워풀하게 묘사하는 홍우진, 그리고 안나에게 성기를 차여 발기불능의 상태에 빠져버린 존슨을 희극적 과잉으로 일관하는 원종환의 연기는 각 장면에 내재된 성적인 암시와 젠더 이슈들을 코믹한 톤으로 발랄하게 중화시킨다. 무엇보다도, 몹신의 스펙터클을 활용하는 2막 첫 넘버 ‘낡은 침대를 타고’는 안나의 성적 욕망을 ‘꿈’의 형식에 담아 질펀한 농담과 암시로 풀어내며 인터미션 후 잠시 끊어진 흐름을 곧바로 올려놓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여성의 성을 주요 소재로 한 작가-안나의 성공은 당대 사회 분위기를 원천으로 삼아 시대적 개연성보다 코믹과 과장의 힘으로 리얼리티의 수위를 낮추는 낯익은 뮤지컬적 해법을 통해 ‘그런 척 하기(make-believe)’의 프레임 안에서 수용된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분명하고 심각하되, 실상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 조건 속에 던져져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레드북>은 기존 뮤지컬들이 여성 주인공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방식보다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비슷한 주제의식을 보이는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연이, <날아라, 박씨>의 오여주(박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작품 말미에 인식하거나 인식을 했더라도 말미에 실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성 주인공들이었다. <레드북>의 안나는 처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비교적 빨리 정체성 각성의 순간을 맞이하여 그것을 실현하는 삶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Be Yourself’를 흔들림 없이 실천하는 <킹키부츠>의 여장 남자 롤라에 가까운 인물형이라고 할까. 확실한 주관을 갖고 있되 발랄하게 표현되는 안나와 작품 속 극적 상황은, 이 작품이 근본적으로 뮤지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
그런데 안나의 애인으로 발전하는 브라운이 ‘변호사’라는 설정은 결국 <레드북>의 보수성, 조금 더 확대해서 말하자면 뮤지컬의 보수성을 대변한다. <<레드북>>이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안나 역시 작가로 유명해지자 위기가 찾아온다. 극의 흐름 상 당연한 전개다. 안나의 위기는 캐릭터의 급진성만큼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는 상황 안에서 마련된다. 남성적 권위의식을 상징하는 평론가 존슨의 하룻밤 요구를 ‘거절하고’ 그를 발기부전으로 만든 안나는, 로렐라이 언덕 일원들과 함께 음란물 유포죄로 기소되고 결국 법정에 서게 된다. 문학회 일원들은 모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상황을 빠져나간 반면, 안나는 끝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며 위기를 정공법으로 맞닥뜨린다.
안나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브라운이 안나의 변호사로 소환되어야 할 이유는 명백해진다. 어떻게 안나를 변호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할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속에서 가장 인물형의 변화가 큰 브라운이 자신의 ‘변화’에서 안나를 변호할 토대를 찾는다는 점이다. 브라운은 원래 기성관념과 상식의 세계 안에 갇힌 보수적인 남성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당시의 관념에 따라 이분화하고 그것을 명예, 정의, 겸손, 희생 따위의 ‘신사’의 덕목으로 박제하는 데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안나를 만나 점차 휴머니스트로 변모하고 유능한 변호사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안나를 변호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스스로 찾게 된다. <<레드북>>이 여성의 성을 여성들의 목소리로 자유롭게 발언했기에 불온하다고 미리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레드북>>의 이야기를 통해 그 옛날 바이올렛처럼 생에 활기를 되찾은 개인(들)의 실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안나의 무죄를 증명해낸다. 이쯤 되면 <레드북>은 남녀의 전통적인 역할을 바꿔놓은 급진적인 텍스트라 할 만하다.
그러나 브라운이 처음부터 상층 계급의 변호사라는 점, 따라서 안나의 위기를 별로 어렵지 않게 해결해줄 수 있는 ‘남성’이라는 점은 <레드북>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의 양식적 특징을 한꺼번에 고려하게 만든다. 특히 브라운의 신사 친구들, 앤디와 잭의 돌출적인 표현방식은 <레드북>의 결말이 결국 코믹한 판타지에 귀착될 것임을 처음부터 암시한다. 브라운은 앤디와 잭과 함께 있기만 하면, 목소리와 행동에 특정 패턴이 따라붙으며 사실적인 연기 스타일에서 벗어난다. 앤디 역의 윤정열, 잭 역의 안창용은 신사의 ‘고귀한 발걸음’과 ‘그들(신사)의 목소리’를 과장되고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로 합이 딱딱 맞게 표현하는데, 이러한 과잉은 처음부터 이들이 주장하는 ‘신사의 덕목’이 한없이 풍자될 수 있는 것임을 드러낸다. 마치 뮤지컬 <난쟁이들>의 세 명의 ‘뜨그덕’ 왕자들처럼, 정형화된 연기 패턴으로 인물을 풍자하는 방식이다. <레드북>의 보수성은 이들을 안나의 무죄를 증명하는 결정적 조력자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도 만들어진다. 이 신사들은 <<레드북>>을 읽은 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수합하여 재판의 흐름을 안나 편으로 단번에 바꿔버림으로써, 안나가 위기를 극복하고 브라운과 결합하며 꿈을 이루는 결말로 빠르게 흐름을 이어간다.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이라서 가능한 해결방식이다. 음악학자 레이몬드 냅(Raymond Knapp)의 표현을 빌자면, 관객들에게 ‘나는 뮤지컬입니다’라고 눈짓을 보내는 일종의 ‘그런 척 하고 넘어가기’의 순간인 것이다. 양식적 문법을 따른 이러한 결말은, 안나가 변호사 브라운과 그의 신사 친구들에 의해 구원을 받아 고정적 성역할을 뛰어 넘은 지점에서 자아를 실현한다는 아이러니한 낭만성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안나가 브라운을 변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작품의 보수성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한정석은 전작 <여신님이 보고계셔>에서도 심각한 이야기를 능청스러운 우화로 풀어내며 관객의 엄청난 지지를 받은 바 있다(그리고 여전히 그렇다. 현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2011년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뮤지컬 분야에 선정되고 2013년 연우무대의 제작으로 초연된 이후 꾸준히 공연되면서 창작뮤지컬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다). 이선영 역시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음악을 맡아 동요적 선율을 근간으로 작품의 발랄함을 잘 드러냈다. <레드북>으로 이어진 이 둘의 협업은 남북문제에서 젠더문제로 그 문제의식이 바뀌었을 뿐, 비슷한 방법론을 공유한다. 예민한 사회문제를 코믹과 판타지로 다루기, 분명한 주제의식을 낭만화하기. <레드북>에 쏟아지는 관객들의 찬사는 진일보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에 대한 것이라 반갑고, 그 찬사가 낭만적, 보수적으로 결론지은 반복되는 프레임과 공명하고 있기에 다른 한 편으로 아쉽다. 지금/여기 국내 뮤지컬시장의 현주소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