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의 아이디어와 배우의 열정이 두드러진 공연 : “그때, 변홍례”
김창화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부회장)
작년에 돌아가신 극작가 윤조병 선생님의 아들, 윤시중 용인대 교수가 연출한 “그때, 변홍례”는 무성영화의 기법을 무대로 옮겨온, 매우 파격적인 공연이다. 작가 어단비가 쓰고, 선욱현 작가가 드라마트루그를 맡은 이 작품은, 1931년 8월 4일 동아일보에 실렸던 기사의 내용에서부터 시작한다. 연출자이며, 변사, 극중 인물인 정상의 역을 맡은 유독현과 주인공 변홍례 역을 맡은 이수현, 나하야 형사역의 최희도의 연기가 주목을 끌었던 이번 공연은, 일제 강점기에 신문에 오르내리던 단순한, 탐정소설 같은 이야기를, ‘포스트모던’한 시각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해, 87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사건’으로 재구성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역시 변사를 활용하여, 무성영화처럼 장면을 구성한 연출자의 아이디어와 일제 강점기, 친일파 대교사장(김동우 역)집의 하녀로, 사장에게 성폭행 당하고, 사장 부인(권제인 역)과 불륜관계에 놓인 정상(유독현 역)으로부터도 희롱 당하던, ‘미모’의 변홍례를 연기한 이수현의 열정적인 연기도 보는 사람을 충분히 즐겁게 했다. 특히 변홍례의 성격을 매우 현대적으로 끌어와, 자신의 욕망과 계략을 앞세워, 의도적으로 사장을 유혹해, 신분상승의 기회로 삼고자했던 변홍례의 이중적인 태도와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서 최대한, 욕망을 구체화 하고자했던 이수현의 무언극적인 연기는 살해당한 여인의 입장이라는 동정심과 함께 죽어 마땅한 인물로 폄하되는 이중적 극 구조와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절대선과 절대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상대적 나열과 병렬적 진행으로 극이 진행되며, 중요한 순간은 사건의 인과관계에 의한 연결과 전달의 순간이 아니라, 감정적인 폭발이 극대화되는 매우 ‘신파적인’ 격정의 순간이며, 이동식 ‘서치라이트’를 비추거나, 부분조명을 활용하여, 무대 위에서의 초점과 집중을 손목이나, 표정, 혹은 신체의 특별한 부위를 통해 강조하는 ‘미니멀리즘’을 활용해 표현했다.
무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무대 주변에서 음향의 효과와 성우처럼 배우의 대사를 ‘더빙’하듯 전달해주는 주변 인물들에 의해 전개되는데, 실제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무성배우처럼 입만 벌리거나 혹은 유성영화처럼 직접 대사를 스스로 발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성의 연기와 일상적인 연기가 서로 충돌하며, 서로 진실을 향해 다툼을 진행하듯, 극적 사건을 쌓아간다. 그래서 ‘연극적 진실’은 곧 ‘연극적 가공’ 혹은 무대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조작’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영화 촬영장에서 진행되는 극적 재현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서치라이트’를 이용한 특정장면과 인물, 상황에 대한 집중과 선택은 연출자의 독특한 스타일로 읽혀진다. 즉 1930대 사건의 재현을 단순한 재현의 의미로 재구성하면서, 그 재현의 의미 뒤에 있는, 감추어진 사실과 ‘진실’에 주목하도록 의도적으로 현재의 장면을 ‘해체’시켜, 새로운 판단의 기준으로 관객이 ‘재구성’할 수 있도록 관객의 참여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그래서 연극의 진행은 매우 자의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그 배후와 결말에 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그 어떤 함정과 비밀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살인자로 지목되었던, 일본인 대교 사장의 부인은 무죄로 석방되며, 이 사건을 파헤쳐가던 나하야 형사도 참담한 무력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변홍례의 죽음이 억울하다, 그래서 살인자를 꼭 처벌해야 한다는 반응은 생기지 않는다. 이 모든 사건은 연극적 재현일 뿐이고, 무대에서는 재현의 한 방법으로 연출과 연기가 동원되었을 뿐이라는 결론만 남겨진다. 연극의 반연극적 요소를 대입한 것이다. “그때, 변홍례”는 역사적 재현이 오늘의 의미에서 어떤 ‘실상’을 담을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이 세상은 결국 연극적 재현을 위한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이라는 허무하고도 도발적인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