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넘어서는 실천을 생각하라 : <그류? 그류!>
윤진현
원작 : 루이지 피란델로
번안 : 김승철
연출 : 김승철
단체 : 창작공동체 아르케
공연일시 : 2018/11/15~2018/12/02 pm8:00
공연장소 : 선돌극장
관극일시 2018/11/30 pm8:00
시종 유쾌하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나면 문득 고즈넉한 사유에 젖고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거나 얼마간은 우울한 현실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아주 좋은 연극이다. <그류? 그류!>가 그렇다.
드라마터그의 글에 적시되어 있듯이 <그류? 그류!>는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여론이 조작되며 떼를 지어 욕설과 비난, 혐오가 자행되는 오늘과 너무도 적절하게 만난다.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배타적 편협성이 소위 진실의 요구라는 탈을 쓰고 광포한 폭력과 결합하여 횡행하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에 값한다.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10주년 기념으로 <그류? 그류!>가 공연되었다. 2009년 초연되었으니 벌써 10년이다. <그류? 그류!>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867-1936)의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Cosi è (se vi pare)>를 번안한 작품이다.
번안제목이 이렇게 간명하면서도 재미있을 수 있을까? 같은 단어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달라지는 것만으로 제목의 분위기를 이렇게 유쾌하게 전하다니 피란델로가 들었어도 좋아했을 듯하다. 번안과 연출을 겸하며 번안을 맡은 김승철은 1917년 이탈리아의 어느 도청 소재지를 1972년 충북 내산면의 대추리로 옮겨놓는다. ‘그류? 그류!’라는 방언은 ‘그래요? 그래요!’와는 완전히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더욱이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플랜이 전면화되었던 10월 유신의 1972년의 결합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발신한다.
물론 여기에 디테일한 착오는 있다. 표어 정치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표어, 심지어 ‘쥐를 잡자’는 표어까지 횡행하던 박정희 정권의 표어와 새싹을 형상화한 새마을 표식이 전국화된 것은 사실 유신헌법이 통과된 이후이다.
게다가 ‘대추리’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곳이 충청도였던가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내가 아는 ‘대추리’는 지금은 미군기지가 들어선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라고 시작하는 아름다운 동요 <노을>의 배경이었던 사라진 평택평야의 대추리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미군이 진주해 온 역사를 환기하는 장치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공연이 끝난 후의 ‘불편’이 시작됐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미적 편견이 이 작품의 유머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시골 마을이다. 한가롭다는 것은 별다른 사건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즉 ‘한가로움’이 곧 순박함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거 없이 도시적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을 뿐, 다른 가치와 문화를 지닌 농촌 등을 순박함으로 전제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을 때, ‘더하다’거나 ‘심하다’는 판단과 평가를 하곤 한다. 요컨대 사람들이 순박하다는 것은 한가로움이나 특정한 지역의 방언으로 형상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방언은 표준어의 변방에서 표준치 이상의 순박함이나 표준치 이상의 폭력과 용이하게 결합한다. 방언을 다루는 이러한 방식에는 표준어 중심주의, 표준어와 방언의 우열적 사고방식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서로 나누고 서로 챙겨주는 인심 좋은 시골, 이들의 인심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은 아니다. 사실 협소한 공간을 배경으로 결사된 이들은 그 자체로 서로 간의 깊은 우애와 신뢰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이방에 대한 집요하고 폭력적인 배타성이란 이면을 생성한다. 요컨대 순박한 인심과 광포한 배타성은 같은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성격 설정은 깊은 탐색 없이 인물 전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류? 그류!>의 인물들은 이미 순후한 시골인심과 집요한 배타성이란 이중적 태도를 도시에서 일시적으로 귀향한 상태인 ‘찬호’를 통해 이미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찬호’의 합리성이 도시적 기반에 있는 것으로 설명될 때, 농촌/도시라는 이항대립적 가치의 환기 또는 최소한 농촌마을에 대한 가치 왜곡은 더욱 증폭된다.
요컨대 ‘그류? 그류!’라는 유쾌한 번안을 가능하게 했던 물적 토대는 지역 또는 방언에 대한 차별적 태도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적 전략이 과연 2018년 현재 확실히 유용한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방언을 미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방언을 사용하는 인물과 관객이 동일시 될 수 있는가, 그 동일시의 결과가 관객의 미적 인식에 긍정적인가, 바꿔 말하면 전통적인 희극의 문법대로 관객과 약자 및 하위주체에 대한 해학적 동일시가 가능한가를 질문의 답변에 달려있다.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미 10년이 지나면서 서울의 공연이 지방을 희화화하는 위치에 서울의 공연이 있는 것은 시대 감수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이렇게 보니 진실 추구의 지난함과 그 방법의 부적합성이란 이원적 주제를 제안하던 피란델로의 원작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의 본의를 생각하게 된다. 피란델로의 작품을 쉽게 ‘진실의 기괴성’ 또는 ‘진실 추구의 불가능성’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이 포획되지 않는 기괴한 진실을 단순히 반복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반대로 피란델로는 진실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탐색해 나간다. 말년의 제국주의적 언행은 홀로 고투했던 피란델로의 진실 추구방법의 한계에 이른 것이었다. 즉 쉽게 포획되지 않는 이 기괴한 진실이란 대상을 붙잡기 위해 같이 기괴해지는 인물들의 병적인 집착을 우리는 목도하는 것이다.
<그류? 그류!>의 메시지는 폭력적인 진실추구의 방법을 비판하는 데 치우쳐 있다. 이제 추가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추구할 것인가? 진실 추구의 미명 아래 자행되는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여론몰이는 마땅히 배척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접근을 허락치 않는, 포획 불가능성을 내포한 이 기괴한 진실을 우리는 포기해야 할 것인가.
진실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한 손에 든 감자나 옥수수만을 보게 될 가능성은 우리에게 언제나 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자명한 감자 또는 옥수수 너머에 다른 입체적 진실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추적하는 실천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여전히 궁금하다.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않는 한 여성이 있으니 그녀는 한 남성의 재혼처이다. 그녀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늙은 여성이 있으니 그녀는 이 남성의 전 장모라고 한다. 이 기묘하고 부조리한 관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들의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러서도 안 되지만 이들의 기묘한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포획되지 않는 진실과 이를 추구하는 옳은 방법, 두 가지 모두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언제나 동일자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배씨 부인의 딸이면서 강영진의 재혼처인 숙희이면서 동시에 명자인 존재는 가능하다. 우리가 그녀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궁금한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방식이 있기에 그 같은 존재가 가능한가이다. 이 작품의 부조리는 지금도 진실탐구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담
루이지 피란델로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26년이었다. 이해 1월부터 시대일보에는 수산 김우진의 「구미현대극작가 소개」라는 시리즈가 연재되었다. 우리에게 ‘곰돌이 푸’로 잘 알려진 영국의 A.A.밀른, 이탈리아의 루이지 피란델로, ‘로보트’라는 말을 만들어낸 <R.U.R(로숨의 유니버셜 로봇)>의 체코의 카렐 챠펙, 미국의 유진 오닐을 장장 6개월에 걸쳐 소개한 대규모 기사였다. 이때 피란델로는 무려 10회에 걸쳐 소개되었다. 시대일보는 5~7회의 3회분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다행히 수산 원고에 전편이 남아있어 김우진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1933년 극예술연구회에서 그의 작품 <바보>를 상연하면서 그에 대해 소개했고 1934년 피란델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여러 신문에 이를 알리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때 함대훈은 조선일보에 3회에 걸쳐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었다.
1927년에는 뉴욕발 특전으로 이 해 노벨문학상을 루이지 피란델로가 수상하게 되었다는 오보가 전해지기도 했었다.(중외일보, 1927.6.5) 이 기사는 명백히 오보였지만 기사에 김수산이 소개한 바가 있다는 부기(附記)가 있어 1926년 사망한 김수산을 안타깝게 소환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