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이들을 기억해주는 시대를 위하여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글_정명문(연극평론가)

 

 

 

뮤지컬과 기념의 방식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는 서간도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와 연결하여
육군의 기원을
1907년까지 소급시켰고, 우리의 무장투쟁에 관련한 역사를 공식적으로 재조명하였다.

 

<영웅>, <윤동주, 달을 쏘다>, <팬레터>, <여명의 눈동자>, <신흥무관학교>. 올 상반기 공연되는 이들 뮤지컬은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인물들의 삶과 고뇌를 그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올해가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백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이 흐름은 영화, 드라마, 연극에서도 대거 발견된다. 그간 일제통치 시대를 다루는 작품들은 나라 잃은 억울함을 일본의 잔인함 혹은 투사의 희생으로 그려내고, 비운의 감정과 애국지사에 대한 존경심과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데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는 서사를 끌어내는 방식과 인물 접근이 같은 시대를 다루는 작품들과 좀 다르게 접근한다. 이 작품은 군대 뮤지컬 중 재공연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성과를 팬덤 효과로만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마인(2008)>, <생명의 항해(2010)>, <더 프라미스(2013)>처럼 군 복무중인 연예인 병사를 동원한 것은 유사하지만 민간기획사와 협력하여 일회성 공연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은 서간도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와 연결하여 육군의 기원을 1907년까지 소급시켰고, 우리의 무장투쟁에 관련한 역사를 공식적으로 재조명하였다. 그간 가려졌던 기억을 조정하기 위해 뮤지컬에서 어떤 방법을 활용하였고, 그 성과가 무엇인지 확인해보자.

 

 

 

 

 

어른과 역사, 톺아보기

 

주체의 이동과 시선 변화를 통해서도 가치 있는 역사를 만드는 이 방식은 분명 주목받아야 한다.

 

이 작품은 1907년부터 1920년까지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압축해서 그려낸다. 극은 고종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함경도 북천과 삼수갑산에서는 홍범도와 포수들이 의병 부대가 되어 싸우고(정미의병운동), 대한 제국 무관학교 마지막 생도였던 지청천은 일본의 육군 학교로 보내졌지만 내 나라의 장군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상황은 첫 넘버 ‘죽어도 죽지 않는다’에서 포수, 무관생도, 여자아이, 머슴, 유생, 양반 모두 침략자를 몰아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음을 중독적인 멜로디를 통해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경술국치로 인해 결국 일본 통치를 받게 되고, 독립운동기지를 만주에서 건설하고자 안동의 혁신유림 이상룡과 신민회의 이회영이 움직인다. 신흥강습소의 학생들은 ‘The Old Folk At Home(스와니강)’의 익숙한 멜로디에 맞춰 씩씩하게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기르고 동해섬의 어린것을 품에다 품어 젖먹여 준이가 뉘뇨” 라며 남녀 구분 없이 농작물을 일구어 자생하고, 한글과 역사를 배우고, 군사 훈련을 받는다. 이 장면의 넘버는 중국과 일본이 우리 민족의 영향을 받았다는 <환단고기>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실제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당시 신흥무관학교에서 이주민들의 역사의식을 높이고, 신흥학우보 같은 기관지 발간으로 독립사상을 고취시켰음을 자연스레 부각한 장면이기도 하다.

 

 

 

 

신흥무관 학교에서 15살 남짓의 학생들은 다양한 교관들을 통해 군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대한제국무관학교 출신 신동팔, 일본육사 출신 지대형, 김광서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조국에 대한 의지가 투철했고, 서간도로 탈출하여 신동천, 지청천, 김경천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들은 이름 끝자에 하늘천을 붙여서 남만주의 ‘남만삼천’이라 불렸었다. 뮤지컬 넘버 ‘남만삼천’에서는 군인의 기개를 백마 탄 초인으로 표현하고, 지청천과 김경천의 합류이후 군사 훈련이 확실히 정비되는 면모를 집약적으로 드러내준다. 이후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교관들은 만주 지역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약했고 주요기관 파괴, 요인 암살 등 폭탄 투하를 하면서 이름과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가난한 유서’)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넘버 ‘독립선언서’는 1절 대한독립선언서 2절 대한독립여자선언서 3절 기미독립선언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 선언서가 그룹별로 불려지고, 동참한 인물은 밀정 편지를 읽는 일본인의 입으로 호명되는 장면은 당대를 반영한 영리한 연출이다. 이 넘버가 중요한 이유는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 이전에 이미 육탄혈전과 같은 무장항쟁을 다짐했고, 여성들만의 선언서가 있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옆에서 어머니, 아내, 딸로 함께 운동했던 여성들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호명된다. 이름으로 기억하는 힘을 보여준 창작자들의 노력은 그래서 박수 받을 만 하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독립선언서, 남만삼천, 서로군정서’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창작진의 균형감각

 

위에 언급한 ‘신흥무관학교 교가, 독립선언서, 남만삼천, 서로군정서’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창작진의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경성, 안동, 북천, 만주, 일본과 같은 시공간을 직접 구분하기 보다는 인물과 넘버, 안무를 통해 장면화했다. 특히 독립에 대한 열망과 기대가 공동의 의지였음을 의병대, 학도, 독립운동가, 군인으로 분한 앙상블의 움직임으로 확인시킨다. 위 넘버를 강력하게 부르면서 중앙을 장악하는 것이 바로 이 앙상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중요한 극적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대사와 노래를 이중으로 처리하지 않는 센스도 발휘한다. 이 넘버들은 다양한 인물이 자신의 위치에서 한 소절씩 불러 각자의 상황을 충분히 확인시키고, 노래 전 혹은 사이의 간단한 대사 등으로 감정 변화의 단계를 마련해서 멜로디의 감정과 가사가 확실히 기억되는 효과를 낳는 좋은 사례로 들을 만 하다.

 

<신흥무관학교>에는 상실의 시대에 존경할 만한 어른의 면모가 나타난다. 자결을 결심하는 유생들에게 그냥 죽으면 왜적을 이롭게 할 뿐 독립할 수 없으니 살아서 싸우라 설득하는 석주 이상룡, 전 재산을 팔아 독립군 자금을 형성한 이회영과 가족, 이회영의 곁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하며 독립군을 위해 여러 가지를 수행한 부인 이은숙, 일본 군대에서 배운 기술과 빼낸 정보를 독립을 위해 사용한 지청천 · 김경천, 열다섯 나이에 나팔수로 군에 자원했었던 홍범도가 그들이다. 이들의 재력과 지력, 군사적 지식과 전술 등은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또한 이들의 기록으로 후대에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의 실제 에피소드는 스리슬쩍 작품 안에 녹아들어 있다. 즉 이 작품은 지사들을 무장투쟁을 실현하는 배경으로 설정한다. 그 대신 학도와 군인 즉 이름이 남지 않았지만 행동했던 보통 사람들을 스토리 전면에 배치한다. 이 구조는 당시 어른다운 어른들이 적재적소에서 버텼기에 젊은이들이 옳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역사적 인물을 부각하는 작품들은 그동안 많았다. 이 작품이 그 계열에 들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표한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독립운동 서사를 이끄는 중심을 살짝 이동하더라도 독립의 의지나 가치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음을 증빙했다. 게다가 눈물짜내기나 교훈주입만이 당대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님도 알려준다. 주체의 이동과 시선 변화를 통해서도 가치 있는 역사를 만드는 이 방식은 분명 주목받아야 한다.

 

 

 

청춘, 무거움과 가벼움의 공존

 

무거움과 가벼움의 공존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숨겨진 역사를 찾아보고 무수한 이들의 노력에 대해 기억하게 하는 효과까지 얻었다
.

 

 

 

 

이 작품의 중심 배경은 학교이다. 학교에서 양반자제(동규), 머슴(팔도), 남장여자(나팔), 마적단의 수양딸(혜란)이 독립을 함께 꿈꾼다. 이들은 서로 글자와 숫자를 알려주고, 시를 잘 쓰는 친구를 자랑스러워하고, 생일도 모르는 이를 배려하며, 아픈 이에게 토끼를 잡아주면서 따스하게 격려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독립군 양성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이것이 신흥무관학교다!’) 죽은 동지가 못 다한 것을 마저 해내겠다는 맹세도 한다.(‘금란보’) 요즘 같았으면 입시 준비나 유튜브에 빠져 있을 나이이건만, 일제에 항거한 이 젊디젊은 이들의 명랑하고 우정 어린 모습은 어쩌면 판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학교(혹은 군대)에 간 젊은이들의 성장서사는 경쟁이 아닌 공존을 위한 교육의 힘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인물의 성격과 비중이다. 나팔은 전쟁터의 나팔수가 되기 위해 학교에 들어왔고(내 나팔소리를 들어라), 훈련성과가 좋아 전투에 가장 빨리 참여한 졸업생이 되었다. 혜란은 변복한 나팔을 남자로 착각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하지만(학구열), 마적단에게 키워졌어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서간도 호랑이) 이렇게 나팔과 혜란은 여성이지만 멜로를 수행하는 보조 인물이 아니다. 이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앞장서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삶을 선택하였다. 결국 여성캐릭터에게 기존에 부여된 ‘여성다움’보다는 ‘잘 할 수 있는 것’을 부각시키고, 남성과 동등하게 성장하는 면모를 그려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경우 여성인물의 다양한 성격화가 가능함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팔도는 자신의 태생에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선택하겠다며 독립군을 지원했다.(하늘 한 조각) 그는 신흥무관학교에서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동지를 만난다.(이건 뭐지) 한편 친구의 비밀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인사) 팔도는 지식은 부족하나 열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극 내내 코믹하고 방방 떠있지만, 그의 밝은 에너지는 동규를 감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팔도는 군대가 지향하는 태도를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동등한 대우와 동지애, 믿음으로 뭉쳐진 이들이 많아질수록 결속력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팔도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순수함의 가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결유생의 아들 동규이다. 그는 시를 쓰고 싶지만 헝클어진 세상에서 사치스런 꿈이란 걸 안다.(불안과 우울과 슬픔) 동규는 어머니를 죽이겠다는 일본인의 협박에 밀정 노릇을 하고 있지만(편지) 자신의 편지로 동료가 피해를 입자 결국 사죄의 마음으로 일본 기지에 폭탄을 던지게 된다.(불꽃놀이) 독립투쟁 이야기인데 밀정이 주인공이라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소재와 시도이다. 그러나 동규에게 다시 시선을 맞춰보면, 시류에 휘말린 젊은 지식인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당시 나라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진 이도 있었겠지만 희망이 없음을 예측한 이들도 있었을 터이다. 동규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버린 민족반역자(이완용)와 죽음을 통해 영웅이 된 자(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한 인물이었다.(물고기) 하지만 그는 독립을 위해 애쓰는 주변인들의 노력을 지켜보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된다. 이 작품은 동규와 주변의 움직임을 통해 완전히 나쁜 혹은 착한 이가 될 수 없었던 가혹한 시대를 그린다. 물론 영웅의 지사적 행동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영웅은 소수이고, 다수는 보통 사람이다. 동규의 고뇌는 관객들에게 그의 결정과 마음을 따라가게 만들기에 더 큰 공감을 준다. 어쩌면 당시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아져 있었던 건 아닐까. 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렇게 청춘의 캐릭터는 다양한 의미를 파생시켜 작품의 색채를 다채롭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신흥무관학교>는 백 년 전, 이름이 지워진 청춘을 부각시켰다. 흔들리고 무너지며 성장하는 청춘, 이 완성되지 않은 젊음을 내세운 것은 작품의 방향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신흥무관학교에 있었던 선생님과 학생의 교류는 지금 세대에게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가볍게 등장하는 것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그로 인해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서사는 방향 잃은 젊은 세대에게 모범이 되는 어른의 필요성을 이해하게도 하고, 어른 세대에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청춘의 좌충우돌도 과정 중 하나임을 다시금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공존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숨겨진 역사를 찾아보고 무수한 이들의 노력에 대해 기억하게 하는 효과까지 얻었다.

 

 

콜라보레이션

 

노래까지 좋은 뮤지컬.
노래가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뮤지컬에서 이런 특성은 극의 성공을 견인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신흥무관학교>는 무술과 안무에서 군 뮤지컬의 면모를 살렸다. 일본군대, 독립군 부대의 각종 훈련장면과 의병부대의 전투,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가 나오는데, 대형 뮤지컬의 군무에 대비해도 손색이 없다. 의장대의 일자, 브이 자 대형을 연상케 하는 동선, 손과 팔을 일률적으로 움직이거나 각 잡힌 동작 등 훈련이 잘 된 군인의 최상의 모습들이 구현된다. 일본군은 신체제를 갖춘 군대의 모습인데, 이를 총과 검을 활용한 군무로 인해 마치 아이돌의 콘서트처럼 연출했다. 그에 비해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은 군대로 육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학교가 세워진 초반엔 달리기나 발차기 등 기초 체력 수행 위주였던 이들의 훈련은 육사출신의 교관 합류 이후 텀블링, 토너먼트 대결 등 세련된 대열과 훈련으로 변화 지점을 확연히 드러낸다. 즉 군대의 멋진 모습을 스토리에 맞게 동선, 스피드, 액션을 짜 넣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한편 공간 구현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상상의 폭을 넓혔다. 기본 프레임은 찢어진 책이고, 중앙에 회전하거나 좌우로 벌어지는 사각 무대를 넣어 공간을 변화시켰다. 대형 LED 패널은 계절의 변화 등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데 기여한다. 고종 황제의 독살과 마적단에 뛰어드는 장면의 경우 사람보다 큰 그림자로 효과를 주었다. 초연에서는 바리케이트를 쌓아 군인들이 모두 쓰러지는 장면으로 연출되었던 청산리 전투의 경우, 재연에서 키네시스 모션제어 시스템을 사용하여 죽은 자와 산자가 함께 나라를 지키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라는 주 넘버를 인식시키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폭탄 장면도 1막은 장렬하게 2막은 아름답게 연출한다. 특히 2막에서 이 장면의 넘버는 ‘불꽃놀이’이다. 관객들은 동규의 폭탄 공격 이후를 다양하게 해석하며 좋아 한다. 그 이유는 폭탄을 폭죽으로 혹은 꽃의 흩날림과 같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흥무관학교>의 넘버는 전투 장면에 활용되는 7곡의 연주곡을 포함하여 총 26곡이다. 군가 스타일부터 발라드, K-POP, 신흥무관학교 교가까지 다양한 곡 스타일이 활용되었다. 킬링 넘버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와 ‘가난한 유서’이다. 극장을 나서도 이 곡들의 가사와 멜로디는 확실히 기억된다. ‘내 나팔소리를 들어라’처럼 나팔의 음색을 활용한 연주를 넣어 두근거리는 감성을 확실히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음악적”이라는 말처럼 많은 이가 좋아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할 필요가 있다. <신흥무관학교>에는 실제 기록을 적절하게 활용한 울림이 있는 가사와 멜로디, 효율적으로 배치된 리프라이즈들로 인해 기억에 남는 곡들이 많다. 이들 넘버는 서사와 밀착되어 있어서 감정고양과 상황 이해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한다. 노래까지 좋은 뮤지컬이여서 반갑다. 노래가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뮤지컬에서 이런 특성은 극의 성공을 견인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군대와 민간 각자가 가치를 교환하여 좋은 영향을 준 일종의 블록체인의 사례로 볼 수 있는 작품

 

이 작품은 ‘무장항쟁’을 준비했던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 주목하였다. 독립을 바랬던 이들은 양반과 평민(혹은 하인), 남자와 여자(혹은 남장여자), 장교와 병사 모두였다. 기록된 인물과 이름 없는 인물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역사임을 그린 흔치 않은 뮤지컬이다. 그래서 공연장 밖을 나서도 여운이 오래간다. 또한 시선의 조정을 통해 서사 전반을 다시금 고려하게 만들었고, 남녀 구분 없는 배역배치와 역할로 인해 기념의 방식에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시도와 시선은 주의 깊게 지켜봐야한다. 군대와 민간 각자가 가치를 교환하여 좋은 영향을 준 일종의 블록체인의 사례로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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