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글_박정기(연극평론가)
명동예술극장에서 (재)국립극단과 극단 산울림의 사무엘 베케트 원작, 오증자 역,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했다.
연출가 임영웅은 1955년 <사육신>(유치진 작)으로 연출 데뷔, 1968년 국립극단의 <환절기>(오태석 작)연출로 주목을 받고, 1969년 노벨상 수상작 <고도를 기다리며>(베케트 작)의 성공적인 한국 초연으로 각종 연극상을 수상하고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의 대표작으로 프랑스 아비뇽, 아일랜드, 폴란드,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초청 공연 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다대한 평가를 받았다.
1985년 3월 서교동 홍대주변에 소극장 산울림을 신축 개관하고 20여 년 동안 자체 기획공연으로 수많은 문제작, 화제작을 연출했는데,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위기의 여자><딸에게 보내는 편지><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담배 피우는 여자> 등은 중년 여성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여성연극이라는 화두를 제시한 바 있다.
뮤지컬 분야에서도 활약 한국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66년)을 비롯하여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대춘향전><상록수><지붕위의 바이올린><키스 미 케이트><갬블러>등 여러 편의 뮤지컬을 연출했다.
또한 산울림 소극장 개관 22주년이었던 2007년에는 이성열, 김광보, 김진만 등을 시작으로 젊은 연출가들을 초청하여 공동의 무대를 모색하는 “따로 또 함께” 시리즈에 도전, 유능한 연극인들을 영입함으로써 역동적 무대를 창출하였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6)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어를 가르치며,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가 제일 먼저 독일에 항복을 하니, 베케트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이다 쫓기자 남프랑스 보클루주로 도망해 숨어 지내며 소설작업을 하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952년에 희곡을 탈고한 후 1953년에 몽빠르나스 바빌론 극장에서 막을 올려 성공을 거두고 주변국의 주목을 받았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2막으로 구성되었다. 저녁 무렵 광대나 노숙자 같은 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Estragon)이 텅 빈 벌판에 잎도 없는 나무 한그루 옆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린다. 두 인물은 직업이나 나이나 성격도 불명확하다. 에스트라공이 40년 동안 구두를 벗은 적이 없다고 하는 대사로 보아, 나이는50대 후반이나 60대로 생각된다. 게다가 치매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현재나 최근에 발생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사만 기억을 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름까지 잊어버리고, 블라디미르라는 이름 대신 고고(Gogo)로, 에스트라공을 디디(Didi)라고 호칭한다. 2막에선 나무에 꽃이 달려 있지만 꽃이 피었다는 것 자체를 구별하지 못하고 포조와 럭키가 다녀간 사실을 기억 못하는 Gogo와 Didi의 상태로 보아 치매환자임이 분명하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탄생배경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독일군이 프랑스로 진입을 하니, 드골 장군은 국외로 도망을 하고, 프랑스 전역은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다, 프랑스인 일부가 레지스탕스가 되어 나치독일에 저항을 하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대책 없이 지내면서, 그저 막연하게 자유와 해방만을 그리며 지냈다. 보클루주에 숨어 지내던 베케트가 그러한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고 쓴 희곡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작품의 등장인물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처럼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이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하던 자유와 해방과 평화의 갈망을 조롱하듯 희곡에 반영했다. 특히 이 연극에서 폭압적인 지배자 포조에게 노예처럼 이끌려 다니는 럭키의 모습처럼, 럭키가 장문의 대사를 읊어댈 능력과 발군의 암기력을 갖춘 지성의 소유자이지만 노예의 신분을 떨쳐버리지 못하듯, 프랑스의 지성들의 용기 없고 비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작품 속에 그려 넣었다.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프랑스 지성들의 자아상실과 막연하게 해방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고도를 기다리며>에 묘사해, 향후 프랑스가 다시는 타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프랑스 지성인들에게 충격을 가한 장한희곡으로 평가되어 사무엘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2년 11월 평-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기다림’이다.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희곡에 거는 모든 관습적인 기대를 깨버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심오한 특성의 인물들은 없고 우스꽝스런 인물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독백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는 피상적으로 이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허튼소리라는 인상을 주는 언어가 놓인다.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한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Godot)라는 이름의 어떤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도라는 인물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그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며, 그가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있는지도 그가 언제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들의 얘기는 서로 지나치게 되고, 오해를 낳고, 도중에 끊어지며, 반복되고, 돌연 다른 주제로 옮겨가며, 질문을 발언처럼 다룬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동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어떤 막다른 골목의 끝에 다다르게 되고, 여기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돌아서서 새로 달리기 시작하며, 다시 그곳에서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또다시 돌아서 달리며 우왕좌왕한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에서 (1953년에) 초연되고 4년이 지난 후에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샌틴 감옥에서 상연되었을 때 재소자들은 이 작품이 그들을 위하여 쓰여진 것으로 믿었다. 여하튼 그들은 유럽의 대도시에 있는 진보적인 극장들을 찾는 관객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져주었던 이 작품에서 단번에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196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현대의 종지부를 보여준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림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에 그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을 통해 대답을 돌려주고 있다. (에셔 M. C. Escher의 그림들을 연상시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미의 이런 순환은 포스트모던을 인식할 수 있는 표시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베케트에게는 나치 지배하의 프랑스의 해방을 열망했다. 고도에서의 기다림은 바로 프랑스의 해방을 희곡 속에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사람들은 부조리극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은, 홍복유 교수의 번역으로 한재수 씨에 의해 1961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단 3회 공연을 충무로 5가 현대연기학원 소극장에서 가진 바 있었는데 한재수 씨는 당시의 연출 소감을 이렇게 잘라 말하고 있다. “‘고도’의 해석부터 문젯거리이며 초현실주의 연출수법으로 이끌어 갔는데 한국관객에겐 아직 이해가 될 수 없는 연극”이라는 것이다. “사실 반극 자체가 언어의 구사와 행동의 자기체면 같은 것인데 우리말에는 말 자체가 굴곡이 없어 양식화하는 길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것의 공연이 있었는데 아직 때를 벗을 수 없는 즉, 상업화 될 수 있는 단계의 연극은 아니라는 것을 金亮基(김양기) (在日劇評家(재일극평가)) 씨도 말한 바 있다. 즉 金씨는 “전위극은 전위극 자체대로 상연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김흥우 관장의 글에서-
“1989년 7월 24일부터 8월 4일까지 프랑스 아비뇽 아르모니 소극장에서 임영웅이 연출한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되었다. 우리나라 극단으로서는 최초였다. 더블린 연극제에 참가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90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더블린 프로젝트 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현지 반응은 대단한 호평이었다. 베케트의 본고장에서도 한국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열광했다. 객석의 반응에 반신반의하던 임영웅 일행은 다음날 더블린의 일간지에 난 자신들의 사진과 극찬에 놀랐다. 「The Irish Times」는 정동환(블라디미르 역)과 송영창(에스트라공 역)의 사진을 전면에 실었다. 「Irish Press」는 타이틀 기사로 “Korean Godot Worth the Wait(한국의 고도는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를 내보냈다.
94년에 폴란드 비브제제 극장에서 6월 17일부터 20일까지 초청 공연되었고, 97년에는 세계 연극제 공식 초청공연작으로 선정되어 재공연되었다. 99년 10월 12일부터 17일까지는 23회 서울연극제 특별초청작품으로 선정되어 재 공연되었고, 이어 11월부터 도쿄 초청공연에 돌입했다. 99년 공연은 안석환(에스트라공), 한명구(블라디미르), 김명국(포조), 정재진(럭키), 류지호(소년)로 구성되었다. 임영웅은 이들의 앙상블이 역대 최고라고 평했다. 도쿄 공연에 대한 평은 “베케트의 연극은 도쿄에서도 외국에서도 몇 번이나 보았지만 이만큼 재미있는 무대는 처음이다. 어디에도 바람이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빈틈이 없다. 배우들은 한국어로 대사를 했다. 한국어의 울림이 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다. 고도는 신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고도를 되풀이해서 공연하는 한국인에게 고도는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이 뭔가를 희구하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아사히신문 역시 “기묘하고 아름답게 현대인의 본질 그려”라는 제명으로 “창단 30년을 맞은 산울림은 그 동안 서울에서 11회에 걸쳐 이 작품을 공연함으로써 ‘아시아 최고의 고도’로 평가받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러한 평가와 성공은 임영웅이 오랜 기간 한 작품에 집착하고 연구한 결과이다.”
-한국의 연출가들 살림출판사 2004년 간행-
무대는 얕은 두 개의 단 위에 한그루의 고사목을 세우고, 배경에 보름달을 영상으로 투사하고, 무대중앙 객석 가까이에 구두 한 켤레에 조명을 집중시키는 등 조명의 변화와 조명색상 변화로 시간의 흐름과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이번 공연은 50년간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한 명배우들이 등장해 벌이는 연극잔치이다. 초연에 참가한 함현진과 김성옥은 이 작품으로 연기상을 수상했고, 함현진과 김무생 그리고 김인태는 작고했다. 이번 국립극단초청 명동예술극장 공연에는 정동환, 이호성, 박용수 안석환,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이민준 등이 출연한다.
5월 9일 첫 공연에는 정동환이 블라디미르, 박용수가 에스트라공, 김명국이 포조, 박윤석이 럭키, 이민준이 소년으로 출연해 성격창출에서 탁월함을 보이고 발군의 연기력으로 호연과 열연을 해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첨언하면 이번 공연에서는 조명의 역할이 극 분위기 창출을 배가 시킨다.
주최 (재)국립극단, 제작 극단 산울림, 예술감독 이성열, 제작총괄 임수진, 무대 박동우, 조명 김종호, 의상 최 원, 분장 김유선, 조연출 박정의 박경식, 총괄진행 심재찬, 무대기술총괄 신용수, 무대감독 신승호 김정빈, 조명감독 김용주, 의상감독 박지수, 포스터디자인 김 솔, 그 외의 스텝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재)국립극단과 극단 산울림 제작 기획 사무엘 베케트 원작, 오증자 역,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가와 출연자 그리고 스텝진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한편의 명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