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연극 <END GAME>
글_박정기(연극평론가)
원작 사무엘 베케트
번역/드라마터그 오세곤
연출 기국서
장소 알과핵 소극장
일시 2019년 9월 6일~22일
관극일시 2019년 9월 9일 20시
알과핵 소극장에서 극단 76과 극단 노을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작, 오세곤 번역 드라마터그, 기국서 연출의 엔드 게임(END GAME)을 관람했다.
오세곤 교수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고 ‘장 주네의 희곡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 한국연극교육학회 회장, 한국 대학 연극학과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회장,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부회장, 극단 노을 예술감독,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 아산문화재단 이사, 충청남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배우의 화술』등이 있다. 우리읍내(쏜톤 와일더 작), 도둑일기(장 주네 작), 보이첵(게오르그 뷔히너 작) 그 외의 다수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했다. 현재 순천향대 공연영상미디어학부 교수다.
기국서(1952~)는 중앙대학교 국문과 출신의 연출가다. 관객 모독,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지피족, 개, 훼밀리 바게트 등이상연될 당시 모두 ‘문제작의 영예’를 얻으면서 서울 평론가 그룹 특별상 기국서의 햄릿, 서울 평론가 그룹 연출상 관객모독, 영희 연극상, 한국 예술가 협회 오늘의 예술가상, 삼양동 국화옆에서로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를 수상한 한국연극의 주춧돌이다.
<엔드 게임>은 바로 1950년에 발발한 6 25사변 당시 한국을 지원하려고 파병한 프랑스 군인들이 3년간의 북괴군과의 전투에서 다수의 병사가 상의용사가 되어 귀국했고, 또 한편으로는 1962년 7월5일에 알제리의 독립이 이루어지기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국민이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벌였기에, 그곳에 파병된 프랑스 군인 들 역시 다수가 장애용사가 되어 귀국했기에, 1956년에 발표한 <엔드 게임>에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가 <엔드 게임>에서 주인공을 앞을 못보고,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지체장애인으로 설정을 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서 따온 것이지, 불문학자나 번역가, 그리고 일부 평자들이 늘 상 언급하는 부조리극에서의 등장하는 인물설정이 아니다.
연로한 부모가 있고, 장애가 되어 귀국한 젊은 장교에게는 그의 전우이자 부관이 키가 크기에, 프랑스 군대용어로 꺽다리(grandir, pousser)라는 의미의 “클로브”라고 부르고, 이 연극에서는 높이 달려있는 창밖을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연출되지만, 원래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내다볼 수 있는 키가 큰 인물로 부관 대신 아들로 설정을 한 것이다. 부관이 간병인이나 집사처럼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연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노예를 부리는 귀족 같은 특수신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주인공의 부모 역시 고령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설정이 된 것이지, 부조리극에서의 기이한 인물설정과는 전혀 무관하다. 부조리라는 단어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몰각한 일부 번역자나 평론가가 만든 용어이기에 더 이상 부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연극인의 수치라 하겠다.
무대는 중앙에 높다란 의자에 피가 배어있는 흰 천을 얼굴에 덮고 주인공인 햄이 선 그라스를 쓰고 앉아있고, 아들 클로브를 부를 때에는 군대에서와 마찬가지로 호루라기를 분다. 무대 왼쪽에는 사람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을 수 있는 드럼통 형상의 조형물 두 개를 비치해 노부부가 각기 들어가 앉아있도록 했다. 통에는 뚜껑이 덮여있고, 뚜껑을 들어 올리면, 노부부인 내그와 넬이 각자 고개를 내밀고, 대사나 동작으로 의사표시를 한다. 클로브는 접는 사다리를 가져다 창 앞에 놓고 사다리에 올라가 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연극은 일상의 끊임없는 반복과 아들 클로브에 대한 햄의 짓궂은 주문, 아들과 노부모와의 추억담 등이 차례로 펼쳐지는 등의 실제로 장애인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상황과 정경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 연극에서의 장면은 요즘 우리나라의 실버타운이나, 양로원, 그리고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에 고령의 부모를 입원시킨 사람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고 극히 사실적이기도 하다. 또한 1950년대에는 휠체어가 없었기 때문에 이 연극에서처럼 높다란 의자에 앉도록 하고 환자를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다. 황량함과 살풍경으로의 생활배경도 당대의 프랑스인의 생활모습으로 그려져, 한국의 6 25사변 이후의 우리의 삶과 하나도 다름이 없다.
사무엘 베케트는 암흑의 시대와 역경을 거친 프랑스 인의 삶을 사실 극으로 적나라하게 그려, 1969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두 주인공이 한그루의 나무가 서있는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서 꿈과 희망 같은 고도를 기다리지만, <엔드게임>에서는 주인공과 가족이 밀폐된 공간에서 세상의 최후를 맞는 것으로 그려지고, 게다가 백발의 부모는 쓰레기 통 같은 원형의 조형물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주인공의 아들만이 탈출구를 찾는 <고도를 기다리며>와는 내용에서나 공간구성에서 대조적인 연극이다
정재진이 할아버지 나그, 이재희가 할머니 넬, 하성광이 아버지 햄, 김규도가 아들 클로브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은 물론 탁월한 성격설정으로 원작을 능가하는 공연으로 창출시킨다.
제작총괄 허태경, 조연출 이동규, 무대 박성찬, 조명 주성근, 분장 의상 김선미, 작곡 박진규, 진행 김정진, 조명오퍼 전소은, 기획 조혜랑(잘한다 프로젝트), 홍보 김효상 류혜정(티위스 컴퍼니), 그래픽 사진 김 솔 박태양(보통현상)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반영되어, 극단 76과 극단 노을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작, 오세곤 번역 드라마터그, 기국서 연출의 엔드 게임(END GAME)을 본고장인 유럽에서의 공연을 권장할만한 한편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