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연극평론가 고수진
미국 남부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한 여인이 숨을 거둔다. 그녀의 남편과 네 명의 자식들은 ‘고향에 묻어달라’는 부인의 유언에 따라 관을 마차에 싣고 40마일 떨어진 제퍼슨으로 향한다. 그러나 큰 비가 내려 길이 끊기고 장례행렬은 9일 동안이나 계속된다.
1897년 미국 미시시피주 뉴올버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윌리엄 포크너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시인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26년부터는 『병사의 보수』, 『모기』, 『사토리스』 등 소설을 연달아 발표하였고, 1929년 남부의 귀족 콤슨 일가의 몰락을 그린 『소리와 분노』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930), 『8월의 빛』(1932). 『압살롬, 압살롬!』(1936) 등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주로 썼으며 194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윌리엄 포크너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작품 대부분이 미국 남부의 가상마을 ‘요크나파토파(Yoknapatawpha)’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작 『소리와 분노』를 비롯해 15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 지역은 작가가 자신의 고향마을을 바탕으로 창조한 공간으로 1936년 소설 『압살롬, 압살롬!』에 작가가 손수 그린 요크나파토파의 지도가 첨부되어있다.
지도에는 요크나파토파의 면적과 인구구성, 소유자의 이름(윌리엄 포크너 자신)까지 명기되어 있는데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역시 이 요크나파토파 외각마을에서 중심지인 제퍼슨의 공동묘지로 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가난한 백인 농부 앤스 번드런의 아내 애디 번드런은 자신이 죽으면 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친정 마을 제퍼슨의 공동묘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해온 남편 앤스와 네 명의 자식들은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애디의 관을 실은 마차에 올라탄다. 제퍼슨은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갑자기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에 길은 끊기고 애디의 관은 강물에 빠지기까지 한다. 큰아들 주얼은 물에 떠내려가는 관을 건져 올리다 다리가 부러지고 애디의 몸은 부패해간다. 예민한 성격의 둘째 아들 달은 일주일이 넘게 계속되는 이 억지스러운 장례를 끝내려 애쓰지만 가족들은 저마다 제퍼슨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기에 마차는 다시 제퍼슨으로 향한다.
요크나파토파라는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소설을 통해 쇠락하는 미국 남부의 내면을 탐구해온 윌리엄 포크너는 엉망진창이 돼 버린 이 가족의 장례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의 59개의 독백만으로 들려준다. 애디를 포함한 번드런 가족과 이웃 등 15명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진술하는 사건들은 59개의 뒤섞인 퍼즐조각과 같다. 이러한 독특한 서술방식 때문에 이 작품을 다른 장르로 변환하려는 시도는 까다로운 도전으로 여겨져 왔다.
2013년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제임스 프랭코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감독과 겸해 주인공 달을 직접 연기한 그는 인물의 독백을 영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분할화면을 사용했다. 사물을 보며 독백하는 1인칭 화자의 시점과 인물이 놓인 상황을 보여주는 관찰자의 시점을 병렬로 배치하며 원작의 느낌을 살린 영화는 그 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대되었으며 2016년 우리나라에서도 ‘위험한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연극무대에서는 이 작품을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의 배우 겸 연출가 장 루이 바로는 1935년 이 작품을 마임극으로 만들었다. 그는 2시간의 공연시간 중 30분만 음성 텍스트를 사용했으며 혼자서 동시에 세 명의 캐릭터를 연기해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장 루이 바로 이후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공연되었는데, 2013년 캐나다의 스미스 길모어극장은 무대장치나 소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배우들의 신체만을 이용하여 극을 구성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유학한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창단한 극단 ‘동’은 2007년 아리랑소극장에서 연극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한국 초연으로 올렸다.
강량원 연출이 각색하고 연출한 이 작품은 작품의 배경을 1930년대 미국 미시시피에서 일제강점기 간도로 옮겨오고, 한국방언학회의 도움을 받아 대사를 함경북도 방언으로 바꾸었으며 소품과 의상 또한 당시의 세간과 복식을 복원하였다.
무대에는 두 개의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았는데 평론가 장성희는
“사실주의를 거부한 무대는 삶 자체가 거대한 ‘관’이라는 듯 집과 환경을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사각 모양 구덩이로 표현한다. 이 속에서 죽은 자의 욕망이 산 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역설과 부조리가 효과적으로 심화한다.” (한국일보 2007.04.09.)
고 당시의 무대를 묘사했다.
또, 강량원 연출은 원작에 등장하는 15명의 인물을 11명으로 줄이고 59개 독백을 대화체로 바꾸어 8개의 장에 재배치했는데 이렇게 각색한 이유에 대해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보다 외적인 사건을 전면화해 사건 이면에 감추어진 가족들의 고독과 단절을 그리려고 했다.” (『공연과이론』 31호)
고 밝힌 바 있다.
극단 동은 이 작품으로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예술상, 2008년 동아 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했다.
윌리엄 포크너는 소설의 제목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를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11권, 「죽음의 세계로의 하강」에서 가져왔다. 죽음의 세계인 하데스로 내려간 오디세우스에게 아가멤논의 유령이 말한다.
“내가 누워 죽어갈 때 개의 눈을 가진 그녀는 내 눈조차 감겨 주지 않았소. 내가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는 동안 말이오.”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한 아가멤논의 이 증언은 번드런 일가의 파탄난 가족관계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포크너는 이 작품을 비극으로 끝내지 않는다. 애디는 유언대로 제퍼슨에 묻히고,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한 앤스와 아이들은 저마다의 보상을 받는다. 이제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다시 몸을 싣는다. 새로운 번드런 가족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요크나파토파강을 건너 마침내 제퍼슨에 영면한 애디 번드런의 안식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