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소개를 겸하는 두서없는 첫 글을 보내고 연재가 시작된 글에는 ‘이지은의 연극공장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었다. 누군가는 연극이라는 예술을 대하는 것에 ‘공장’이라는 단어를 더한 것에 불쾌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하지만 연극은 시장경제 안에서 ‘공연예술산업’의 일부이기도 하고 기획팀인 나의 역할은 연극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 보다 많은 재화가 오고 가고 이를 통해 다양한 부가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획자’인 내가 전하는 이야기에서 쯤은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공장’에 비유해도 크게 그릇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될 ‘연극 만드는 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연극을 만들어가는 시간적 흐름과 각각의 공간과 그곳의 사람에 대해서 포인트를 두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 그 시작으로 우리가 극장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공간인 ‘로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극장의 로비는 영어식 표현으로 ‘lobby’ 로 쓰는데 국어사전에서는 1.명사 호텔이나 극장 따위에서 응접실, 통로 등을 겸한 넓은 공간. 2.명사 국회 의사당에서 의원들이 잠깐 동안 머물러 쉴 수 있도록 마련하여 놓은 방. 3.명사 권력자들에게 이해 문제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일의 뜻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비의 의미는 당연히 첫 번째 의미일 것이다. 유의어로는 대합실, 연실, 라운지가 있다. 세 번째 뜻은 우리가 말하는 로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우리가 로비스트라는 직업과 함께 떠올리는 이 ‘로비’ 역시 애초 ‘영국의 의사당에 있는 로비에서 의원들과 유권자들 사이의 접촉이 이루어진 것에서 유래된 말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로비 역시 그 로비가 맞다.
단어의 첫 번째 뜻에서 ‘호텔’이나 ‘극장’에서 응접실, 통로를 겸한 넓은 공간이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장소 외에도 현관과 건물의 다른 공간을 이어주는 공간을 로비라고 통칭하는 경우가 많아 또 다른 사전에서는 ‘공공건물에서 휴게실·응접실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호텔의 현관로비(현관로비)는 호텔용어사전에서 보면 객실 규모에 따라 로비의 면적도 일정 규모 이상을 유지하도록 권고되어 있는데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극장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연극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극장에서의 로비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관객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공연을 관람하기 전 대기하거나 티켓을 찾는 티켓박스(매표소)와 일정규모 이상의 극장의 경우 짐을 맡기는 곳이 있고 굿즈나 음료를 판매하거나 화장실을 찾기 쉬운 장소 정도의 용도적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런데 관객에게 내보이기 전 연극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로비는 보다 복잡한 용도를 가진다. 특히 본격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셋업(set up)기간 로비의 용도는 그 어느 때보다 여러 갈래로 나뉜다. 특히 무대 반입구가 따로 없는 중소규모 이하의 극장에서는 로비와 현관이 무대를 만드는 재료와 도구들, 그리고 이미 제작소에서 만들어진 무대의 일부가 지나쳐가는 길목이 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로비는 평소의 정리된 모습이 아닌 최대한 공간을 확보한 작업실 또는 창고 같은 형상을 가지게 된다. 무대뿐만 아니라 조명과 음향을 위한 크고 작은 기기들도 설치 전 로비에 머물다 가는 경우가 많다. 무대와 조명관련 기기들은 설치가 완료되기 전에는 무겁거나 날카롭거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로비는 공연과 관련된 사람이거나 아닌 누구에게도 위험한 공간이 된다. 이 때문에 기획팀을 비롯해 극장과 연극의 준비와 관련된 인력들은 모두의 안전과 공연의 무사한 시작을 위해서 자주 날을 세우고 공간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안전의 의미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셋업 시기의 극장은 많은 통로와 입구들이 오픈 작업의 원활함을 위해 ‘열려’있다. 그런데 이 열린 공간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6일정도 무대와 조명, 음향, 연출, 기획팀과 출연자들의 작업공간이기도 해서 공연에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의 짐들이 또 개인 물품이 두서없지만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보관되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무대와 분장실 매표소 등으로 자리를 찾아가기 전까지 많은 것들이 모두 로비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무척 중요한 시간을 앞두고 날선 예술가들과 전기와 공간과 관련된 안전을 위해 곤두선 전문가들은 시간을 다투며 로비와 무대를 중심으로 수많은 동선을 그리며 정해진 시간 안에 수없는 경우의 수를 경험하며 연극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낯선 이’의 출입은 꽤나 부담스럽고 신경 쓰이는 변수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이 이야기의 제목 격으로 붙여진 ‘로비에서 잠깐 볼까요?’라는 말은 기획팀이면서 홍보를 담당하는 나에게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로비에서 잠깐 볼까요?’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가 나와 지금 함께 연극을 만드는 과정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 외부인으로서 ‘내가 너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네가 있는 곳까지 가겠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의 현장을 일부라도 보고 싶다’ 혹은 ‘그 열기(?)를 느껴보고 싶다’, ‘배우를 볼 수 있을까’라는 다양한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공연이 시작된 이후의 로비는 어떠한가.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이 끝나기 전(혹은 인터미션)이전까지의 로비를 쉽게 빈 공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역시 많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극장에서는 로비에서 모니터를 통해 무대를 볼 수 있는데 간혹 공연이 시작된 이후 로비에서 이것을 보고자 하는 관객이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국립극장이나 아르코 극장과 같이 전문하우스팀이 있지 않다면 이야기는 좀 다르다. 대다수의 연극공연이 이루어지는 소규모의 극장의 로비는 없거나(대표적으로 선돌극장. 선돌극장은 매표소가 건물 밖 주차장에 있지만 프로덕션의 상황에 따라 극장으로 통하는 계단참에서 매표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 주차장과 계단의 공간은 사람이 머물거나 휴게할 수 없으니 로비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객석 규모의 10%에 미치지 못하는 협소한 정도이다(대표적으로 알과핵극장이 있고, 동양아트센터의 경우 세 개의 관이 한 개의 로비를 공용으로 쓰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알과핵 극장과 비슷할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난 후 로비는 대부분 기획팀들의 사무실(매표소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그날의 정산이 이루어질 것이다.)로 오늘 미처 해결하지 못한 업무와 내일의 공연을 준비(유선상의 예약상황을 확인하고 무선으로 이루어진 예약상황과 함께 고려하여 예매처 관리를 어떻게 할지 내일 좌석관리를 어떻게 할지를 정하고 관객의 숫자가 지극히 많거나 적을 경우 무대 팀, 음향 팀에도 공유해야한다)하고 또 극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판매용 굿즈 관리에서 극장 측과의 소소한 커뮤니케이션,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의 민원해결도 이때에 이루어진다)를 해결하는 시간이 된다. 이 과정에서 로비는 쉼 없이 누군가의 등퇴장이 이루어진다. 또 무대를 넓게 사용하는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공연 도중 이루어지는 배우들의 동선으로 로비가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위해 로비를 담당하는 직원은 로비의 밝기와 소리를 제한하고 당연히 외부인의 출입도 시간에 맞춰 제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통되는 상황만으로도 로비는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이렇듯 바쁘다. 이런 이유로 대학로의 수많은 소극장에서 로비의 유무는 극장에 대한 기획팀과 관객들의 호불호를 가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로비의 존재’가 연극을 하는데 있어 무대와 분리된 공간에 딸린,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연극을 만들면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배제했을 때 연극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희곡? 배우?
기획팀의 일부로 크고 작은 극장에서 사계절을 열네 번쯤 보낸 나는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한 비도 막아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대학로의 흔한 집회 소리도 잘 막아주는 로비가 있는 극장이 아주 좋다. 이왕이면 로비 오픈 이후에 관객의 시야에서 숨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면 더욱 좋다. 누구든 연극을 만들거나 보기위해 극장을 찾았을 때 안전하고 편한 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어렵지 않게 연극을 만들고 연극을 보기 전 더 좋은 기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를 정하기 전 ‘연극공장’의 본격적인 첫 이야기를 위해 무엇이 좋을까를 고민할 때 사실 먼저 생각한 것은 ‘희곡’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희곡’에 대해 쓰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연극판 뿐 만 아니라 ‘오늘의 서울연극’ 필진과 독자 중에도 ‘희곡’에 대해 본인보다 잘 알고 많이 읽고 오래 공부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그저 좋아하는 희곡에 대해 나열만 하고 끝낼 수는 없어서 발을 들어 극장으로 먼저 들어서기로 했다. 혹 조만간 희곡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은 희곡을 쓰는 법이나 작품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획자로서 경험한 다양한 희곡을 연극으로 만들었던 경험담 정도가 될 것이다.
#의외로 관람이 불가능한 연령의 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와서 동반 입장이 불가능한 경우 로비에 아이를 두고 관람하겠다는 관객들이 있다. 지금은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기획을 막 시작했던 때에는 실제로 공연이 진행되는 두 시간여 동안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 별도의 로비도 없는 前76스튜디오였는데 극장입구의 매표소에 앉아서 동료 중 하나가 네댓 살짜리 아이와 그림그리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극장 안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로비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마음 아팠던 기억은 아픈 노령견을 키우는 연출가의 작품을 할 때였다. 심장이 위험한 상태였던 테리어종의 개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었던 연출가는 개를 데리고 와서 차에 두었고 더운 여름에 불안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안타까워 로비에서 기획팀들이 돌아가며 개를 지켜보았다. 개는 짖지도 않고 숨을 어렵게 쉬며 낯선 상황을 잘 견뎌 주어서 다행이었다. 닷새의 짧은 공연 중 하루였는데 마침 그날 오전에 내가 16년간 반려했던 개가 하늘나라로 갔던 날이라서 더 마음에 남는다.
#관객들 중 입장하면서 로비에 휴대폰을 충전시켜두고 입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연 중의 로비는 절대 빈 공간도 쉬는 공간도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분실물도 많은 공간이다. 무엇보다 휴대폰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 CCTV도 대부분 없을 것이다.
#로비가 있는 극장이 좋지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격해진 시기에는 로비가 없어 좋았던 경우도 있다. 매표와 공연 전 대기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2미터 거리두기도 어렵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서 무언가 먹고 마신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로비가 비워지고 정리가 끝나야 모두 집에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