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심(무학여자고등학교 교사)
오늘은 백승무의 연재에 기대어 연극 감상과 비평에 대한, 더 정확히는
『연극 감상과 비평』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비평가야말로 예술가의 최고의 친구이다. 그들은 눈곱만한 일로 배우를 괴롭히지 않으며, 배우 작업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수업』(신겸수 역) 165쪽)
본지 오늘의 서울연극 (제124호) 기획연재 ‘백승무의 어절시구리’ 첫머리 글이다. 만들어진 순간 이미 소중한 가치를 갖는 공연 작품은 관객의 관심으로 자기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성장한다. 비평가는 연극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적극성을 띤 관객이다. 비평은 더 많은 관객에게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한 번뿐인 연극 공연이 동시대의 언어로 기록됨으로써 영원한 생명력을 갖게 한다. 또 비평의 구체적인 칭찬과 논리적인 충고는 새로운 작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결함을 메우고 작품을 살리기 위”한 일이니 연극에 대한 무한 애정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모든 작품을 귀하게 다루는 것이 곧 ‘착한 비평’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 백승무는 기획연재에서 스 선생의 명언을 통해 취향 없는 비평을 꼬집으며 충고한다. 이렇게 기본이 흔들릴 때 자기 성찰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할 일이겠다. 오늘은 백승무의 연재에 기대어 연극 감상과 비평에 대한, 더 정확히는 『연극 감상과 비평』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 진하게 처리한 글은 인용 글이며 출처는 오늘의 서울연극 (제124호) 기획연재 ‘백승무의 어절시구리’임. http://3.39.255.51/2021/02/%eb%b0%b1%ec%8a%b9%eb%ac%b4%ec%9d%98-%ec%96%b4%ec%a0%88%ec%8b%9c%ea%b5%ac%eb%a6%ac-2/ )
“예술은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창조적 작업에 무슨 평가냐고 거칠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가의 의미를 우리 사회의 그릇된 평가 관행인 ‘줄 세우기’ 범주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상대평가의 폐단에 젖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평가’는 사람이나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일정한 기준에 의해 따져 보는 일이니, 평가의 핵심은 일정한 ‘기준’이다.
“자기 기준, 자기 취향이 없이 평가를 주저한 비평은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자기 기준, 취향이 비단 비평가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존 듀이의 예술교육철학에 따르면 감상과 비평은 분리될 수 없으니 자기 기준, 자기 취향은 분명 연극을 감상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리라. 고등학교 교과서인 『연극 감상과 비평』에서조차 끊임없이 자기만의 시각과 기준을 갖고 연극을 감상하고 비평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연극 창작과정을 되짚어 가며 분야별로 상세하게 제시한다.
교과서에서는 연극 비평의 핵심인 자기 기준을 기본으로 가르치고 있다
현재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원한다면 어느 학교에서나 전문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두고 있기 때문에 ‘연극 감상과 비평’ 과목은 예술계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전문 과목 중의 하나이지만, ‘연극의 이해’ 과목과 함께 특성화고등학교나 일반 고등학교에서 종종 선택하는 과목 중의 하나이다. 복잡한 교육과정 이야기를 빼고 얘기해 보자. 간단히 정리하자면 어느 고등학교에서든 원한다면 『연극 감상과 비평』 교과서를 교재로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교과서에서는 연극 비평의 핵심인 자기 기준을 기본으로 가르치고 있다. 처음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자기만의 기준과 방법을 갖고 감상하고 비평하는데, 오히려 전문 비평가 사이에선 ‘취향 없는 비평’이 심심치 않게 문제가 되나 보다. 『연극 감상과 비평』 교과서 안에 있는 한 줄 한 줄의 글들이 새롭게 읽히고, 기본으로서의 무게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출판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연극 시장의 게토화를 개탄하고 비평의 책임을 묻는 이들에게 ‘기본’을 되짚어 보자는 의미에서 이제라도 이 교과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연극 감상과 비평』에 대한 서평이라고 해도 좋다.
연극 관련 교과서나 서적 대부분이 ‘만들어진’ 연극, ‘만드는’ 연극에 초점이 있다면 이 책은 ‘보는’ 연극에 초점이 있다.
『연극 감상과 비평』 교과서는 철저하게 향유자, 관객의 입장에서 쓰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연극 관련 교과서나 서적 대부분이 ‘만들어진’ 연극, ‘만드는’ 연극에 초점이 있다면 이 책은 ‘보는’ 연극에 초점이 있다. “연극미학의 실제는 무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관객의 의식과 기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이 작품을 선택하고 공연에 대한 기대를 하며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첫 대면하는 무대의 모습, 배우들의 연기, 끝나고 난 뒤 로비에서 만난 관계자들의 모습까지 관객의 모든 감상 과정을 중심으로 접근한다.
적어도 왜 좋은지, 왜 싫은지 이유가 있어야 창작자가 새롭게 고치든 용기를 내
앞으로 나아가든 할 테니까.
따라서 교과서는 감상과 비평은 무엇이며, 어떤 의의가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탐구하고, 관객인 ‘나’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여 감상할 것인지, 희곡을 먼저 읽고 감상을 할 것인지, 공연을 보고 희곡을 읽을 것인지 등 자신만의 감상 방법을 찾도록 안내한다.
또한 연기 중심의 감상과 비평, 무대 중심의 감상과 비평, 연출 중심의 감상과 비평으로 크게 나눠 세부 영역에 대한 집중적인 감상과 비평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관객인 ‘나’는 작품의 연기, 무대, 연출 등 세부 분야 창작자들에게 또는 창작 결과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자신만의 질문지를 만들어 본다. 세부 영역별 자기 기준, 비평의 근거를 갖자는 것이다. “근거 없는 착한 비평은 아픈 자의 입에 설탕을 쏟아 붓는 짓”이라 했던가? 적어도 왜 좋은지, 왜 싫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창작자가 새롭게 고치든 용기를 내 앞으로 나아가든 할 테니까.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닐 테니 그 모든 것이 마땅히 공평하게
주목을 받고 박수 받아야 한다.
교과서의 이러한 구성을 연기 비평, 무대 비평, 연출 비평으로 간단히 줄여서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고등학교 교과서의 분야별 비평은 “한국비평의 절반은 희곡에 기반한 내용미학이 차지”하는 연극계에 다양한 비평을 자극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공연 비평의 백미”를 “연출술과 연기론”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교과서는 배우의 몸짓과 말, 연출가의 의도와 무대 구현을 중심으로 비평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간 표현, 인물 표현으로서의 무대 미학,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일련의 노력까지 공연과 관련된 모든 것이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닐 테니 그 모든 것이 마땅히 공평하게 주목을 받고 박수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극 참여자들의 창작과정을 역으로 추적하여 창작자들의 의도와 구현 과정을 체감하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때로는 무대 의상이나 분장만을 중심으로 비평을 하고, 때로는 연출가가 관객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비평한다. 무대 음향만을 중심으로 비평하는 일은 참으로 생경한 일이지만, 습관적으로 스쳐 지나갔던 연극 공연 속의 ‘소리’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포스터는 어떤가? 포스터에 숨어있는 연출의 의도를 찾아내고 비교하는 훈련은 숨은 그림 찾기 마냥 재미있기도 하다. 그렇게 비평이 재미를 넘어 자기 기준을 점검하도록 촘촘히 안내한다. 물론 이렇게 부분 부분을 쪼개서 평가하는 것만을 훈련하지는 않는다. 훈련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각 부분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작품 전체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훈련도 한다.
이 책의 특징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연극 참여자들의 창작과정을 역으로 추적하여 창작자들의 의도와 구현 과정을 체감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객으로서 객관적으로 질문할 것을 찾고, 그 질문의 결과가 공연 작품에 드러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도록 훈련한다. 다시 듀이의 교육철학을 빌리자면 비평가의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배우 작업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건전하고 냉정하며 현명하고 이해력 있는 비평가”가 되려면, 그래서 “예술가의 최고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만 국한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노력과 과정을 함께 보려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예술가의 최고의 친구”인지 의심스러울 때 한번쯤은 들여다봐도
좋을 만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교과서가 완벽한 감상과 비평 가이드북인 것 같다. 하지만 개선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집필진의 의욕이 넘쳐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공연 작품을 예시로 들어 감상과 비평의 관점을 갖도록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하지만 정작 실제 공연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적고, 그 대안으로 공연 영상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부에 그치고 있다는 것 등은 교과서를 본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의 기본이 흔들릴 때, 때론 자신의 관성적 비평 행위를 반성하고자 할 때, 자신이 “예술가의 최고의 친구”인지 의심스러울 때, 한 번쯤은 들여다봐도 좋을 만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