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권리 보장법’ 통과와 향후 과제

오세곤

예술계가 근 4년에 걸쳐 염원하던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약칭 ‘예술인 권리 보장법’)이 마침내 통과되었다. 앞으로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될 이 법의 내용을 살펴보고 실제 현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한 향후 과제를 알아본다.

사진출처: 언스플래쉬

. 법의 구성 및 내용

‘예술인 권리 보장법’은 총6장 41조 및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별로 내용을 개괄하자면 다음과 같다.

1장 총칙에서는 목적과 정의,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예술인의 역할, 국가기관 등의 책무,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이 중 특기할 만한 것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노동과 복지 등 직업적 권리를 신장하며, 예술인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를 보장하고 성평등한 예술환경을 조성하여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함으로써 권리 신장”, “지위 보장과 함께 성평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여러 조항을 통하여 예술인의 역할과 가치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예술인은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이고, “문화권을 가진 국민이자 문화국가 실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존재”이며, “다양한 문화정체성을 발현하여 우리 사회 영역 전반을 풍요롭게 하고 이를 통하여 미래세대에 계승될 문화유산을 창조·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했다. 즉 예술인은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제2조(정의)에서는 “예술 활동”에 “실연”의 일환으로 연습과 훈련을 포함시켰으며, “예술인”의 범위에 기존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에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기 위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훈련 등을 받았거나 받는 사람을 추가하였다. 예술인 복지법에서 예술활동증명을 예술인의 조건으로 했던 것에 비해 많이 유연해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예술인으로서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예술교육활동을 예술 활동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예술교육활동예술인이 다른 사람에게 예술 활동에 필요한 기술 등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술교육 현장에서 피교육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교육 행위를 예술 활동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더욱이 “예술교육기관”을 ‘초중등 교육법’과 ‘고등교육법’에 근거함으로써 결국 초중고와 대학까지만 포함시키고 말았는데, 이 경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학원 등을 소홀히 다룰 여지가 있다.

2장 예술 표현의 자유 보장

이 법안이 발의된 데에는 전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제7조 “예술의 자유의 침해 금지”, 제8조 “예술지원사업의 차별 금지”, 제9조 “예술지원사업의 공정성 침해 금지”는 모두 그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세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국가기관, 공무원, 예술지원기관이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드러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을 명심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더욱 교묘한 차별과 배제가 행해지는 않도록 세심하게 실행 규칙과 제도를 마련하고 꾸준히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3장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

사실 블랙리스트 사태도 예술인의 창작 환경이 열악한 데서 출발한다. 어려운 사정을 악용하여 지원이라는 도구를 권력으로 휘두른 것이다. 그래서 제10조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등”에서는 정당한 보상과 함께 신체적 안전이 보장된 환경에서 예술 활동을 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제3장은 제11조 “예술지원사업에서 예술 활동 개입 금지”, 제12조 “예술인보호책임자의 지정”, 제13조 “불공정행위의 금지”, 제14조 “예술인조합 활동방해의 금지”, 제15조 “예술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4장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

예술계 미투 운동 역시 블랙리스트 사태와 비슷한 시기에 예술계를 근본적으로 각성시켰다. 법안이 크게 예술인의 권리 보장과 함께 성평등을 강조하고 성폭력 방지를 위한 여러 대책과 장치를 담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제4장은 제16조 “성평등한 예술 환경의 조성”, 제17조 “성희롱·성폭력 방지조치”, 제18조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구제 지원기관의 지정”, 제19조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로 구성되어 있다.

5장 예술인 권리구제 기구 등

애당초 예술계는 예술인의 권리 보장과 성평등이라는 책무가 각기 대단히 크고 중요하므로 기구도 별도로 구성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최종 법률안은 이 두 책무를 묶어서 하나의 기구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제5장 1절은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이고, 제20조부터 제25조까지 이 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여러 항목들을 배치하고 있다. 물론 위원회 안에서 책무에 따라 부서를 나누도록 되어 있기는 하지만 자칫 집중도가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예의 주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2예술인보호관은 앞서 제12조의 예술인보호책임자의 역할을 공무원인 예술인보호관이 맡도록 하고 있다. 사실 1절의 위원회와 제2절의 보호관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협조와 분담 체계를 이룰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더욱이 보호관을 공무원으로 못 박은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려도 된다. 우리 관료 사회의 병폐인 무사안일, 복지부동, 전시행정 등에 더해 소위 칸막이 문화라도 발동되면 모처럼 마련한 법과 제도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6장 구제 및 시정조치

마지막으로 제6장은 많은 구체적인 항목을 담고 있는데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제28조 예술인권리침해행위 등의 신고 / 제29조 신고 사실의 조사 / 제30조 조사절차의 종결 / 제31조 구제절차의 종결 등 / 제32조 구제조치 / 제33조 시정권고 / 제34조 시정명령 / 제35조 재정지원의 중단 등 / 제36조 행정제재처분의 효과승계 / 제37조 분쟁조정 / 제38조 불이익조치 금지 / 제39조 권한의 위임·위탁 / 제40조 벌칙 적용에서 공무원 의제 / 제41조 과태료

사진출처: 언스플래쉬

. 향후 과제

이렇게 법은 통과되고 이제 1년 후면 시행에 들어간다. 그러나 법안의 내용 중에는 선언적인 부분이 많다. 그것은 이 법은 통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선언적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인 규칙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고 또 그것이 현실에서 효율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법의 미비한 점도 찾아서 만약 시행령이나 규칙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근본적으로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면 시기를 따질 것 없이 바로 개정 작업에 돌입할 필요가 있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문화예술교육의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고, 그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것은 예술인들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활동은 예술활동으로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 현재 전문예술인들의 삶에서 이러한 일반인을 위한 예술교육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생각한다면 애초 예술인복지법이 놓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았어야 하건만 그렇게 진행되지 않은 점은 못내 아쉽다. 일단은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이라 했으니 “등”을 유연하게 해석하는 식으로라도 포함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정식으로 개정하게 되기 바란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법에서는 예술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연 정당하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2014년 “공연예술 전문인력 표준인건비 산출연구”에서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표준인건비를 제안한 적이 있지만 전혀 예술 현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 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앞으로 1년 동안 시행령만 만들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준도 만들어서 공표해야 비로소 법안 마련의 진정성이 확인될 것이다.

아울러 더욱 근본적으로 예술인들이 창작한 작품을 정당한 가격에 구매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하고, 또한 수많은 공연장을 지어 놓고 예술인들을 배제시키고 있는 기현상도 바로잡아야 한다. 아마 이런 주장에는 가장 먼저 예산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건축하는 막대한 예산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채우는 작품 구매 예산이나 예술인을 고용하는 예산에 대해서는 소모성 운운하며 아깝다고 생각하는 풍토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한마디로 예술인 권리 보장법이 통과되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법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법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행간에 전제로 깔려 있는 보다 근본적인 여러 조건과 환경을 반드시 실현시키고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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