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산

글_김소연(연극평론가)

 

 스포츠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종종 만들어지는 것은 스포츠와 드라마의 친연성 때문일 것이다. 승부를 겨루는 경기를 통해 구축되는 인물들과 서스펜스, 때때로 진행되던 경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선회하는 반전까지. ‘극적인 승부’라는 기사의 헤드카피가 익숙하다. 만화,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스포츠는 매력적인 소재다. 연극도 그렇다. 물론 연극에서는 경기장의 격렬한 움직임을 스펙터클로 만들어내는 데에 영화나 만화에 비해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연극에서는 인물들의 서사의 비중을 높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땀 냄새가 극장에 차오를 만큼 격렬한 움직임을 만든다거나(<유도소년>) 마치 만화의 과장된 화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잘 짜여진 퍼포먼스로 경기의 박진감을 만들기도(<팬스 너머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해>) 한다.

 

사진 제공: 극단산

 

 축구드라마를 표방하는 극단 산 <PASS> 역시 축구 경기의 스펙터클이 연극 전반부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다른 점이라면 이 연극의 드라마는 승부를 뛰어넘어 전개된다는 것이다.

 연극은 축구라는 신식문물이 도입되는 구한말 양반과 노비의 자제가 함께 어울려 공을 차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깨어있는 지식인인 양반 주인은 노비를 해방시키리라 약속한다. 프롤로그 같은 이 짧은 장면은 연극의 후반부 드라마로 연결되는데 이어지는 장면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946년 경평축구대항전을 준비하는 남과 북의 청년들의 모습이다. 일제 시대에 시작된 경성과 평양 축구팀의 친선경기는 중단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재개되었다. 해방과 경기 재개의 기쁨에 청년들의 활달함이 더해진다. 그러나 경기를 준비하는 도중 38선을 경계로 한 남과 북, 미국과 소련의 대치가 격화되고 경기를 위해 평양 팀이 서울에 오는 것마저 최소한으로 인원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준비하던 응원단도 어렵게 38선을 넘어 서울에 온다. 드디어 성사된 경기. 선수도 응원단도 젊은 청년들인 이들의 경기 장면은 펄펄 나는 것 같은 젊음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공을 두고 벌어지는 경기는 비보잉 등의 춤과 마임으로 잘 짜여진 움직임을 연출하면서 영화나 만화의 화려한 미장센과는 또 다르게 경기장의 활기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격렬함의 한 가운데에서 경성 팀 선수 한강산과 평양 팀 응원단 백지연의 사랑이 싹튼다.

 

사진 제공: 극단산

 

 경기가 끝나고 난 후 연극의 후반부는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이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어려워졌고 한강산과 친구들이 이들의 귀로를 돕는다. 두 남녀 사이에는 이렇게 점점 38선의 경계가 완강해져간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을 위기로 몰고가는 것은 38선만이 아니다. 두 남녀의 가계의 치명적 갈등이 있었던 것. 바로 프롤로그의 양반과 노비가 이들의 조부모들이다. 백지연의 가계는 한강산의 가계를 해방시키고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군들을 후원했다. 그러나 한강산의 아버지는 백지연의 가계를 밀고한다. 이 역시도 일본제국주의라는 시대 속에서의 갈등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르고 보면 ‘축구’라는 스포츠는 사라지고 부모 세대의 갈등을 짊어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만이 남게 된다. 아마도 드라마는 이들의 사랑이, 부모 세대의 갈등을 뛰어넘어 해방된 조국의 하나됨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리라. 하지만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 갈등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처럼 이들의 사랑도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원한에 휩싸여 있는 부모들과 그 원한에 희생되고 마는 젊은 연인들의 파국. 익숙한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연극의 전반부 경평축구대항전에서의 활기는 두 남녀의 만남 이후로 이어지지 못한다. 축구 경기의 활기나 해방 직후 재개된 친선경기의 기쁨 등은 두 남녀의 만남 이후 자취를 감추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 일제에 시작된 가계의 원한이 이들의 사랑을 지배한다. 해방과 함께 재개된 경성팀 평양팀 친선축구경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정작 드라마는 거슬러 오른 과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사진 제공: 극단산

 

 드라마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극단 산 단원들의 활달한 퍼포먼스는 인상적이다. 연극의 전반부에서 펼쳐지는 축구경기와 응원전은 짜임새 있는 퍼포먼스로 해방, 승부 그리고 젊은 열기를 무대 가득 채운다. 또 연극의 후반부에서는 백지연의 모친 생일잔치에서 보여주는 잔치마당의 연희도 흥겨웠다. 전통연희, 노래, 춤 등을 배우고 익히는 워크숍부터 함께 해온 단원들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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