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추어라 빨간구두야 <고등어>

글_홍혜련(배우, 드라마투르그)

 

 

거대한 수조 같은 교실 속, 15살 지호는 그냥 ‘있을’ 뿐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지호는 혼자 생각한다. ‘난 어쩌면 책상, 아니면 그 밑에 의자, 아니면 테이블 위의 물컵?’ 어느 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우연히 같은 반 ‘경주’와 마주친 지호는 그곳에서 경주의 귀 뒤 직경 50밀리미터의 푸른 점을 발견한 이후로 자꾸만 경주에게 눈길이 간다. “옆 반의 무법자 달걀 언니도 꼼짝도 못 하고, 미친 소리를 미친 줄도 모르고 해대는 담임선생님도 한마디로 발라 버리는” 경주. 지호는 온 용기를 그러모아 경주에게 “친구 할래”라고 적은 쪽지를 보낸다. 늦은 밤 하천가 다리 아래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은 둘은 반 아이들 아무도 모르게 비밀 친구가 된다. 둘의 일상이 설렘으로 차오르던 어느 날부터 경주를 둘러싼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학교 전체에 퍼져 나가고… 지호는 학교를 뛰쳐나간 경주를 무작정 찾아 나선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난 둘은 “진짜 살아 있다”라는 게 뭔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진짜 살아 있는 고등어를 보러 통영으로 향한다.

<고등어>는 <휴먼 푸가>, <보더라인>, <섬 이야기> 등에서 작가이자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배소현의 자전적 이야기다. 2016년,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로 첫선을 보여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고등어>(배소현 작, 최재영 연출)가 2023년 8월, 청소년극 전문극단 “춤추어라 빨간구두야(이하 춤빨)”와 만나 다시 무대에 올랐다.

<고등어>는 “살아 있다”는 게 뭔지 궁금한 두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이다. 서로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듯 보이는 지호와 경주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서로에게서 발견해 주는 사이다. 경주는 지호에게 “네가 답답한 걸 하찮게 여기지 말라”고 말해 준 첫 친구이고, 남들 눈에는 손등과 팔뚝에 잔뜩 새겨진 담배빵과 칼빵이 먼저 들어오는 경주에게서 지호는 귀 뒤 푸른 점 속 깊고 푸른 바다를 발견해 준다. 경주가 어느 책에서 보았다는 “삶을 살아가는 힌트,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 만들 것”이 책 속의 수사가 아니라는 것은 둘은 서로를 통해 깊이 경험한다.

진짜 살아 있음을 감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호는 경주를 만난 이후 자꾸만 심장이 뛴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경주의 귀 뒤 직경 50밀리미터의 푸른 점을 발견한 날에도 심장이 쿵쿵, 한밤중에 보낸 경주의 “나올래?” 문자에도 쿵쿵,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에 “몸이 아는 것”이라는 경주의 답에도 쿵쿵,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경주에게 온갖 말들을 쏟아내는 반 아이들에게 생전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고 학교를 뛰쳐나왔던 날에도 지호의 심장은 쿵쿵 뛴다. “진짜 살아 있다는 게 뭘까” 하고 슬픈 눈을 한 경주가 진지하게 묻는 와중에 지호의 배는 “꼬르륵” 하고 울린다. 주책없이 이런 때 배가 고픈 게 부끄러운 지호이지만,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루 종일 너를 찾아 헤매느라 배고픈지도 몰랐는데 이제 너랑 같이 있으니 배가 고파 오는 것, 너 때문에 생전 안 하던 짓을 자꾸 하게 되고 그때마다 심장이 자꾸만 뛰는 것.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것이 아닌가.

경주와 함께 바다 위에 선 지호에게는 이제 진짜, 가짜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곳에 경주와 함께 있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진짜’이기 때문이다. 아침엔 분명 학교였는데 동이 터오는 지금, 지호와 경주는 바다 한가운데 배 위에 서 있다. 끝나지 않으면 좋을 것 같은 이 순간, 경주의 입에서 노래가 터져 나온다. 살아 있다는 건 가슴이 벅차오를 때 그 숨이 노래로 터져 나오는 것. 바로 그런 것이라고 연극 <고등어>는 말한다.

 

*작성자 홍혜련은 본 공연의 드라마터그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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