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쇼노트 <테베랜드>

 

글_주하영(공연비평가)

 

존속살해범을 무대 위에 등장시켜 매일 밤 연극을 공연하는 일은 가능할까? 현재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흥미로운 극작가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세르히오 블랑코(Sergio Blanco)는 존속살해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를 무대 위에 불러내 인류 문학과 신화 속에 오랫동안 등장해 온 주제인 ‘부친 살해’의 역사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의 의도는 내무부와 법무부의 반대와 보안조치로 인해 관철되지 못했지만, 재소자와의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실제에 근거한 희곡을 구성하고, 그에 관한 공연을 메타드라마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부친 살해의 상징처럼 언급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Oedipus)’와의 연계성을 염두에 둔 작품은 2013년 <테베랜드(Thebes Land)>라는 제목으로 우루과이에서 초연되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다니엘 골드먼(Daniel Goldman)의 번역과 각색, 연출로 영국 아르콜라 극장(Arcola Theatre)에서 초연된 <테베랜드>는 같은 해 오프 웨스트엔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후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 세계 16개국에서 공연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공연 제작사 쇼노트는 신유청 연출의 <테베랜드>의 3개월간에 이르는 한국 초연의 막을 내렸다. 블랑코는 『프로그램북』을 통해 “우루과이와 지구상에서 정 반대, 즉 대척점”에 있는 한국에서 “상충하고 대립하는 것들의 만남이 가져다줄 수 있는 환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을 공연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1 신유청 연출은 “불안을 내면화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테베랜드>가 “우리 사회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선물로 여겨진다”라고 소감을 밝혔는데, 끝없는 사유로 초대하는 작품의 소중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2

 

사진 제공: ㈜쇼노트

 

 

<테베랜드>가 8개국에서 전석 매진을 이끌어낼 만큼 관객들의 호응을 얻은 데는 자신의 아버지를 포크로 21번 찔러 살해한 범죄자를 무대에 세워 ‘존속살해’의 주제를 다룬다는 설정도 있었지만, 블랑코의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연극 방식의 독특함에 원인이 있었다. 1977년 프랑스 작가 세르주 두브로브스키(Serge Doubrovsky)가 자신의 소설 『아들』의 형식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언급한 단어인 ‘오토픽션’은 자서전의 요소와 허구의 요소를 조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블랑코는 오토픽션에 대해 “허구의 영역을 통해 자아를 투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3그는 “항상 자아의 모습을 둘러싼 실제 이야기와 창작된 이야기가 합쳐진다”는 점을 강조하는데4, <테베랜드>의 경우 존속살해에 관한 극을 쓰고자 하는 작가인 ‘S’는 블랑코 자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존속살해범인 ‘마르틴(Martin)’이라는 캐릭터는 “완전한 창작”이다.5

 

연극 <테베랜드>는 극작가인 S가 마르틴이라는 재소자와 지속적으로 면담을 하는 과정과 실제 대화들이 희곡으로 구성되고 연극 장면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무대 위에 그대로 노출한다. 실제 사건을 인터뷰하고 리서치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 연극(documentary theatre)과 유사하고, 연극이 창작되는 과정과 방식 그 자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메타드라마(metadrama)에 근접한 <테베랜드>는 관객들의 혼란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사실과 허구, 현실과 재현의 경계의 무너짐은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를 구분하려는 관객들의 노력에 힘입어 무대의 모든 상황을 분석하려는 ‘열의’를 불러온다. 존속살해범인 마르틴과 그를 연기하는 ‘페데리코(Federico)’라는 배우의 1인 2역 설정은 현실과 허구의 중첩을 통해 <테베랜드>의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이야기는 두 갈래로 요약된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교도소 농구 코트에서 재소자인 마르틴을 만나 대화를 통해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S의 이야기와, 그 면담을 바탕으로 배우 페데리코와 함께 공연을 구상하고 리허설을 진행하는 S의 이야기는, 서로 평행하게 움직인다.

 

사진 제공: ㈜쇼노트

 

 

연극 <테베랜드>를 통해 블랑코가 겨냥하는 바는 문명의 시작을 아들의 부친 살해로 보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관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또, 블랑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이해가 불가능해 보이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블랑코는 오토픽션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더 많은 타인의 이야기와 여러 담론들을 끌어들일 수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S는 ‘테베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학과 역사 속에서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많은 작가들을 추가로 끌어들인다.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모차르트, 투르의 성 마르티노는 모두 일정 부분 존속살해자인 마르틴의 삶과 유사점을 가진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억압과 멸시, 불안정한 정서, 간질발작, 환각 등의 연계성은 S가 면담을 바탕으로 극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언급되며, 의미를 확장하고, 새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관계’의 출발은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3미터 높이의 철책으로 둘러진 ‘우리(cage)’와 같은 형태의 농구 코트이자 감옥에서 시작한다. 무대 위에 올라 ‘테베랜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법무부와의 조율 과정, 내무부의 규제사항에 대해 관객에게 설명하는 S는, 철창 안에서 홀로 농구를 하고 있는 마르틴과의 첫 만남을 상연하면서, ‘허구’ 속으로 들어간다. 골대를 마주한 채 마르틴이 혼자 농구를 하고 있는 코트에 S가 들어서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경기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블랑코는 연극의 과정을 총 4쿼터로 진행하는 농구 경기 방식에 따라 구성하는데, 전반전인 1, 2쿼터와 후반전인 3, 4쿼터 사이에 15분간 주어지는 하프타임은 인터미션으로 적용된다. 또, 무승부가 없는 농구 경기의 특성상 주어지는 연장전 또한 존재하며, 일종의 에필로그처럼 기능하게 된다.

 

사진 제공: ㈜쇼노트

 

1쿼터가 S와 마르틴, 페데리코의 만남과 연극 프로젝트의 진행에 관한 것이라면, 2쿼터는 부친 살해와 기호학, 예술의 재현과 실제의 구분, 관계의 충돌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프타임이 시작되기 전, 2쿼터의 마지막 부분에서, S는 마르틴이 사과의 편지와 함께 보내 준 농구 용어 리스트를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써 내려간 ‘문학작품’처럼 인식하면서 감동을 받는데, “하프타임 휴식시간”이라는 마지막 단어와 함께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버저(buzzer)’가 울리고, 실제 공연의 인터미션이 시작된다.

 

흥미로운 점은 마르틴이 머리에 떠오르는 심상을 어떤 특정한 고려나 체계 없이 “글을 쓰는 즐거움”을 느끼며 농구 용어들을 나열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S가 극을 구성하는 아이디어나 영감을 떠올린다는 사실이다. S는 마르틴과의 만남을 기록하거나 회상하고, 페데리코와 리허설을 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으로 확장을 이어가는데,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적 의미의 층위를 떠올리거나 플랑드르의 그림과 설치미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성자 마르틴의 미사 중 후광으로 비추던 불의 고리 등을 난데없이 언급한다. 마르틴이 자신이 잘 아는 농구 용어를 나열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S는 자신에게 축적된 지식의 연결고리를 찾아 연극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3쿼터에서 마르틴은 S에게 아버지를 살해하던 날의 모든 일을 재연하고, 오이디푸스 신화와의 연계성이 질문되며, 프로이트에 의하면 ‘자해와도 같다’고 해석될 마르틴의 심한 간질 발작이 발생한다. 4쿼터에서 S는 마르틴에게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과 유사한 심리적 동조를 느끼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은 부친 살해의 충동에 노출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죄책감, 책임감을 인식하며, 연극 공연의 끝에 이른다. 연장전에서 S는 마르틴이 평생 수감된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전자 도서와 그림, 마음에 안정을 주는 음악과 백과사전을 가득 담은 태블릿PC를 선물하고, 마르틴은 S가 알려주었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희곡을 읽기 시작한다.

 

사진 제공: ㈜쇼노트

 

 

연극 <테베랜드>에는 여러 기호들이 작용하고,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파편과 같은 지식들이 언급되는데, 마치 스핑크스가 던진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야 했던 오디푸스처럼, 관객들 역시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가야 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블랑코가 관객이 스스로 인류 신화와 문학 속에 담겨 있는 존속 살해의 흔적들과 인간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S는 명확하게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 지점에 대한 인식, 고통과 암흑, 수치심과 죄의식으로 그늘이 드리워진 어두운 영역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테베의 땅(Thebes Land)’로 지칭한다.

 

블랑코는 S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마르틴의 서사를 덧붙이고, 페데리코라는 배우를 통해 ‘재현’되는 마르틴의 서사라는 구조를 더한 ‘오토픽션’을 통해, 서로 닿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계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자 시도한다. 모두에게 내재한 ‘테베의 땅’이라는 영역에 대한 인식이 서로를 연민하고,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S가 지적하듯 “예술은 현실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랑코는 복잡하게 층위를 만든 ‘오토픽션’의 구조가 “미학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6 관객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성을 소환해 함께 퍼즐을 맞추고, 담론의 파편들을 연결해 볼 것을 요청하기 위한 ‘방법론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했을 ‘관계’는 예술을 통해 많은 사유를 낳으며, 친절과 배려, 염려와 도움, 연민의 길로 향한다. 연극 <테베랜드>는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오토픽션’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과 인물들의 마음에 높이 세워진 철책의 벽을 허문다.

 


 

 

 

  1. 세르히오 블랑코. 『테베랜드 프로그램북』. 쇼노트. 2023. 2쪽.
  2. 신유청. 『테베랜드 프로그램북』. 쇼노트. 2023. 4쪽.
  3. Violeta Julbe. “Sergio Blanco: “Art is a dark mirror in which the viewer comes to reflect, looking for the darkest, most mysterious and inexplicable part of the human experience.” El Temps de les Arts. 21 Aug 2020. Web.
  4. Ibid.
  5. 최주성. 「연극 ‘테베랜드’ 작가 “작품이 어렵다는 말은 저에겐 칭찬이죠”」. 『연합뉴스』. 2023.8.4. Web.
  6. Álvaro Vicente. Interview with Sergio Blanco: “A creator must know the times in which he lives.” The Theatre Times. 3 May 2018.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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