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극단 <이 불안한 집>

글_홍혜련

 

 

무려 다섯 시간짜리 공연이다. 엘지아트센터에서 두어 차례 5시간이 넘는 해외 초청 공연을 본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이렇게 긴 공연은 처음이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이 긴 공연을 다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공연 전 보고 들은 몇몇 지인들의 말이 이런 걱정을 더했다. 3부가 앞의 1, 2부와의 연결 면에서 석연치 않고 너무 튄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공연이 끝난 시각, 정확히 7시 59분에 든 나의 생각은 “끝까지 보지 않았다면 이 공연의 진면목을 모른 채 오해할 뻔했다”였다.

 

사진 제공: 국립극단

 

1부와 2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오레스테스의 서사를 나름대로 충실히 따라간다. 1부는 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 된 이피제니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아가멤논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2부는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어머니 클레템네스트라에 대한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복수가 펼쳐진다. 정통적인 이야기를 따랐다고는 하지만 여기서도 새로운 해석이 엿보인다.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자 전쟁 전 신탁에 의해 자신의 맏아이인 이피제니아를 죽여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이 실은 신에 대한 믿음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임을 클레템네스트라는 간교를 통해 밝혀낸다. 그가 이피제니아를 살해한 것이 결국 신에 대한 믿음 때문에 마지못해 한 행동이 아니라 명예욕 때문에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음을 증명한 것이다. 아가멤논은 영웅이 아니라 아동살해범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친자식을 죽인. 아주 오랜 세월 남성 중심적으로 해석되던 아가멤논 서사에서 클레템네스트라의 살해 동기는 충분히 납득되지 못해 왔다. 그래서 클레템네스트라의 악녀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그럼으로써 이어진 2부에서 그런 어머니를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살해한 오레스테스는 비극적 영웅에 다름 아닌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이번 <이 불안한 집>에서는 이에 대한 해석에서도 차별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어머니 클레템네스트라를 살해하는 것이 오레스테스가 아니라 엘렉트라다. 모친 살해를 부추기는 인물이 엘렉트라가 아니라 오레스테스인 것이다. 원작을 보면서 늘 아쉬웠던 점이 그것이었는데 왜 엘렉트라는 직접 어머니를 살해하지 않고 남동생에게 사주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복수를 겨우 이루고는 허망하게 곧장 죽어 버린다. 레이디 맥베스가 덩컨 왕 시해를 부추기고서 왕비가 된 후, (자기가 직접 죽인 것도 아닌데)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놓고 끝내 자결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여성 서사가 떠오르는 지금에 와서야 엘렉트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를 직접 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일을 치른 다음에도 남성보다 부족한 정신력을 지녔다는 잘못된 근거에 저항하기라도 하듯 죽지 않고 살아남아 죄책감과 마주한다.

 

사진 제공: 국립극단

 

이제 대망의 3부다. 3부는 앞서 밝힌 리뷰처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오레스테스 서사를 정통적으로 풀어나간 1, 2부에 만족한 관객이라면 갑자기 현대로 배경을 옮긴 3부가 극의 흐름을 끊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3부야말로 2023년 지금, 2500년 전에 벌어진 한 가족의 비극을 또다시 보아야 할 이유를 증명한다.

3부는 현대의 미국 오하이오의 정신병원으로 배경을 옮긴다. 어머니를 살해한 엘렉트라는 이곳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어머니를 죽인 후, 자기 가족에게 내린 저주가 이제 자기마저 지옥으로 집어 삼켜 버리기 위해 쫓고 있다는 환영에 시달린다. 창문으로 언제든 죽음의 신이 넘어올 수 있으므로 무더운 여름 한낮에도 절대 창문을 열지 않는다. 이런 그녀를 치료하는 것은 의사, 오드리다. 오드리는 엘렉트라를 거울삼아 자신을 본다. 오드리는 스스로도 비극적인 가족사를 품고 있다. 열네 살 되던 해, 일곱 살 난 남동생을 차로 치어 숨지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오드리는 그때 차에 타고 있지 않았으므로 핸드브레이크를 조작할 수 없었다고 밝혀지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죄책감은 그녀를 항상 쫓아다녔고, 급기야 아버지가 자기 앞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기까지 한다. 이중의 트라우마를 지닌 그녀는 남동생의 유령에게 쫓긴다. 그가 언제든 창문을 넘어 들어올 수 있으므로 오드리 역시 창문을 열 수 없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엘렉트라를 치료하는 것은 단순한 일을 넘어선다. 엘렉트라를 치유해야만 자기 역시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드리의 바람과는 달리 엘렉트라의 치유는 결국 죽음으로 뛰어들고서야 이루어진다. 엘렉트라는 그곳에서 가족들의 유령과 모두 재회한다. 이 모든 비극의 출발이 된 이피제니아도 그곳에 있다. 이피제니아는 열한 살 소녀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복수의 정령이 아니라고, 나는 그저 소녀일 뿐이라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진짜 무서운 것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창문을 열어 두라고, 그러면 그들이 착한 손님처럼 들어와 얌전히 차를 마실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 본 오드리는 이제 말한다.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할 거예요.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남을 거예요.” 2500년 저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비극을 겪은 이피제니아와 엘렉트라가 2023년, 같은 비극의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는 오드리에게 저주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삶과 희망을 메시지를 선사한 것이다.

 

사진 제공: 국립극단

 

김정 연출이 천착해 온 특유의 배우 신체 행동이 이번 공연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이 신체적 행동이 배우들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정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국립극단의 품격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봐 왔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 손에 쥐어지지 않는 폭발하는 거친 에너지가 미학적으로 세련되게 지상으로 내려와 앉은 것은 적잖이 아쉽다. 최근의 그의 작품에서 그의 독특한 연출 방식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구나라고 느낀 사람으로서 갖는 마음이리라. 그러나 그는 자기의 길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너무 기다려진다.

 


  • 무료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리뷰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