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건표(연극평론가)
극단 지즐, 극발전소301, 극단 필통, 극단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2016년 제1회를 개최한 ‘도담도담 페스티벌’ (10.18~11.26. 대학로 우리소극장, 예술감독 정범철)이 올해 8회로 다섯 작품이 선정되어 공연되었다. ‘도담도담’은 배우, 스태프들이 3년 이내 신진연극인 50%를 구성해 무대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만큼 신진연극인들의 창작 작품과 연출의 동시대성을 발견해 볼 수 있는 페스티벌이면서도 신진연극인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통로로 올해는 서울시가 후원하고 운영위원회가 주최해 매년 11월에 개최되고 있다. 올해는 극단 지즐의 <당신>(작, 연출 석봉준)의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경연작 다섯 작품은 고르게 한국 사회 현상들을 창작 희곡으로 무대화하고 있는 작, 연출이 두드러졌다. 관통되는 주제들도 오포세대, 청년 취업과 삶, 상실과 좌절, 인생과 희망, 여행과 행복, 유튜버 인플루언서들과 물질 만능의 현실 문제 등 소재들에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으면서도 20~40대들의 삶과 사회적인 현실을 적극적인 태도로 관조하려는 연극적인 태도들이 진지한 무대 형식의 페스티벌이었다. 그러나 ‘도담도담 페스티벌’은 미학성보다는 구조와 형식을 탈피해 기존 연극형식에 도전하고 세대들의 발언을 동시대 무대로 내재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는지가 중요한 페스티벌이란 점을 인식해 본다면 1~2 작품을 제외하고는 아쉬웠다. 그러나 대체로 작품들이 가능성을 주고 있다는 점, 연극적인 미학성과 연출적인 형식들이 안정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도담도담’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대학로 신진 연극인 페스티벌이라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포 세대를 탈출해 삶의 번지를 옮길 수 없는<X들의 번지점프>
<X들의 번지점프>(작, 연출 고서빈/ 극단 두하늘)는 MZ세대의 자기 고백적 서사로 채워진다. 희망이 상실되어가는 현실의 우울성을 종이상자 오브제를 통해 들어내고 있다. 현실경쟁에서 소외되어 가는 청년세대의 집을 은유적으로 환기하며 표현형식과 배우들의 연기도 당당하다. 이 작품은 ‘2023년 한국 사회의 청년 문제 통계 자료’들과 인터뷰, 논문 리서치를 활용해 청년 문제들을 연극무대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충실해 보이는 작품이다. 자기 고백적 서사들은 ‘번지점프’처럼 희망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로 하강(下降)해 추락하고 있는 삶의 지번(번지)을 점프하기 위한 투쟁기 같은 삶을 꺼내놓는다. 무대에 세워진 박스구조는 삶의 크기도 다르고 내 집 마련할 수 없는 MZ세대들의 우울한 내면의 현실을 발화시키는 전경들로 대체된다. 극 중 인물이자 실재하는 존재로 인물화 되는 방식으로 극을 진행하고 있다. 벼리는 “청년 취업난, 자발적 소외가구, 청년 고독사 등 청년 문제는 실로 다양합니다. 이 내용을 어떻게 전달 할까? 그리고 왜 이야기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라며, 공연이 다큐 적이면서도 체험적 고백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대를 지나 30대 초반이 된 네 명의 인물들은 여전히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 삶’이라고 고백한다. “20대 초반에 비해 지금은 훨씬 안정되어 있는데도 여전히 사는게 어려워요. 불면도 여전하구요.”(벼리),“ 우리나라 20세 이상 선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국 보건 사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불면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은 73.4% 퍼센트래요”(주원), “청년들의 방. 아주 가깝고도 다른, 우리들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예온) “조사하면서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소영) 등의 발언들로 뚜벅뚜벅 채워지며 이들의 과거와 현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파편적인 에피소드로 그려낸다.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변화, 자격시험이 미뤄진 이야기, 공연장 불황, 우울증 경험, 스펙 사회, 신림동 고시촌 이야기, 아르바이트와 시급 등의 현실적인 고단함들은 체험고백이다. 한국 사회 청년의 현실은 신림동 고시촌을 전전하며 안정된 직장의 대한민국 번지로 점프할 수 없는 X들이 희망이 상실되어 가는 현실풍경들이다. 히키코모리가 되어가고 청년 고독사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네명의 배우들은 절망의 방을 기록하며 X들의 삶의 번지로 점프하기 위한 투쟁의 희망은 놓지 않는다는 자기 고백 서사들은 우울, 상실, 절망과 고독을 경험한 당당한 고백들은 가슴이 저린다. 집 한 채(종이 박스)의 이들 삶의 지번들은(번지) 금수저, 아빠, 엄마 찬스, 강남 1번지 한국 사회 지번에 짓눌려 달라질 수 없는 X들의 번지점프 투쟁기이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달려나가는 이들의 삶의 번지점프는 진행 중이다. 고시촌, 월세방, 전세대출, 미니아파트, 똘똘한 아파트 한 채와 정규직까지 이들의 한국 사회 번지(番地)점프는 안전장치가 없는 삶이다.
◆ 그래도 유쾌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문창리 사람들>, 여행기의 솔직한 고백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여행 이야기>, 절망과 상실의 은유< <버려진 상자엔 무엇이 담겨 있었나>, 유튜버들의 이야기< Luwuk, 사라진 인플루언서를 찾아라>
<문창리 사람들>(작, 연출 전청일/ 극단 평화)은 소박한 꿈을 꾸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서사다.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 소소한 사랑의 신호들, 전국노래자랑을 준비하는 문창리 사람들의 이야기다. 연극적인 형식과 극적 재미 사이에 <문창리 사람들>은 70, 80년대 반공법을 환기할 만한 간첩 소동들을 넣고, 문창리를 춤바람으로 몰고 가는 ‘제비’들도 나타나 그 시대 감성을 자극할 만한 하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연극은 생략과 은유, 상징과 비유가 무대로 적절하게 그 여백이 드러나지 않으면 TV 드라마만도 못한 연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창리 사람들>은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연결하고 재미 요소로 채워진 일상적 이야기에 반복적 장면전환들이 사회적 언어로 무대를 채우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좁혀 말하면, 희곡은 수작 아이였고 연출은 불분명했다. 창작 희곡은 기성작가 서사만큼 플롯 구조가 안정적이었고 극 중 인물들의 캐릭터도 선명했다. 배우들의 연기 기량도 안정적으로 표현되었다. 어찌 보면, 마을 사람들의 전국노래자랑 기대감은 소시민들의 삶의 희망을 은유하고 70, 80년대의 반공법은 국가폭력과 기획 정치로 수많은 희생자를 생산해 낸 한국 사회의 어두운 정치사라는 점에서 <문창리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과거사이면서도 오늘의 이야기다. 그런데 <문창리 사람들은> 현재의 메시지가 부재해 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여행 이야기 PART. 2: 당신의 처음과 끝은 어디있나요?>(공동창작, 극단 입금)은 도담도담 공연을 준비하면서 생각된 고민, 여행 과정을 무대화한 안정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연극적인 무대 배치와 형식들이 미학적으로도 우수한 공연이다. 아쉬운 점은, 이들 이야기가 사회로 타격하는 메시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여행에는 공감하는데, 여행 이야기를 왜 할까? 하는 점이다. 의도와 취지는 알면서도 연극형식으로 감동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행은 치유의 행위이다. 이태원 참사, 수많은 사회적 참사와 한국 사회의 현실과 사회현상의 맥락을 밀어 넣고 여행을 통한 치유의 순례를 떠났으면 어땠을까. 연극이 사회적인 발언 행위인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THE TALE OF THE BOX : 버려진 상자엔 무엇이 담겨있었나>(작, 연출 장하영/ 창작집단 숨) 은 절망하는 오포 세대, MZ세대들의 희망이 부재해 가는 현실을 매우 뛰어난 은유로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어두운 무대는 버려진 상자로 채워진 쓰레기처리장이다. 남자(구본형 분)와 소녀(권소희 분)는 상자 안 딱정벌레를 관찰하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검고 딱딱하고, 뾰족하고, 가시덤불처럼 깃털이 미세하게 덮여 있는 상장 안 딱정벌레를 찾기 위해 두 남녀는 신체 움직임으로 관찰하는 장면을 드러낸다. 남녀한테 딱정벌레는 희망의 삶으로 전진하기 위한 행위이며 삶의 마지막까지 각자의 딱정벌레를 찾는 과정은 희망이 부재하다고 느끼는 인간의 구원적 바람이다. 인생 시간에서 딱정벌레는 작지만, 위협적인 쓸모없는 존재로 버려지면서도 자신의 딱정벌레를 찾기 위한 인간의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무대는 무수한 상자 안 딱정벌레들이 버려져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변해버린 공간이다. 버려진 상자들이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지키는 것은 노숙자(신윤재 분)다. 쓰레기로 변해가는 딱정벌레는 희망 일수도 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나 쓰레기 더미로 쌓여가는 인생들이다.
시적인 메타포가 매우 좋으면서도 극이 대화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대사의 설명적인 구조, 극적인 장면들이 미약하다는 점에서 텍스트가 아쉬우면서도 연극적인 일루전을 무대로 드러내 주었고 특히 노숙자로 분한 배우의 캐릭터가 주제를 관통하는 이미지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발전될 수 있는 작품이다. <Luwuk, 사라진 인플루언서를 찾아라>(작, 연출 김부연/ 아트랩번지)는 100만 유튜브 시대에 과열과 경쟁으로 몰락해 가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한 유튜버들의 과도한 경쟁과 노출, 콘텐츠의 과열과 폭로, 진실이 왜곡되어 가는 유튜버들의 현상을 신인 유튜버 극 중 인물 자영(박현아 분)은 고등학교 시절 찐따였던 친구 강 유학이 자신이 동경하는 100만 유튜버 ‘와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신생 유튜버 살리기 컨텐츠를 진행한다. 무대는 실제 유튜버들의 방송처럼 장면들이 전환되면서도 자영의 유튜브 콘텐츠가 왜곡된 방송으로 사건에 휘말리면서 몇억의 빚을 지고 몰락하게 되고 채널을 살려보자는 거액 제안을 받으면서도 유튜버보다는 평범한 삶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다. 올해 제8회 도담도담 페스티벌은 <버려진 상자엔 무엇이 담겨 있었나> 등 지속 가능한 작품과 연출들이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고 작품마다 배우들의 연기가 공감할 수 있는 극 중 캐릭터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무대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도담도담 페스티벌 취지에 따라 기존연극 형식에 과감한 발언으로 무대 구조를 전복해 한국 사회 청년세대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X들의 번지점프> 작품상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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