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공공극장 역할 재정립해야 한다

글_채승훈(연극연출가)

 

1970년대 초반까지 연극을 위한 전용 공공극장은 없었다. 단 하나 충무로5가 골목길, 성만여자상업고등학교 옥상 가건물에 ‘연극인회관’이 있었다. 당시 일반극단은 물론 대학극단 작품들도 거기서 공연되었는데 시설은 열악하였고 화재위험도 매우 컸다. 이후 연극인회관은 1976년 덕수궁 옆 현 ‘국립 정동극장 세실’ 자리로 이전하였고, 1980년에 들어서 대학로에 ‘문화예술회관’ (지금의 ‘아르코 극장’)이 들어서고 연극인회관의 역할을 이어 가게 되었다. 그 뒤로 서울 여기저기서 활동하던 극단이나 극장들이 속속 대학로로 모여들기 시작하여 대학로는 명실상부한 연극의 거리로 탄생하게 되었다. 일반시민들에게도 대학로는 ‘연극의 거리’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았다. 연극의 거리는 계속 확대되었고 1990년도 후반에는 이미 대학로에 소극장들이 20여 개가 들어서게 되었다. (개그콘서트를 포함한 뒷골목 상업연극 극장들은 제외)

 

대학로가 연극의 거리,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게 되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오후가 되면 지하철 입구로 시민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대학로에는 다양한 연극들이 공연되었고 특히 뒷골목연극이라고 하는 상업 연극들이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상업 연극들에 의해서 대학로의 공연 질서는 많이 황폐해졌다. 개그콘서트를 포함한 상업 극단들은 소위 삐끼들을 고용하였는데, 그들은 지하철 출입구까지 수십 명씩 몰려나와서 지하철을 빠져나오는 시민들에게 홍보지를 들이밀고 뒷골목연극으로 호객하였다. 연극을 보러 나온 관객층이 뭘 볼지 결정을 하기도 전에 끌고 가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온라인 홍보나 예매 문화가 확립되기 전이라서 관객들은 대부분 대학로에 나와서 현장에서 공연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피해는 고스란히 순수연극을 하는 비상업적 연극 단체들에게 돌아갔다. 대학로의 땅값은 치솟아 극장들의 대관료도 따라서 상승해서 극단들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게 되었다. (뒷골목단체들은 수입이 좋아서 극장 건물을 매입하기도 하는 등 큰 호황을 누렸다)

지원금 제도가 그즈음 처음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지원금의 절반 이상이 극장 대관료로 들어간다고 다들 불만이었다.

 

대학로는 연극의 거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급속도로 상업화되어갔다. 거리에는 노래방 같은 유흥 시설과 각종 식당들이 들어섰고 저녁이 되면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노랫소리로 길거리는 달아올랐다.

 

소극장들의 시설은 매우 좁고 열악하였다. 객석 수도 보통 100석 이하였다. 대관료를 포함한 제작비를 제하고 나면 아무리 객석이 만석이 된다 해도, 극단이 적자를 면하기는 수학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에 비해 ‘아르코 극장’의 시설은 최상이었고 대관료도 무척 저렴하였다. 연극인들은 모두 아르코 극장에서 공연하기를 희망하였다. 하지만 젊은연극인들에게 아르코 극장의 벽은 매우 높았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연극단체는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였다. 아무나 공연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30~40개 극단이 가입되어 있었던 한국연극협회가 서울과 지방의 모든 연극단체를 총괄하였다. 서울의 경우, 한국연극협회에 가입하려면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또 협회 가입 단체만이 ‘아르코 극장’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법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심사하는 사람들이 협회 소속의 기성 연극인들이었고, 회원 단체에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또 ‘대한민국 연극제’(지금의 ‘서울 연극제’)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매년 8개 단체만 선정하는데 그것도 협회 가입 극단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일제 후반에 조선총독부가 예술단체들을 통제하던 그 관습이 그때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니 젊은 연극인들은 사실상 아르코 극장 대관하여 연극 기회 한번 잡는 것, 연극제에 참가하는 것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연극을 하고자 하는 젊은 연극인들은 매년 늘어났다. 또 1980년대 말 공연법이 해체되어 극단도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바뀌어 누구나 연극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지금의 ‘대학로예술극장’ 자리에 큰 주차장이 있었다. 한국화약 회사에서 사놓은 땅이었던 것 같은데 보통 ‘한화주차장’이라 불렸다. 연극인들은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저기에 극장 하나 들어오면 정말 좋겠다.’ 소리를 많이들 했다.

 

대학로예술극장 전경

 

2003년, 필자가 서울연극협회장이 되고 나서 협회 임원들과 함께 그 한화주차장 자리에 실제로 극장(지금의 ‘대학로예술극장)을 짓자는 설립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상 추진하려고 알아보니 이미 그 주차장은 한화 측에서 쇼핑몰을 만든다고 민간사업자에게 팔아넘겼고 이미 입주자 선정을 해서 점포 분양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 쇼핑몰 구조로의 설계도 진행되어 기초공사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문체부 측에 긴급하게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문체부 측도 대학로는 연극의 거리이고, 시기적으로도 공공극장이 추가로 필요한 시점이라는 우리의 의견에 동감하였다. 일은 급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업체 측과 협상을 시작하고, 쇼핑몰공사를 긴급 중단하고, 입주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위약금을 물어주는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극장 설립을 결정하였다.

 

현재 ‘대학로 예술극장’ 좌우로 일부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것은 당시에 이미 점포 계약이 진행되어 일방적으로 철수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장이 제대로 된 극장 형태가 아니라 건물이 앞쪽으로 치우쳐 로비도 협소하다. 이것도 당시 이미 쇼핑몰로의 설계와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어쩔 수 없이 약간 기형적인 모습의 결과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 늦게라도 설립 운동을 하였기에 망정이지 아마 손을 놓고 있었다면 지금 그곳엔 7층짜리 복합쇼핑몰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리어 대학로 중심의 상업화를 가속화시켰을 것이다.

 

‘대학로 예술극장’ 설립에는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었다. 연극인들이 점차 늘어나 기존의 공공극장인 아르코 극장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요를 해결해 줄 수 있고, 대학로가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니 거리 중심에 큰 공공극장이 하나 더 있으면 무분별한 상업화를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 등이었다.

 

그리고 기존의‘아르코 극장’과는 역할분담을 하여, ‘아르코 극장’은 성숙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대학로 예술극장’은 젊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주로 공연하도록 각각 정체성을 달리해 나가기를 원했다. 극장 설계도 ‘아르코 극장’과는 차별화하기를 바랐고, 대극장보다는 소극장을 세 개 정도 만들고, 대관 일수도 짧게 하여 되도록 많은 극단이 사용토록 완전히 개방하는 극장으로 설립하고자 했다. 젊은 연극단체들이 좋은 시설과 공간의 도움을 받아 공연하고 거기서 좋은 작가, 배우, 연출가, 극단들이 탄생하기를 바라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대학로 예술극장’이 완성되자 연극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역할분담이 되었다. 연극전용관이었던 기존의 ‘아르코 극장’은 무용전용관으로 전환되어 무용인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신축된 ‘대학로 예술극장’만이 연극전용관으로 축소 지정되었다. 애초의 설립 취지와는 매우 동떨어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연극인들로서는 애써서 ‘대학로 예술극장’을 설립했더니 도리어 ‘아르코 극장’을 잃어버린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한 결정 과정도 연극인들과는 상의도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현재 두 극장 모두 일반 대관은 매우 제한되어있고, 문화예술위원회의 각종 심사를 통과한 작품들이나 기획공연, 축제 공연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보통 연극인들에게서 거리가 한참 멀어진 것이다.

 

무용인들도 마땅한 공연장이 없었기에 그들을 위한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아르코 극장’은 과거 충무로 소극장부터 지나온 역사적 과정이 있고, 대학로를 연극의 거리로 만드는데 그 중심의 역할을 하였다. 한마디로 ‘아르코 극장’은 연극인의 영혼이 깃들여져 있는 곳이다. 또 연극인들의 염원과 헌신이 없었다면 두 극장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금 그 정체성을 복원시켜야 한다. 그리고 두 극장은 합리적인 역할분담으로 한국연극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아르코 극장은 완성도 있는 작품들로 관객 향유를 위한 공연장으로, 대학로 예술극장의 경우는 원래의 설립 취지대로 젊고 실험적인 연극인들을 위해 대폭 개방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무용인들을 위한 전용관은 별도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정도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경제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엔 아르코 극장, 대학로 예술극장은 연극인들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멀어졌다. 그냥 벽 높은 다른 나라의 공연장 같다. 문턱이 낮아져서 연극인 모두에게 친근하고 가까운 극장으로 돌아와 주길 기대한다.

(지난해 11, 12월 호에서 언급한 공연예술인 자녀 돌봄센터 지원금은 국회 의결 과정에서 복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 강사 사업 보조금은 그대로 절반가량이 삭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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