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비밀기지 <카르타고>

글_홍혜련

 

토미가 죽었다. 교도소에서. 너무도 갑작스럽게. 토미의 죽음의 순간은 고스란히 CCTV에 담겼고, 토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듯 보이는 교도관, 마커스는 자신은 규칙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며, CCTV의 영상이 바로 자기 무죄의 증거라 주장한다.

토미의 삶은 시작도 끝도 교도소에서였다. 토미가 아직 배 속에 있을 때, 교도소에 수감된 어린 엄마, 애니는 퇴소 이후의 삶에 대해 묻는 사회복지사, 수의 물음에 (분명 자신이 지금 교도소에 있게 한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한) 아빠와 도망가서 함께 행복하게 살 거라는 철부지 같은 대답만 내뱉는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도 품에 안기를 거부하던 애니는 어색하게 아기를 안아 들고 가까스로 아기에게 ‘토미’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는 카메라 앞에서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진 제공: 비밀기지 ©박태양

 

태어나자마자 사회복지제도에 의해 엄마에게서 떼어내진 토미는 이후, 여전히 스스로의 삶을 주체하지 못하는 엄마와 사회복지사, 수 사이를 마치 탁구공처럼 오고 가는 불안정한 삶을 산다. 이제, 엄마가 자신을 낳았을 때와 비슷한 나이가 된 토미. 애니는 일견 토미의 여자 친구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토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철부지 모습이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집 안에서 마약에 탐닉하며 티브이 리모컨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둘은 갑작스러운 수의 방문에 놀라고, 곧이어 더더욱 애니와 토미를 당혹케 하는 불청객, 경찰이 찾아온다.

청소년 범죄자의 아들로 교도소에서 태어난 토미는 결국 스스로 청소년 범죄자가 되어, 다시 교도소로 돌아간다. 토미는 뭇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 교도관들마저도 혀를 내두르고 수형자들 사이에서도 조리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그곳에서 토미가 기다리는 것은 오직 엄마, 애니의 방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끝내 나이키를 사 가지고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한 번도 토미를 찾아오지 않은 채, 결국 토미는 교도소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토미의 죽음은 누구의 탓인가. 어쩌다 토미는 마음속 분노가 폭탄이 되어 스스로를 터뜨리는 지경에 다다른 것인가.

 

사진 제공: 비밀기지 ©박태양

 

작가 크리스 톰슨은 12년간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겪은 실제 경험을 이 작품에 녹였다고 한다. 작가가 특히 주안점을 둔 것은 사회보호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맺는 관계들이었다고 한다.

공연에서, 토미 주변의 인물들 모두 나름대로 토미에게 할 만큼 다 했다고 항변하며 스스로 토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일견 그들의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법적으로 토미의 죽음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즉, 모두가 사실상, 무죄다.

그러나 그럼에도 토미의 죽음은 모두의 탓이다. 접혀서 보이지 않는 종이 모서리에 적힌 흐릿한 글씨 같았던 토미에게는 엄마, 사회복지사, 교도관 그 누구의 최선도 충분치 않았다. 토미에게는 더 큰 관심이, 더 큰 노력이,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할 더 큰 재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토미 같은 아이에게 그만큼의 충분함이 주어질 수 있을까. 현실에는 없는 세상,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사진 제공: 비밀기지 ©박태양

 

이 작품에서, 토미 이전에 애니가 있었음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어린 임신부이자 수형자인 애니에게 희망이라곤 아빠와 함께 사는 것뿐이었다. 공연 초반, 사회복지사 수는 애니에게 “너희 아빠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 하고 소리친다. 그럼에도 애니에겐 아빠뿐이다. 이후 토미에게 엄마뿐이 되는 것처럼. 결국 애니와 토미, 둘 모두 사각지대, 그 위험한 수렁의 가장자리에 선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카르타고’는 그 지역 고대 페니키아의 풍습을 따라 영아 인신공양을 행했다고 전한다(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공연 <카르타고>는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소외된 아이들을 제물 삼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섬뜩한 질문을 던진 수작이었다.

 

사진 제공: 비밀기지 ©박태양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토미 역의 최호영, 애니 역의 조수연 배우의 호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고대 원형 경기장을 축소해 놓은 듯한 원형 무대였던 이유로 매 순간 배우들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뒷모습만 보아야 했을 때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집중된 에너지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칫 한 가지 정서에 매몰되기 쉬운 장면에서도 유연한 리듬을 유지하며 경직되지 않고 순간순간 급변하는 인물의 여러 감정의 층위를 표현해 낸, 이 두 배우의 연기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극장을 다시 찾고 싶을 정도다. 두 배우의 다음 무대가 무척 기대된다.

 


  • 무료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리뷰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