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판진(연극평론가)
2024년 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3호선 지하철 양재역 근처에 있는 생동스튜디오(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64길 8-15 동일빌딩 B 1F)에서 극단 ‘생동씨어터’의 열 번째 정기 공연 <디오니소스-연극의 탄생->이 막을 올렸다. 토머스 불핀치(Thomas Bulfinch)가 쓴 그리스 로마신화를 원작으로 하여, 임재찬이 각색/연출하였고, 출연진은 황정화 외 20명이었다.
생활연극의 의미
이 공연을 제작한 극단 ‘생동씨어터’는 생활연극 네트워크(http://www.생활연극.org/)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단인데, 생활연극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은 20년 전인 2005년 2월이다. 극단 ‘생동씨어터’의 성격을 살펴보면,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를 지향하는 시민문화예술교육 비영리단체이다. 또한, 이 극단은 연출가 겸 극작가인 임재찬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무대에 서서 연기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연극 공연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생활연극’에서 추구하는 바는 연극의 본래 주인은 관객이라고 보고, 관객 스스로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체험하도록 도움으로써 그 참여자가 생활하면서 느끼는 억압이나 욕구,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데 있다. 연극을 타고난 재능과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예술로만 보지 않고, 참여자의 치유나 교육, 여가 생활 등 삶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으로 바라보기에 ‘교육연극’이나 ‘소시오드라마’, ‘플레이백 씨어터’ 등의 개념과도 관련이 깊다.
재공연하는 연극 <디오니소스>
올해 20주년이 되었기에 단체의 슬로건인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을 선택하여 공연을 준비하였다. 이 극단의 공연사를 살펴보니, 2011년 6월에 생동 상반기 정기 공연을 할 때 임재찬 연출을 중심으로 이 희곡을 가지고 공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극단 생동씨어터 창작진들은 더욱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객석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고, 출연진도 매우 많아서 무대 또한 좁아 보였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축제의 현장이었다.
공연 전반부에서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계보를 바탕으로 수많은 신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었다. 태초에‘카오스’가 있었고, 대지의 여신‘가이아’를 만들어낸 후, 밤의 여신‘닉스’와 닉스의 동생‘에베로스’를 낳는다. 닉스와 에베로스 사이에서 헤메라(낮)와 아이테르(푸른하늘)가 태어났고, 가이아는 스스로 우라노스(하늘), 폰토스(바다), 우레아(산맥)을 낳는다. 이렇게 계속해서 여러 신들이 태어났는데, 배우 20명으로 표현할 수 없어지자, 관객들을 무대 위로 하나 둘 초대하기 시작했다. 나도 한 역할을 맡아 조명 아래에서 10분 이상 참여했다. 이름표를 목에 걸고, 극단 배우의 안내에 따라 특정한 동작을 하면서 연기 체험을 하였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바닥에 앉아서 연기하는 배우를 바라보면서 그의 발성과 목소리, 연기가 관객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조명 아래 있으니, 객석이 안 보이고, 상당히 더웠다. 무대에 초대된 어떤 관객은 대사를 요청받아서 배역에 어울리게 읽기도 했다. 공연 후반부에 디오니소스가 등장하였고, 올림푸스 12번째 마지막 신이라고 소개하였다.
‘디오니소스’의 탄생 이야기
디오니소스 탄생과 관련된 신화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제우스 신과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디오니소스가 태어났다는 설이다. 이 공연에서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포도주, 술의 신이며, ‘광란과 황홀경’의 신이자 산과 들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준다. 디오니소스를 표현하는 배우가 등장하여 자신의 어머니 ‘세멜레’는 테베를 세운 ‘카드모스’의 딸이니 인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외증조할머니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이고, 외증조할아버지는 전쟁의 신 ‘아레스’, 그리고 외할머니는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이므로 신족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제우스’와 ‘세멜레’, ‘헤라’ 등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등장하여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세멜레가 디오니소스를 임신하지만, 세멜레는 헤라의 간계 때문에 타죽게 되는 서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인 제우스는 세멜레의 몸에서 6개월 된 아이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금실로 꿰맸으며, 4개월 후 ‘제우스’의 넓적다리를 뚫고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디오니소스’라고 알려준다. 에미 몸에서 한번 태어났고, 아비 몸에서 또다시 두 번을 태어났다고 해서 ‘Dio’라는 말이 들어간 ‘디오니소스’라고 제우스가 이름을 지은 것도 들려준다. 그런데 디오니소스가 자라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을 발견한 헤라는 그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미치광이로 만든 후,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여신 ‘레아’가 디오니소스를 측은하게 생각하여 그를 불러 광기를 없애준다. 즉, 디오니소스에게 광기를 다스리려면 황홀경으로 승화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선 잘 짜인 ‘의식’이 필요하다고 알려준 것이다.
디오니소스 축제, 연극의 시작
디오니소스는 그를 따르는 신도들에게 ‘의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삶의 깨달음과 자유’를 위해 숲속으로 가서 술잔치를 벌이며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서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을 마음껏 풀어버리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이런 의식을 언제 어떻게 열 것인지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모든 시민이 참가하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열라고 정해준다. 평상시에 가슴 속에 쌓였던 응어리, 감정들을 한 번에 모아서 풀어버리는데, 광란의 무도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을 닮은 형식(의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통해 예술이 탄생하였다. 이때 등장인물 니체가 등장하여 기원전 500년 전 3월 어느 날, 고대 아테네인들이 디오니소스 축제 때 ‘비극 경연대회’를 하였고, 이것이 그리스 전역에 파급되어 지금까지 ‘연극의 형태’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연극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을 시원하게 풀어주기 위해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시작하였다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연극을 시작한 주체가 누구였는지, ‘연극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공연은 막을 내렸다.
생활연극 네트워크의 지향
연극은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이란 대사가 가슴에 남는다. 연극의 주인이 사람이고, 연극을 시작한 주체가 억압받는 사람임을 공연의 내용이나 형식에서 잘 담아냈다. 이 공연의 초점이 관객에게 공연에 적극 참여하도록 한 것도 연극의 기원, 생활연극 네트워크의 지향이 그렇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술로서의 연극만이 아니라 치유와 교육, 생활로써의 연극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연극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깊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생활연극 네트워크가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계속 큰 박수로 응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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