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드림플레이 테제21 <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

글_정애란(연극평론가)

 

올해로 45회를 맞는 서울연극제의 공식선정작 <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이하 자본3)>(작, 연출 김재엽)는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이 기획한 ‘자본시리즈 연작’ 세번째 작품으로 재연작이다. 2018년에 <자본1: We are the 99%>를 시작으로, 2021년에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 그리고 2년 후 2023년에 <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를 각각 초연하였다. 작가 겸 연출인 김재엽의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자본3>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최첨단 AI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애니가, 한국에서 최하위 계층들 중 하나로 취급 받는, 공정과 사회복지와는 거리가 먼 배달라이더들 늘찬-리키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자본3>의 인공지능을 중점으로 썼던 필자의 다른 리뷰와 차별을 두기 위해 본고에서는 노동자들의 ‘연결’ 즉, 연대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25년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필자가 가장 놀랐던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의 배달음식과 배달라이더들이었고 이들은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의 집약체, 미니어처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물론 코로나 시기에 봉쇄령과 통금으로 엄격한 통제하에 있던 파리에 있으면서 온라인 쇼핑을 시작해야 했고, 그것을 기점으로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배달음식 등이 더 상용화되기는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파리에서는 대부분의 음식 배달라이더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며, 따라서 배달 지연을 이유로 라이더에게 소위 ‘별점 테러’를 하는 소비자는 흔치 않다. ‘문 앞 배달’이라고 하면, 한국과 달리, 파리에서는 소비자가 일반적으로 아파트 공동 현관문에 나가서 음식을 받고 계산한다. 그 앞에서,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배달 오는 라이더를 종종 목격하게 되고, 그를 향해 왜 늦었느냐고 따지기보다는 퍽 안쓰럽고 딱해 보여 오히려 불편한 감정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불편한 감정은 계산 할 때, ‘팁 문화’가 있는 파리에서 실제 주문한 액수보다 몇 유로 더 얹어주는 것으로 상쇄시키곤 한다.

이와는 달리 ‘빨리 빨리, 더 빨리, 더 더 빨리’를 외치고, 사회보호망은 거의 전무하며, 직업과 경제력에 의한 사람 차별을 당연시여기는 한국에서 배달라이더들이 놓인 특수하고도 총체적인 위기 상황, 예를 들면 실제로 라이더들이 입주민 눈에 띄지 않도록 화물용 승강기만 이용하라고 요구한 고급 아파트에 대해 “우리는 화물이 아니고 손님은 귀족이 아닙니다”라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라이더유니온’이 성공적으로 공동대응한 경우처럼,1) <자본3>는 늘찬과 리키를 통해 라이더의 문제 즉,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작업환경과 라이더의 사망 사건 후 플랫폼 기업의 책임 회피 등을 한국의 사회적 문제라는 관점으로 매우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먼저 라이더들인 늘찬과 리키도 서로 알던 사이가 아니라 새롭게 ‘연결’된 사이인데 그들 사이에는, 리키의 남동생이자 늘찬의 친구인 민준의 ‘죽음’이 공통분모로 자리한다. 고등학교 현장 실습으로 늘찬을 대신해서 나갔던 민준이 소시지 공장 기계에 갇혀 죽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친구 민준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고 있는 늘찬은, 고등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치 의도적인 듯, 가장 위험한 직업인 라이더로 살아가며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 같다. 리키는 리키대로 동생 민준의 죽음에 대해 누나로서 부채감을 느끼며 마치 그 빚을 갚는 듯,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는 라이더들의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또, 사고 후 정당한 보상을 위해서 ‘라이더유니온’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극의 초반부는 ‘죽음’으로 연결된 이야기 탓인지, 하루하루 거리에서 전쟁하듯 생존하는 라이더들의 작업환경이 한국사회에서 이미 심각하게 문제화된 탓인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떨쳐내기 힘들었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한편, 미국 실리콘밸리의 플랫폼 기업 ‘미션 퀘스트’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애니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러한 한국의 배달라이더들과 만나게 되는 배경에는, 한국계 미국인 애니의 출신성분인 ‘입양’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애니는 페이스Q 훈련 데이터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던 3살 당시 본인의 사진을 발견한다. 국제 입양 아동들의 사진이 팔려가 인공지능 훈련 데이터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애니는 데이터 무단 도용에 대한 윤리 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각하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위치하는 입양아 애니,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에 있는 배달라이더 늘찬과 리키, 이러한 교집합으로 애니가 한국에 왔을 때 이들의 만남이 특별해지는 계기가 된다.

적어도 애니와 만나면서, 죽음으로 연결되었던 리키와 늘찬이 더 밝아지고 가벼워진 점은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나 애니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사용하던 사람이 거기서 본인의 어린시절 사진을 한번 발견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변한다는 설정은, 윤리 문제에 대한 무게나 애니의 가시적 변화의 폭을 보았을 때 설득력이 떨어졌다. 또한 애니, 캔디, 필립, 멀더가 등장하는 실리콘밸리의 풍경을 다분히 순진하고 낭만적으로 그린 점이 아쉬웠다. 인공지능 분야는 아니지만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넷플릭스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데, 치열한 경쟁과 긴장감으로 매일 연속되는 스트레스의 하중은 가히 짐작하기 힘들 정도이고 거의 정신병적인 증상을 보이는 수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우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실리콘밸리의 높은 물가와 임대료는 그 연봉의 가치를 한참 추락시킨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플랫폼기업 창업자들과 기술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며 생존싸움을 하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실리콘밸리의 애니(필립까지) 모습이 그렇게 낭만적이기보다는, 종류는 다를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리키와 늘찬처럼 생존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사람으로 그려졌다면, 리키-늘찬과의 만남에서 동병상련의 미를 발견하며 그들의 유대감이 더욱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애니가 미국의 상류계급으로 보이고 노동자의 정체성은 매우 약하게 보인 이유 때문에, 배달노동자 리키, 늘찬과 만났을 때, 국적은 달라도 같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동지애랄까 연대감이랄까 하는 ‘연결성’에서 설득력을 잃었던 것 같다. 애니가 보인 이중성, 데이터 도용에 대한 비윤리적 태도에 분개하면서 본인 사진의 유출 경로를 파악하고자 공공 기관 서버에 불법적으로 침입하는 것도 역시 매우 개인적인 판단과 행동, 경험에만 그침으로써 애니가 제기하는 윤리 문제가 사회시스템 안에서 담론화되지 못하고 개인의 일탈(또는 내부고발자)과 불법시비에 갇혀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라이더유니온’에서 활동하는 리키-늘찬과 비교되는 지점이었다.

인공지능과 자본의 결합인 플랫폼과 데이터로 자본의 형태가 변하면서, 노동지형이 흔들리고 노동시장의 환경이 퇴보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유효함을, ‘라이더유니온’이 2019년 노조를 결성하면서 확인해주었다. 플랫폼기업에 의해 생성된 많은 새로운 직종 중에 연극의 소재로 배달라이더를 선택한 김재엽의 이유가 이 점에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이야기를 매우 순발력있게 무대화한 <자본3>의 개척정신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면 시(詩)성이 약해지면서 교조적이 되거나 교시적이 되는 점을 경계하여 ‘프로파간다’에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는 있다. 예를 들면,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째로 삭제하면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대한민국 최초의 배달라이더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https://riderunion.org/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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