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유빈(연극평론가)
이토록 아픈 비극이 또 있을까. 햄릿 왕자의 처절한 복수심, 그리고 안타까운 사랑. 이 고전은 시대를 넘어 인류의 감성에 끊임없이 떨림을 전한다. <햄릿>은 드라마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교과서적인 필수 고전이며, 삶에 대해 고민하는 개인에게도 필독서이자 필견 공연인 작품이다. 최근 여러 무대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이 유독 중첩되어 상연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본문에서는 신시컴퍼니 제작, 홍익대아트센터에서 약 3개월에 달하는 대장정의 길을 달리는 중인 배삼식 극본, 손진책 연출의 <햄릿>에 대해 이야기한다. (2024년 7월 7일 관람)
온통 검고 어두운 무대, 선왕의 죽음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작품인 만큼 이 어두운 이미지는 어떤 무대에서든 바뀌지 않는다. 프롤로그에서 마치 혼이 나간 듯한 모습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의자에 앉아서, 또는 서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허무함을 온몸으로 외친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사이에 어둡고 낮은 목소리들이 지나다닌다. 초월적 존재인 듯한 여인들은 비극의 흐름을 따라다니듯 혹은 이끌어가듯 각 무대의 장면 장면에 등장하여 묵직한 울림을 더한다. 원작보다 더 중후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이 여인들의 대사와 움직임이 한몫한 듯하다.
기존의 <햄릿>보다 주목을 받은 이유는 어쩌면 연륜있는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각 등장인물이 주는 무게감에 맞춘 듯한 묵직한 배우들의 역할 배치가 적절해 보였다. 무대의 호흡이 단 한순간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연기력으로 무장한 배우들은 관객의 집중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냈다. 장장 3시간여를 무대 위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다양한 감정을 대사로 쉼없이 뱉어내야 하는 주인공 햄릿 왕자가 무대속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 것 역시 중견 배우들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견 배우의 연기력에 비교되지 않는, 절대 부족하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 젊은 배우들에게도 큰 박수를 보내는 바다.
지극히 중세적인 모양을 띠고 있는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현대식 문물에 의아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과연 그러한 변형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 갔지만, 초현실적 존재가 등퇴장을 반복하는 무대 위에 과연 불가능할 것은 없지 않겠나. 이야기 전개와 무대 구성을 짜임새 있게 이어나가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했을 ‘권총’ 그리고 ‘휴대전화’. 어쩌면 그 뜬금없을 수도 있는 물건들의 등장이 위화감 없이 잘 스며들었다는 점에 안도해 본다.
<햄릿>은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이지만 각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는 적어 무대가 비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종종 한다. 이번 <햄릿>은 그러한 우려를 알고 있다는 듯, 큰 무대의 활용도가 돋보였다. 반투명 거울로 공간을 분리하여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비쳐 보이도록 하거나, 소리로만 처리할 수 있었던 내용을 시각화하고, 주요 장면들이 무대 곁으로 치우치지 않고 대체로 무대 중앙으로 들어오게 하여 관객의 집중도를 높였다.
죽어가는 햄릿 왕자의 마지막 독백이 이 끔찍한 비극의 끝을 알린다. 그리고 참혹하게 끝나버린 복수극 뒤에는 영원한 침묵만이 남는다는 진리를 전한다. 모두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적막한 무대. “나의 대사는 모두 끝났다. 모든 것이 지나갔다. 남은 것은 침묵 뿐.” 독백이 울려퍼지며 장엄과 참담이 함께 존재했던 커다란 무대의 막이 내린다. <햄릿>은 볼 때마다 늘 저릿한 마음을 안고 누가 악인일까, 누가 선인일까, 되뇌이며 인간의 선악,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며 돌아가게 되는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사뭇 다르다. 햄릿의 외침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박힌다. 침묵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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