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9)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

 

 

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 (연출: 조광화) (2021) 김성녀(파우스트), 박완규(메피스토펠레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국립극단이 올린 ‘파우스트 엔딩’을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조광화 연출이 국립극단을 이끌고 명동예술극장에 올린 무대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여자(김성녀 배우)였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남자 그리고 노인이라는 벽돌을 한 방에 부숴버린 신선한 해석이었다.

연극을 관람하는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두 음악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파우스트 서곡’이라는 같은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지만, 하나는 남성 작곡가 안톤 루빈슈타인(A. Rubinstein)이, 다른 하나는 여성 작곡가 에밀리 마이어(E. Mayer)가 낳았다.

부록 제9편에서는 연극 ‘파우스트 엔딩’처럼 대조적이지만 유사하고, 이질적이지만 본질적인 두 ‘파우스트 서곡’을 톺아보겠다.

 

안톤 루빈슈타인 (Anton Rubinstein; 1829~1894)

 

유대계 러시아인인 안톤 루빈슈타인은 프란츠 리스트와 라이벌일 정도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에 가려졌지만, 루빈슈타인은 음악 교육자이자 지휘자 그리고 작곡가였다.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하여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는데, 그중 한 명이 차이콥스키다.

서유럽의 낭만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아 6개의 교향곡, 5개의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많은 관현악곡과 실내악곡을 남겼지만, ‘바장조 멜로디 op.3-1’만이 소품으로 자주 연주될 뿐 나머지 작품들은 공연장은 물론 음반점에서도 접하기 쉽지 않다.

 

안톤 루빈슈타인의 ‘파우스트 서곡’ (op. 68) 악보 표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그리고 음악원 원장의 명성과 지위로 러시아 음악계의 거두가 되었지만, 루빈슈타인은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864년, 그는 최고의 문학 작품인 묵직한 파우스트를 주제로 묵직한 교향곡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음악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결국 이미 쓴 부분을 단악장으로 정리해 20분 정도의 관현악 ‘파우스트 서곡’으로 완성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DOgF9oGK44

안톤 루빈슈타인의 ‘파우스트 서곡’ op. 68

(George Enescu Philharmoonic Orchestra / 지휘: H. Andreescu)

 

 ‘파우스트 서곡’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했던 안톤 루빈슈타인의 성격처럼 위엄있고 장쾌하다.

음악의 시작은 관현악 총주와 묵직하게 움직이는 첼로의 선율이 내림 나장조의 두꺼운 화음으로 터져 나온다. 파우스트의 서재를 상징하는 특징적인 리듬이 목관 악기와 금관 악기 솔로로 느리게 상승한 다음 템포가 Allegro assai로 빨라지면서 현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음량과 긴장을 키워가며 파우스트의 고뇌를 표현하는데, 현과 관의 주고받음이 너무 분절되어 매끄럽지 못하다. 이후 첼로가 주도하는 유려한 선율이 나오는데, 누가 들어도 그레트헨의 음화다. 원작 파우스트의 흐름에 따라, 청량한 그레트헨의 선율은 파우스트의 고뇌로 처참하게 침식당한다. 중반부에는 장면이 바뀌는 듯한 금관의 코랄이 이어지고, 그레트헨의 선율이 현악기로 약하게 깔리면서 목관의 처량한 독주가 이어진다. 처음의 서재 주제가 광포하게 등장하면서 긴장도를 높이지만, 이 부분도 현, 목관, 금관이 잘 섞이지 못해 뚝뚝 끊어지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메피스토펠레스를 상징하는 기괴한 음형들이 들리나 크게 부각되지 못한 채로 다른 주제에 묻혀버린다. 음악의 후반부에 구원을 표현하려는 듯한 오보에 독주가 등장하지만, 앞뒤와 연결 관계가 부자연스러워 에피소드로 삽입된 느낌이 강하다. 잠잠한 그레트헨 구간을 지나 메피스토펠레스의 주제와 파우스트의 주제가 뒤엉키며 팀파니와 함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러나 이곳 역시 주제와 주제 사이가 뚝뚝 끊겨서, 감정의 흐름이 수시로 단절된다. 원작 비극처럼 중저음 현과 바순 그리고 클라리넷 솔로가 죽는 듯이 음악을 끝맺는다.

 

전체적으로 남성 작곡가 안톤 루빈슈타인의 ‘파우스트 서곡’은 선배 작곡가들인 베를리오즈, 슈만, 리스트가 수없이 써먹었던 ‘심각한 파우스트 주제 – 청아한 그레트헨 주제 – 기괴한 메피스토펠레스 주제’라는 구성을 그대로 따른 구태의연이다. 울림의 결은 광포할 뿐 표면적이며, 음악의 극적 연출은 매우 부족하다.

 

에밀리 마이어 (Emilie Mayer; 1812~1883)

 

에밀리 마이어는 서양 음악사에서 매우 희귀한 여성 작곡가다.

이전에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헨젤과 슈만의 부인 클라라 슈만이 있었지만, 이후 걸출한 작곡가가 나오지 않으면서 여성 작곡가의 맥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여자 베토벤’이라는 간판을 단 에밀리 마이어가 세간의 주목받으며, 훗날 20세기에 여성 작곡가들의 개화에 중요한 활로를 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힘들었던 시기에 불우한 가정 환경까지 겹쳐 에밀리 마이어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0대 후반에 작곡을 시작했다. 하지만, 4개의 교향곡과 8개의 관현악 서곡 그리고 8개의 현악 사중주와 수많은 실내악곡을 왕성하게 작곡하며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했다.

 

에밀리 마이어의 ‘파우스트 서곡’ (op. 46) 악보 표지

 

71세까지 살았던 에밀리 마이어의 음악적 완숙기는 50대 이후였다. 1848년부터 1883년까지 작곡된 8개의 서곡 중에서 세 곡은 악보가 유실되었고, 나머지 다섯 곡 중에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곡이 명작 ‘파우스트 서곡’ 나단조 op.46이다. 생을 마감하기 3년 전, 그녀의 나이 68세 때다. ‘파우스트 서곡’은 발표와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인 1881년 네 손을 위한 피아노 판까지 출판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vAbMqosz54

에밀리 마이어의 ‘파우스트 서곡’ B단조 op. 46

(Kölner Akademie / 지휘: M. A.Willens)

 

4/4박자 Adagio 도입부의 깊이는 늙은 학자 파우스트의 밑바닥을 관통해 청자의 깊숙한 내면까지 내려간다. 이 느린 도입부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어두운 분위기만 잡는 것이 아니라, 화음과 울림이 큰 원을 그리며 헤맨다는 점이다. 주요한 두 주제와 완전히 분리된 기존 소나타 형식의 도입부와는 달리, 마이어의 도입부에는 소나타 형식의 두 주요 주제(제 1 주제, 제 2 주제)와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두 보조 주제(목가 선율, 코랄 선율)를 암시하며 회오리 친다. 즉, ‘서곡이라는 관현악곡’ 안의 ‘서곡’인 셈이다. 마이어는 이런 기발한 발상을 통해 베를리오즈(1846년)부터 슈만(1853년), 리스트(1857년) 그리고 안톤 루빈슈타인(1864년)까지 답습된 파우스트 도입부 구조에 견고한 구성력과 놀라운 세련미를 더한다. 이어지는 6/8박자, Allegro 부분에서 격렬하게 추락하는 제 1 주제와 가련하게 상승하는 제 2 주제가 차례로 제시된다. 마이어는 단조로울 법한 소나타 형식에 목가와 코랄 보조 주제를 삽입해 두 주요 주제를 다채롭게 발전시킨다. 격렬하게 추락하는 제 1 주제와 코랄 보조 주제가 결합해 ‘하강-상승’의 고도차를 만들어내고, 가련하게 상승하는 제 2 주제와 목가 보조 주제가 어울려 아름다운 추억을 빚어낸다. 곡이 종반부(총보상 letter N)에 이르면 장조와 단조가 뒤엉켜 싸운다. 점점 거대해진 울림은 빛과 어둠, 구원과 죽음의 경계를 흔들어댄다. 서곡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마이어는 나 장조의 코랄 주제를 눈부신 광휘로 터뜨린다. 이 감동적인 울림만으론 부족했는지 마이어는 악보 위에 한 문장을 남겨 놓았다. ‘sie ist gerettet.’ – ‘그녀는 구원되었다.’

 

‘파우스트 서곡’의 259마디에 작곡가가 남겨 놓은 문장

 

총 12,111행의 방대한 비극 파우스트를 단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어떤 단어를 택해야 할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끝없이 지향(志向)하는 파우스트의 ‘방황’ 그리고 영원히 여성적인 그레트헨의 ‘구원’이야 말로 괴테의 궤를 꿰는 두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지상의 인간 파우스트가 방황을 멈추는 순간, 구원의 기적이 하늘에서 일어난다.

마이어는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이라는 단순한 인물 묘사가 아닌 ‘방황’과 ‘구원’이라는 철학적 테제에 소리를 집중시켰다. 이 소리의 울림은 매우 섬세하고 유례없이 내면적이다. 그래서 마이어의 ‘파우스트 서곡’은 원작 희곡의 육체인 ‘플롯’을 꿰는 것이 아니라, 원작 희곡의 정신인 ‘인간 본성’을 관통한다.

마이어가 괴테 파우스트를 얼마나 깊게 읽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심층 학습으로 비극 2부까지 독파했을 것이다. 첫 번째 근거는 음악 후반부에 흘러나오는 목가 보조 주제에서 원작 2부의 마지막 장인 심산유곡(深山幽谷; Bergschluchten)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근거는 기본 조성인 나 단조와 삽입된 나 장조의 치열한 싸움 끝에 장조로 음악을 끝맺는다는 점이다. 메피스토펠레스(단조)와의 내기에서 승리한 신(장조)을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는 멋진 음악적 연출이다. 세 번째는 최후에 울려 퍼지는 코랄 보조 주제다. 이는 영락없는 천사들의 합창이다. 장엄하게 상승하는 클라이맥스(letter N, 259마디)에 작곡가가 음표가 아닌 글로 ‘그녀는 구원되었다!’라고 적어 놓은 이유는 무얼까?

구원된 그녀는 그레트헨일 수도, 아니면 더 위대한 음악을 지향하며 68년간 방황했던 늙은 작곡가 에밀리 마이어 자신일 수도 있다.

 

 

남성 작곡가 루빈슈타인과 여성 작곡가 마이어의 두 ‘파우스트 서곡’을 자세히 분석해 보았다.

구조의 독창성, 음악적 완성도, 주제의 연결성에 있어서 마이어의 판정승이고, 극적 연출과 미학적 깊이에 있어서는 마이어의 K.O.승이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적 성별 분류는 촌스러움을 지나 유치함의 영역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파우스트의 성별이 무엇이든, 작곡가의 성별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남성과 여성, 졸작과 명작은 모두 넓고 긴 스펙트럼 위의 어느 구간일 것이다. 이 스펙트럼 위에 선 우리의 지향점이 갈라치기는 아닐 것이다. 영원히 방황하고 또 구원될 때까지, 우리는 경계없는 스펙트럼 위를 유려하게 미끄러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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