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순천향대 명예교수)
- 관객
관객(觀客)을 그대로 풀이하면 ‘보는 손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연극 관객에 대해서는 그보다 훨씬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즉 말과 동작을 주요 전달 수단으로 한다는 데서 알 수 있듯 관객에게 우선 필요한 감각은 시각과 청각입니다. 그러나 그저 시각과 청각으로 ‘보고 듣는’ 차원이 아니라 ‘보고 듣고 이해하는’ 상태를 필수 요건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객석에 앉아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만 잤다면 과연 그 사람을 관객이라 할 수 있을까요? 눈을 감고 있었으니 ‘보는 사람’의 조건도 못 갖췄고, 그러니 아예 관객의 자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하는 연극을 보러 왔는데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었다면 그 사람도 관객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보고 듣긴 했지만 그것이 이해에까지 이르지 못 했을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객은 전달을 전제로 의미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객석은 채웠으나 진정한 관객이 아닐 경우 그 공연을 과연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입니다. 왜냐하면 관객을 기본 구성 요소로 하는 연극에서 관객이 빠진 상태이니 작품이 아닌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좀 더 확대하면 부분적으로건 전체적으로건 작품이 너무 어려워 이해가 안 되거나 표현력이 떨어져 전달이 안 되는 상태까지 모두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그 이해의 책임은 관객, 즉 소비자보다는 공연자, 즉 생산자에게 있습니다. 적어도 관객들이 이해 못 한다고 관객의 수준을 탓하기에 앞서 과연 전달이 안 되면 작품 자체가 형성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반성하는 것이 옳습니다.
관객 또한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며 자신만 이해 못 한다는 착각에 빠져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모르면 십중팔구 남들도 모를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이 이해 안 될 때는 우선 작가를 의심해 보고, 그랬는데 작가와 희곡에 문제가 없다면 그 다음 번역자나 연출가, 그리고 배우를 의심해 볼 것이며, 그런 뒤 마지막으로 관객 자신의 이해력을 점검해 보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입니다.
- 전달 수단
조명, 분장, 의상, 장치, 음향, 음악 등 시청각적 요소들도 전달 수단이겠지만, 연극의 주된 표현 수단은 배우의 대사와 동작입니다. 물론 춤과 노래 등도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로, 연극의 주된 표현 수단은 대사와 동작으로 봅니다. 그런데 대사는 설명 방식보다는 대화가 중심입니다. 특히 두 명의 대화가 제일 많죠.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서 “아,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구나.”하고 깨닫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 사용하는 말은 당연히 그 사회, 즉 일상의 어법과 문법을 따라야 합니다. 즉 어휘는 물론이고 발음, 억양, 휴지도 그래야 이해가 되고 전달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동작도 마찬가지고요. 일상의 동작과 같아야 전달이 되죠. 일상에서는 고개를 끄덕여야 그렇다는 뜻인데 고개를 저으면서 그렇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연극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일상의 언어는 성격적으로는 전혀 다른 언어죠. 일상어는 생각과 거의 동시에 발화하지만, 대사는 미리 써 놓은 걸 분석하고 연습해서 하니까, 100% 완벽할 수 있죠. 어쨌든 이렇게 성격은 다르지만, 그 형식만은, 즉 모양만은 똑같다 이겁니다. 같은 원칙이 동작에도 적용되는 거고요.
100% 완벽이란 무대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배우들에게는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 없이 엄격한 의무가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배우는 모든 관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예를 들어 대사를 구사할 때 호흡과 발성, 공명, 발음, 휴지, 억양, 강세 등이 완벽해야 합니다.
일반인이라면 발음이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다시 말하거나 다시 물어 확인할 수 있지만, 공연 중인 배우에게는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배우의 발음은 그것을 듣는 관객 전원이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의 경우 그것이 ‘카’와 ‘까’ 사이에서 ‘가’로 인식되는 경계가 있을 텐데, 편의상 그것을 스펙트럼이라 하고, 그 스펙트럼의 정 중앙을 꿰뚫어 듣는 이 모두가 똑같이 ‘가’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배우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발음일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휴지나 억양, 강세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말을 끊었는지 안 끊었는지, 또는 어미를 올렸는지 안 올렸는지 불분명해서는 대사로서 제대로 된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미를 올리는 의문문이 있다 할 때, 일반인 중에는 많이 올리는 이도 있고 적게 올리는 이도 있겠지만, 배우라면 관객 누구나 의문문으로 인식하면서 또 어색하지 않은 정도, 즉 역시 스펙트럼의 정 중앙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흔히 연기에 대하여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바로 그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표현의 규칙들을 준수해야 비로소 올바른 전달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깔려 있습니다. 연극의 말과 몸짓이 약간만 그 규칙을 벗어나도 관객들은 어색하게 느낄 것이고, 그것이 지나치면 의미 전달은 고사하고, 모든 관객에게 심한 당혹과 고통만을 안겨 주면서 작품은 크게 손상되고 말 것입니다.
- 무료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리뷰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