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린피그 역사시비 8월 프로젝트 <후-하>

글_김정숙(공연비평가)

 

숨이 턱턱 막히는 8월의 무더위, 얼린 물 한 병으로 무장한 채 극장에 들어선다. 생각보다 시원하다. 전단지를 보니, “승자의 관점을 거부하고 우리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로 쓰는 월간 시비(是非, 12)”중 8월 프로젝트이다. 일년 전의 8월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공연화 한 것이다. 요즘 젊은 연극인들은 역사를 어떻게 의식하는가 궁금했었는데, 그린피그의 이 프로젝트는 비평가의 입장에서도 시비 붙어 볼 만하다 생각하며 물 한 모금 마신다.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도 있으니, 딱 좋지 아니한가!

주은길 연출 (김용희 정연종 주은길 조문정 박정근 이승훈 공동창작)의 <후–하>는 ‘2023년 새만금 잼보리 중단사건’을 모티브로 다룬 이야기다. 2023년 8월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스카우트 대회가 중단된 사건에 대한 조명이라 할 수 있다. 일년 전의 일이라 아직은 역사화되지 않고, 기억의 저장고 안에 생생히 살아 있는 사건이다.

 

사진 제공: 그린피그

 

공연 <후–하>는 전체적으로 보면 2부로 나뉜다. 전반부에는 정치가의 “여땅에 매년 들어가는 돈이 을만지 아냐- 머라도 해가꼬 돈 땡겨와야할거 아녀”라는 대사로 어떻게 세계 잼버리 대회가 새만금에 개최되게 되는지 밝혀진다, 이에 연이어 청소년들의 잼보리(즐거운 축제, 놀이라는 뜻이란다) 참가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러나 “나무 한그루가 없다. 너무 뜨겁다. 마치 태양이 2개가 아니, 10개가 떠 있는 것 같다”는 소리와 함께 청소년들에게 구토와 설사 등의 온열질환이 발생한다. 이와 관계한 의료 및 위생시설의 부재도 폭로된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여름풍경은 귀신영화처럼 믿을 수 없이 진행되고, 외국인 학생은 읊조린다. “코리아는 예산이 없었던걸까? 너무 열악하다. 대한민국은 겉으로만 선진국이었던건가? 내가 잘못들은건가? 왜 청소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걸까? 휴지는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화장실이 이 모양이면.. ”. 듣고 있자니, 그 때 사건이 떠오르고 화가 슬그머니 나려한다. 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 해야 한다고 했던 세계 유명 신문이나 당시 외국부모들의 분노가 같이 떠오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행사 관계자들은 완전히 다른 여름날의 풍경이다. 에어콘 빵빵한 곳에서 외국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 공연에서 돈/자본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행사를 위해 끌여들인 지원금이 공연의 중간에 등장인물 1171억으로 등장하여 “난 대체 어디다 쓰여졌는지. 니들 뱃속을 들여다보면 알겠지”하고 후-하 숨소리를 낸다. 이 공연에는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 새, 조개, 돈, 비데 같은 비인간도 등장한다.

2부는 1부 이야기의 전사前史이다. 공동창작자들은 이 사건을 정치적 관점을 넘어 새만금 간척사업이 내포한 환경파괴의 관점에서 조명하고픈가보다. 이 사업이 이 지역주민의 삶과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해양생물과 동물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였음이 폭로된다. 지역주민의 죽음과 조개폐사, 간척사업에 의한 다양한 동물의 멸종위기가 표현된다. 가령, 뉴질랜드에서 목숨을 걸고 날아온 도요새에게 “도망치라고. 제발 도망치라고. 미안하다고. 여기엔 희망이 없다고. 미어지다 못해 쓰리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이 극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만 …, 새만금에 갔을 때 박물관에서 아이랑 종이새를 접고 망원경으로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울컥 해진다.

 

사진 제공: 그린피그

 

<후-하>의 마지막 장면은 앞의 1, 2부 장면들과 이질적이다, 어쩌면 공동창작자들의 몸으로 기억한 이미지이자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젊은 관객은 23년 새만금 잼보리 중단사태를 이렇게 알기쉽게 재현한 것에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 실재 발생한 사회적 사건과 그와 관계한 현상을 잘 재현하였다고 필자도 생각한다, 그리고 애썼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중요한가 이렇게 뒤돌아보는 일이!

기억하면 할수록 청소년 자식을 둔 부모로써 화가 나고, 수치심이 일었던 사건인데 역시 연출과 공동창작자들도 작업과정에 몹시 분노했다고 한다. 대사와 장치를 보면 꽤 유머러스한 장면이 많다. 가령 등장인물 “없는 의사”, “없는 대통령”, “없는 비데”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장면은 인식과 웃음이 툭 툭 튀어 나오는 설정이다. 그러나 배우들은 공연 내내 소리만 질러댔다, 샤유팅만 했기에 관객은 따라가기 바빴다.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해내는 배우들도 연기하면서 다시 열받은 걸까? 풍자적이고 위트 있는 대사를 힘을 빼면서 툭 툭 치기에는 이 역사적 사건은 너무 가깝게 느껴지는 걸까? 인식과 웃음을 자아내기에는 거리두기 혹은 냉철함이 더 필요했다. 이 장면은 오히려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를 들려주며, 다소 낭만적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왜 지금까지 잘 풍자한 사건을 이렇게 끝내지 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데, 마지막 장면이 시작된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요즈음 젊은 연극인의 역사의식이 어떻게 체화되었는가 하는 초기의 질문으로 돌아 갔고, 이 장면에 그 해답이 있었다.

 

사진 제공: 그린피그

 

마지막 장면에는 배우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배우들이 3보 1배한다. 이를 배경으로 배우 한 명이 길거리에 침랑을 깔고 노숙을 한다. 침랑 앞에 작은 손전등이 켜진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거리로 나앉은 젊은이들의 몸을 목격했다. 지금까지 배우들은 주로 의자에 앉거나 서서 움직이며 호흡과 몸을 세웠다면, 여기서 부터는 시선은 막히고, 호흡은 내려가고 있었다. 바닥에 드러 눕거나, 바닥에 엎드리며 가는 신체들이었다. 이 장면에 대해 주은길 연출가는 잼보리 대회를 중단하고 돌아간 그 청소년들이 마치 국제난민 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후-하! 여기서 필자는 젊은 연극인의 몸으로 쓰는 역사의식을 감지할 수 있었다. 거리로 내몰린 위기의 상상력으로, 그리고 3보 1배로 저항하던 미디어에 담긴 문화적 기억을 동일시하는 상상력으로 젊은 연극인들의 역사쓰기는 이루어졌다. 누가 이들을 거리의 바닥으로 내몬 것인가? 후-하거리는데 초등6학년 아들이 들어온다. “아들, 너 작년에 그 잼보리 사태 기억하니?” 물었더니 속사포처럼 대답한다. “아! 나라 X망신 시키고, 우리 아이돌이 뒤처리한 사건!”하고 ‘시비를 턴다’. 이 사건은 저마다 다르게 기억되지만 누군나 시비 제대로 걸고 싶게 한다. 그러나 결코 아름다움에 대한 회고적 노래나 종교적 코드로 역사를 낭만화 해서는 안된다. 공동창작자들은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시계가 자본이라는 방향으로 돌아 가고 있었음을! Boys, Be ambious!

공연을 마치고 극장을 나가는데, “역시 관객카드”도 준다, 12개 모으면 에코백 준다. 9월 프로젝트는 김지은 연출로 9월 6일~15일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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